소설리스트

미국 깡촌의 천재 작가-61화 (61/126)

결실(2)

*

다시, 아이오와 대학교의 산학협력 사무실.

“그러면 시상식 건은 이렇게 하고···.”

시상식 얘기를 마무리하던 중.

지잉, 지이잉- 진동하는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웬일로 에이든이 메시지를 보냈다.

[에이든_솔러 : 유쥐인 이것 좀 봐 유튜브 메인에 니가 나왔어 https://www.youtube.com/shorts/0Oo31892···]

링크를 클릭해보니 유튜브 영상이 나왔는데.

‘뭐야.’

···바로 내가 나오는 쇼츠였다.

[불닭라면 챌린지 중 건강이 너무 신경 쓰였던 고등학생]

[조회수 5.6만회]

별 생각 없이 재생시켜보자-

[여러분, 매운 맛이 미각이 아니고 통각을 자극한다는 건 다들 알고 계시죠?]

[···오늘날 미국인의 염분 섭취량은 세계보건기구 권장량의 두 배 이상인···]

[···특히 견과류는 심혈관 건강에 아주 효과적인···]

에이든의 불닭라면 챌린지 영상 속.

내가 건강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부분만 쏙 잘라내 누군가가 쇼츠로 만든 듯했다.

지잉, 지잉—

이어지는 에이든의 메시지에 따르면, 그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무단으로 올려버렸다는 것.

···생각보다 조회수가 많이 나와 유튜브 메인에 떴다는 말에 당혹감이 드는데.

[에이든_솔러 : 어떻게 할까?]

[유진_권 : 어떻게 하긴 당장 지워달라고 해야지]

[에이든_솔러 : OK!]

나를 너무나 잘 아는 에이든은 군말없이 곧바로 대처했다.

해당 게시자에게 지워달라고 요청하는 건 물론, 유튜브 측에 신고도 넣었다고.

‘뭐, 그럼 됐네.’

사소하고 신기한 해프닝이네, 그렇게 생각하는데.

“어, 작가님 무슨 일 있으실까요?”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좋습니다. 이제 제일 중요한 보고를 드리자면···.”

미스터 케빈은 준비해온 보고자료를 쫙 펼쳤다.

제일 먼저는 <호수괴물> 영화 작업 진행상황.

“오, 촬영이 시작됐군요.”

“네, 촬영기간은 두 달 정도가 될 겁니다.”

촬영현장도 너무 궁금하긴 하지만, 호기심을 잘 억누르며 결과물을 기대하는 수밖에.

그리고 이내, 미스터 케빈이 펼쳐 보인 다음 페이지를 보고 나도 모르게 눈이 커졌다.

“잠깐만, 10개국···이요?”

그런 내 표정을 보고 기분 좋게 웃는 케빈.

“흐흐, 이거 작가님의 놀란 얼굴은 처음 보는 것 같네요. 네 맞습니다! <피터 팬>의 해외판권 오퍼인데요.”

사실은 이게 제일 중요한 안건이라고 덧붙인 그가 말을 이었다.

북콘 현장에서 미팅을 마친 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꽤 많은 수의 오퍼를 받았으며.

“워낙 국가도 다양하고 출판사도 많다 보니, 미팅 자리에서 한 번에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국가별 오퍼한 출판사들의 명단을 보여주는데, 그 수가 너무 많아 눈이 어지러울 지경.

‘···와.’

그리고 이내, 오퍼 금액을 보고는 다시 고개를 들고 말았다.

“잠시만요, 지금 이게··· 영국 출판사들 오퍼 금액 맞죠?”

“하하, 네.”

영국에서 손 꼽히는 대형 출판사 린델콜린스를 비롯, 총 여덟 곳에서 입찰해왔고 가장 높은 입찰액이-

“···10만 파운드라고요?”

한화로 1억이 훌쩍 넘어가는 금액에 눈이 커져서 되묻자, 빙긋 미소만 짓는 케빈 클레그.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이전에 <호수괴물>의 판권을 사간 4개국을 비롯해 총 10개국이 입찰에 응했는데.

그중 최고 입찰가들의 총액을 따져보면-

‘···50만 달러라고?’

생각지도 못한 금액에 머릿속이 어질어질한데.

미스터 케빈의 여유로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제가 말씀드렸잖습니까, 몸값을 가파르게 올려보겠다고.”

안 그래도 그런 말을 듣긴 했지만, 이 정도로 올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북콘 미팅에 온 해외 출판사 담당자들이 아주 적극적이었다, 라는 미스터 케빈의 말.

“설마··· 협박 같은 거 하신 건 아니죠?”

“푸흐흐, 작가님 농담도 참. 제가 어디 그런 거 할 얼굴로 보이십니까!”

신나게 웃을 때도 가끔은 무서워 보이는 미스터 케빈을 가만히 마주 보는데.

이내 케빈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근데 저는 이 금액이 아주 적정한 수준이라고 봅니다.”

“선인세 경쟁 때문에 거품이 낀 게 아니다, 라는 말씀이죠?”

“그렇죠! 왜냐하면···.”

