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깡촌의 천재 작가-118화 (118/126)

< 기대감(2) >

*

4월 13일, <캐슬>이 미국 전역의 서점에 정식 출간되는 날.

“···.”

나는 안정감 있게 생긴, 두툼한 하드커버판 <캐슬>을 요리 조리 돌려보았다.

[CASTLE]

EGON K NOVEL

제목과 저자명, 출판사 로고만이 전부인 가운데.

책을 움직일 때마다 빛을 반사해, 그때마다 색이 조금씩 바 뀌는 홀로그램 느낌의 고성이 표지 전체를 꽉 채운다.

‘···벌써 출간이라니.’

시드니 담당자에게서 오디오북 진행상황을 들은 것이 엊그  제 같은데, 내 손에 완성본 책이 쥐여진 것이 좀처럼 실감이 안 난다.

그러나 사실, 이 책이 -라이터스홈을 거쳐서- 도착한 것은 사 흘 전 저녁.

이미 네드와 아델이 한 차례 소란을 떨고 간 이후이기도 했 다.

“···.”

인쇄본을 볼 때마다 가슴이 제멋대로 두근거렸지만 그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티저!’

명성우 롤랜드 블랙우드의 내레이션으로 녹음된, 리암홀트  사에서 제작한 <캐슬> 티저였다.

홀로그램 재질의 거대한 성처럼 생긴, 썸네일부터가 심상치  않은 티저를 재생시키면.

-성은 살아 있었다.

힘 있는 중저음의 목소리 너머로 위압적인 BGM이 깔리는  가운데.

옛날 이야기에 나올 법한 고성이 나타난다.

마치, 그림자극에 나올 법한 형태라고 할까.

-그 성이, 라이언이 아는 세상의 전부였다···.

그리고 그 성 안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소년의 그림자-

즉 라이언 또한 등장한다.

부지런히 일을 하거나, 구석에 숨어 빵을 갉아먹거나, 다른  주민들이 던진 돌에 맞거나···

그러다 비밀도서관을 발견해 책을 읽는 모습 따위가, 그림자 극의 한 장면 장면처럼 이어지다가.

-그러나 마침내 이 성을 탈출했을 때, 라이언은 ‘진짜 세상’ 을 발견했다.

음산한 고성을 뛰쳐나온 소년.

이내 그 칙칙한 성은 -책 표지의- 눈부시게 빛나는 홀로그램  재질의 성으로 바뀌어버린다.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끔찍하고 충격적인 진실도.

롤랜드 블랙우드의 목소리는 그렇게 끝나고, 이내 나타나는  카피.

[새로운 세상에서 라이언은 어떤 선택을 할까?]

[4월 13일, 미국 전역 서점에서 <캐슬>의 라이언을 만나보 세요]

몇 개 안 되는 이미지에 배우 롤랜드의 목소리를 입혀놓은  것이 전부였지만.

오히려 너무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보단 이런 식으로 독자 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기도 하고.

‘게다가, 스포를 최소화하기 위해 아주 고심했다는 게 느껴 지는걸.’

이미 몇 번이나 돌려본 티저를 돌려보며 나는 또 한 번 감탄 하고 말았다.

“···기대가 되네.”

게다가 바로 어제, 미스터 케빈의 요청으로 인스타그램에 간 만에 새로운 게시물을 작성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엄청나게 뜨거워 깜짝 놀라기도 했고 말이 다.

‘시드니 담당자 말로는, 이미 아마존 에디터픽 프로모션이  결정된 상태라고 했지.’

앞서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이 기대 이상의 인기를 자랑 했던 만큼.

이번 작품은 아마존 MD들이 먼저 나서서 전폭적으로 홍보 하겠다고 나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조금 긴장된다면-

‘이번이 세 번째 작품이니까.’

작가에게 세 번째 작품이란 하나의 시험대나 마찬가지다.

데뷔작은 말 그대로 ‘첫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여러 부족 한 점을 눈 감아주며.

두 번째 작품은 여전히 ‘신인’의 기준으로 평가해준다.

‘하지만 세 번째 작품부터는, 본격적이고도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기 마련이지.’

후우, 호흡을 고르며 마음을 안정시키던 그때.

지잉- 핸드폰이 울리며 시드니 담당자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벌써 기사가 잔뜩 나왔네.”

그녀가 보내준 것은 다름 아닌 <캐슬>의 기사 링크들.

