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깡촌의 천재 작가-116화 (116/126)

< 긍정적인 여파(3) >

*

생각지도 못했던 한국 출판사의 방한 제안.

이에 관해 얘기하고자 <토끼 남작의 모험> 시리즈 저자 세  명, 거기에 클로이와 아델은 그다음 주, 네드의 집에 모였다.

“일단, 미스터 케빈이 들려준 정보를 정리해보자면.”

매년 6월 초에 개최되는 서울 국제도서전.

문체부 주최로 이뤄지는 이 대대적인 행사는 해마다 그해의  주빈국이 정해지는데.

“올해는 영미권 작가의 해라서, 영국과 미국 작가들을 대거  초청한다고 해.”

그리고 문학마을 출판사에서는 <토끼 남작> 저자들을 초청 해, 이를 대대적인 홍보의 기회로 활용하고자 한다는 것.

사실, 유진은 출간도 아직 안 한 상황에서 저자부터 초청한 다는 것이 놀랍게 느껴지긴 했지만.

도서전 직전에 책을 출간하고, 저자 방한행사의 열기를 도서 전 기간 내내 이어갈 계획이라는 에이전트의 설명을 듣고서 납 득한 참이었다.

“우와, 한국 초청!”

이야기를 처음 듣는 아델이 눈을 빛내며 흥분하는데.

네드가 유진을 돌아보았다.

“너희는 클로이까지 다 간다 했지?”

“어어, 그렇지.”

“오오 진짜? 클로이 좋겠네?”

“히히히.”

유진의 아버지 권상준은 원래부터 한국 출장이 예정돼 있었 으며.

‘가게야 뭐··· 여름휴가 일주일 다녀온다고 붙여놓고 다녀오 면 되지 않을까?’

케이트 역시 자영업을 하는 만큼 가게를 닫고 가는 데 무리 가 없었으며, 클로이는-

‘나, 한국 갔다고 친구들한테 자랑해떠 히히.’

‘벌써?’

‘웅웅! 비행기 타고 슝 날아간다고.’

‘음, 아직 가려면 좀 남았는데···.’

어린이집의 선생님과 친구들에게는 물론이고, 길 가다가 동  네 사람들을 마주칠 때마다 ‘클로이 한국 가요!’라며 자랑하곤 했다.

“그러면 네드 넌?”

아델의 물음에 네드 밀러가 씩 웃었다.

“그거야 뭐 당연한 거 아니겠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가야 지!”

“으으, 부럽다아···.”

“학교에 미리 허가도 받았거든, 크흐흐.”

일주일 동안 학교 수업을 빠지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는데.

‘허허, 그런 거라면 두 사람 모두 걱정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아, 나중에 인터뷰할 때 우리 힐크레스트 고등학교 이름만 한 번 언급을···.’

교장이 흔쾌히 허가를 내준 덕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 오늘 이 자리는 ‘토끼 남작 저자들의 한국행’을 미리  축하하는 자리나 다름 없는 셈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많이들 먹어라.”

조셉이 준비해놓은 요리를 다들 기분 좋게 먹은 뒤.

“클로이이이~~~”

“우리 아기 너무 귀여워~~”

‘클로이 바보’를 자청하는 아델과 네드가 달려들며 외친 말 에-

“네드 오빠, 나 아기 아니야, 어린이라구우. 아기랑 어린이는  달라, 아기가 크면 어린이가 되는 고야~”

클로이 권이 가슴 앞에서 팔짱을 낀 채 제 의견을 피력했다.

“선생님이 그랬어, 샹대방이 어려도 죤중해야 한다고. 나이 랑 상관없이 둉등하게···.”

“우와, 우리 클로이 그렇게 어려운 말도 알아?”

“네드 오빠가 잘못했네.”

“그, 그러게 오빠가··· 뭘 몰라서 그랬다.”

만 네 살이 되며 어휘가 비약적으로 늘어난 클로이는 요즘  언니 오빠들에게 잔소리하는 재미에 부쩍 빠진 터였다.

이처럼 클로이가 십대 오빠 언니들에게 이쁨 받고 있던 그때.

“케이트, 잠깐 얘기 좀 할까?”

제법 사이가 좋은 편인 조셉과 케이트 남매.

두 사람은 잠시 마당으로 나가 둘만의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 다.

*

“네드 엄마가··· 집에서 통학하길 바란다고?”

