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리스트(2)
단편 부문 1위작, 금메달리스트.
생각지도 못했던 소식에 학교 전체가 발칵 뒤집어진 것이 바로 사흘 전의 일이었다.
‘유진 군, 유진 군!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이거 아무래도 안 되겠군요, 지금 당장 아이오와 지역지에···.’
교장은 지역지는 물론, 자신의 손이 닿는 온갖 곳에 다 연락을 넣었고.
그리하여 바로 어제자 지역 주간지 <미드웨스트>에 이런 기사가 실린 것이었다.
[힐크레스트 11학년 권유진, 유서 깊은 학생 공모전 스콜라스틱 금메달리스트 되다]
···나로서는 조금 민망한 기분이었지만, 아버지와 케이트는 뛸 듯이 기뻐하셨다.
‘유진아, 어쩌다 보니 거래처 사람들한테도 자랑을 하게 됐지 뭐냐 하하.’
‘유진, 난 내 입으로 말하진 않았어~ 근데 서점에 온 손님들이 다들 네 얘길 묻는 걸 어떡하니···.’
두 분에게 이렇게 팔불출스러운 면이 있는 줄은 몰랐다.
거기에 클로이는 한술 더 떴는데.
‘오빠아~ 어린이집 친구들이 오빠 천재래애~ 지니어스 유진! 샹 받았다고 자랑했져~ 스콜라··· 뭐였지? 이름이··· 어려워셔.’
어제 저녁엔 무려 -케이트의 친정어머니인- 브리짓 할머니까지 전화를 주셨는데.
‘유진! 어쩜 이런 좋은 소식이···. 케이트한테 얘기 다 들었단다, 진심으로 축하해. 아 그리고 우리 북클럽 회원들이 <토끼 남작> 얘기를 꺼내지 뭐니, 오호호···.’
원래는 아버지와 케이트, 클로이도 다 같이 갈까 했지만.
그보다는 -출판사 측에서 항공편과 숙박을 모두 지원해주기로 한- 캘리포니아로 다같이 가자는 결론을 내린 터.
‘클로이가 한 달 안에 비행기를 두 번이나 타기엔 힘들잖아요?’
‘아, 어 그건 그렇지···.’
‘안 그래도 기온 변화에 민감해서 금방 콧물부터 흘릴 텐데.’
···내가 그렇게 말하자, 아버지와 케이트는 나를 동생 바보구나- 라는 눈빛으로 보기는 했지만.
어차피 뉴욕은 하루만 묵고 바로 돌아올 거니 혼자 다녀오기로 했던 것.
여하튼.
나는 레너드 선생님과 함께 뉴욕 공항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풀고, 곧바로 카네기 홀로 출발했다.
“이거, 은근히 강행군이구나.”
“그러게요.”
“···유진 네 표정만 보면 이런 거에 익숙한 느낌인데.”
미스터 레너드의 말에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뭐, 익숙한 건 아니고 얼굴에 티가 잘 안 나는 편이라.”
“···.”
레너드 선생님이 딱히 그 말을 믿는 것 같진 않았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이거 오랜만에 이런 거 입으니 굉장히 불편하네.’
나는 영 어색한 기분으로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눈에 담았다.
···지금 나는 케이트와 아버지가 특별히 날 위한 선물이라며 준비해 준 턱시도를 입고 있었다.
‘프롬파티 때나 준비하게 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빨리 그 시기가 찾아왔는걸?’
‘어머, 유진! 너무 잘 어울린다~’
‘오빠 멋있져~’
···스콜라스틱 시상식의 드레스코드가 남자는 정장, 여자는 드레스였기 때문.
“···.”
민망한 기분에 쩝 소리를 내며 거울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거울 속 내가 입은 것은 흰색 드레스셔츠에 보타이, 네이비색 재킷과 바지.
전반적으로 무난한 디자인에 머리는 젤을 발라서 뒤로 살짝 넘기기만 했는데-
“이야, 유진. 잘 어울리는걸?”
레너드 선생님 역시 양복으로 환복한 상태.
“···되게 어색하네요.”
“아냐 아냐, 잘 어울려. 그나저나 방학 전에 비해 체격이 확 좋아진 느낌이구나.”
“아, 그게.”
