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친구 아빠(1)
*
다시, SFF프레스의 사무실.
헤벌레 웃고 있는 마크를 돌아본 후배가 눈치 빠르게 물었다.
“오, 등록 마치셨어요?”
“거럼 거럼.”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하면서도, 마크는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기 어려웠다.
캘리포니아의 5성급 호텔에서 열리는 호화 리셉션과 화려한 만찬, 그리고 시상식까지.
난생 처음 접할 기회에 어깨춤이 절로 날 것 같았으니.
“크으, 이게 다 에곤 작가님 덕분이지.”
“그러게요. 작가님도 오실 수 있음 진짜 좋을 텐데···.”
“내 말이.”
그 말대로, 작가님이 이 행사에 못 오신다는 것이 문득 너무도 아쉽게 느껴졌다.
“···역시, 건강 때문에 얼굴을 드러내는 걸 꺼리시는 걸까요.”
“그렇지 않을까? 세상의 관심을 피해 평온한 일상을 유지해야 하는, 뭐 그런 사정이 있으신 거겠지.”
위기는 잘 이겨냈지만, 지금도 아마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피를 깎는 노력을 하고 계시지 않을까- 라는 결론을 내린 두 사람.
“흐, 에곤 작가님 생각하면 괜히 제 마음이 다 뭉클해진다니까요···.”
“릴리 너도 에곤 작가님 팬 다 됐네.”
“첨부터 팬이었거든요?”
그나저나.
마크의 눈 아래가 퀭한 것을 본 후배가 한마디했다.
“근데 선배, 다크서클이 장난 아니에요.”
“그런가.”
“좀 쉬어가면서 해요, 전 잠깐 1층에.”
그렇게 말을 마친 후배가 자리를 비운 뒤.
‘···잠깐만 좀 쉴까.’
마크는 지친 뇌를 달래야겠다는 생각으로 핸드폰을 들어 유튜브에 접속했다.
“···음?”
메인에 떠 있는 쇼츠 하나가 눈에 띄었다.
어느 아시아인 고등학생이 나와서 건강한 음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30초짜리 영상.
‘이 얼굴, 어쩐지 낯이 익는데?’
평소 같으면 그냥 웃고 말았을 텐데,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생각에 -댓글에 달린- 링크를 타고 본 영상으로 들어갔고.
[요에이든|남자 고등학생들의 불닭라면 챌린지!]
일상 브이로그 치고는 조회수가 상당한 가운데, 아까 그 쇼츠 영상에 등장했던 고등학생을 찾는 댓글도 꽤 보였다.
‘유진, 권유진···?’
권유진, 이라는 이름과 그 얼굴을 가만히 매치시키다가.
“···어!”
뭔가가 퍼뜩 떠오른 마크가 곧바로 SF서브레딧에 접속했다.
‘데님재킷 학생’ 으로 검색하자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하는 게시물.
‘아이오와시티에서 온 권유진이라고 합니다.’
곱상한 외모의 비숍 팬보이 얘기로 이곳이 한동안 시끌시끌하지 않았던가.
비숍 작가와 나란히 앉아 책 낭독을 한 것을 다들 부러워했는데.
“···맞아, 바로 이 얼굴이었어!”
자신은 직접 얼굴 보고 얘기도 했고 말이다.
마크는 유튜브 쇼츠와 SF서브레딧에 올라와 있는 사진을 비교해보고는 동일인이 맞는 것 같단 결론을 내렸다.
‘나 말고도 알아차린 사람이 있으려나.’
SF서브레딧에 다시 들어가보자, 5분 만에 게시물 몇 개가 새로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바로-
[124 헤이, 브로. 이거 봤어?]
···유튜브 메인의 쇼츠로 올라온 건강 광인 소년과 비숍 팬보이가 동일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누군가의 게시물.
└우리 팬보이가 왜 유튜브 메인에 있어?ㅋㅋㅋ
└그 와중에 건강광인 뭐냐 ㅋㅋㅋ
└이거 영상 원본 보고 왔는데 애들 되게 귀엽게 놀더라
└유진 귀여워요
└엥 지금 들어가보니 쇼츠 사라졌네
···
쇼츠 영상도 삭제됐으니 이 게시글도 금방 묻히겠지만.
