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깡촌의 천재 작가-84화 (84/126)

시사회(2)

*

총 2시간 35분의, 그리 짧지도 길지도 않은 러닝타임이 이어지는 내내.

‘···.’

나는 말 그대로 영화에 빨려들어간 기분으로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네드와 아델은 영화 볼 땐 팝콘이 꼭 있어야 한다며 커다란 통으로 사들고 들어왔지만.

“···.”

처음만 해도 아작아작, 작게 나던 소리가 언젠가부터 완전히 끊긴 채 들리지 않는다.

‘그만큼 몰입해서 보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일반적인 관객이 이 정도로 집중해서 보고 있는데, 원작자인 나의 몰입감이 어느 정도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충분하리라.

어느새 중후반부를 바라보는 가운데, 드디어 내가 가장 기대했던 장면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니까, 소년을 가장 앞장서서 괴롭혔던 동급생 스티브가 괴물에게 먹히는 장면을 어떻게 표현했을지 궁금했는데.’

먼저 등장하는 것은 ‘동급생 스티브’의 시점.

-으아악, 저, 저게 뭐야!

스티브의 시선에 들어온 괴물은 그저 새카만 무엇일 뿐, 그 형체가 명확하지 않다.

동급생 소년이 괴물을 발견하고 비명을 지르는 것도 잠시-

이내, 호숫가의 CCTV 기록이 재생되는 형태의 연출로 넘어간다.

···온통 새화얀 화면 속.

스티브의 비명과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살점을 부욱부욱 찢는 소리만이 들린다.

그리고 이내, 카메라는 다시 ‘동급생 스티브’의 시점으로 돌아온다.

-끄윽, 끄어어억···.

생명이 꺼져나가는 스티브.

그의 흐릿해져가는 시야 속, 소년 일라이저가 담긴다.

-···!

처음에는 경악에 가득 찬 소년의 전신을 풀샷으로 담고.

이내 공포에 질려 있는 그의 상반신을 바스트샷으로 담더니 마지막에는-

-···.

환희와 경탄, 경외감으로 빛나는 얼굴을, 바로 코앞에서 클로즈업하는 식.

‘괴물을 신성시하는’ 소년의 표정이 거대한 스크린에 가득 담긴다 싶던 그때-

-저는 십 년 전, 이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멀리선가 들려오는 듯한 수사관의 목소리와 함께.

소년의 얼굴이 천천히 나이를 먹더니 이내 20대 성인 남자의 얼굴로, 아니 ‘수사관 루스’의 얼굴로 변한다.

-···당시엔 주로 병신 일라이저, 라고 불렸죠.

···원작에서와 마찬가지로, 완전히 다른 인물인 줄 알았던 두 명이 사실은 동일인이었다는 반전에-

“···!”

소리 죽여 경악하는 관객들.

희미한 술렁임이 이는 가운데, 영화는 롤러코스터를 탄 듯 빠르게 절정으로 치달아가고.

‘어느덧 영화의 하이라이트이자, 결말 부분.’

앞서 나왔던, 제한된 정보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연출 기법은 <호수괴물>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동일하게 등장한다.

“···!”

관객들 모두가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집중한 덕분에, 들리는 것이라고는 -괴물의 것으로 추정되는- 희미한 음성과 기계음, 알 수 없는 소음이 전부인 가운데.

수사관 일라이저 루스는 -마지막까지도 단 한 번도 존재를 드러낸 바 없는- 괴물과 조우하고서 그대로 의식이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이내, 저 멀리서 들려오는 희미한 사이렌 소리.

-안전 거리를 유지하고 접근하지 마십시오, 폴리스라인 주변으로···.

루스를 발견한 경찰관들이 주변에 폴리스라인을 치는 장면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

그 누구도 자리를 떠나지 않는 가운데, 크레딧이 나오자 잔잔한 박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 또한 진심을 담아 박수를 치는데.

[원작자 에곤 K 작가님에게 특별히 감사드립니다.]

···크레딧이 올라가던 중간, 원작자를 언급하는 문구에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고.

양옆에 앉은 네드와 아델이 내 어꺠를 두드리며 씩 웃는다.

“···후아.”

그리고 잠시 후.

크레딧이 전부 다 끝난 뒤, 영화관 불이 켜지고 난 뒤에야 네드가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눈가가 벌개진 것이 설마-

“울었냐? 무서워서?”

“울기는 무슨, 미친. 야 하나도 안 무서웠거든?”

안 그래도 무서운 거라면 질색하는 녀석인데 말이다.

그리고 아델은···.

“너 손에 팝콘.”

“으으, 카라멜이 다 녹았네.”