나는 앞서 친구들에게 했던 얘기, 그러니까 제이드네 체육관에서 이런저런 코치를 받으며 몸을 키웠다는 얘기를 그대로 했다.
“아하.”
“아무래도 제이든이 추천해준 단백질 쉐이크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관장님이 짜주신 트레이닝 루틴도 효과적이었고.”
“어, 그렇···구나.”
“선생님은 어떻게, 몸 관리는 좀 하고 계세요?”
갑작스러운 질문이어서 그런가.
레너드 선생님은 내 말을 그대로 되풀이했다.
“아, 몸 관리.”
“맞다, 그때 비타민 C 얘기 드렸는데 좀 드시고 계세요?”
“음 그게.”
슬쩍 돌아보니 레너드 선생님의 다크서클은 전보다 더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나아지진 않았는데.
“아, 이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얼른 가자꾸나.”
미스터 레너드는 괜스레 대답을 회피하며 출발하자고 재촉했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리는 택시를 타고 목적지에 내렸다.
“···와.”
맨해튼 한복판에 위치한 고풍스러운 붉은 벽돌 건물.
예술가들에게는 꿈의 무대라고 불리는 카네기 홀이다.
오늘 이곳에 1천여 명에 이르는 수상자 학생들이 오며, 그중 한 명이 나라는 사실은-
‘뭐랄까, 지금도 영 현실감이 없는걸.’
이름만 들어봤던 이곳에 내가 올 일은, 그것도 무대에 올라갈 일은 더더욱 없을 거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미스터 레너드 또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모양.
“하하, 우리 힐크레스트 학생, 그것도 내가 가르친 제자가 이 카네기홀 무대에 올라간다니. 어쩐지 믿기지가 않는구나.”
그렇게 말하는 선생님의 얼굴은 정말로 뿌듯해 보였다.
부모님이 내 복장에 더더욱 신경 쓴 것도 아마 그 때문이겠지만.
“그나저나 유진, 턱시도 차림이 참 잘 어울리는구나. 키가 커서 그런지 수트가···.”
레너드 선생님이 연신 칭찬을 해대는 것을 보면 이 차림이 그렇게 어색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이내 홀 안으로 들어서자 이미 꽤 많은 인원이 와 있었다.
학생과 학부모가 온 팀이 있는가 하면, 학생과 선생님 혹은 학생들 여럿이 선생님과 무리를 지어온 경우도 꽤 있는 듯 했다.
···어색하게 대기한 지 10분 정도 지났을까.
“시상식에 참가하고자 온 인원은 이쪽으로···.”
우리는 안내에 따라 카네기 홀의 대강당으로 입장했다.
“···!”
고개를 쭉 들어야만 보이는 높은 천장.
3천 개에 달하는 빨간색 좌석이 빼곡히 차 있는 가운데, 저 앞에 자리한 무대 위로 황금빛 조명이 떨어진다.
···이 공간 자체에 압도되는 기분 속, 무대에 올라가는 덕분에 맨앞으로 할당된 좌석에 앉자 가슴이 괜히 두근거렸다.
*
이처럼 유진과 레너드 하인스가 카네기 홀에 이제 막 입성했을 때.
관계자 전용공간에서는 전국 각지의 교수들, 즉 스콜라스틱 심사위원들이 대기 중이었다.
“드디어 수상자들을 직접 보는 순간이로군요.”
“후후, 그러게요. 기대가 되는걸요. 특히 1위작으로 선정된 작품들은 다 하나 같이 수준이 높아서···.”
그 저자가 누구인지 직접 보고 싶어하는 마음은 여기 있는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아마도, 그중 제일 많은 관심을 두는 대상이-
‘를 쓴 유진 권 학생이겠지.’
가만히 고개를 주억거리던 예일대 극작과 교수 로렌 루먼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 작품은 작품 자체만으로도 그 정도의 호기심을 충분히 자아낼 법하지만.
‘아마, 실물을 보면 더더욱 놀랄 텐데 말이야.’
여기 있는 인물 중 자신이 유일하게 권유진 본인을 만나봤다는 사실에 묘한 우월감마저 든다.
그런 자신의 심리에 절로 헛웃음이 나오는 한편, 동시에 드는 생각.
‘근데 그 학생은··· 그럴 만하거든.’
