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출판계의 신데렐라(2)
*
여름방학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
불과 개학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원래는 루마니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대로 <캐슬> 집필에만 열중하려고 했지만-
‘작가님, 작가님! 이거 보셨어요?’
<토끼 남작의 모험>.
···출간 1주 만에 1만 부 이상 팔린 덕분에-
‘뉴욕타임스! NYT 베스트셀러 1위로 데뷔입니다!’
그 여파가 너무도 어마어마했기 때문일까.
나름 집중력이 좋은 편이라 자부하는 나도 성공의 기쁨에 휩쓸려 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인지 한동안은 노트북 앞에 진득하니 앉아 있지를 못했는데.
나뿐이 아니고, 케이트와 네드, 아델, 클로이, 심지어는 아버지까지-
‘유진아! 유진아, 이것 좀 봐라. 지금 <토끼 남작> 순위가 3위로 올라갔다! 3위!’
조금만 더하면 1위까지도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라고 조바심을 내시던 얼굴이 떠올라 미소가 지어지는 한편.
‘아쉽게도, 1위까진 찍어보지 못했지.’
출간한 지 3주가 지난 지금, 최종 최고순위는 아마존 전체 3위.
그러나 하루에 대략 3천 종의 신간이 쏟아져 나오는 이 미국 땅에서, 무명 신인 저자의 동화책이 베스트셀러 3위에 올랐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기적이었으며.
[10대 듀오의 데뷔작 <토끼 남작의 모험>이 어린이 문학계를 강타하다!]
[고등학생들이 쓰고 그린 <토끼 남작의 모험>, 베스트셀러 돌풍을 일으켜]
[자가출판의 신데렐라 스토리 : 동생을 위한 동화책이 베스트셀러로···]
···
···고등학생 듀오가 글과 그림을 맡은, 자가출판으로 냈던 동화책.
그것이 여섯 자릿수의 선인세를 받고, 출간 첫날 5위로 스타트를 끊어 최종 3위에 도달했다는 것은-
‘말 그대로,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밖에는 할 수 없는 얘기였으니까.’
물론 나야 <잊혀진 성자들>의 여파를 경험해본 적이 있지만, 그쪽이야 소설 시장이 아닌가.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소설 분야만큼은 빠삭하게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 책이 슈퍼 베스트셀러가 되어가는 과정이 놀랍기는 해도, 어느 정도 머릿속에서 감이 잡혔지만.
이번 <토끼 남작의 모험>은 내가 예상했던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예상을 벗어났다고? 왜? 언제는 여섯 자릿수 선인세 딜에도 전혀 안 놀라더니.”
그런 내 말에 네드는 고개를 갸웃하며 반박했다.
지금 녀석은 잠깐 우리집의 내 방에 놀러와 있는 참.
나는 내 침대가 본인 것이라도 되는 양, 반쯤 드러누워 있는 네드를 돌아보았다.
“물론 니 말대로, 선인세 딜에는 전혀 안 놀랐어. 출판사들 간의 선인세 경쟁이야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니까. 하지만···.”
1층에서 가지고 올라온 아이스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잇기를.
“근데, 출판업계엔 이런 말이 있거든.”
“무슨?”
“출간 성적은 까봐야 안다고.”
“···.”
아무리 어마어마한 선인세 딜이 오갔고, 그래서 출간 전부터 무지막지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고 해도-
“의외로, 출간하고 나면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경우가 생각보다 꽤 많아.”
“그래?”
“응. 우리가 이번에 <토끼 남작>에서 했던 것처럼, 선인세 딜 자체가 하나의 마케팅 전략이 돼버린 상황이니까.”
“···오, 생각도 못했네.”
잠시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네드가 문득 내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근데 넌 이런 걸 다 대체 어떻게 아냐?”
“음, 부모님이 출판계에 계시니까?”
언젠가 대니얼 담당자에게 써먹었던 핑계를 써먹자.
“어··· 아, 그렇구나.”