그 와중에 댓글 몇 개가 달린 것을 보고 마크는 풋 웃어버렸다.
“하, 재밌네.”
그리고는 포스트잇을 꺼내 적기를-
[D-7 네뷸러 시상식]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라앉히며 모니터 위쪽에 붙여놓았다.
*
방학이 시작된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네뷸러 시상식이 어느덧 4일 뒤로 다가온 가운데, 네드가 만들어준 수상 멘트 영상은 이미 SFWA협회 측에 잘 전달된 상황.
그리고 나는···.
“와, 너어무 좋다···.”
“이거 완전 피크닉이네, 흐흐.”
날씨가 포근하다 못해 습해지기 시작한 초여름 아침.
네드와 아델과 함께 근처 숲에 와 있었다.
원래는 혼자 가서 슬쩍 글이나 쓰다 올까 했는데.
‘뭐? ···코믹스 공모전에서 수상했다고?’
‘That’s sick(쩐다)! 이럴 게 아냐, 네드! 우리 파티 해야지!’
···그렇게 된 바로, 셋이서 오게 됐으니.
“오, 오늘 햇빛 넘 좋은데?”
아델의 말대로, 머리 위 우거진 녹음 사이 사이로 떨어지는 햇살이 기분 좋다.
찌르르-
풀벌레 우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가운데.
네드가 직접 싸온 피넛버터 토스트와 과일, 커피.
아델이 가져온 간이테이블과 테이블보.
거기에 우리 아버지의 낚시의자까지 펼쳐놓고 보니 제법 피크닉 분위기가 난다.
“그러게, 공기도 좋고.”
“그럼 그럼, 사람이 햇빛을 좀 봐야지 방구석에만 있으면···. 아 잠깐, 나 지금 유진처럼 말하고 있지 않았어?”
내 말을 받아친 네드가 흠칫하는데.
나는 녀석의 어깨를 툭 치며 한마디했다.
“네드, 공모전 상 탄 거 축하한다.”
“크크, 뭘 이 정도 가지고. 그냥 입선이야, 입선. 그래도 좀 희망이 보이는 거 같다.”
아닌 척하지만 입꼬리가 잔뜩 올라간 친구의 얼굴에 나까지 기분이 좋아진다.
“어디 희망 정도겠어. 내가 장담하건대, 나중엔 미국 출판계를 씹어먹을 작가가 될 거다.”
“···어, 오늘 웬일로 이렇게 칭찬에 후하냐?”
“웬일이라니.”
“그럼 그럼, 씹어먹고도 남지. 네드 너 담엔 인터내셔널 공모전도 도전한다며!”
아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네드.
“근데 이 피넛버터 왜케 맛있어?”
“흐흐, 울 아빠가 직접 만든 거라.”
간단히 토스트를 먹으며 신나게 수다 떤 뒤, 우리는 각자 할 일에 착수했다.
“여기서도 또 그림을 그려야 한다니···.”
네드는 코믹클럽 회지에 들어갈 원고를 부지런히 그렸고.
“토끼 남작 베니~ 용감한 친구~ 동생이 너무 많아서 싫어~”
아델은 통기타를 붙들고 앉아 토끼 남작 주제가의 2절을 만드는 듯했다.
‘있잖아, 토끼 남작 주제가 인기 엄청 많은 거 알아?’
아델의 말로는, 자신이 여태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린 노래 중 조회수가 제일 잘 나왔다고.
‘진지하게 만든 노래들보다 인기가 많은 거 보니 기분이 좀 묘하긴 한데··· 그래도 인기가 있는 게 어디야!’
아주 잠깐 시무룩해하는가 싶더니 금방 신이 나서 2절을 만드는 중이다.
···안 그래도 <토끼 남작>은 아마존에서 제법 쏠쏠하게 팔리는 중이었는데.
‘우왓, 별점이 50개 넘게 찍혔어!’
