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깡촌의 천재 작가-79화 (79/126)

각색(2)

*

그다음 날, 토요일.

아침부터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고, 클로이를 데리고 놀이터에서 놀아주고.

그다음에는 <캐슬> 집필을 이어서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인터뷰 요청 메일이··· 여깄네.”

내 방에 올라와 노트북을 켠 참.

어제 케빈과 통화하며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는 중이었다.

‘작가님, 이제 곧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 영화 시사회이지 않습니까. 그 덕분인지···.’

막성스 라미 감독이 메가폰을 잡는 영화에 대한 강력한 기대감이 원작에 대한 관심으로 벌써 나타나고 있다는 것.

‘한동안 100위권 밖으로 밀려나 있던 <호수괴물>의 순위가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뿐이 아니라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까지 덩달아 탄력을 받아 판매부수가 급증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이와 더불어-

‘여러 매체에서 이메일 인터뷰를 요청해왔는데요, 작가님께서 인터뷰는 가급적 안 하시는 주의인 것은 잘 압니다만···.’

지금껏 나는 극초반에 <가디언>지와 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인터뷰를 하지 않고 있었다.

학업과 집필을 제대로 병행하려면 그럴 짬을 내기 어렵다는 내 말에 미스터 케빈 또한 공감했기 때문이지만.

영화 <호수괴물>의 시사회 및 개봉을 앞두고 인터뷰를 제안해온 곳은 <뉴욕타임스>였는데, 이번에는 거절하는 대신 받아들이기로 했다.

왜냐하면 얼마 전, 미스터 케빈이 마커스 작가를 만나고 와서 내게 했던 얘기가 떠올랐으니까.

‘마커스 작가님이 에곤 작가님을 굉장히 숭배··· 아니 좋아하시는 것 같던데.’

‘아, 네. 저를 굉장히 신뢰하시는 것 같더군요.’

그 말에 미스터 케빈은 머뭇거리다 아주 조심스럽게 이런 말을 꺼냈다.

‘음, 사실 그래서 말이기도 한데··· 나중에 작가님이 얼굴을 공개하실 때 본인이 상상했던 것과 너무 다르면 실망하실까 봐 걱정이 되더군요.’

‘···아.’

비단 마커스 작가뿐이 아니다.

독자들 또한 단순한 충격 이상의 감정을 느낄까 봐 우려가 된다는 그의 말이, 나는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고.

평소엔 거의 들어가보지 않는 각종 팬포럼이나 서브레딧 게시판 등을 뒤져보니-

‘에곤 K의 이미지가··· 완전히 굳어졌잖아.’

처음엔 농담처럼 돌던 얘기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손녀를 둔 할아버지라는 것이 정설로 굳어진 상황이었다.

그건 아마 네뷸러 시상식 때 재생시킨 동영상의 이미지가 너무도 강렬했기 때문인 것 같지만.

“음···.”

어쨌거나 지나친 오해는 바로잡을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그런 의미에서 <뉴욕타임스>에서 제의한 이메일 인터뷰를 하게 된 것.

나는 NYT 측에서 보내온 문항들을 쭉 살펴보았다.

절반은 영화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의 각색 작업 및 막성스 라미 감독과의 협업에 관한 것, 나머지 절반은 소설 <호수괴물>에 관한 것, 그리고···.

‘아, 이것 좋네.’

미스터 케빈이 내 의중을 제대로 설명한 덕분인지, 문항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Q. 실제 작가님의 모습과 에곤 K 캐릭터의 모습이 얼마나 닮았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바로, 나는 그에 대한 답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A: 원래는 개인적인 부분에는 대답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방침이 그간 제 신상에 관한 오해를 의도치 않게 부풀린 것 같아, 이제는 조금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타다닥-

내가 생각하던 바를 편안하게 노트북 화면상으로 옮긴다.

[이 에곤 K 캐릭터는 제 오랜 친구가 그려준 것입니다.

다만, 어디까지나 제가 생각한 이미지대로 그려준 것이지 저의 실제 모습과는 굉장히 다릅니다.]

