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깡촌의 천재 작가-94화 (94/126)

상승세(2)

*

그주 주말, 나는 조셉 아저씨의 정식 초대를 받아 네드네 집에 놀러가게 되었다.

“저 왔어요, 조셉 아저씨.”

새어머니 케이트의 오빠이니 내게는 삼촌뻘이 되는 조셉 아저씨.

“유진—! 왔구나! 우리의 희망—!”

···그는 나를 보자마자 격하게 껴안고 흔들었다.

“벌써 술 드신 거?”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 이라고 덧붙이는 네드.

말술이라 그런지, 조셉 아저씨는 웬만큼 먹어서는 얼굴에 티도 나지 않는 편이다.

“으하하하, 우리 네드가 장학생 제안을 받다니. 다 네 덕분이다 유진!”

“저 덕분은요, 무슨.”

나는 잔뜩 상기돼 있는 네드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네드의 그림 덕분에 제가 호강하는 거죠.”

“으하하, 그럼 서로 윈윈이라는 걸로 합의를 볼까?”

“좋네요, 하하.”

코믹북스토어의 운영이 어려워져 한동안 힘들어하셨다는 조셉 아저씨의 얼굴은, 최근 본 것 중 가장 행복해 보였다.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는 네드의 표정 또한 뿌듯함과 기쁨, 자랑스러움이 한데 섞인 느낌.

‘왜 내가 다 뿌듯하고 그런지 모르겠네.’

그 모습에 나 또한 기분이 좋은 가운데.

“자, 금방 바비큐 준비할 테니까 이따 부르면 내려와라!”

···아델이 오기 전까지 우리는 잠시 방에 가서 기다리고 있기로 했다.

네드의 방은 2층 제일 구석에 자리해 있다.

코믹스 포스터를 온 사방의 벽은 물론, 이제는 천장에까지 붙여놓은 전형적인 코믹스 덕후의 방.

“나 왜 여기 올만에 오는 것 같지.”

어지럽기 그지없는 침대에 털썩 앉으며 한마디하자, 네드가 어깨를 으쓱한다.

“내가 늘 니 방에 놀러갔으니까?”

“아아.”

“그건 그렇고, 유진 너도 미스터 케빈한테 인세 정산 보고 받았지?”

“받았지.”

“흐으, 벌써 선인세를 다 깠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지 뭐냐.”

<토끼 남작> 2권 사인회를 마치고 돌아온 후 미스터 케빈은 우리에게 이 <토끼 남작> 1권의 인세 보고를 했는데.

‘결론부터 얘기드리자면, 선인세가 모두 공제되었습니다!’

‘우와아아—’

‘말도 안 돼···.’

15만 달러의 선인세를 다 까려면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 예상했지만.

기본이 하드커버에 풀컬러로 진행되는 아동서 특성상 권당 가격이 높은 편이며.

‘지금까지 총 11만 부가 나가서···.’

‘네? 11만 부요?’

‘맙소사.’

1주 만에 2만 부가 팔렸고, 1달 만에 재쇄를 찍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 부수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여하튼 그런 고로-

“이게 바로 행복이구나 싶다.”

네드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얼굴이었다.

“그러게, 거기에 4년 장학금 제안까지 받고. 다시 한 번 축하한다.”

SCAD는 조지아주에 위치한 대학.

네드가 그곳으로 간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으흐흐, 물론 난 너처럼 조기 진학은 아니지만 말이다.”

아직 1년은 더 시간이 남은 데다가.

네드에게 장학금 제안을 해온 곳은 이 SCAD뿐이 아닌 모양이었다.

“여러 곳을 다 비교해보고, 천천히 결정하려고. 암튼 너한테 엄청 고맙다, 뭐 이거지.”

“조셉 아저씨나 너나 왜 자꾸 나한테 고마워하냐.”

내 말에 머리만 긁적이며 그 이상 아무 말도 못 하는 네드.

···네드는 내가 겸양을 떠는 걸로 생각하는 듯하지만, 사실 나야말로 녀석에게 고마운 게 더 많으니 말이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해주는 친구를 만나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며.

‘유진! 잘 있었냐? 이 형님이 말이야 오면서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 오늘은 뭔가 일진이 안 좋았는지···.’

‘너, 힐크레스트에서 늘 브이로그 찍던 에이든 기억나지? 그 녀석이-’

일주일마다 병문안을 와서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를 몇 시간이고 늘어놓고 가는 친구란 더더욱 찾기 어렵다.

···네드와 아델을 나의 평생 은인으로 삼기로 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였다.

‘그리고 애초, <성자들>도 네드가 아니었음 세상에 못 나왔을 거고.’

네드 밀러.

촉망받는 유명 코믹스작가의 진심 어린 응원과 조언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 작품을 내보이지 못했을 테니까.

···그런 얘기를 할 수 없으니, 대신 나는 이렇게 말했다.

