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를 불식시키는 법(3)
*
이처럼 원래 유진이 의도했던 바와는 달리 오히려 궁금증에 불이 붙은 상황 속.
에곤 K의 정체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 중에는-
“어, 저기 저 사람, 케빈 강사님 아니야?”
“오, 진짜네.”
이 아이오와대학에서 케빈 클레그가 담당하는, 문예창작 산합협력 과목을 수강하는 대학생들도 있었다.
두 학생은 지금 동네의 대형카페 ‘인카운터카페’의 2층에 앉아 있다가.
익숙한 뒷모습을 보고는 그것이 라이터스홈의 유명 에이전트, 케빈 클레그임을 알아차린 터였다.
지난 학기만 해도 케빈 클레그 혼자서 이 ‘출판 프로그램의 실제’ 프로그램을 담당했다면-
“요즘 수업에 거의 안 오시던데, 많이 바쁜가.”
“야 그럼 바쁘지 안 바쁘겠냐, 다른 작가도 아니고 바로 그 에곤 K의 에이전트로 대활약 중인데.”
이번 학기 들어서는 아주 가끔 얼굴만 비칠 뿐, 실질적인 업무는 그의 파트너인 라이터스홈의 또 다른 동료가 맡은 참이었으니 말이다.
화장실이라도 가는 건지 잠시 1층으로 내려갔던 케빈 클레그가 다시 2층으로 올라온 것을 보고-
“오, 인사라도 할까.”
“됐어, 약속이 있으신가 보지.”
두 사람은 미팅룸 안으로 들어가는 케빈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만 보았다.
···그로부터 한 10분쯤 지났을까.
미팅룸 문이 벌컥 열리더니 눈에 띄는 거구의 케빈이 나왔고.
“작가님, 같이 나가시죠.”
뒤쪽을 돌아보며 몹시 친근한 목소리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작가님이라면 설마, 에곤 K를 말하는 건가?
두 학생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향한 순간.
“그러죠. 가는 김에 제가 바래다 드릴까요, 미스터 케빈? 차도 갖고 왔는데.”
곱상한 외모의 남학생이 미팅룸을 나오며 그의 말을 받았다.
“아하하, 괜찮습니다. 제가 저녁 약속이 이 근처에서 있어서···.”
그리고 이내, 케빈과 함께 1층으로 내려가버렸다.
‘···!’
두 학생이 멍하니 눈을 깜박이다가 둘 중 한 명이 중얼거렸다.
“아까 그거··· 힐크레스트 자켓 맞지?”
“응?”
“이 동네 고등학교 말이야.”
“···.”
두 친구는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
그로부터 며칠 뒤.
에곤 K 서브레딧과 sf 서브레딧은 어느 하나의 게시물로 시끌시끌했다.
[12.8k 에곤 k 실물 목격했음]
자신들이 아이오와시티에 거주하는 대학생들이며.
에곤 K의 에이전트인 케빈 클레그가 담당하는 산학협력 수업을 수강했다고 밝힌 게시자들이 쓴 내용의 요지는 이러했다.
···에곤 K는 사실 고등학생일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한 근거로, 케빈 클레그가 ‘작가님’이라고 부르며 동석하던 상대가-
└뭐, 힐크레스트 고등학교 자켓을 입고 있었다고?
···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지만, 서브레딧의 반응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ㅋㅋㅋㅋㅋ
└와 진짜 ㅋㅋㅋ 이건 아니지
└우린 이미 아웃레이져스라는 관종한테 질릴 대로 질렸거든··· 어그로도 적당히 해라
···
대부분은 이 글을 흔하디 흔한 어그로성 게시물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인 가운데.
소수이긴 해도 이 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었다.
└음 그래도 글에서 진정성이 느껴지긴 하는데
└ㅇㅇ 찾아보니까 케빈 클레그가 아이오와대에서 강의담당하는 거 맞음
└케빈 클레그가 담당하는 작가가 에곤 K뿐인 줄 아나
└여기서 담당 작가 목록 확인해봐라 www.writershome.com/our-authors/
└기사 찾아보니까 <토끼 남작> 저자들이 아이오와시티 힐크레스트 고교 출신이라는 듯
└자켓 입었다는 게 유진 권 아니면 네드 밀러인가 보네
└아 <토끼 남작>
└오 아이오와시티 출신이었구나
···
그렇게 유저들의 관심이 <토끼 남작> 저자들에게로 집중되던 중.
누군가가 잊고 있던 기억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냈다.
└잠깐만 전에 그 비숍 팬보이라는 유진 권 말이야
└분명 아이오와시티 출신이라고 하지 않았어?
└(누군가가 찍어서 남긴 동영상 링크)
└오 그렇네
└ㄷㄷㄷㄷ 세상에 이게 무슨
···
바로 그때.
그 ‘힐크레스트 고교 자켓’의 주인 중 한 명으로 추측된 네드 밀러.
그리고 에곤 K의 정체를 아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한 명인 아델 애시번.