미국 깡촌의 천재 작가

83. 각색(2)

돌리앗

···음, 또 어떤 얘기를 덧붙여야 하려나.

짧은 고민을 마치고 인터뷰지 작성을 이어나갔다.

[그러니 독자 여러분도 이걸 제 모습으로 생각하진 않아주셨으면 좋겠군요.

덧붙이자면, 네뷸러 시상식에 나온 영상도 비슷한 맥락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음, 이쯤이면 괜찮지 않을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음 문항들로 넘어갔다.

막성스 라미 감독과 함께했던 각색 미팅의 열기.

캐스팅된 배우들의 싱크로율.

곧 다가올 시사회에 대한 기대감까지···.

타다닥, 타다다닥-

인터뷰 문항에 대한 답변을 작성하다 보니 저절로 마음이 들뜬다.

‘얼른 시사회 보러 가고 싶다.’

과연 그 미래의 천재 감독이 이 소설을 어떻게 스크린으로 옮겼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달까.

그렇게, 열심히 작성한 인터뷰지를 미스터 케빈에게 메일로 송부했고.

[에곤_K : 문제가 될 부분은 없는지 한 번 살펴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중요한 일 하나를 처리하고 나서 시계를 보니, 어느새 시간이 꽤 흘러 있었다.

‘타이밍이 딱이네.’

···이제는 천재 극작가를 만나러 갈 때였다.

*

그로부터 30분 후, 아이오와시티 도심에 자리한 인카운터카페 1층.

구석 테이블에는 영 이곳이 낯설어 보이는 30대 초반 여성이 앉아 있었다.

도수 높은 두꺼운 안경, 초점 없는 맹한 눈빛, 아무렇게나 주워 입은 듯한 옷차림.

그것은 바로 연극계의 총아로 불리는 로렌 루먼이었다.

‘너무 일찍 왔나···.’

그녀가 여기 이 아이오와시티까지 오겠다는 결심을 굳힌 것.

그것은 아이오와대학에서 보낸 학회 초청장도, 대형극단에서 보내온 강연 요청도, 혹은 세계연극인협회에서 보내온 워크샵 초대 때문도 딱히 아니었다.

오로지 권유진, 를 쓴 원작자 학생의 메일 속 한 문장 때문이었으니.

[의 각색이라.

조금 당황스럽지만, 그에 관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은데요.]

솔직히 말하자면.

로렌 루먼은 조금 안이한 마음으로 메일을 보낸 것이 사실이었다.

스콜라스틱 공모전에 지원한 것을 보면 문예창작을 지망하는 학생일 거고, 그러면 -나름 예일대 극작과 교수인- 자신을 아예 모르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 것은 물론.

‘은연중 이런 장면을 상상했는지도 모르겠어.’

···메일을 받은 학생이 ‘와, 그 루먼 교수가 내 소설을 원작으로 삼아 연극을 만들다니!’ 하며 뛸 듯이 기뻐하는 모습을 말이다.

그렇지만, 답신의 문장은 매우 정중하고도 사무적이었다.

[제 입장에서는 분명 감사하고도 반가운 제안입니다만, 그에 앞서 계약 문제를 확실하게 해두고 싶습니다.]

뛸 듯이 기뻐하는 학생은커녕.

출판계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편집자 같은 어조라고 할까.

···그리고 그 메일을 받자마자 로렌 루먼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그렇지, 학생에게 대뜸 이런 식으로 보내면 안 됐는데.’

그나마 유진 학생이 이런 타입이라 다행이지, 정말로 자신이 상상했던 대로 뛸 듯이 기뻐하는 순진한 학생이었다면···.

‘네, 뭐든 상관없이 마음대로 해주세요!’라며 모든 걸 다 맡겼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면 자신은 딱히 나쁜 의도가 아니라 그저 생각 없이 일을 처리했을 수도 있었을 터.

···바로 그런 이유로, 로렌 루먼은 더더욱 이곳에 직접 와서 얼굴을 보고 계약 논의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이오와시티에서 처리해야 하는 일들까지 묶어서 본격적인 출장을 잡아버리다 보니 겸사겸사 할 일이 너무 많아졌지만···.

