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깡촌의 천재 작가-91화 (91/126)

입덕부정기(1)

*

그 시각, 아이오와시티의 어느 가정집.

‘사인회는 잘 끝냈으려나.’

유진의 바로 옆집에 사는 아델은 지금쯤 한창 캘리포니아 여행을 하고 있을 두 친구를 떠올렸다.

“으, 나도 가고 싶었는데···.”

자신도 사인회에 가고 싶다고 고집을 부려보았지만.

‘얘, 니가 거길 왜 가니. 니가 그 책 썼어?’

···본인 일이나 챙겨서 하라는 어머니의 타박만 들었다.

어차피 보내줄 거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사진이나 보여달라고 해야겠다, 그렇게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는.

아델은 습관처럼 사운드클라우드 사이트에 접속했다.

‘어디, 얼마나 조회수가 늘었는지 볼까.’

지난번 친구들에게 들려줬던 가 반짝 인기를 끈 이후, 그녀의 계정이 사이트 메인페이지에 아주 잠깐 노출된 적이 있었다.

덕분에 의 재생 횟수와 코멘트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

“오, 그새 또 늘었네.”

그때 이 계정을 방문했던 사용자들이 다른 곡들도 들어본 건지, 이전 곡들도 재생 회수가 대폭 늘어난 상황.

새로이 달린 코멘트를 히죽거리며 읽던 그때.

“···어?”

어느 코멘트의 예사롭지 않은 내용에,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안녕하십니까, 뉴에라레이블의 지미 쿤츠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고, 저희 레이블에서는 가능성 있는 신인을···.

지금 이거, 그러니까.

나한테 영입 제안을 하는 거··· 맞지?

아델은 제 눈이 믿기지 않아 몇 번이나 눈꺼풀을 깜박였지만, 코멘트의 내용은 그대로였다.

“···.”

한순간 숨이 멎을 듯한 감각이 찾아왔으나, 이내 유진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아델, 혹시 그 에곤 k 팬송 말인데. 만약에라도 음악 레이블 같은 데서 연락이 오면-’

‘마, 말도 안 돼, 그런 데서 나한테 연락할 리가 없다고···.’

‘글쎄, 그런 사람들은 바로 그런 식의 반응을 원할 텐데.’

싱긋 웃은 유진은 이렇게 말했다.

‘일단은 심호흡부터 해.’

‘···심호흡?’

‘응. 그리고 나서, 그 후에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이 연락처로 연락해봐라, 라는 말과 함께 명함 하나를 제게 건넸었다.

그의 예언 아닌 예언이 실현돼버린 지금 이 순간.

“···후우.”

아델은 심호흡인지 한숨인지 모를 것을 내쉬었고.

덕분에 조금 이성이 되돌아온 감각 속, 유진에게 받았던 명함을 꺼냈다.

“케빈··· 클레그.”

그 이름을 보니 또다시 떠오르는 유진의 목소리.

‘문학 에이전트이긴 한데, 미스터 케빈이 예전에 영화업계에서 일했다 하더라고. 그래선지 발이 엄청 넓어서···.’

네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고, 그 너머의 경지로 이끌어줄 수 있는 괜찮은 음반 에이전트도 소개해줄 수 있을 거다- 라는 것.

아델은 핸드폰을 들어 거기 적힌 번호를 꾹꾹 누른 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저, 여보···세요. 유진의 친구 아델이라고 하는데요.”

그리고 이내 들려온, 상냥하고도 힘이 넘치는 목소리에 조금 안심하고 말았다.

*

사인회를 비롯, 대대적인 출간 이벤트로 근사하게 스타트를 끊은 <토끼 남작의 모험 2권 : 공룡 왕국으로>.

이 책은 출간 첫날 아동서 부문 1위, 전체 3위로 스타트를 했고-

“미쳤네, 미쳤어.”

출간한 지 사흘이 지난 지금.

미국 아마존 사이트, 전체 1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하기에 이르렀다.

“전체 1위? 이 정도 기세라면 <윔피키드>의 속도를 따라잡는 것도 시간 문제이겠는걸.”

“새로운 아동서 대박 시리즈가 탄생하는 거지, 뭐.”

이곳은 미네소타에 위치한 <인디북리뷰> 본사 사무실.

각종 분야의 신간 리뷰를 전문으로 하는 이 출판 전문 잡지의 기자들의 관심은 죄다 <토끼 남작>에 쏠려 있었다.

<토끼 남작의 모험>이 워낙 최근 아동서 분야에 어마어마한 열풍을 일으킨 시리즈이기도 하지만-

“아 이거 어쩔 거야, 댄? 자네가 그렇게 까댔던 <토끼 남작>이 대박이 나버렸으니···.”