조셉이 여동생에게 꺼낸 고민.

그것은 언젠가 네드가 두 친구에게도 얘기한 바 있는 내용이 었다.

“그래, 네드가 가려는 사바나예술대학. 그게 애엄마가 사는  애틀랜타에 있거든.”

“···.”

제 오빠의 말을 묵묵히 경청하고 있으려니, 꽤 오래전에 보 았던 오빠 부부의 모습이 떠오른다.

‘···처음만 해도 그렇게나 행복해 보였는데.’

서로에 대한 확신을 갖고 결혼한 이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  이혼에 이르게 되는 것일까.

세상에 이혼하는 부부가 수없이 많다지만, 그중 쉬운 이혼은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케이트는 생각했다.

제법 단란했던 오빠네 부부의 일상이 어느샌가 지옥처럼 변 해버리고, 그 사이에서-

‘네드.’

부부 본인들은 물론이고, 어린 조카야말로 매순간 상처 받은  장본인임을 그녀는 모르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아마도 그녀의 오빠 조셉은-

‘네드가, 엄마와 함께 지내며 그때의 기억을 떠올릴까 봐 불 안한 거겠지.’

잠시 머뭇거리던 조셉의 말이 이어졌다.

“···케이트 너도 잘 알겠지만, 네드는, 음, 오히려 우리가 이혼 하고 나서 안정을 찾았잖냐.”

그의 아내는 방학마다 네드와 함께 시간을 보내왔고 말이다.

덕분에 네드는 제 엄마와도 며칠에 한 번씩은 꼭 통화하며  살가운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조셉.”

“···.”

“오빠가 걱정하는 게 뭔지는 알지만, 네드라면 괜찮을 거야.”

케이트는 입가에 미소를 띤 채 확신을 담아 말했다.

“아주 잠깐은 그때 기억을 떠올릴지도 모르겠지만, 네드도  이제 곧 대학생이잖아?”

“그래, 니 말이 맞아. 나도 은근 과보호인가 보다.”

후우, 웃으며 조셉이 벤치에 앉자 케이트 또한 그 옆에 앉았 다.

“아직도 어린애로만 생각하고 있나 봐.”

“···.”

“네드 그 녀석, 이제 보니까 학비를 어떻게 마련할지까지 미 리 다 그림을 그려놓고 있었더라고···.”

집안 사정을 걱정해 이것저것 방법을 알아보던 네드에게 < 토끼 남작>은 커다란 행운이나 마찬가지였다는 것.

“그래서 유진 녀석에게 참 고마운 거 있지. ···경제적인 것도  그렇지만, 네드가 요즘 자신감이 부쩍 생긴 것 같아서.”

전에도 늘 열심히는 했지만 이따금 불안해할 때가 있었는데.

<토끼 남작>이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을 보며 자 신의 재능에 자신감을 갖게 된 것 같다고.

한참을 그저 듣고만 있던 케이트가 입을 열었다.

“나도 요즘은 늘 그애에게 감사해하는걸. 솔직히 말하면··· 조 셉, 오빠는 알잖아? 내가 이 결혼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 을 했는지.”

“그럼, 잘 알지.”

픽 웃는 조셉.

그는 케이트의 결혼을 반대하지 않은, 몇 안 되는 주변인 중  하나이기도 했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불쑥 불쑥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 내가   바보 같은 선택을 한 게 아닐까? 이렇게 노력한다고··· 정말로 아이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그때만 해도 유진이 그녀에게 냉랭하다 못해 이따금 무례하 게 굴었던 시기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이 선택을 하길 참 잘했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

“유진과 이렇게 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된 것도, 우리 집 분위 기가 이렇게 화목해진 것도.”

이 현실이 때로는 너무 놀라워서 믿기지가 않는다, 라고 덧 붙인 그녀가 제 오빠를 돌아보며 생긋 미소 지었다.

“나를 지지해준 오빠한테도 고맙고.”

“너야 뭐, 언제나 잘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케이트 넌 항상  그랬잖아? 남들 눈에는 조금 어리석게 보이는 선택일지 몰라 도.”

조금 민망한지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잇는 조셉.

“시간이 지나면 늘, 네 결정이 옳았다는 걸 증명했지.”

“···그랬나?”

“그랬지.”

푸흐, 사이 좋은 남매가 실없이 웃음을 지었다.

*

‘얘기가 길어지시나 보네.’