씩 웃더니 보고서의 다음 장을 넘겨 보인다.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 인세 정산]

표와 그래프를 사용해 정리해놓은 내용 아래, 명확한 수치가 나와 있었다.

[-기간 : 출간일로부터 1개월

-예산 정산액 : $216,400.00]

도합 10만 부 내외의 종이책(페이퍼백과 하드커버), 5만 부 내외의 전자책 판매에 대한 정산금.

총 20만 달러를 상회하는 금액을 보고 눈이 커졌다.

‘그새 15만 부가 넘게 팔렸다고?’

가장 큰 요인은 ‘아마존 이달의 책’ 선정과, 킨들 버전의 대대적인 프로모션.

“···.”

입을 벌리고 아무 말도 못 하는 나를 보며 말을 잇는 미스터 케빈.

“불과 한 달간의 정산금이 이 정도 수준입니다, 작가님.”

그런데 해외 출판사들은 무려 3년간 저작권을 확보하는 셈이 아닌가.

번역비를 투자해야 하는 경우는 모르더라도, 영국이나 호주, 뉴질랜드 같은 영미권에선 이 정도 선인세를 받아도 과도한 수준이 절대 아니라는 것.

“그저 놀라운걸요.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순수한 감탄과 고마움을 담아 말하자, 고개를 젓는다.

“작품이 좋은 덕분이죠.”

여하튼.

나는 미스터 케빈과 함께 해외 출판사의 오퍼 건을 처리했다.

딜이 완전히 마무리되어 선인세가 지급되기까지는 꽤 시일이 걸릴 예정.

···정신없이 논의하다 보니 어느새 두어 시간이 지나 있었는데.

“이제 딱 하나! 마지막 소식이 남았습니다.”

그가 말한 마지막 소식이란 아주 반가운 것이었다.

“짜잔.”

케빈이 내보인 것은 2024년도 가을-겨울 시즌 라이터스홈 카탈로그.

소속 작가 명단을 정리해놓은 첫 페이지를 펼치자.

“···!”

‘우리의 새로운 작가’에 마커스 스톤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마커스 작가님이.”

“네, 맞습니다. 샌포드와의 계약을 완전히 정리하고, 저희 라이터스홈과, 그것도 저 케빈 클레그와 계약하셨어요.”

덕분에 재능 있는 작가와 계약할 수 있게 됐다며 내게 감사하는 케빈.

“흐흐, 다 에곤 작가님 덕분입니다.”

“제가 뭘요.”

말은 저렇게 하지만, 법무 상담과 소송부터 시작해 꽤 신경쓸 부분이 많았을 텐데.

‘샌포드 에이전시 쪽에서도 지저분하게 나왔을 거고.’

손이 많이 가는 일들을 본인이 다 처리하고도 오히려 내게 고마워하는 케빈을 보며, 나는 또 한 번 확신했다.

···마커스 작가나 나나, 참 괜찮은 에이전트를 만난 것 같다고.

*

바로 다음 날 오전.

온화하고 쾌적한 날씨가 기분 좋은 가운데, 출판사 SFF프레스는 들뜬 분위기로 가득했다.

“으흐흐, 네뷸러상이라니···.”

그중에서도 제일 흥분한 것은 에곤 K의 담당자 마크.

매일처럼 일이 산더미처럼 쏟아지는 와중에도, 자신이 담당하는 작가가 네뷸러상을 수상하게 됐으니 저절로 웃음이 났다.

기쁜 소식은 그것만이 아니었는데.

“마크 선배, 이것 보셨어요?”

“으흐흐, 그으럼! 이미 진작에 봤지!”

후배가 제 모니터 화면에 띄운 것을 보고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마크.

그것은 다름 아닌 ‘퍼블리셔스 마켓’ 사이트의 메인페이지.

[퍼블리셔스 마켓 뉴스-오늘의 슈퍼 딜]

퍼블리셔스 마켓은 미국 전역의 출판인들이 애용하는 웹사이트.

일정 자격을 갖춘 유료 회원가입사들만 액세스할 수 있는 이곳의 메인에-

[에곤 K, 해외 10개국에서 총 여섯 자릿수 거래 체결]

···이런 타이틀의 기사가 떠 있었으니 말이다.

[문학 전문 에이전시 라이터스홈은 에곤 K의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이 영국과 독일, 프랑스, 한국, 일본 등 해외 10개국에 총 6자릿수의 선인세로 계약됐다고 발표했다.

출간 1달 만에 10만 부 이상이 판매되는 기염을 토한 이 대형 SF 베스트셀러는 해외 시장에서도 센세이션을 일으켜···]

여섯 자릿수란 10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 사이를 말하는데, 출판업계에서는 상징적인 금액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즉, 에곤 K가 월드와이드급 유명 작가가 될 준비를 시작했다는 것.

“흐, 몇 번을 읽어도 아주 기가 막히네.”

후배의 모니터에서 눈을 뗀 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은 마크는 곧바로 SFWA 사이트에 접속했다.

‘오, 열렸네!’

마크가 기다리던 것은 바로 ‘제59회 네뷸러 컨퍼런스 & 시상식’ 등록창.