공포영화 매니아인 그녀에게도 이런 유의 공포는 새로웠는지, 보는 내내 손에 카라멜 팝콘을 쥔 채로 있었다는 말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

크레딧이 전부 다 올라가고, 상영관에 불이 켜진 후에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

영화가 주는 여운 때문인지 감정이 쉽사리 정리가 되지 않는 가운데.

관객들이 한둘씩 나가 전부 다 사라진 후에야-

“···가자.”

나는 나를 기다려준 네드와 아델과 함께 상영관을 나섰다.

조금 헛헛한 기분으로 근처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자 네드가 멍한 얼굴로 입을 연다.

“흐으, 방금 전 영화가 너무 강렬해서 그런가? 지금도 현실감이 별로 없네.”

“맞아. 소설로 다 읽어서 내용을 아는데도··· 으엇, 나 카라멜 닦아낸다는 것도 깜박했다.”

으으, 소리를 내며 뒤늦게 티슈로 손을 닦아내는 아델을 보니 그제서야 풋, 하고 웃음이 터져 나온다.

“얼마나 집중한 거야 대체.”

“···나 진짜, 내가 그 안에 있는 느낌이었다니까? 어으, 마지막 장면 진짜··· 아직도 소름 돋아.”

괴물의 존재감은 끝없이 과시하되 그 명확한 실체는 끝까지 보여주지 않는다.

막성스 감독과 내가 동의한 바로 그 전략이, 결과적으로 굉장히 효과적이었던 듯하다.

“유진, 그나저나 넌 어땠어?”

“···어?”

“원작자로서 어땠냔 말이지.”

생글생글 웃으며 내 대답을 기대하는 아델과, 마찬가지로 눈을 빛내는 네드.

···너무 대놓고 기대하니까 조금 민망하긴 하지만.

“기막히게, 영상으로 잘 옮겨졌다는 느낌?”

“오오.”

“내 소설을 스크린상에서 본다는 건 확실히··· 여운이 엄청나긴 해.”

내 말에 빙그레 미소를 짓는 두 친구들.

···그 말은 진심이었다.

‘이런 기분은 회귀 전에도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으니까.’

물론 <잊혀진 성자들>은 어마어마한 관심과 기대 속에서 천문학적 금액의 영상화 옵션 계약이 체결됐다.

거기까진 좋았지만-

‘큰 돈과 여러 이해당사자가 모여 돌아가는 프로젝트였어서 그런지, 제작과정부터 각종 잡음이 끊이지 않았지.’

하지만 그때 나는 내가 이 분야의 전문가도 아닌데, 라는 생각으로 안이하게 대처했다.

상황이 굴러가는 대로 수동적으로 따라가며, 원작자로서 의견을 제시할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마침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영화가 완성되었고.

VIP 프리미어 상영회에 초청되어 화려한 턱시도 차림으로 레드카펫을 밟고 입장한 뒤 스크린에서 마주한 것은-

‘실망 그 자체였지.’

단순히 실망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내가 수없이 고심하여 촘촘하게 엮어낸 이야기의 가지들을 남김 없이 전부 쳐버리고.

그 빈자리를 현란한 이미지와 의미 없는 음악이 채워버린 것을 보고 얼마나 좌절했던가.

거기에 배우들의 부족한 연기력과 빈틈투성이 연출, 시간에 쫓겨 급하게 마무리지은 듯한 엉성한 만듦새까지···.

영화판 <잊혀진 성자들>은 상당한 혹평에 시달렸으며 흥행에도 참패했다.

‘마치, 그간의 내 고민과 노력이 무참하게 짓밟힌 기분이었으니까.’

하지만 뭐랄까, 이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를 보고 난 지금은-

‘···완전히 충족된 감각.’

텍스트의 활자로만 등장하던 나의 인물들이 눈앞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모습을 본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개무량하지만-

“내 소설에서··· 아예 또 하나의 새로운 작품이 탄생한 느낌?”

그저 문자 그대로 옮겨놓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을 150퍼센트 살려낸 완성도 높은 수작이었다.

사전미팅에서 막성스 감독이 보여줬던 열의가 결과물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에, 가슴 한구석이 뜨거워진다.

나는 굉장히 뿌듯해하는 얼굴로 나를 지켜보던 친구들을 돌아보며 한마디했다.

“나 잠깐만, 메시지 좀 감독님한테 보낼게.”

“그래 그래, 이 감동을 얼른 표현해야지.”

“유진 넌 클래식치즈버거 맞지? 니 것까지 주문하고 올게.”

두 친구는 알아서 주문해 오겠다며 센스 있게 자리를 비켜줬고.

덕분에 막성스 라미 감독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집중해서 작성할 수 있었다.