두 분이 잠시 마당에 나가 있는 사이, 우리는 클로이를 가운 데에 둔 채로 이야기를 나눴다.

“아델, 너 우리한테 얘기해야 할 거 있지 않아?”

내 말에 아델이 일순 당황하더니.

“어? 나? 아아.”

씩 웃으며 V자를 그려 보였다.

“나, <베니송> 정식으로 저작권 계약 맺었다아—!”

“크으으 여윽시!”

“진심 축하한다.”

“아델 언니이~~ 대다네에~~”

클로이는 무슨 얘기인지도 모르면서 손뼉을 짝짝 치며 신나 하는 가운데.

아델은 그간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러니까, 너의 담당 음반 에이전트가 원더테일 쪽과 논의 했단 말이지?”

나와 네드는 미스터 케빈을 통해 대충은 전해 들었지만, 구 체적인 사정은 몰랐던 터다.

“으응. 솔직히 난 안 될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원더테일은 아델의 <토끼 남작 베니송>이 사운드클 라우드에서 인기를 끈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이 노래를 쓴 아델이 우리와 친구 사이라는 것을 알고는 더 더욱 긍정적인 태도가 되었다고.

그리하여 아델이 쓴 이 <베니송>은, 앞으로 <토끼 남작> 시  리즈의 신간을 홍보할 때마다 다양한 형태로 쓰이게 될 것이란 것.

“···그러니까, 다 너희들 덕분이라고!”

“우리 덕분은 무슨.”

“흐흐, 우리 덕분이지··· 응? 야 유진, 니가 그렇게 나오면 내 가 뭐가 되냐-”

“푸흐흐.”

우리는 그 후로도 한참 신이 나 얘기했고.

아델이 재즈 버전으로 편곡한 <베니송>을 들려주자 거기에  맞춰 클로이가 덩실덩실 춤을 추는 가운데.

‘그건 그렇고, 어제 아버지가··· 그런 말을 하셨지.’

나는 어제 저녁 아버지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유진아, 한국에 가서 말인데. 혹시 외할아버지 한 번 만나고  올 생각이 없냐.’

‘외할아버지요?’

그 말에 나는 꽤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외할아버지와 마지막으로 본 게 너무도 오 래전이었기 때문.

나는 양가 조부모님들과는 그다지 인연이 깊지 않다.

아버지 쪽은 젊을 적에 양가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까닭에  한 번도 뵌 적이 없고, 어머니 쪽은 -외조모님이 일찍 돌아가시 고- 외할아버지 혼자서 어머니를 키우셨다고 들었는데.

‘재혼? 그것도 외국인과 재혼한단 말이냐? ···하.’

원래도 아버지와 외할아버지 사이는 딱히 살가운 편이 아니 었지만, 아버지가 새어머니와 재혼한 시점부터 급격하게 안 좋 아졌던 것이 기억난다.

두 분 다 서로 굽히고 들어가는 성격들이 아니기도 했고.

‘유진이를 미국에 데려가겠다고? 우리 손자를 누구 맘대로  데려가!’

거기에 우리 가족의 미국행이 결정된 후, 제일 강력하게 반 대했던 것이 바로 외할아버지였다.

외할아버지는 당신이 한국에서 나를 데리고 사시겠다고 주 장했지만.

‘유진이를 왜 아버님이 데리고 사십니까? 유진이는 제 자식 이에요, 저와 현희의 자식.’

아버지의 극렬한 거부.

거기에 나 또한, 외할아버지와는 데면데면한 사이였던 만큼  그에 따를 생각이 딱히 없었다.

여하튼.

그런 상황을 모두 아는 만큼, 나는 제일 먼저 이런 질문을 던 졌더랬다.

‘외할아버지한테··· 아버지가 먼저 연락하셨어요?’

그 말에 아버지는 한순간 머뭇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 다.

‘그래, 너무 오랜만에 연락을 드렸지.’

‘···.’

‘연락하면 성부터 내실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담담하게 받으 시더라.’

그리고는 외손주인 나의 안부를 제일 궁금해하셨다고.

‘유진이 너만 괜찮다면, 잠시 외가댁에 들렀다 와도 좋을 것  같은데. ···부담스럽다면 안 그래도 되고 말이다.’

‘아니, 좋아요. 언제 한 번 뵈어야지 생각했어서.’

안 그래도 내심 외할아버지의 안부가 마음에 걸리긴 했다.