“흐으, 학회라니 너무 싫다.”

로렌이 제일 싫어하는 자리.

그것은 학회라든가 동료 교수들 혹은 문인들과 함께하는 자리였다.

타고나길 조금 독특한 성향을 지닌 그녀는 사회에 쉽게 녹아드는 타입이 아니었으니까.

그건 지금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너무 시끄러워.’

위이잉— 커피 머신이 맹렬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가운데.

탁, 팅팅. 누군가 포크로 그릇을 두들기는 소리가 신경에 거슬린다.

청각만 예민한 게 아니다.

바로 옆 테이블에 앉은 손님의 소맷단에 올이 나간 것이 신경 쓰이고.

지나가는 점원의 옷깃에 묻은 커피얼룩이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불필요한 정보가 한 번에 너무 많이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성향의 소유자이기 때문.

그런 성향이 창작에는 나름 장점으로 작용하지만, 이런 낯설고 북적거리는 장소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피로도가 확 올라간다.

‘따로 미팅룸이라든가, 사무실을 예약하고 올걸.’

갑작스러운 출장이라 그런 것까지 신경 쓸 경황이 없었기에, 동네 사람들이 애용한다는 대형카페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그녀는 별 수 없이 커다란 헤드셋을 꺼내 쓴 뒤, 즐겨 듣는 이탈리아 락밴드 모네스킨의 앨범을 재생했다.

-Put your loving hand out baby, cause I'm beggin···.

보컬 다미아노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시원하게 귀청을 긁어대는 동안.

로렌은 그녀가 몇 달 전, 를 처음 접했을 때의 심정을 떠올렸다.

*

‘···AI 데이지?’

사실, 제목만 보고는 무슨 내용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어쨌든 1차를 통과한 작품이니만큼 기본기는 되어 있겠지, 라는 적당한 기대감으로 읽기 시작한 글.

[데이지.

D-A-I-S-Y.

매일 같이 불러보지만, 공기 중에서 공허하게 흩어지는 소리···]

첫 문장이 나쁘지 않네- 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조금 신파조가 아닐까 하는 선입견이 들었던 것도 사실.

그것은 이 작품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로렌 자신의 문제에 가까웠다.

‘···이렇게 가족애를 다루는 작품은 심사하기 어렵단 말이지.’

로렌 루먼은 친부모의 얼굴을 모르는 채로 위탁가정을 전전하며 성장했다.

창작 분야에서 그 천재성을 발휘한 덕분에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지만, 누구나 느끼곤 하는 부모 자식 간의 애틋한 감정이 그녀에게는 그저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유진의 이 또한 처음에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로 읽기 시작했는데···.

“···.”

읽으면 읽을수록, 주인공 엘라가 딸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손에 잡힐 듯은 아니지만- 아주 조금씩 이해가 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일까.’

독자들이, 관객들이 가족애라는 주제에 저도 모르게 공감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일까.

자신은 그런 작품을 읽을 때마다 명확하게 떠올릴 누군가가 딱히 없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이 작품을 보니 조금은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다, 라고 생각하던 그때.

“···!”

의 가장 중요한 반전.

···사실 ‘데이지’는 엘라의 딸이 아니라-

‘엘라가 열 살 때 사고로 돌아가신 어머니라는 것.’

그 생각지도 못한 반전에 로렌은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기분 좋은 한숨을 흘렸다.

“하아···.”

뭐라고 해야 될까, 충격에서 오는 아주 기분 좋은 쾌감?

‘남들이 보면 소시오패스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뿌리 깊은 슬픔의 감정을 정교하게 유지해주던 작품 구조가 한순간에 전복되며, 강렬한 정서적 충격을 선사하는 장면.

···이것이 타고난 연출자인 그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놀랍고도 만족스러운 쾌감으로 다가온 까닭이었다.

그리고 이내, 딸 엘라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부분에 이르러-

“···아.”

무언가가 뇌리를 강타한 듯 눈앞이 번뜩하더니, 이내 하나의 무대 장면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절로 펼쳐졌다.