2천 명 이상의 SFWA 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SF판타지 장르계의 대형 행사답게, 벌써 꽤 많은 표가 팔린 참이었다.

‘으어, 비회원은 표가 엄청 비싸네.’

하지만 그는 무려 네뷸러 중편부문상을 수상한 <피터 팬>의 출판사를 대표하는 자격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SFWA협회에서 보내준, 초대코드를 입력하는 것으로 등록은 완료되었다.

“흐흐, 신나네···.”

케빈 클레그의 말을 들어보니 수상 소감은 영상으로 대신한다고 하던데.

‘어떤 영상일지 벌써부터 궁금한걸.’

하루라도 빨리 가고 싶다.

벌써부터 마음은 시상식에 가 있는 기분에, 마크는 헤벌레 웃음이 나왔다.

*

이처럼 네뷸러 시상식으로 출판계가 뜨겁게 달아오른 가운데, 시카고의 어느 스튜디오.

“안녕하세요! 케이티예요. 오늘은 우리 구독자분들께 <버니 랜드>라는 어린이 애니메이션을 소개하려고 하는데요···.”

촬영용 캠을 마주하고 텐션 넘치게 멘트를 늫어놓던 상큼한 외모의 여성은-

“후우···.”

카메라를 끈 후에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방금 찍은 영상을 한 차례 돌려봤다가, 이내 고개를 젓는다.

‘아니, 이대로는 안 돼.’

그녀는 상당한 수의 팔로워를 자랑하는 유명 북톡 채널 ‘케이티북스’의 운영자 케이티였다.

갓 스물을 넘긴 나이이지만, 십 대 후반부터 북톡커로 꾸준히 활동해온 것은 물론.

[2024년 봄,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책 10선]

[이불 속에서 봐야 하는 ‘가장 무서운 책’ 10선]

[책벌레 대학생의 서재를 공개합니다]

···

이런 유의 영상들이 엄청난 수의 조회수를 기록한 덕분에 지금은 업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는 중.

그러다 보니 홍보 리뷰 의뢰도 꽤 많이 들어왔는데, 방금 영상을 찍은 <버니 랜드>도 그런 사례였다.

‘하지만, 진심이 아니라서 그런가.’

자신이 봐도 영 별로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전혀 안 가는 컨텐츠를 리뷰할 때는 조금 회의감이 들기도 하고···.

“아니다, 이럴 때가 아니지.”

영상이 마음에 안 들면 퀄리티를 높일 방법을 찾아야 하는 법.

이럴 때 그녀가 자주 쓰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버니 랜드>와 묶어서 소개할 만한 책을 찾는 것!’

그녀는 ‘진흙 속의 진주’를 찾기 위해 아마존 킨들 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흐음, 토끼가 주인공인 책이···.”

물론 기존의 검증된 책을 리뷰하는 게 더 편하긴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책을 발굴하는 게 그녀의 특기이자 다른 북톡커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었다.

한 시간이 넘도록 독립출판물, 혹은 자가출판된 책들 위주로 살펴보던 중.

눈길을 확 사로잡는 근사한 표지 썸네일이 보였다.

‘···와.’

화려한 색채에 독특한 화풍.

자기 개성이 확고한 그림에 끌려 표지를 클릭하고 들어가자.

귀여운 제목 아래 책 소개문구가 보였다.

[용감하고 지혜로운 토끼 남작 베니의 기상천외한 이야기!

거대한 그리핀에게 잡혀간 베니는 어떻게 집으로 돌아올까요? 베니와 함께 잊을 수 없는 모험을 떠나보세요.]

지은이는 베니 르 레푸스.

출판사에 ‘독립출판’이라고 적혀 있는 걸 보니 셀프퍼블리싱한 책인 듯했다.

평점과 리뷰가 좋은 걸 보니 나쁘지 않은 모양.

‘음, 한번 읽어볼까.’

미리보기를 눌러 페이지를 천천히 넘기다가···.

“어, 다 봤네?”

어느새 미리보기를 전부 읽어버린 가운데, 그녀의 손가락이 자연스럽게 [원클릭 구매] 버튼으로 향했다.

“···.”

곧바로 이북을 구매해 킨들 리더기에 다운받은 뒤, 끝까지 읽는 데까지 채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좋아!”

마음에 쏙 드는 책을 만나서일까,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건 아예 오늘 라이브에서 소개해봐도 되겠어!’

방송 시간 전까지 리뷰 준비를 빠르게 마친 뒤.

라이브 방송을 켠 케이티는 카메라를 마주 보며 멘트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케이티북스의 케이티예요! 오늘은 토끼가 주인공인 애니메이션과 책을 하나씩 소개하려고 하는데···.”

자신의 킨들 리더기 화면을 들어 보이는 케이티.

“여기 여기, 표지 보이시죠? 바로, <토끼 남작의 모험>이라는 책인데요···.”

[···31명이 라이브 방송에 입장했습니다.]

[···118명이 라이브 방송에···]

[···297명이···]

막대한 숫자의 팔로워를 자랑하는 채널답게, 라이브 방송의 시청자 수가 빠르게 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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