회귀 이전, 돌아가시기 직전에 딱 한 번 본 것이 마지막이었 으니까.

그때도 딱히 깊은 감정이 있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유진이 이 녀석, 왜 이제야 왔누.’

외할아버지의 그 회한 가득한 얼굴이 이따금 떠오르기도 했 고.

‘이 할애비가, 너 오면··· 현희의 책들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우리 어머니 김현희가 가장 아끼는 책들을 보관해놨다는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이다.

‘근데 어떻게 먼저 연락할 생각을 하셨어요, 아버지.’

대답을 기대하지 않으며 불쑥 던진 질문에 아버지는 의외로  이런 대답을 내놓았다.

‘너도 그랬잖냐.’

‘네?’

‘···유진이 너도, 아빠에게 먼저 다가와줬잖냐.’

‘···.’

그 말을 하는 아버지는 매우 멋쩍어 보였다.

‘스무 살이 안 된 내 아이도 이렇게 속이 깊은데, 나는··· 아직 도 옛날 감정을 붙들고 속 좁게 굴었구나, 그 생각이 번쩍 들더 구나.’

드물게 내보이는 아버지의 진심에 한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좀 더 진작에, 자주 연락드렸어야 했는데. 더 후회하기 전에  전화드려야겠다 싶었지.’

겸사 겸사 내 자랑도 실컷 늘어놓았다고 웃으며 덧붙이는 아 버지.

‘할아버님이 아주 좋아하시더구나, 하하.’

‘그러셨어요?’

늘 엄격하고 조금은 무섭기도 했던 그 외할아버지가 좋아하 는 모습이 잘 상상이 안 되긴 하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만나뵈면 반갑겠네.”

그렇게 중얼거리던 그때.

조셉 아저씨와 새어머니가 뒷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오, 고모! 우리 전부 다 한국 가는 거 맞지?”

“한국! 나 한국 가요~!”

신이 난 네드와 클로이를 보더니 활짝 웃는 케이트.

“그럼 당연하지. 근데 얘들아, 나는 저자 간담회라든가 이런  자리에서 좀 빼주면 안 될까?”

한국 출판사에서 요청해온 것들.

그중에는 사인회 말고도 기자 간담회, 비즈니스 미팅 등 이 런 저런 공식 일정이 있었는데.

“왜요, 당연히 같이 하셔야죠.”

“그럼 그럼.”

우리의 말에 고개를 젓는 케이트.

“그치만 난 이런 거 정말 질색이란 말이야.”

무대공포증이 있다며 마이크를 잡는 일은 꼭 피하고 싶은 것 은 물론-

“그리고 클로이도 있잖니.”

음, 그건 확실히 그렇긴 하다.

그런 복잡한 행사장에서 어린 아이들은 길을 잃기 십상.

케이트는 사진을 찍는다든가 하는 자리에만 함께하고, 가급 적 동생을 데리고 있겠다는 뜻을 확실히 했다.

“물론 버터컵 경 인형탈을 쓰고 사인해주는 일은 포기할 수  없지만.”

그녀가 덧붙인 말에 나와 네드가 킥킥 웃었고.

“근데 유진, 나도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건 자신 없는데···.”

“네드 넌 연습해야지.”

“연습이라니?”

날 돌아보는 네드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위대한 코믹스 작가들은 원래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거에 익 숙해져야 하거든.”

지금이야 네드가 저렇게 말하지만.

미래의 네드는 코믹콘을 비롯한 온갖 행사에서 근사한 달변 을 선보이는 코믹스 작가가 되니 말이다.

“···그렇다면 음, 노력해봐야 하나.”

“그렇지.”

그렇게 대강의 결론을 내리던 그때.

지잉- 하고 시드니 담당자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리암홀트편집부_시드니 : 에곤 작가님, 좋은 저녁입니다. 다 름이 아니고···]

그것은 <캐슬>의 사전 예약 판매 일정이 2주 뒤로 확정되었 으며.

“···!”

이어진 그녀의 메시지에 눈을 크게 떴다.

[리암홀트편집부_시드니 : <뉴욕타임스 북리뷰>에 <캐슬> 의 전면광고  집행이 결정되었습니다!]

<뉴욕타임스 북리뷰>.

미국 출판시장에서 ‘베스트셀러’가 만들어지는 데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매체인 이곳에-

‘<캐슬>의 전면광고가 실린다고?’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반가운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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