아마도 출판사에서 보내준 사전 제작본을 읽어보고 썼을 것 이 분명한 리뷰들이었는데.

그중 맨 위에 자리한 것을 눌러보자-

“아, 댄 에이브러햄.”

<뉴욕타임스>에 실린 평론가 댄 에이브러햄의 리뷰 기사가  나왔다.

SF 전문 평론가로 유명하며, 앞서 나의 두 작품을 굉장히 호 의적으로 평가했던 인물.

[<캐슬>은 당신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다]

강렬한 제목으로 시작되는 기사는 예상했던 대로 호의적인,  아니-

‘극찬에 가까운 리뷰인걸.’

덕분에 지금까지의 긴장감이 눈 녹듯 사라지는 가운데.

마침내 마지막 문단에 이르자.

[···(전략)···표면적으로 이 소설은 거대한 성을 탈출해 ‘새로운  나’로 되어 세상을 바꿔나가는 어느 소년의 일대기다.

그러나 심층으로 들어가면, 지금 이 순간 당신을 구성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무엇이 ‘나’를 규정짓는지를 질문하는-

장르를 넘어서는 보편성을 지닌 이야기에 가깝다고 볼 수 있 다.]

리뷰의 결론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걸렸다.

*

때마침 오늘은 문예창작클럽 활동이 있는 날.

활동을 마치고 돌아서려던 그때, 아이들이 나를 붙잡았다.

“유진, 이대로 그냥 가면 안 되지.”

“음? 안 되다니?”

“오늘 무슨 날인지 몰라?”

“···?”

내가 눈만 껌벅거리자 제이든이 한숨을 푹 내쉬며 실망이니  어쩌니 중얼거렸고.

“오늘, <캐슬>··· 나오는 날이잖아.”

답은 의외로 샬롯의 입에서 나왔다.

생각지도 못한 얘기에 잠시 벙쪄 있는데, 미아마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뭐야 유진, 실망이야. 너, 에곤 K 한국어 번역판까지 찾아 읽 을 정도로 팬 아니었어?”

자신도 아는 신작 출간일을, 팬이 돼가지고 모르는 게 말이  되냐는 것.

하아, 웃음 섞인 한숨을 내쉬는데.

“안 되겠다, 유진. 너도 같이 가자.”

“···아, 어 그래.”

“참고로 난 이미 있음.”

크크 웃은 제이든은 자신이 사전예약구매를 했으며, 어젯밤 에 받자마자-

“밤 새서 다 읽었지.”

“그 긴 걸?”

“어어. 여기 다크서클 보이지? 거의 못 자고 와서 그럼.”

“···.”

그 열정이 뭔가 놀랍기도, 고맙기도 한 가운데.

나는 제이든을 비롯한 클럽 친구들 손에 붙들려 다같이 서점 으로 향하게 되었다.

“오, 너희들 왔구나!”

대형 독립서점 프레리라이트.

마크 점장님이 우리를 보자마자 반갑게 인사하더니, 자신이  직접 써넣었다는 벽면의 홍보문구를 가리켜 보인다.

[에곤 K <캐슬>!!!!!! 드디어 출가아아안—!!!!! - 점장 마크]

그때보다 글씨체가 좀 더 가지런해진 느낌인걸- 생각하는데.

“음, 점장님. 뭔가··· 설명이 너무 부족한 거 아니에요?”

농담 삼아 꺼낸 말에 마크 아저씨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설명이 뭐가 필요하겠냐.”

“네?”

“그야 뭐, 에곤 K잖아?”

“그래 그래. 다들 이미 알고 있을 텐데 뭐.”

내 질문에 답한 것은 로완과 제이든.

그 말이 맞다는 듯, 점장 마크 또한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솔직히 난, <피터 팬> 이상이 나올 수 있을까 싶었거든? 근 데···.”

마크 아저씨가 상기된 얼굴로 크으- 소리를 냈다.

“말도 마, 진짜 미쳤다 그냥.”

“으으으, 저도 스포당하기 전에 얼른 읽어야겠어요.”

“로완, 그거 알아? 중간에 반전이-”

“아 시끄러.”

로완이 기겁하자 제이든이 낄낄거리는 가운데, 마크 점장의  말이 이어진다.

“근데 말이다, 전엔 이 에곤 K가 광기로 가득한 작가라고 생 각했는데. 이젠 아니라는 걸 알았어.”