그때 보여줬던, 성숙하다 못해 출판 전문가처럼 느껴지던 노련한 태도.
거기에 자신에게 보여준, 의 탄생에 얽힌 진솔한 속내까지···.
애초 이 스콜라스틱 공모전의 심사위원 제안을 받아들일 때부터 그녀에겐 -다른 교수들과는 달리- 가망성 있는 학생을 예일대로 영입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지금은 뭐라고 해야 하나, 그런 마음이 상당히 이해가 가는걸.’
···그때 그 아이오와시티의 카페에서 헤어지기 직전.
유진에게 예일대 극작과에 올 생각은 없냐고 묻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참았으니까.
그녀가 희미한 미소를 짓던 그때, 교수들 사이의 대화가 이어졌다.
“뭐, 아무래도 무대에 오르는 금메달리스트 학생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겠지만···.”
“지나치게 부담스러운 제안은 금물이란 거, 다들 유의하시고.”
“오늘 이 카네기 홀이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르겠습니다, 하하.”
···여기서 말하는 ‘열기’란 다름 아닌-
‘자신의 소속 대학으로 데려가려는, FA시장을 방불케 하는 열기이겠지.’
쯧, 입안으로 혀를 찬 시카고대학의 스탠리 교수는 옆에 앉은 절친 해리, 즉 해럴드를 돌아보았다.
해럴드 그린.
아이오와대학 문예창작과 교수이자 작가워크샵에서도 핵심적 강의를 맡고 있는, 여태 수많은 유명 작가를 배출해낸 교수.
···그는 이런 자신의 속 타는 심정을 모르는지, 여유롭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뭐, 아이오와대학이야 작가 워크샵을 바라보고 가는 경우도 꽤 있으니 저렇게 여유로운 거겠지만.’
마음에 안 든단 말이지, 설레설레 고개를 젓던 그때.
“스탠리, 자네 혹시 끝나고 다른 일정이 있나?”
“응? 아니 딱히 없는데.”
절친의 물음에 곧바로 대꾸하자, 해럴드가 씩 웃으며 핸드폰 속의 메시지 하나를 보여주었다.
[레너드_하인스 : 좋습니다 교수님. 그러면 시상식 이후 리셉션에 잠시 참석했다가, 곧바로 함께 저녁 식사 장소로 이동하죠.]
[레너드_하인스 : 저희 유진이도 교수님과 그 친우분을 뵙는 것 고대하고 있더군요, 하하.]
“자, 잠깐. 레너드라면-”
언젠가 해리가 말했던, 아이오와시티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친다던 그의 제자가 아니던가···.
마치 눈으로 묻듯이 고개를 들어 친구의 얼굴을 돌아보자.
해럴드 그린은 -그 물음에 확인해주듯- 무척이나 온화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해리, 역시 나의 진정한 절친···!’
방금 전만 해도 입술이 댓발은 나와 있던 스탠리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
*
대강당에 들어와 착석한 지 10여 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안내 멘트가 방송으로 나옴과 동시에 시상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내, 무대에 올라온 유명인사의 모습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
“저 사람, 젬마 도노반 맞지?”
“우와···.”
소리 죽여 중얼거리는 대로, 그 인물은 다름 아닌 젬마 도노반.
헐리우드 거장 데이빗 도노반의 딸이자, 본인 또한 배우 겸 모델 겸 영화제작자로 전방위 활약 중인 그녀가 마이크를 잡고 개회사를 시작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여주신 전국의 수상자 여러분, 그 가족 및 학교 관계자 여러분 모두 환영합니다···.
크림색 드레스를 입고 선 화려한 배우가 시야에 들어오는 가운데.
‘젬마 도노반이 원래 문화예술 쪽에도 관심이 많기로 유명했지.’
유진은 언젠가 그녀가 에곤 K의 팬이라는 게시물을 올렸던 것을 떠올리는 중이었다.
‘전엔 로버트 레드포드가 왔다더니, 유명인들이 많이 오긴 하나 보네.’
그 말대로, 이 자리를 빛내러 온 유명인은 젬마 한 명이 아니었다.
그녀의 개회사가 끝나자 유명 조각가라는 인물이 무대에 올라와 기조연설을 했고.
