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승세(3)
*
“많이들 먹어라.”
뒷마당에 마련된 바비큐 데크에서 연기와 함께 군침 도는 고기 냄새가 올라온다.
“우와 잘 먹겠습니다 조셉 아저씨!”
“흐으, 역시 울 아빠 고기 굽는 솜씨가···.”
“와, 진짜 맛있는데요.”
조셉 아저씨가 구워주시는 바비큐는 그야말로 입에서 살살 녹았다.
‘역시 고기는 갓 구운 게 최고지.’
그것도 이렇게 바로 구워낸 고기만큼 맛있는 게 또 어딨을까.
부위별로 다양한 고기는 물론, 소시지까지 알차게 구워주신 것에 샐러드를 곁들여 먹으니···.
‘천상의 맛이 따로 없구나.’
묵묵히, 그러나 적당한 속도로 신나게 먹는 가운데.
“맞다 맞다, 나도 너희한테 알려줄 좋은 소식 있어!”
마찬가지로 자기 접시를 들고 열심히 먹던 아델이 환한 얼굴로 외쳤다.
“좋은 소식?”
내가 그쪽을 돌아보자, 네드가 잽싸게 말한다.
“아 잠깐, 잠깐만. 나 뭔지 알 것 같다.”
“오, 진짜?”
눈을 빛내는 아델을 향해 의기양양하게 대꾸하는 네드.
“너, 지난번에 말했던 올리비아 로드리고 한정판 앨범. 그거 얻은 거지?”
“아 진짜, 그거 아니거든?”
“엇, 아니었어? 크레이그리스트에 중고거래 물품 올라온 거 뒤지고 있더니···.”
그런 얘기를 했었던가.
아니, 내 기억에 전혀 없는 걸 보면 저 둘만 알고 있는 얘기가 분명하다.
어느새 내가 모르는 화제로 둘의 이야기가 옮겨가려던 그때-
“너 혹시, 에이전트랑 얘기한 거?”
내가 꺼낸 한마디에 아델이 내 쪽을 돌아보았다.
“맞아! 바로 그거라고!”
“아니 뭐야, 에이전트라니, 대체 언제? ···잠깐만, 설마 사운드클라우드에?”
영문을 몰라하는 네드를 향해 혀를 내미는 아델.
“너 완전히 까맣게 잊고 있었지?”
“···어.”
“됐어 됐어, 어쨌거나-”
아델은 내가 소개해준 대로, 미스터 케빈에게 연락해본 모양이었다.
“미스터 케빈, 되게 친절하고 좋으시더라고. 그분이 음반 에이전트들 몇 분을 소개해주셨는데.”
이 중에 꼭 누굴 고르지 않아도 상관없다.
다만, 직접 만나서 충분히 얘기를 나눠보고 계약서 사본도 받아서 조항 하나 하나를 따져보는 게 중요하다 했다고.
‘역시, 내가 아는 미스터 케빈답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데, 아델의 말이 이어졌다.
“계약서 보는 데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도와주시겠다는데, 너무 도움만 받는 거 같아서 죄송한 거 있지?”
“죄송하기는.”
“상담비라도 드려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
그럴 부분까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라고 말하려던 그때.
“야, 걱정 마. 안 그래도 미스터 케빈, 어엄청 잘 나가고 있거든?”
팔짱을 낀 채 네드가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솔직히, 어? 에곤 K의 담당 에이전트가 됐다는 걸로 홈런을 한 번 쳤는데, 여기에 ‘베니 르 레푸스’까지 대박을 냈으니-”
이미 에이전트로서의 몸값은 높아질 대로 높아진 거 아니겠냐, 결론을 내리는 네드.
“···잘 아네?”
신기해서 한마디하자 씩 웃어 보이는 녀석.
“크흐흐, 베스트셀러 작가 옆에서 지내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법이지.”
“푸흐.”
그러고 보니.
이번에 네드가 사인회를 하기 위해 캘리포니아에 갔을 때 했던 말들이 기억난다.
‘으으으, 5성급 호텔이라니.’
‘이게 바로 스타 작가들이 받는 대접이로구나···.’
‘역시 사람은 성공하고 봐야 해, 크흐.’
사인회가 끝난 뒤 원더테일 측에서 준비해놓은 소소한 출간 파티는 물론.
비행기표와 숙소, 차량까지 지원해준 것에 큰 감명을 받은 모양이었다.
‘나, 출장을 가본 건 처음이지만 너무 좋더라···.’
그 덕분에 사기가 올랐는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날 붙잡고 3권에서 써보면 좋을 듯한 아이디어를 이것저것 늘어놓았으니 말이다.
“아 그건 그렇고.”
네드가 아델을 돌아보며 물었다.
“너 그 에이전트 계약 말인데, 혼자서 하러 갈 수 있겠어?”