···이 <인디북리뷰>가, 바로 얼마 전만 해도 -원더테일의 라이벌 출판사와의 관계를 고려해- <토끼 남작의 모험>을 대차게 비판하는 리뷰를 냈기 때문이기도 했다.

“제발 그만 좀 해요, 선배.”

그 리뷰를 작성한 장본인, 댄은 미간을 구긴 채 본인 할 말을 이어나갔다.

“아니 뭐, 솔직히 말해서 내가 원해서 그 기사를 썼나? 반쯤은 선배가 찔러대서 그런 거잖아요, 거기 어디더라 유니콘북스 대표 얼굴을 봐서라도-”

“야, 그만 그만. 그나저나 어쩔 거냐, 후속 기사는 내긴 해야 하는데···.”

후배 기자의 말에 기세가 한층 누그러진 선배를 향해, 댄은 가볍게 손을 내저어 보였다.

“지금 안 그래도 읽으려던 참이니까 좀 기다리라고요.”

그래, 뭐 잘 팔릴 거라는 점이야 처음부터 예상하지 않았던가.

‘이 아동서 바닥이 그렇지 뭐.’

크나큰 하자나 이슈가 없는 한, 1권이 잘 나간 경우 다음 권도 잘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그게 곧 그 내용의 완성도와 깊이를 보장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지.’

물론 1권은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의 기준으로는 조금 애매한 감이 있었다.

그리고 -신인 저자들의 특성상- 보통 2권에서 그 아쉬운 점은 더 두드러지는 법.

<인디북리뷰>의 가장 까탈스러운 기자로 유명한 댄 토렌스는, 지금부터 이 2권을 읽으며 아쉬운 점을 낱낱이 파헤칠 작정이었다.

‘좋아, 어디···.’

<토끼 남작의 모험 2권 : 공룡 왕국으로>.

주요 캐릭터인 베니와 버터컵, 안킬로 백작 세 명이 나란히 있는 표지화 자체는-

‘뭐, 그림은 확실히 근사하긴 하네.’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는 화려하고 따뜻한 색감이야 아동서 일러스트에 흔하지만.

묘하게 거친 그림체와, -내지의 삽화들에서 더더욱 두드러지는- 각 캐릭터의 몹시 실감 나는 표정은 확실히 이 책만의 장점이다.

‘흐흐, 그 와중에 버터컵 표정이 아주 볼만한걸.’

···자타공인 겁쟁이이지만, 필사적으로 안 그런 척하려다가 베니를 따라 원치 않는 모험까지 떠나게 된 허세꾼.

그는 이상하게도 이 버터컵 캐릭터를 볼 때마다 낯설지가 않은 기분이었다.

‘절대, 나랑 비슷하게 느껴져서는 아니라고···.’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며 읽어 내려가던 중간 중간, 댄은 피식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부탁을 하게 되어 송구하오만, 베니 남작, 티라노 대공의 아지트에 다녀와주겠소?”

“어, 저는 그럴 만한 능력이-”

“베니 남작은 그리핀 슬레이어가 아니오. 우리 공룡 왕국의 평화를 위해 부디···.”

결국, 베니는 당근 100포대를 대가로 주겠다는 백작의 말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안킬로 백작에게 의뢰를 받고 티라노 대공을 만나러 떠나는 베니와 버터컵.

그 와중에 마주치는 다양한 공룡들···.

‘아, 나도 어릴 때 공룡 참 좋아했는데.’

머릿속에 빠르게 어릴 적의 추억이 스쳐 지나가는 가운데.

베니와 버터컵은 하드로사우루스, 트리케라톱스, 브라키오사우루스를 만난 후에야-

“오, 드디어.”

자신이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음을 의식도 못한 채.

댄은 두 수인이 티라노 대공의 아지트에 도착하는 장면에 몹시 몰입했다.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동굴 앞.

베니와 버터컵은 잔뜩 겁을 먹은 채 그 안으로 들어갔지만.

[‘왜 아무도 없지?’

텅 빈 동굴에서는 바람소리밖에는 나지 않았다.

둘은 한참 더 걸어들어 갔다.

동굴 제일 안쪽에 도착하자, 동그랗게 쌓아놓은 풀더미가 보였다.

‘저건···.’

베니가 코를 쫑긋거리며 냄새를 파악하는데.

풀더미 안에서 무언가가 뛰쳐 나왔다!

“으히익! 저, 저게 뭐야!”

깜짝 놀란 버터컵은 베니의 머리 위로 뛰어올랐다···]

눈이 휘둥그레진 베니와 버터컵의 앞에 나타난 것은-

···다름 아닌 아기 티라노였으니.