코믹북스토어를 운영하시는 본인 아버지를 떠올린 모양인지 곧바로 수긍하는 네드.
“암튼, 오늘 온 건 다른 게 아니고.”
씩 웃으며 녀석이 내민 10인치 태블릿 속에 있는 것은-
“잠깐만, 이거.”
“으흐흐.”
그 색깔부터가 강렬하고도 영롱하기 그지없는, <토끼 남작의 모험> 2권 표지화.
베니와 수탉 버터컵 경, 거기에 안킬로 백작이 나란히 선 모습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벌써 다 그렸다고?”
“어어, 자본주의의 힘이지. ···어떠냐?”
조심스러운 질문에 절로 웃음이 났다.
“말해 뭐해, 폼이 완전 미쳤네.”
“그래? 으흐흐. 여기 여기, 삽화도 봐봐.”
“와···.”
그날, 네드는 잔뜩 신이 난 채로 자기 집에 돌아갔다. 하루 이틀 정도 더 수정해서 최종안을 보낸다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네드한테 질 수는 없지.’
네드가 그린 2권의 표지화와 삽화들.
···세세한 부분 하나 하나까지 신경 쓴 게 눈에 보이는, 그래서 1권보다 훨씬 더 시선을 붙잡는 그림들을 보고 나니.
거의 완성에 가까운 2권 원고를 지금 그대로 보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그런 고로 나는, <토끼 남작의 모험> 2권 원고 그러니까 ‘토끼남작2권_최종_최종의최종버전.docx’ 파일을 열어 최종 수정 및 퇴고를 시작했다.
“어디 한 번, 소리내서 읽어볼까.”
어느 동화작가의 인터뷰 기사에서 그런 대목을 읽었던 것이 기억난다.
···원고를 마지막으로 수정할 때는, 반드시 처음부터 끝까지 육성으로 읽어본다고.
‘이 책을 읽을 아이들에게 읽어주듯이 운율도 고려한다고 했지.’
나 또한, 그런 부분에 신경쓰며 첫 문장을 읽기 시작했다.
“용감하고 친절한 베니, 우리의 토끼 남작은 토끼굴, 아니 토끼 성의 안뜰에서 따사로운 햇볕을 쬐고 있었다···.”
용감하고 친절한 베니의 목소리.
자랑하길 좋아하지만 허점투성이인 버터컵의 목소리.
점잖지만 겁이 많은 안킬로 백작의 목소리···.
그 하나 하나를 상상해가며 원고를 쭉 소리내어 정독해나갔고, 그러는 사이 사이 퇴고를 진행했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
“···됐다.”
이제야 비로소 완성되었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토끼 남작의 모험> 2권 원고의 탈고가 마무리되었다.
마음에 차지 않았던 표현 몇 개를 수정하고, 조미료 같은 문장을 첨가해주는 것만으로 전반적인 완성도가 올라간 기분이 드는 가운데.
[수신인 : [email protected]]
[제목 : <토끼 남작의 모험> 2권 원고 보냅니다]
···마리사의 아버지, 아니 대니얼 담당자에게 메일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
그리고 그 시각, 아이오와시티의 번화가에 위치한 출판사 원더테일 사무실.
“<토끼 남작> 새 기사 또 떴습니다!”
“이야, 엄청난걸!”
“그것도 무려 <커커스리뷰>잖아? 이 콧대 높은 곳에서···.”
<토끼 남작>의 대성공으로 축제 분위기가 한 달 가까이 이어져오는 가운데.
수석 편집자 대니얼 앤더슨은 행복한 비명을 질러가며 일하는 중이었다.
자신이 제일 먼저 발견한 <토끼 남작의 모험>.
그 1권이 자신의 손으로 출간된 이후 수많은 독자에게 사랑받는 베스트셀러가 된 지금-
‘편집자에게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있을 수 없으니 말이지.’
아무래도 저연령 동화이다 보니 SNS나 인터넷상에선 상대적으로 좀 조용한 감이 있었지만.