‘리뷰도 엄청 좋아서···.’
네드와 아델의 말대로, 무슨 조화인지 별점과 리뷰가 계속 꾸준히 달리고 있었다.
덕분에 판매 추이가 점점 좋아지는 가운데, 나는 2권 원고를 집필하는 중.
[공룡 왕국.
문을 꽁꽁 걸어잠근 채, 오직 공룡들끼리만 사는 것으로 유명한 나라.
베니와 버터컵이 그곳에 가게 된 것은 한 장의 초대장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를 들려줄 때 클로이가 엄청 좋아하던 게 생각난다.
‘곤뇽~~ 곤뇽 죠아~’
‘어떤 공룡이 제일 좋은데?’
‘안키요~ 꼬리에 곤봉 달렸쪄.’
···2권의 주요 조연으로 안킬로 백작이 등장하는 것은 그 때문.
[“먼 길 오느라 수고했소.”
안킬로 백작은 백 년 전부터 이 공룡마을을 다스려왔다.
“선대 레푸스 남작의 공이 아니었다면, 이 마을은 이미 오래전에 티라노 대공의 손에 넘어갔을 거요···.”]
클로이에게 몇 번씩 들려주며 틀이 잡힌 얘기라 그런지, 술술 써지는 것이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베니와 버터컵은 안킬로 백작의 부탁을 받고 공룡마을 북쪽으로 향했다.
그곳은 티라노 대공과 그 잔당들의 아지트.
두 수인은 잔뜩 겁을 먹은 채 움직였지만, 의외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가끔은 이렇게 숲에서 글을 써도 괜찮겠는걸.’
머리 위로 떨어지는 햇살.
향긋한 숲 내음을 맡으며 낚시의자에 앉아 노트북 키보드 위에서 손을 움직인다.
타다다닥, 다다닥.
가끔 목이 마르면 아이스커피도 마셔주고···.
“···크.”
머릿속을 지잉, 하고 울리는 카페인의 감각.
건강을 위해 다른 건 다 포기해도 커피만은 안 될 것 같다.
“···방금 유진 봤어?”
“뭐, 커피 마시고 크으거리는 거? 아저씨 같다는 얘기는 굳이 안 해도 됨.”
“하긴.”
옆에서 아델과 네드가 속삭이는 게 뻔히 들리지만, 뭐 좀 아저씨 같으면 어떤가.
‘실제로 알맹이는 아저씨이기도 하고.’
그렇게 <토끼 남작> 2권의 집필을 어느 정도 해놓은 뒤.
내 생각은 -머릿속 한켠으로 오래도록 밀어두었던- 또 하나의 작품으로 향했다.
···바로, <잊혀진 성자들>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아예 잊고 지냈던 건 아니지만.’
틈날 때마다 기억을 더듬어가며 원래 버전 그대로 써내려고 한 덕분에 지금은 70퍼센트 정도의 원고가 있는 상태다.
하지만 그럼에도 막막한 기분이 드는 건.
‘이 원고를 예전 그대로 출간할 생각이 없을 뿐더러.’
···더 나아가 어떤 식으로 수정할지에 대한 확신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이미 성공했던 작품이니 그대로 내면 되지 않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네드.”
“응?”
태블릿에서 손을 떼고 잠시 쉬고 있던 녀석에게 말을 붙였다.
“니 첫 정식 데뷔작이 완전 대박났다고 쳐.”
“오, 듣기만 해도 좋네.”
“근데, 그 작품이 좋은 평가만 받은 건 아냐. 아무래도 첫 작품이라 그런지, 이런 저런 지적이나 비판적인 리뷰도 많이 받게 되지.”
나 역시 <잊혀진 성자들>에 관해 받았던 혹평들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백 명의 선플보다 하나의 악플이 더 괴롭다, 뭐 그런 말도 틀린 건 아니겠지만.
그보다는 내가 그 혹평의 주된 논리에 어느 정도 공감했기 때문이다.
“음, 계속 얘기해봐.”
“근데 그걸 수정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할 거야?”