안 그래도 나도 걱정됐던 부분이다.
미스터 케빈이 소개해준 사람들이니 믿을 만이야 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계약 한 번 안 해본 고등학생 혼자서 그 자리에 나가는 건 영 걱정된단 말이지.’
그러자 이내 고개를 젓는 아델.
“혼자는 아니고, 엄마랑 같이 가려고.”
“···뭐, 진짜? 너희 어머니?”
“어머니한테 얘기 드렸어?”
네드와 내가 이렇게 깜짝 놀라는 데는 이유가 있다.
‘아델, 그놈의 쓸데없는 음악에 열 올리지 말랬지!’
‘우수한 성적은 바라지도 않아. 그래도 평균 이상은 되어야 하는 것 아니니?’
‘어휴, 대체 누굴 닮아 그러는지···.’
아델의 어머니는 변호사로, 어릴 적부터 이 지역의 수재로 유명했단다.
그런 자신과 달리 아델이 공부에 딱히 재능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늘 불만스러워했을 뿐더러.
“음, 사실··· 나도 엄마한테 말해야 할지 말지 엄청 고민했어.”
멋쩍게 말을 잇는 아델.
“사실 엄마는 내가 음악하는 거, 굉장히 반대했거든. 너희도 잘 알잖아?”
좋게 말하면 정석적이고.
안 좋게 말하면 본인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걸 용납하지 않는 분이라고 들었으니 말이다.
그런 어머니와 달리 아델의 아버지는 취미로 음악을 하셨는데.
어린 아델에게 기타와 피아노 연주하는 법을 가르쳐줬다고 한다.
···비록 지금은 별거 중이라고 듣긴 했지만, 여튼 그것이 아델에게는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그래도 아예 말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솔직하게 말했거든.”
역시나 처음에는 엄청나게 화를 냈지만, 결국은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
“진짜로? 엄청난데?”
“그러게, 솔직히 상상도 못 했어.”
네드와 나의 반응에 그저 웃기만 하는 아델.
“엄마가 계약서 문구나 조건은 다 알아서 검토해준다고 하니까, 그 부분은 크게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더라고.”
“그래, 뭐 어머니가 변호사인데 알아서 잘 하시겠지.”
“그러게, 너희 어머니 무섭기는 한데 뭔가 아군이 되면 엄청 든든한 느낌?”
···오 진짜 그런 느낌인걸.
네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데, 녀석의 물음이 이어졌다.
“아 근데, 진짜 어떻게 설득한 거? 마법이라도 썼냐?”
그러자 아델이 두 손가락으로 V자를 그려 보였다.
“사운드클라우드.”
“응?”
“그냥, 틀어줬지. 내가 만든 팬송 말이야.”
“오, 그랬더니 어머니가 뭐라셔?”
아까부터 내가 궁금해하는 걸 알아서 쏙쏙 질문하는 네드.
“뭐, 처음엔 별 말 없더라? 노래만 끝날 때까지 다 듣더니···.”
사운드클라우드에 달린 코멘트며, 재생횟수나 이런 걸 한참 살펴보더라는 것.
그러다 한 5분 정도 말이 없더니.
“그 노랠 다시 재생하는 거 있지?”
“···.”
“그렇게 한 번을 다 듣고 나더니 날 돌아보면서-”
이내 제 어머니 특유의 단호한 어조를 흉내내며 아델이 말했다.
“그래, 어디 한 번 만나나 보자.”
“···.”
“딱 그 한마디하고, 더는 그 얘길 안 꺼내더라?”
···푸흐.
나와 네드는 동시에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내고 말았다.
“야, 너희 어머니 진짜 캐릭터 한 번 확실하시다.”
“그러게. ···맞다, 나중에 내 소설에 비슷한 캐릭터 등장시켜도 됨?”
내 물음에 아델은 크크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으으, 유진, 너 그거 진짜 직업병인 거 알지?”
네드는 질렸다는 듯 말하다가.
뒤늦게 아델의 사운드클라우드 계정을 확인해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야, 근데···. 그 사이에 숫자가 확 늘었는데?”
“그치 그치? 이게, 지난번에 상담한 음반 에이전트가 해준 말인데.”
네드와 아델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
지잉- 진동과 함께 비숍 작가님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랜든_비숍 : 유진 군 잠깐 통화 가능한가? 내 자네에게 이런 저런 할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은 <캐슬>의 초고를 마무리했다는 내 메시지에 대한 답변이었다.
*
지난 주말, 네드네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고 온 지도 며칠이 지났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메일 전송을 완료했습니다]
···나는 미스터 케빈에게 <캐슬> 초고를 보내놓은 참이었다.
‘사실은 퇴고를 하고 보낼지, 아니면 그냥 초고 상태로 보낼지 고민했는데.’