그다음에는 토니상을 수상한 유명 TV드라마 작가가 올라와 축사를 했다.
그렇게 화려한 코너가 지나가고 난 뒤.
-자, 그럼 이제 본격적인 시상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예술 부문부터···.
건축, 세라믹, 디자인, 디지털아트, 일러스트레이션 등···.
다양한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금메달리스트 학생들의 이름이 차례로 호명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상이 한참 이어지나 싶더니 이내 문학 부문의 시상이 이어진다.
-그럼 곧바로 문학 부문 시상을 이어나가겠습니다. 제일 먼저, 비판적 에세이 부문 전국상 수상자 85명을 대표하는 금메달리스트 조언 홉스키 양···.
그 후에도 몇 명의 이름이 더 이어지던 와중, 진행요원이 유진과 레너드 하인스가 앉은 자리 근처로 다가왔고.
“유진 권 학생 되시죠?”
유진을 무대 뒤편으로 데려갔을 때, 타이밍 좋게 ‘단편 부문 금메달리스트’를 호명하는 소리가 들렸다.
- 단편 부문 전국상 수상자 64명을 대표하는 금메달리스트 유진 권 군. 무대 위로 올라와주세요.
진행요원의 신호를 받은 동시에, 유진은 조금 어색한 기분으로 무대 위로 올라갔다.
저벅저벅.
무대 한가운데로 걸어가기까지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는 스포트라이트가 조금 뜨겁게 느껴지는 가운데.
‘···.’
자신의 자리로 가 서자.
저 끝까지 펼쳐진 수천 개 붉은색 좌석들이 미국 전역에서 온 학생과 교사, 학부모들로 꽉 찬 것이 들어왔다.
자신에게 집중된 그 시선들에 살짝 위축될 만도 했지만-
‘근데 뭐, 이런 건 예전에도 지겹도록 해봤잖아?’
이보다 훨씬 더 집중된, 훨씬 더 뜨거운 현장-예를 들면 대규모 팬사인회라든가-도 얼마든 경험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자, 슬그머니 올라오던 긴장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고.
이내 여유로운 미소를 띤 채 자세를 바로했다.
-···단편 부문의 유진 군은 정말 여유로워 보이는데요?
그를 돌아본 젬마 도노반의 멘트에 잔잔한 웃음이 객석에서 나오는 가운데.
진행요원들이 총 12명에 이르는 문학 부문 대표 수상자들에게 꽃다발 따위를 안겨주기 시작했다.
-이곳에 올라온 금메달리스트 학생들,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와 동시에 객석 전체에서 터져 나오는 박수 갈채.
유진은 요원이 걸어준 메달을 슬쩍 내려다보고는 유쾌한 기분으로 꽃다발과 상패를 받아들었다.
‘지금쯤 우리 가족들이 생중계로 지켜보고 있겠는걸.’
그런 생각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던 바로 그 시각.
···유진의 예상대로, 가족들은 물론이고 네드와 아델(의 가족)까지 시상식을 시청하는 중이 맞았다.
그러나 그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실이 있었다면-
“와, 미쳤다.”
“카네기 홀이라니, holy shit!”
“이거 11학년의 코리안 지니어스 맞지?”
“어어, 천재 문학소년이라고···.”
지금 이 시각.
힐크레스트 고등학교에서는 -교장의 지시로 점심시간을 이용해- 전 교실의 TV로 이 시상식을 틀어주는 중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문예창작 클럽룸에서도 시청하는 중이었는데.
“으아아, 저기에 서면 얼마나 떨릴까.”
“떨리긴, 유진 얼굴 봤어? 긴장 하나도 안 한 표정인데.”
“역시 강심장이라니까.”
“근데 유진, 수트 되게 잘 어울린다. 저렇게 머리 까니까 훨씬 남자다운 느낌?”
“어어, 요즘 부쩍 체격이 좋아졌더라.”
“크으, 역시 내가 만든 남자답다니까.”
“···제이든 너 방금 발언, 되게 이상하게 들리는 거 알지?”
다들 신이 나 한마디씩 하는 가운데 로완은 그저 씩 웃으며 생각했다.
‘진짜 멋지다, 유진.’
···자신에게 큰 용기를 준 친구의 대단한 성과를, 마음속으로 진심으로 축하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