컴퓨터랩에 잠깐 들러 습관처럼 sf서브레딧에 접속했던 둘은, 모니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중이었다.
“···.”
혹시나 이번 사태로 모든 게 다 드러나면 어떡하지.
그런 걱정에 어느새 손에 땀이 다 찼다.
“얼른, 스크롤 내려봐.”
“어어.”
아델의 독촉에 네드는 마른침을 삼키며 스크롤을 내렸다.
‘만약에 이 <토끼 남작>의 권유진과 랜든 비숍, 그리고 에곤 K의 연관 관계를 의심한다면···.’
괜스레 초조한 기분으로 그 아래 달린 댓글을 끝까지 쭉 훑어보던 그의 표정이 조금 이상해졌다.
분명, 이 셋의 연관 관계를 유추하고 있는 것은 맞는데-
[팬보이가 낭독회를 계기로 비숍 작가와 친해졌는데 <토끼 남작> 땜에 에이전트가 필요해졌고.
비숍이 그 일로 주변에 의견을 구했는데-]
└에곤 k가 본인 에이전트를 추천해줬다는 거구나
└와 대박
└미쳤다···!
└수수께끼가 풀렸네
└하긴 출판계는 네트워크가 중요하다고 들었음
···
“????”
···잠깐만, 뭐라고?
부분적으로 조금씩.
그러나 결론만 보자면 완전히 비껴나가버린 추리에-
“이거 지금··· 그러니까.”
“그으··· 결과적으론, 잘 된 거 맞지?”
두 사람은 한순간 멍해졌다가, 이내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내고 말았다.
*
한편 그 시각.
나는 공항에 막 도착한 참이었다.
이제는 제법 익숙한, 공항 특유의 냄새에 괜스레 흥분이 되던 그때.
지잉, 지이잉—
갑자기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진동에 폰을 확인하자, 찐친방에 메시지가 여러 개 와 있었다.
[네드_밀러 : 유진 니가 이거 봐야 할 것 같은]
[아델_애시번 : 아냐 아냐 아무것도 아냐]
[네드_밀러 : 아 어 그래 암것도 아님]
[네드_밀러 : 연극 리허설 잘 보고 오고ㅋㅋ]
[아델_애시번 : 흐으 넘 부럽다 ;( 내 몫까지 재밌게 지내고 와]
···
‘···뭐지.’
뭔가 얘기를 하려다가 만 것 같은데 말이다.
‘요즘 이 둘, 분위기가 이상하다니까.’
토독, 토도독-
나는 피식 웃으며 메시지를 작성했다.
[유진_권 : 어어 다녀올게]
[유진_권 : 니들도 잘 지내고 있고]
바로 그때 귓가를 울리는 제이든의 목소리.
“어, 뭐부터··· 해야 하는 거야? 레너드 선생님은, 언제 오신대?”
비행기 타는 게 처음이라 그런지 당황한 녀석에게 저 앞 카운터를 가리켜 보였다.
“일단 체크인부터 하자.”
“아, 어.”
지금 나와 함께 있는 것은 제이든뿐이 아니다.
미아, 샬롯, 로완 등 문예창작클럽원들과 더불어-
“얘들아, 미안! 좀 늦었구나.”
···클럽 담당교사 미스터 레너드까지.
우리는 ‘천재 극작가’ 로렌 루먼의 공식 초청을 받아, 연극 의 리허설을 참관하러 가는 길.
이렇게 다같이 가게 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친구들이요?’
‘네, 초고를 읽었던 클럽원들인데 연극으로 어떻게 탄생할지 기대가 된대서.’
혹시나 표를 미리 구해놀 수 있을까 싶어 로렌 교수님에게 문의했더니.
‘그러면 아예, 리허설 때 오는 건 어때요?’
‘···리허설이요? 친구들도요?’
그녀는 문예창작클럽원들이 를 제일 먼저 읽어본 독자라는 점에 주목했던 모양이다.
‘초고를 읽어본 독자들 입장에서, 연극 버전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의견을 꼭 듣고 싶거든요.’
‘오, 그것도 좋은 생각이네요.’
원작자의 의견 이상으로, ‘독자’ 즉 잠정적인 관객의 의견을 들어보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
그 후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우와아아—’
‘진짜? 너무 좋아!’
문예창작 클럽원들은 당연하게도 쌍수 들고 환영했고.
‘그거 너무 좋은 제안인걸! 기다려봐라, 잠시만 교장실에···.’
레너드 선생님은 교장선생님을 금세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항공권은 각자 사비로, 숙소는 절반은 클럽 예산으로 나머지 절반은 학교 측 지원으로 해결하기로 한 것.
‘네 명씩 한 방을 쓴다고 했던가.’
···물론 나는 를 제작하는 MTC프로덕션에서 항공권과 호텔비를 모두 지원해주기로 했지만 말이다.
여하튼 잠시 후.
“우와아아.”
“흐으, 뉴욕이라니!”
의외로 처음 비행기를 타보는 경우가 많은 모양인지.