푸르게 빛나는 투명한 막 너머.

···애타게 딸의 이름을 부르는 어머니, ‘AI 데이지’의 모습.

그리고 그 투명 막 너머에서 가상의 어머니를 지켜보며 울먹이는 딸 엘라.

엘라는 투명한 막을 더듬거리지만 그 손은 절대 어머니에게 닿지 못한다.

‘푸르게 빛나는 투명한 막은, 둘 사이에 존재하는 단절을 보여주는 셈.’

···그것은 단절인 동시에, 딸인 엘라가 넘어서야 하는 시련이자 지향해야 하는 목표로 기능한다.

‘이른바 진정한 애도라고 할까.’

즉, 어머니인 데이지를 온힘을 다해 떠나보내는 것.

그리고 이내 무대는 360도 회전하며 관객들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는다.

엘라와 데이지.

그녀들의 머리 위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져 내리며-

‘바로 이거야!’

머릿속에서 물밀듯이 밀려드는 영감의 홍수 속.

그녀는 반사적으로 스마트폰 녹음 앱을 실행시켰다.

로렌이 중얼거리는 한 마디 한 마디.

“클라이막스 씬, 무대 전체조명이 꺼지는 동시에 엘라와 데이지의 머리 위로 조명이 쏟아진다. ···막 너머로 서로를 마주 보는 엘라와 데이지.”

그것이 녹음됨과 동시에 실시간으로 텍스트로 변환된다.

“엄마, 나는 늘··· 엄마의 마음속에 살아 있어. 아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내 마음속을 떠난 적이 없어.”

이는 그녀가 애용하는, 이른바 ‘찰나의 영감을 붙잡는 방식’이었다.

자신의 목소리만이 울리는 조용한 집필실 안, 로렌의 온 신경이 스마트폰 화면 위로 나타나는 텍스트 한 줄 한 줄에 오롯이 집중된다···.

*

문득, 귓전을 울려대던 음악이 멈췄다.

“···어.”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시 현재, 아이오와시티의 어느 대형 카페 안.

앨범의 트랙이 전부 끝나 다시금 바깥의 소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후우.”

헤드셋을 벗어놓고 나니 약속 시각이 다 되어가는 상황.

‘곧 권유진 학생을 보겠네.’

어떤 타입의 학생일까, 로렌 루먼은 멍하니 공상에 잠겼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예일대에 흔히 보이는- 아시아인 학생들의 스테레오타입.

안경을 쓰고, 키는 중간이나 조금 작은 정도에 왜소한 체구···.

거기까지 생각하던 그때, 카페 문이 열리며 남학생 하나가 들어왔다.

···케이팝 아이돌처럼 키가 크고 훤칠한 외모를 지닌 아시아인 남학생.

‘어, 혹시.’

로렌의 신경이 그쪽으로 쏠린 순간, 남학생은 그녀를 돌아보더니 활짝 미소 띤 얼굴로 테이블로 다가왔다.

“로렌 루먼 교수님 되시죠? 일찍 도착해 계셨네요.”

어떻게 곧바로 자신을 바로 알아본 것일까.

“유진이라고 편하게 불러주세요.”

“아, 그래요··· 유진 군. 만나서 반가워요.”

로렌은 당황하면서도 얼떨결에 그 손을 잡아 가볍게 악수했고.

아주 자연스럽게 맞은편 자리에 앉은 유진이 메뉴판을 꺼내 보였다.

“멀리까지 오느라 고생하셨네요. 주문은 하셨어요?”

“아, 유진 학생 오면 같이 하려고-”

“여기까지 와주셨으니 음료는 제가 사겠습니다. 뭐 드시겠어요?”

···어쩜 이렇게 모든 게 물 흐르듯 유연할까.

로렌은 아직 고등학생밖에 되지 않은 상대의 센스에 감탄하면서도 즐겨먹는 메뉴의 이름을 댔고.

“좋습니다, 교수님. 금방 주문하고 올 테니 잠시만 기다리세요.”

메뉴판을 들고 주문하러 가는 유진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가 상상했던 것과··· 너무 다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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