[에곤_K : 감독님, 신경 써주신 덕분에 저희 집 근방의 상영관에서 정말 편안하게 시사회를 감상하고 왔습니다.

제 작품이 이렇게 근사하게, 아니 어떤 의미로는 원작보다 훨씬 더 다채로운 의미를 품은 채로 스크린으로 나온 것을 보니, 이 영화의 시작점을 제공한 사람으로서 정말로 감개무량하기 그지 없습니다···]

한 명의 훌륭한 창작자이자, 완벽주의 성향을 지닌 예술가에게 보내는 찬사와 경탄.

···그 모든 것을 남김 없이 표현하고자, 내가 느낀 감정 하나 하나를 꾹꾹 눌러 담아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

바로 그 시각, 뉴욕에 위치한 막성스 라미 감독의 스튜디오.

막성스 감독과 그의 스탭들은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의 제작사, 썬웨이필름스 대표와 미팅을 하는 중이었다.

“전문가 시사회 반응이 아주 좋아요. 여기 저기서 리뷰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썬웨이필름스 대표 리사 터메인의 말이 이어질 때마다 스탭들이 탄성을 터뜨린다.

“크으, 역시!”

“아 너무 다행이에요···.”

무엇보다도 -까다롭기로 유명한- 평론가 케인 아르노프스키가 이 영화를 극찬한 덕분에 이미 어느 정도 추가 기운 상황.

“와, 아르노프스키가 괜찮다 했으면 이미 큰 산을 하나 넘은 거네요. ···막성스, 대표님 말씀 듣고 있어?”

편집감독이자 그의 동기의 말에, 막성스 라미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며 핸드폰에서 눈을 뗐다.

“응? 아, 그럼. 다 듣고 있었죠 대표님. 계속 얘기해주세요.”

“어, 좋아요. 그리고 선댄스영화제에는 이미 몇 달 전에 접수가 됐고, 이제 곧 선정작들에는 연락이 가기 시작할 텐데···.”

“오오 선댄스 영화제!”

“근데 우리 영화, 기자들 반응 보면 좀 가능성 있지 않아요?”

“그게 아마···.”

선댄스영화제 얘기로 스탭들이 신이 난 가운데.

막성스 혼자만이 -기자와 평론가들이 가득 모인 시사회 때보다도- 긴장해 있었다.

‘지금이··· 특별 관객 시사회 끝나고 10분 정도 지난 시각일 텐데.’

연락을 드려볼까 싶다가도 괜히 부담을 드려서는 안 되겠단 생각에 망설이던 그때.

그런 막성스를 돌아본 편집감독이 대번에 그의 속내를 알아차렸다.

“야, 너 지금 에곤 작가님 연락 기다리는 거지?”

“아니 딱히 꼭 그런 건 아닌데-”

“좀 여유 있게 기다려라, 작가님이 나이도 있으시고, 어쩌면 앉아서 영화 보시는 것 자체가 힘드실 수 있는데.”

편집감독의 말에 막성스가 뒤늦게 아, 소리를 냈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건강이 안 좋은 노인에겐 두 시간 넘게 앉아서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고역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니 재촉하지 말라는 편집감독의 말이 이어지던 그때.

지이잉- 핸드폰이 신나게 울리며 메시지 도착을 알렸다.

“···!”

장문의 메시지인걸까.

한참 동안 정독하는 막성스 감독의 표정이 아주 볼만했다.

처음에는 놀란 사람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입꼬리가 슬슬 올라갔고, 마지막엔 헤벌쭉 웃으며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 아닌가.

‘저 자식은 얼굴만 보면 잘생겼는데.’

저렇게 웃을 땐 꼭 바보 같단 말이지, 픽 웃어버린 편집감독이 그의 등을 가볍게 쳤다.

“야, 에곤 작가님이지?”

“아, 어.”

“푸흐, 표정만 봐도 알겠다. 성덕 다 됐네 성덕.”

“후후, 축하해요 감독님. 아 그리고 인터뷰 요청이 제법 들어왔는데···.”

기자 시사회 반응이 좋은 덕분에 개봉관이 원래 예정보다 훨씬 더 많이 잡힐 것 같으며, 미국 전역에서 배급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 것인지 얘기해나가던 그때-

“어, 잠시만요. 네, 썬웨이필름스 리사 터메인입니다. 네 맞는데요···. 네?”

눈이 휘둥그레진 썬웨이필름스 대표가 이내 전화를 끊었고.

“왜요, 무슨 일인데요?”

“설마,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 관련 소식?”

궁금해하는 스탭들을 돌아보며 빙긋 웃었다.

“우리, 내년에 선댄스 갈 준비해야겠는데요?”

영화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가 선댄스영화제의 정식 초청작으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