“으하하하, 아기 티라노-! 이거 완전 반전인데?”

댄은 신나게 실소하고 말았다.

저놈 저거 드디어 미쳐버렸나, 그의 선배가 쯧쯧 혀를 차는 가운데.

[“뀨우? 누규?”

어린 티라노가 베니와 버터컵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댄은 한 페이지 가득 실린 ‘아기 티라노’의 삽화를 꼼꼼이 들여다보았다.

광택이 도는 붉은색 몸.

팔다리가 통통하고 동그란 배가 볼록하니 나온 데다, 이빨만 날카로운 것이-

“크윽.”

치사량을 넘어서는 귀여움에 댄은 저도 모르게 신음하고 말았고.

이내 고개까지 저어가며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원래 귀여운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렇다.

자신이 틈만 나면 귀여운 고양이와 강아지 사진이 올라오는 SNS 계정에 접속하는 것도.

거기서 특히나 마음에 드는 사진이 있으면 따로 저장해두는 것도.

업무 스트레스에 치일 때마다 그 저장해둔 사진을 꺼내 보며 마음의 평화를 되찾는 것도···.

‘딱히, 귀여운 걸 좋아해서는 아니란 말이야.’

그는 이내, 2권 <공룡 왕국으로>의 결말 부분으로 접어들었다.

[···베니가 데려온 어린 티라노를 보고 안킬로 백작은 깜짝 놀랐다.

“맙소사, 이 어린 공룡이 지금껏 그 커다란 동굴에서 혼자 지냈단 말인가!”]

베니 일행이 조사해온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그것은 -가장 지혜로운 공룡으로 알려진- 현자 트로오돈이 알려준 것인데.

티라노 대공이 잔당을 이끌고 아지트에 자리잡은 지 몇 년째.

‘대공의 아내가 어린 티라노를 낳다가 목숨을 잃었다더군.’

아내를 몹시 사랑하던 대공은 그녀를 그리워하다 병에 걸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든 충신 하나가 마지막까지 아기 티라노를 돌본 모양이지만, 충신마저 지난달에 세상을 떠났네.’

···어린 티라노는 그 후로 이 동굴 안에서 홀로 지냈다는 것이다.

현자 트로오돈을 비롯, 주변 숲의 공룡들이 이따금 찾아가 먹을 것을 챙겨주곤 했다고.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던 안킬로 백작은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비록, 숙적의 자식이라고는 하나-

[“이 어린 녀석이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을꼬···.”

험상궂은 얼굴과 달리 따뜻한 마음씨를 자랑하는 백작이 눈물을 잔뜩 쏟아내자.

“우지 마, 아저씨. 나는 갠챠나.”

아기 티라노는 안킬로 백작의 꼬리에 달린 곤봉을 가만히 쓰다듬어주었다···]

결국, 안킬로 백작 부부는 아기 티라노를 양자로 들이기로 했고.

그 일을 계기로 육식공룡 수인들과 평화 협정까지 맺게 되었다.

그리하여 공룡 왕국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다- 라는 것이 <2권 : 공룡왕국으로>의 결말.

‘···와, 생각보다 스케일이 커졌는데?’

저도 모르게 멍하니 감탄하고 있다가.

댄은 뒤늦게 정신을 차렸고, 이내 이런 결론을 내렸다.

···이미 대세는 기울어졌다고.

“선배.”

“응? 어때, 다 읽었냐?”

뭐 좀 까내릴 거리는 찾아냈냐- 라고 눈으로 묻는 듯한 그의 말에 댄은 어깨를 으쓱했다.

“다 읽었죠. 그리고, 우리 아무래도 전략을 수정해야 할 것 같아요.”

“응? 수정이라니 그게 무슨-”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적은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넜거든요.”

그의 선배가 두 눈을 끔뻑거렸다.

“무슨 소리야 이 미친 놈아.”

“우리가 이길 수 없는 적이라는 뜻이죠.”

“···.”

댄이 두 눈을 의미심장하게 빛내며 결론을 내렸다.

“이럴 때는 최선을 다해서 같은 편이 돼야 하는 법이라서.”

<인디북리뷰>에서 가장 까탈스럽기로 유명한 댄 토레스.

그는 진심을 다해 <토끼 남작의 모험 2권 : 공룡 왕국으로>의 리뷰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온갖 미사여구를 들여 호의적인 글을 써내는 그 순간에도-

‘딱히, 아기 티라노가 마음에 들어서는 아니란 말이지···.’

···자신이 이미 <토끼 남작>의 세계에 입덕했음을 애써 부정하는 중이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