“대니얼 선배! 이것 좀 보시죠. 출고 담당부서에서 판매부수 집계를 마쳐서 보내왔는데···.”
사무실에만 있어도 그 뜨거운 반응이 매순간 체감되는 상황.
“와, 이게 몇 부야.”
“이제 겨우 1달 된 거 아냐? 근데 벌써 3쇄에 돌입하다니.”
“말이 3쇄이지, 초판부수부터 어마어마했는데···.”
연일 기록을 경신 중인 판매부수는 말할 것도 없었다.
출간 2주 만에 2만 부를 가볍게 넘긴 지금은, 약간 그 수치에 무감각해지는 기분이라고 할까.
‘이런 추세대로라면, 여섯 자릿수 선인세를 넘어서는 건 시간 문제에 불과하겠는걸.’
그 덕분에, 대니얼은 바로 어제만 해도 아침부터 대표실에 불려가 잔뜩 칭찬을 듣고 온 터였다.
‘그래 그래, 정말 잘했네! 하하, 내가 늘 그러지 않았나? 아이들에게 유익하고도 재미있는 책! 그런 책을 드디어 찾아냈구만!’
···뭔가 속 빈 강정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그래도 타박을 듣는 것보단 훨씬 낫지 않나.
게다가 무엇보다도 좋은 건-
‘앞으로 더더욱, 회사 전체가 이 책의 마케팅에 집중할 거라는 것.’
이미 지역신문 몇 개와 대형 인터넷 플랫폼, 그리고 특히 어린 자녀를 둔 기혼여성들 위주의 각종 포럼과 커뮤니티 등.
이런 곳을 대상으로 하는 대대적인 광고 집행안까지 모두 승인이 난 상태였다.
“흠, 흐음~”
그야말로 전방위적인 지원에 저절로 콧노래가 나오던 그때.
“대니얼 선배! 도서관협회에서 연락 왔어요. ‘사서들이 주목하는 책 10선’에 <토끼 남작>이 올랐다고-”
“뭐! 벌써?”
반가운 소식에 대니얼뿐 아니라 편집부 사무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대니얼은 흥분을 가라앉히기 어려웠다.
‘···맙소사, 도서관협회 선정 도서라니.’
일반 대중을 목표로 하는 소설 시장과는 달리, 어린이책 시장에서 도서관은 매우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주정부에서 도서관 예산을 잡을 때 아동도서에 특히 넉넉한 예산을 배분하기 때문이다.
‘이 도서관 숫자만 따져도, 웬만큼 초판을 소화할 수가 있게 되지.’
다른 분야에 비해 상업성이 부족한 아동도서 분야가 여전히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도서관 네트워크의 힘.
특히 각종 도서관 협회나 초등학교 교사 모임 등에서 선정된 책이 된다는 것은 이 책이 한순간 반짝하고 마는 베스트셀러가 아닌-
‘앞으로 10년은 거뜬히 회사를 먹여살릴, 스테디셀러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하니까.’
가슴이 두근거리던 그때, 띠링- 소리와 함께 새 메일이 왔다는 알림이 떴고.
“···왔다!”
“뭐가요?”
“2권! 토끼 남작 2권!”
그의 외침에 편집부 직원들의 눈에 기대감이 어린 가운데.
[토끼남작의모험_2권.docx]
대니얼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곧바로 원고 파일을 열어보았다.
[<토끼 남작의 모험 2권 : 공룡왕국으로>
공룡 왕국.
문을 꽁꽁 걸어잠근 채, 오직 공룡들끼리만 사는 것으로 유명한 나라···]
···공룡이라니, 이거 또 새로운 독자층이 유입되겠는데.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신 대니얼이 빠르게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먼 길 오느라 수고했소.”]
공룡마을의 영주, 안킬로 백작을 만난 자리에서 의뢰를 받게 되는 베니와 버터컵.