그때 그 바비큐 파티에서 통화한 바에 따르면, 비숍 작가님의 조언은 이러했다.
‘550페이지라고? 그 정도 장편이면 초고를 보내놓는 게 낫지.’
분량이 많은 책은 교정하는 데만 한 세월이 걸리니 출간 전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니, 일을 빠르게 진행시키는 것이 좋다는 것.
‘그리고 자네의 이번 작품은··· 꼭 SFF프레스랑 하기보다는, 퍼블리셔스마켓에 내놔보는 게 어떨까 싶은데.’
퍼블리셔스마켓.
책 출간 이전, 날것의 원고를 두고 여러 출판사가 출간 계약을 따내기 위해 경합을 벌이는 것을 말한다.
‘그러려면 쿼리레터를 작성할 시간도 필요할 거고.’
여기서 비숍 작가님이 말하는 쿼리레터(query letter)란 출판 에이전트가 출판사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소개 메일을 말한다.
즉, 내 원고 <캐슬>이 무엇을 다루는 소설인지, 대상 독자가 누구인지, 이 글을 쓴 에곤 K의 이력은 어떠한지···.
이 작품을 홍보하는 한 페이지분량의 소개서인 셈.
이제 여기에 <캐슬>의 시놉시스와 샘플원고를 첨부하여 출판사들에게 돌리면-
‘꽤 많은 곳에서 자네 원고에 달려들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네. ···아마 어마어마한 입찰 경쟁이 벌어지겠지, 흐하하.’
여하튼 이를 위해서는, 초고 상태로 보내놓는 쪽이 시간 확보에 낫지 않겠냐- 라는 것이 작가님의 결론.
‘물론 이건 그냥 하나의 조언일 뿐이니, 담당 에이전트와 충분히 논의해보고 결정하게.’
그리고 그런 의견에 나 또한 십분 동의하는 터.
미스터 케빈에게 <캐슬> 원고를 메일로 보낸 뒤, 에이전트로서의 의견을 얘기해달라고 했더니-
‘네? 신작을 벌써··· 다 쓰셨단 말입니까?’
미스터 케빈은 소스라치게 놀란 눈치였다.
*
그로부터 약 5분 후.
케빈 클레그는 노트북 전원을 켜고 책상 앞에 앉았다.
‘에곤 작가님의 신작···!’
사무실이 아닌, 회사 측에서 마련해준 작은 아파트 안.
책상 앞에 앉아 유진이 보내온 메일의 첨부파일을 클릭해 다운받는데, 기대감에 심장이 두근거린다.
“···설마, 벌써 다 쓰실 줄이야.”
사실, 예전에 유진에게서 신작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적어도 내년 초는 되어야 초고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니지, 500페이지 넘는 분량이라고 했으니.’
빨라야 내년 초, 혹은 내년 중반에나 완성이 되면 다행이 아닐까 싶었다.
그는 애초 작가를 다작하라고 몰아붙이는 스타일의 에이전트가 아니다.
여러 작품을 쏟아내는 데 매진하기보다는, 충분한 휴식 끝에 오랜 시간 고심하며 집필하는 것이야말로 작가의 수명을 늘리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니까.
···이처럼 너무도 당연한 상식이, 때때로 유진의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다른 누구보다도, 유진 작가님 본인이 그걸 매번 보여주고 있으니까.’
이미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와 <피터 팬> 중편 3부작으로 에곤 K라는 낯선 이름을 SF 장르에 단단히 각인시켰으며.
본명으로 쓴 단편 는 스콜라스틱 공모전의 금메달을 거머쥐는 쾌거를 이뤘다.
‘그 작품도 곧, 로렌 루먼이라는 유명 극작가의 손으로 연극화가 될 예정이고.’
동생의 생일 선물로 쓴 동화 <토끼 남작의 모험>조차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기에 이르렀으니.
케빈 클레그.
라이터스홈에서 재능 넘치는 작가를 수없이 봐왔으며, 그 이전에도 영화계에서 근무하며 수많은 창작자를 접해온 그로서도-
‘한 명의 작가가, 이렇게 다재다능한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어.’
아니, 이건 다재다능이라는 표현으로는 충분치 않다.
···에곤 K의 이름으로 써낸 두 작품, <피터 팬>과 <호수괴물> 또한 한 명의 작가가 써낸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서로 다른 매력을 보여주지 않는가.
진부하지만 ‘팔색조’라는 단어야말로 유진의 이 같은 특성에 어울리는 것일 터.
‘그리고 이번엔, 대체 어떠한 세계를 보여줄 것인가.’
유진의 에이전트는 마른침을 삼키며 달칵, 하고 파일을 클릭했다.
그리고 이내 모습을 드러낸 <캐슬>의 전문을-
“···.”
홀린 듯이 빠져들어 정독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