···그러고 보니 그때 그랬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데, 제이든이 낄낄 웃으며 되묻는다.

“흐흐, 정말요?”

“어어, 광기가 아니라··· 뭐라고 해야 하지? 그래, 인생의 지 혜!”

“···.”

인생의 지혜, 라는 표현에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아 물론, 너무 좋은 평가이긴 한데···.’

그러자 그 말에 로완과 제이든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아, 그 부분은 저도 동감요.”

로완의 말을 마크 점장이 반갑게 받았다.

“그치? 오랜 시간을 살며 지혜에 통달한, 원숙함과 현명함이  묻어나는 작가는 참 오랜만이라니까.”

“인생 경험이 글에서 묻어난다고 해야 할까···.”

그 두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하던 그때, 제이든이 아! 하며  외쳤다.

“그, 에곤 작가님, 약간 느낌이 요다 같지 않아요? 세계관 최 강자에 혜안을 갖춘.”

“오, 요다! 오 진짜 좀 그런 느낌이네? 그 뭐냐, 에피1에서 아 나킨한테-”

“요다가 스타워즈의··· 그 초록색 외계인인가?”

로완이 멍하니 중얼거린 말에 제이든과 마크 점장의 눈이 튀 어나올 듯 커졌다.

“초록색 외계인? 어떻게 그런 말을···.”

“로완, 너 문학을 한다는 친구가 요다를 모르면 어떡하냐.”

둘의 타박에 로완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니, 모른다는 게 아니고요···.”

“푸흐.”

“크크, 진짜 뭐야.”

그 셋을 지켜보던 샬롯과 미아가 웃음을 터뜨리는 가운데.

‘요다라니···.’

나는 입술을 꾹 깨문 채, 이 얘기가 네드의 귀에는 절대 들어 가지 않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

4월 13일.

<캐슬>의 출간에 흥분한 것은, 당연하지만 유진 본인과 그  주변인들뿐이 아니었다.

-엄마, 주문한 거 왔어? 왔지? 지금쯤이면 도착했어야 하는 데-

“어우, 왔어 왔다고! 몇 번이나 물어보니 진짜.”

마거릿 도노반.

그녀는 연극 때문에 내내 브로드웨이 근처 아 파트에서 지내고 있는 딸을 대신해, 딸 젬마가 사전 주문해놓 은 책 <캐슬>을 받아놓은 참이었다.

표지가 제법 근사하네- 라고 중얼거리던 그녀가 상자 안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똑같은 책을 왜 두 권이나 주문했니?”

-···음, 엄마 선물이야.

“내 선물?”

-심심할 때 읽어보라고. ···요즘 시간 남아돈다며.

“···.”

예전만 해도 둘의 사이는 이 정도로 살갑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전, 연극을 시작한 후로 마거릿은 제 딸의 태도 가 많이 달라졌음을 실감하고 있었다.

“으음, 이거 판타지··· 라고 했지?”

-응. 근데 판타지 안 보던 사람이 읽기에도 무리없이 재밌을  거야. 그리고···.

그 작품을 쓴 작가 에곤 K가, 엄마처럼 건강에 아주 관심이  많으며.

인터뷰 기사에서 늘 그 점을 강조한다고 덧붙이는 것이 아닌 가.

-책 읽을 때 최소 30분에 한 번씩 꼭 스트레칭하라고 독자들 한테 신신당부하더라고.

“어머, 그분 참 마음에 드네.”

-···생각해보니 전의 그 유진 학생도 그러긴 했지만.

젬마 도노반이 나름의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마거릿 도노반은 -딸이 간만에 선물해준- 책 <캐슬>의 표지 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어디 한 번 읽어볼까.’

그리고 그 시각.

에곤 K의 또 다른 팬이자 유명인들 또한 <캐슬> 초판본을  마주하고서 들떠 있었다.

“과연, 이번에는 어떤 내용일까.”

사전예약판매가 시작된 첫날에 주문한 것은 물론, 오전부터   에곤 K에게 장문의 축하 메시지를 보낸 마커스 스톤을 비롯해.

“으으으 드디어—! 오늘은 <캐슬>만 읽어야지, 흐흐.”

정식 출간되기도 한참 전부터 온갖 관련 게시물을 샅샅이 뒤 진, 그야말로 찐덕후다운 포스를 뽐내던 막성스 라미 감독.