[“요즘 토끼 왕국에서 베니 남작을 뭐라고 부르는지 알고 있소?”
“네? 저를요?”
“그리핀 둥지에 홀로 들어가 살아나온, ‘그리핀 슬레이어’라고 불리더군.”
“···네?”
졸지에 그리핀 슬레이어가 돼버린 베니가 두 눈을 끔벅거렸다···]
이른바 ‘용맹한 베니 남작과 대담한 버터컵 경’.
이 둘에게 안킬로 백작은 공룡마을과 티라노 대공 사이의 오랜 다툼을 설명하고는.
[“선대 레푸스 남작의 공이 아니었다면, 이 마을은 이미 오래전에 티라노 대공의 손에 넘어갔을 거요···.”]
헌데 얼마 전부터 티라노 세력의 공격이 멈췄고, 그 후로 아무런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는 것.
안킬로 백작은 베니 일행에게 티라노의 아지트에 가서 그곳의 상황을 파악해달라는 의뢰를 한다.
‘역시, 여기서도 티라노는 악역으로 나오는 건가.’
깊이 몰입해 읽던 대니얼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어릴 땐 공룡박사가 꿈이었는데.’
스테고사우루스, 스피노사우루스, 프테라노돈, 트리케라톱스···.
공룡 이름을 백 개 가까이 외웠던 것도 기억난다.
‘나 어릴 때만 해도 브론토사우루스가 제일 인기가 많았지.’
하지만 이제, 브론토사우루스라는 이름은 찾아보기 어렵다.
브론토사우루스와 아파토사우루스가 사실은 같은 공룡임이 훗날에 드러났고, 이에 따라 -먼저 명명된- 아파토사우루스라는 이름만이 살아남게 된 것.
덕분에 오늘날의 아이들은 브론토사우루스의 존재를 잘 모르지만, 그 사실에 안타까워했던 것은 대니얼 자신뿐이 아니었을 거다.
“아파토보단 브론토가 멋있지···.”
오죽하면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도 1990년대 초,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Bully for Brontosaurus)>라는 책을 쓰지 않았던가.
“선배, 무슨 얘기예요 갑자기?”
“아, 아냐 아냐.”
대니얼은 어릴 적 추억에서 깨어나 다시 원고로 눈을 향했다.
···베니와 버터컵은 티라노 대공의 아지트로 향하는 동안 여러 공룡을 만난다.
직접 기른 고사리를 먹어보라며 권하는 하드로사우르스.
백 년을 사는 동안 안 먹힌 적이 없는 농담이라며 아재 개그를 하는 트리케라톱스···.
[“이럴 땐 웃어드려야지, 버터컵.”
“웃겨야 웃지, 어떻게 안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터뜨리란 말인가 베니!”
고지식한 버터컵의 태도에 베니는 한숨을 쉬었다···]
마음씨 좋은 브라키오사우루스가 자신의 목을 타고 내려가게 해준 덕분에, 둘은 지름길로 티라노 대공의 아지트에 도착하게 되고-
[어둡고 으스스한 동굴이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분위기에 베니와 버터컵은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겁 먹지 말게, 베니. 이 버터컵은 십 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검에 매진해왔으니.”
베니는 버터컵의 가느다란 다리가 달달 떨리는 것을 봤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둘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은 뒤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때.
“···어?”
내심 무시무시한 티라노 대공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던 대니얼이 눈을 크게 떴다.
‘우와, 이건 의외인걸. 나름의 반전인 건가?’
내심 티라노가 단순한 악역으로 등장하는 것을 아쉬워하던 차였는데···.
“아기 티라노라니, 으흐흐.”
“···.”
“흐흐, 너무 귀엽잖아. 삽화도 엄청 기대되는걸.”
원고를 읽으며 혼자 히죽거리는 거야 그렇다 치지만.
‘대니얼 선배, 혼잣말이 너무··· 많아.’
뭔가 기분 나쁘게 웃는 수석편집자 대니얼을 보며, 옆자리의 후배가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