“수정하다니, 뭐, 개정판으로?”
“아니, 그런 개념이 아니라···.”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는 말을 이었다.
“아예 그 작품이 존재하기 이전의 과거로 돌아간다면?”
“···뭐?”
네드가 날 이상한 눈으로 보던 그때, 여전히 통기타를 붙들고 있던 아델이 끼어들었다.
“고치면 되지.”
“응?”
“하나부터 열까지 맘에 안 드는 거 다 고치면 되지, 뭐가 문제야?”
“···.”
아델의 논리는 단순하고도 명확했다.
“나중에 가서 후회하기보다, 기회가 있을 때 질러보는 게 맞잖아. 안 그래?”
“그건··· 그렇지.”
그러네.
···너무도 단순한 결론에, 마음이 가벼워져 헛웃음이 절로 나는데.
“뭐, 예전에 구상해뒀던 작품을 고쳐서 써보게? 그거 나쁘지 않지.”
네드가 나를 보며 말을 잇는다.
“근데, 그냥 수정해서 될 거였음 지금 니가 고민하지도 않을 것 같은데. 왜, 뭐가 문젠데?”
역시나 나를 너무도 잘 아는 녀석답게 정곡을 짚는다.
그 말대로, 나는 병원에 누운 채로 <잊혀진 성자들>을 어떻게 보완할지 꽤 오랫동안 고민해봤는데.
내 말을 들은 네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수정 방향이 손에 잘 안 잡힌다, 이거지. 좋아 그럼, 질문을 바꿔보자고. 제일 문제가 되는 부분이 뭔데?”
“···.”
질문을 바꾸자, 의외로 답은 금방 나왔다.
‘···세계관!’
<잊혀진 성자들>.
출간 직후부터 전 세계의 수많은 독자가 열광하고, 머리가 아찔해질 정도의 열풍을 일으켰지만-
‘세계관상의 오류들.’
명확하게 정립이 되지 않은 탓에 읽다 보면 위화감이 든다거나, 설정 구멍 같은 것이 생기는 것.
···사실, 지금도 그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세계관 관련 자료를 따로 정리하고 있고.
그 분량이 사뭇 방대한데도 여전히 손에 잘 안 잡히는 기분이다- 라고 하자.
“그럴 땐 좋은 방법이 있지!”
네드는 코믹스계에서 자주 쓰는 방법이라며 해결책을 하나 제시했다.
“그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을 새로 쓰는 거야.”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
“응! 나오는 캐릭터나 시간대는 아예 달라도 괜찮으니-”
···그 세계관에 익숙해지는 연습이 될 거라는 것.
‘그러고 보니.’
나 역시 비숍 작가님에게 그런 제안을 한 적이 있지 않은가.
‘그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는 신작을 쓰실 생각이 없으신가요?’
···남들에게 그런 제안은 잘하고, 막상 나 자신은 벽에 막힌 채로 고민만 하고 있었다니.
“오, 완전 좋다!”
때마침,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대신 외쳐주는 아델.
“어떤 세계관인데, 유진? 벌써부터 궁금해!”
“그러게, 대체 뭘 얼마나 대단한 걸 쓰려고 그런 고민을 다-”
그때, 간이 테이블에 올려둔 핸드폰이 지아아앙— 무서운 소리를 내며 울렸다.
“어우, 깜짝이야.”
“얼른 받아봐, 유진.”
전화를 건 것은 다름 아닌 케이트.
“네, 케이트. 저희 숲에 잘 도착했어요. ···네? 마리사요?”
클로이의 어린이집 베프, 마리사.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등장하자 두 친구가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마리사네 아버지가 왜··· 저한테 연락을.”
마리사네 아버지가 나랑 통화하고 싶어한단 말에 나 또한 당황하던 그때.
지잉, 지이잉-
귓가에 붙이고 있던 핸드폰이 또 한 번 진동했다.
‘뭐지.’
곧바로 확인해보니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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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남작의 모험>을 출간한, 킨들다이렉트퍼블리싱 사이트에서 온 알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