에곤 K의 앞서 두 작품을 담당했던 빅토리아 첸 팀장, 해리 슨 편집장, 마크 담당자는 물론이고.

“다들 읽어봤어? <캐슬>에 그런 반전이 있을 줄은-”

“거기까지, 마크!”

“스포하지 말라고.”

SFF프레스의 수많은 직원들.

그리고···.

“으하하, 표지가 아주 근사하구만.”

“누가 먼저 다 읽나 내기할까요, 작가님?”

“그것도 괜찮지만.”

비서 팀과 마주 앉은 채, 하드커버판 <캐슬>을 내려다보던  랜든 비숍이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누가 반전 내용을 맞히는지 내기하는 게 더 재밌겠는데.”

“그거 좋죠.”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씩 웃었다.

*

바로 그 시각.

뉴욕에 위치한 리암홀트 빌딩의 분위기는 여러모로 독특했 다.

메인타이틀인 <캐슬>의 사전예약 주문이 물 밀듯 밀려들어 온 덕분에 지난주부터 들떠 있는 상황이었지만-

‘시드니는 물론이고, 다들 잔뜩 긴장해 있네.’

닉은 문학1팀 사무실 안을 둘러보며 생각에 잠겼다.

묘한 에너지로 가득한, 바짝 긴장된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이는 리암홀트에서 그만큼 이 <캐슬>의 흥행에 많은 기대 를 걸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엄청나게 투자하기도 했으니까.’

<뉴욕타임스> 전면 광고를 비롯, 전국 각지의 수많은 온오 프라인 매체에 파격적인 광고를 진행했으며.

티저는 물론, 각양각색의 통로를 활용한 홍보에-

‘명성우 롤랜드 블랙우드를 섭외해 오디오북까지 제작했지.’

그런 만큼, 이 <캐슬>이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진입하는 것 은 기정사실이고.

문제는 여기서 어디까지 올라가느냐- 라고 할 수 있었다.

‘조금 있으면 아마존 베스트셀러 리스트가 업데이트되는 시 점.’

그래서 담당인 시드니 캘러한은 물론이고, 모두가 마른침을  삼키며 대기 중인 상황이었다.

날것의 원고를 교정하고, 마케팅 계획을 진행시키고, 서점  홍보, 예산 확보, 사전 리뷰 진행까지-

그간 몇 달간 시드니와 팀원들이 들인 노력이, <캐슬>을 베  스트셀러 리스트 최상위권에 올릴 정도로 충분했는지를 알게 되는 순간인 셈.

“시드니, 괜찮아? 얼굴이 파랗게 질렸는데.”

닉의 말에 시드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파랗게, 질렸다고?”

“거울 좀 보든가.”

“···진짜 그렇네.”

스마트폰 화면에 반사된 얼굴을 본 시드니가 후, 한숨을 내 쉬자 닉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자신 있는 거 아니었어? 지금 반응도 완전 좋던데.”

에곤 K의 신작 <캐슬>.

이미 북인플루언서들 사이에서는 호의적이다 못해 뜨거운  반응이 나오고 있으며.

유명 평론가 댄 에이브러햄을 필두로 여러 언론에서도 극찬 에 가까운 리뷰가 쏟아지는 상황.

“그거야 나도 알지. 근데···.”

그럼에도 여전히 긴장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는 그녀의 말.

닉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워낙 중요한 타이틀을 맡았으니.’

출간 성적이야 당연히 좋겠지만, 그것이 회사에서 요구하는  기대치 이상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는 법이니 말이다.

그리고 바로 그때.

오늘 이 순간을 위해 준비해둔 사무실 벽면 위의 스크린에  불이 들어왔다.

“···아마존 베스트셀러 리스트 업데이트됐습니다!”

담당 직원의 말에 시드니와 닉을 포함, 문학1팀 직원 전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시드니의 심장이 터질 듯이 빨리 뛰는 가운데, 스크린 위로  아마존 리스트가 나타났고-

“SF&판타지 부문 1위, 킨들스토어 1위, 그리고···.”

직원의 말이 끝나기도 앞서, 시드니는 제 눈을 의심하고 말 았다.

“전체 5위라고요? 출간 첫날인데?”

첫 작품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가 전체 100위권, 두 번째   작품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이 50위권으로 출발했던 것에 비하면-

“맙소사···.”

흡사 광풍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스타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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