“너랑 내가 입장이 바뀌었어도 그렇게 했을 거 아냐?”

“뭐, 내가 유명 코믹스작가이고 니가 작가 지망생이었다면?”

“그래. 그런 상황이라면 니가 조언도 열심히 해주고, 협업이 가능하면 협업 제안도 하고 그러지 않았겠어?”

네드는 그런 상황은 상상도 못 하겠다는 듯 코웃음을 쳤지만.

“내가 아는 유진 너라면 얼마든 혼자 알아서 성공할 텐데?”

“음, 그러니까.”

잠시 머뭇거리던 내가 말을 이었다.

“그, 니가 말한··· 유진 디 어웨이큰 이전의 나였다면 말이야.”

즉 회귀 이전의 나 말이다.

자신감도, 열의도, 무엇도 없던 그때의 나였다면.

“아아, 각성하기 이전. 음, 그때의 넌 지금과 많이 다르긴 했지.”

네드는 기억을 더듬는 듯 흠- 소리를 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근데, 그때의 너라면 내가 아무리 제대로 된 조언을 해줘도 씨알도 안 먹혔을 것 같은데.”

“···응?”

“아니 왜, 너 기억 안 나? 9학년 1학기 때 말이야.”

내가 혼자 습작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네드는 나를 끈질기게 설득해 그 소설을 읽어보는 데 성공했고-

“내가, 물론 단점도 많지만 이런 저런 점이 재밌다고 신나게 칭찬을 했는데 넌 귓등으로도 안 들었잖냐.”

“···.”

“그러고 다시는 그 어떤 작품도 보여주지 않았고.”

그러네. 돌이켜보니 그런 일이 있긴 했다.

그리고 회귀 이전, 그러니까 그때는 이미 사회인인 시절이었으니 좀 다르긴 했지만-

‘야, 엄청 재밌어.’

‘···안 믿는다니까.’

‘아 제발 좀, 대체 왜 그러는데? 너가 본인이 편집자이면서 왜 니 글은 객관적으로 못 보냐?’

출판사에서 일할 때 썼던 습작을 반강제로 녀석에게 보여줬던 때가 있는데.

그때도 네드는 매번 재밌다, 재밌으니까 에이전시나 출판사에 투고해보라고 수없이 말했지만-

‘나는 매번 용기를 못 냈지.’

···그런데 어떻게 <잊혀진 성자들> 때는 투고할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걸까.

혹시, 네드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구했던 걸까?

지극히 논리적인 의문이 들던 그 순간.

지잉- 관자놀이가 울리는 듯한 기분과 함께 머릿속이 흐려진다.

···누군가에 관한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을 억지로 막기라도 하듯.

“왜 그래, 어디 아프냐?”

일순 멀리서 들려온 듯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네드의 걱정스러운 얼굴이 보인다.

“어? 아, 아냐. 괜찮아.”

가볍게 고개를 젓자 방금 전의 그 기이한 감각은 씻은 듯 사라져 있다.

그나저나 방금 무슨 생각을 했더라···.

두 눈을 가만히 깜박이던 그때.

“얘들아! 나 왔어!”

활기차게 계단을 올라오는 아델의 목소리가 들렸다.

*

이처럼 미국에서 <토끼 남작의 모험> 2권이 출간 직후부터 어마어마한 판매고를 기록하며 화제가 되었다면.

영국판 <토끼 남작>은 그보다는 더 느린 속도로, 아니 완만한 속도로 인기를 얻어나갔다.

처음에는 영국 출판사 머핀북스의 꾸준한 홍보와 각종 언론 기사 덕분에 그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고.

이후 각종 어린이책 모임이나 여러 아동서 커뮤니티 등지에서 조금씩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미국의 기록에 비해서는 그 정도가 미미한 것에 머핀북스는 조금 불안해했는데.

지금으로부터 2주 전, 그러니까 출간한 지 보름 정도가 지났을 무렵.

“편집장님! 이거, 이것 좀 보세요!”

부하 직원이 가져온 것을 보고 편집장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잠깐만, 이 계정 주인··· 그러니까.”

“네, 레이디 아라벨라 맞습니다.”

“···!”

레이디 아라벨라 카번디시.

영국 왕실의 방계 가문이자, 먼 친척뻘인 그녀는 왕년의 모델이자 지금도 여전히 근사한 외모를 자랑하는 셀러브리티다.

그렇다 보니 그녀가 운영하는 SNS 계정의 팔로워 수도 상당한데.

‘아이가 태어난 후로 계정의 성격이 많이 달라졌지.’

예전에는 다양한 패션 아이템과 룩북이 주요 컨텐츠였다면.

이제는 본인의 자녀를 위한 어린이책을 직접 골라 그것을 소개하는-

“국내 최강의 북인플루언서라고 봐도 무방하죠.”

“···그렇지.”

물론, 그녀는 직업적 인플루언서는 아니다.

따로 홍보용 채널을 운영하는 것도 아니고, 출판사들의 리뷰 요청도 전부 거절한다.