친구들이 어린애들처럼 창문에 달라붙어 바깥을 내다보는 가운데.
“···.”
나는 며칠 전, 미스터 케빈을 만나서 받았던 보고를 잠시 떠올렸다.
리암홀트와의 <캐슬> 저작권 딜이 잘 마무리됐음은 말할 것도 없고.
‘아 그리고 영화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가 엄청나게 흥행 중입니다!’
덕분에 -안 그래도 슬금슬금 순위가 올랐던- 소설 <호수괴물>과 <피터팬>의 판매 부수가 다시금 치솟고 있으며.
내가 신경 쓰고 있지 않던 사이, 미스터 케빈이 이 두 작품의 해외 판권을 꾸준히 홍보한 결과-
‘<피터팬>은 총 13개국, <호수괴물>은 총 10개국 출간 확정됐습니다 작가님!’
생각지도 않은 국가들에서 판권이 모두 팔린 것이 아닌가.
게다가 앞서 팔린 국가들, 즉 한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은 이미 번역 출간이 완료되었다.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
<湖に何かが住んでいる>
각 나라의 말로 적힌, 저마다 개성 있는 표지를 자랑하는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 해외판본들.
‘유진아, 저렇게 나란히 꽂아놓은 걸 보니 이 아버지가 다 뿌듯하구나.’
···내 방 책장에 꽂아둔 <호수괴물> 번역본들을 볼 때마다 아버지가 더 기뻐하시던 게 생각난다.
나 또한 뿌듯할 뿐더러, 특히 한국어 판본은 직접 읽으며 그 세심한 번역에 감탄했으니까.
‘어떤 면에선, 내가 직접 한국어로 쓰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것 같았지.’
여하튼, 다시 미스터 케빈과의 미팅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미스터 케빈은 이 <캐슬>의 해외 판권 문의가 벌써부터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했다.
‘특히, 작가님의 전작을 출간한 문학마을 측의 열의가 엄청나더군요.’
‘아, 여기서 <호수괴물>이랑 <피터팬> 둘 다 계약했죠.’
‘네, 마케팅의 연속성을 고려하면 전작을 했던 곳과 이번 작품까지 계약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긴 합니다만···.’
이 <캐슬>이 어느 정도 터질 지 모르는 만큼, 해외판권 옥션은 천천히 오픈하는 편이 낫겠다는 것.
‘아 그리고, 이것.’
미스터 케빈의 마지막 용건.
그것은 한국의 문학마을 출판사에서 나온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 한국어 판본이었다.
‘나머지 증정본은 작가님 댁에 택배로 갈 예정입니다만, 한국 출판사 측에서 하루라도 빨리 작가님께 전달해달라고 하더군요 하하.’
‘···와, 표지가.’
전설적인 북디자이너 아마라 아체베가 담당한, 미국판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 디자인은 말할 것도 없지만.
문학마을에서 나온 한국어 판본 또한 독특한 매력을 자랑했다.
소년의 뒷모습으로 보이는 초상화 속, 마치 희망을 상징하는 듯한 나비 수십 마리가 반짝이며 날아다니는···.
‘보아하니 이 <피터팬>의 홍보에 문학마을이 사활을 걸고 있는 모양이더군요.’
그때 미스터 케빈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나는 <피터 팬> 한국어판을 가방에서 꺼냈다.
고오오오—
기내의 백색소음이 기분 좋게 느껴지는 가운데.
환상적인 느낌의 표지와 제목, 그리고 띠지 문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
에곤 K 장편소설| 서이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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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을 강타한 대형 베스트셀러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 에곤 K의 신작!
네뷸러상 수상작, 아마존 SF 부문 연속 2주 1위]
서이준.
이전의 <호수괴물>도 이분이 번역했던 걸로 기억한다.
‘너무 정성들여 번역해줘서 그런가.’
고맙기도 하고, 친근감이 다 든다.
나중에 언젠가 한국에 가게 되면 번역가분을 꼭 한 번 만나보고 싶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오, 이 책 표지 엄청 예쁘네? 이거 한국어 맞지?”
옆좌석의 미아가 눈을 반짝이며 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 어떻게 알았어?”
“후후, 내가 케이팝 좀 듣거든. 한글, 읽지는 못하는데 이게 한국어구나~ 하는 건 알지. ···어? 여기 이거.”
표지 한 구석, 작게 영어로 쓰인 Egon K라는 글자를 본 미아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거 설마, 에곤 K 소설의 한국어 번역본이야?”
“아, 어.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
“와 대박.”
미아가 두 눈을 깜박이더니 신기하다는 눈으로 나를 돌아본다.
“유진 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에곤 K 팬이었구나?
···응?
“난 니가 그렇게 좋아하는 줄 몰랐지. 제이든만 광팬인 줄 알았더니 니가 더한 것 같아.”
“음, 딱히 그런 거는 아닌데-”
“흐흐, 이따가 제이든한테도 꼭 보여줘 알았지?”
“···.”
나는 그저 쩝, 입맛을 다실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