자신의 인스타에 아이를 위해 직접 고른 책을 올리는 것이 전부이지만, 그것이 영국의 아이 엄마들 사이에 순식간에 퍼져나가-

‘단숨에 재쇄를 찍게 하는 것으로 유명하니까.’

일각에서는 그런 그녀의 이름을 따 ‘레이디 아라벨라 북클럽리스트’라는 식으로 여태 소개해온 책들을 따로 목록으로 만들었는데.

이 목록상의 책들은 꾸준히 팔려 지금도 영국 대형서점의 스테디셀러 리스트에 자리해 있다.

‘···그 목록에 <토끼 남작의 모험>이 들어간다고?’

꼴깍, 편집장은 마른침을 삼키며 부하직원의 핸드폰 화면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레이디 아라벨라 카번디시의 가장 최근 게시물은 다름 아닌-

[@_arabella_cavend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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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남작의 모험> 1권과 2권 사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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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abella_cavendish

[HELLO EVERYONE!!! IT'S ME, LADY ARABELLA(안녕하세요 여러분!!! 저예요, 레이디 아라벨라!!!) :D

이 책 아세요? 우리 알렉스가 너무 좋아하는 토끼 남작 이야기예요~~!

토끼 남작 베니, 알고 보면 우리 가문이랑도 먼 친척일지도 모르겠네요!!! ㅋㅋㅋ

ALL THE BEST,

레이디 아라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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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그렇듯 전형적인 ‘베이비부머’체로 작성된 게시글.

메시지 전체를 대문자로 작성해, 텍스트만 봐도 귀가 얼얼한 기분이 드는 이 글이 계기가 되어 영국 내에서 <토끼 남작의 모험>의 인기는 무서울 정도로 치솟았다.

그로부터 1주 뒤.

영국 아마존 아동서 부문 순위에만 간신히 고개를 들이밀던 책이-

“100위! 전체 100위권 진입입니다!”

“우와아아—”

“맙소사. 이거 진짜 어마어마한걸.”

출간의 성공 척도라 할 수 있는 전체 부문 100위권에 진입했던 것이다.

이처럼 생각지도 못한 순위 상승에 머핀북스 출판사가 즐거운 비명을 지른 지 1주일 뒤.

···레이디 아라벨라의 계정에 이 <토끼 남작>에 관한 게시물이 또 올라왔다.

이 동화에서 마음에 드는 구절이나 삽화를 찍은 여러 장의 사진 가운데,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린 것은 바로-

[레이디 아라벨라가 <토끼 남작> 굿즈 키링 인형이 달린 에르메스 가방을 든 사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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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abella_cavendish

[이렇게 가방에 다니까 너무 귀엽지 않나요~~??ㅋㅋㅋ

파티에 들고 갔는데 다들 귀엽다고 난리였음요~~!!!! XD]

···초판 한정 스페셜 굿즈로 나온 토끼 남작 베니의 열쇠고리 인형.

한 달 만에 전부 동이 나버린 미국판과는 달리, 영국판은 아직 초판이 남아 있는 상황이었는데.

레이디 아라벨라가 이 베니 인형을 자신의 에르메스 가방에 액세서리처럼 달고 다니는 사진을 올린 이후-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거 아니지?”

···단 며칠 만에 나머지 몇 만 부가 전부 다 팔려버리는 기염을 토한 것이었다.

그때부터 영국판 <토끼 남작의 모험>의 영국 아마존 베스트셀러 순위는 그야말로 수직 상승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현실감이 없었다면, 이제 머핀북스 편집장은 매일 매일의 순위를 보며 얼떨떨해했는데.

지금 현재, 그러니까 11월 중순의 어느 주말 저녁.

“···또 올라왔다고?”

편집장 제이 리암은 부하직원에게서 걸려온 전화에 마른침을 삼켰다.

-네, <토끼 남작>의 완전 팬이 된 것 같더라고요.

통화를 마친 뒤.

편집장은 자신의 핸드폰으로 그녀의 계정에 접속하자마자 눈을 크게 떴다.

···이 책에 빠져도 단단히 빠진 것인지.

<토끼 남작>의 저자가 고등학생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녀가-

[동생을 위해 만든 책이라니, 너무 너무 마음씨가 예쁘지 않나요?!!! 완전 감동적~~!!!!

순수한 팬심이랄까요, 언제 한 번 꼭 만나보고 싶네요~~!! ;)]

저자들을 언젠가 만나보면 좋겠다, 라고 남긴 게시물을 보며 편집장이 중얼거렸다.

“이거··· 아무래도 우리 저자분들을 꼭 한 번 영국으로 모시고 와야겠는걸?”

내년 중반은 되어야 나올 후속권.

···즉 <토끼 남작> 3권 출간 행사 때는, 반드시 이 영국에서도 현지 이벤트를 개최해야겠다고 마음먹는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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