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세계로의 여행(1) >
*
이처럼 에곤 K의 <캐슬>이 또 한 번 대대적인 열풍을 일으 키려는 바로 이 시점.
“으으, 너무 재밌어···.”
유명 북리뷰어 에밀리 던칸은 갓 도착한 <캐슬>을 읽으며 감격에 사로잡혀 있었다.
도서리뷰전문 플랫폼 굿리즈의 여왕이라는 별명으로도 유명 한 그녀는 개인적으로 에곤 K의 팬이기도 했는데.
‘피터팬도, 호수괴물도 재미있었지만.’
500페이지가 넘어가는 초장편이어서일까. 확실히 서사의 스 케일과 디테일이 다르다.
거기에 자신이 원래도 좋아하는 판타지 장르인 만큼, 첫 페 이지부터 홀린 듯이 빠져들어 읽던 와중.
[···난생 처음 마주한 바깥 세상은 기이함 그 자체였다.
유리와 금속으로 만든 첨탑은 구름을 뚫고 솟아올랐고, 빛나 는 강철덩어리들이 질주하는 말보다 빠르게 달린다···]
언젠가 리암홀트의 편집장 또한 강렬한 충격을 받았던 바로 그 부분에서-
‘사실은··· 미래, 그것도 스페이스오페라 세계관이라고?’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유명한 북인플루언서 에밀리 던칸 또 한,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말도 안 돼···.”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중얼거리는 와중에도.
한편으로는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며 앞서 등장했던 소설 속 떡밥들을 정리한다.
‘그래, 생각해보면 초반부터 의아한 부분이 꽤 많았어.’
성 바깥에 괴물이 살지만 그것을 실제로 목격한 이는 아무도 없다든가.
주민들이 캐낸 이상한 돌과 정신을 잃는 풀을 실어가는 강철 새라든가.
그런 것들은 결국, 이 전근대적인 ‘캐슬’을 화려한 과학문명 의 세계로부터 고립시키기 위한 장치였던 셈.
“후아, 미쳤네 진짜.”
물론, 에곤 K의 작품에서 반전이 등장하는 것은 그다지 놀랍 지 않다.
첫 작품과 두 번째 작품 모두 충격적인 반전이 등장했고, 그 것이 워낙 전체적인 독해에 큰 인상을 주는 만큼-
‘일각에서는 반전 전문 작가냐며 비꼬기도 했지.’
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이런 서술 트릭은 즐거운 선물이나 다름없다.
특히나 이렇게 초장편의 서사에서는 단서 하나 하나 신경쓰 며 읽게 되는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하니까.
어느샌가 입꼬리가 잔뜩 올라간 채로 에밀리 던칸은 그다음 내용을 읽어내려 갔다.
···캐슬에서 탈출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라이언.
소년은 그 경이로운 광경에 압도되는 것도 잠시, 탈수증상에 시달리는 채로 거리를 헤매다 기절해버리는데-
[“여기는 대체···.”
부드럽기 그지없는 깃털 침대에서 깨어난 라이언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사치품이 가득한, 척 보기에도 화려한 침실.
저 한쪽 벽에 걸려 있는 초상화 속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란 순간.
“어때, 네 얼굴과 똑같지 않아?”
문을 열고 등장한 누군가의 모습에 소년은 눈을 크게 떴다···]
소년이 깨어난 곳은 어느 ‘귀족’의 거대한 고급 저택.
그리고 라이언은 자신이 이곳에서 깨어난 이유 또한 알게 된 다.
[“그러니까, 제가 가문의 후계자··· 젊은 ‘백작’인 척하면 된다 는 얘기이시죠?”
가문을 보필하는 가신 중 한 명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클라이 브가 시원하게 웃었다.
“말귀를 잘 알아들어서 좋군.”
이는 모종의 난치병을 앓고 있는 가문 후계자의 공석을 대신 하기 위한 것.
그리고 이 난치병은 이른바 귀족들은 절대로 걸리지 않는, 하등한 유전인자를 가진 이들만이 걸린다고 알려진 병이었다···]
언젠가 ‘캐슬’의 비밀 도서관에 가는 길에 본 적 있는, 그곳 영주의 초상화.
그 안의 얼굴과 자신이 닮았다는 생각은 종종 한 적 있긴 하 지만, 설마 그 대역을 하게 될 줄이야.
···그리고 이건 자신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기회나 다름없다 고 소년은 확신한다.
동시에 이 세계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 또한 알게 되었다.
[이 세계의 인간은 몇 가지 계급으로 나뉘어 있다.
정재계를 좌지우지하며 최상층에서 군림하는, 이른바 ‘귀족’ 이라 불리는 지배 계급.
국가의 기본 소득에 의지하며 노동하지 않는, 이른바 ‘시민’ 계급.
그리고 최하층이 바로 ‘노예’라고 불리는-
‘캐슬의 주민들.’
즉, 인체에 유해하거나 기계로 대체하기 어려운 육체노동을 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
그리고 이들이 모여 지내는 ‘캐슬’은 이 최하층의 ‘인간 육체 노동자’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라는 것.]
제국 직할령의 캐슬 외에도, 각 가문에서 보유한 캐슬들이 수없이 많다고 했다.
라이언이 도망쳐나온 그 캐슬 또한 이 저택의 소유주이자 가 신 클라이브가 섬기는 가문에 속한 것이라고.
그 같은 설명에 소년은 주민들에게 단 한 번도 모습을 내보 인 적 없는 ‘영주님’의 존재를 떠올린다.
[“그렇군요···.”
라이언의 입에서 나온 것은 그 한마디뿐이었지만.
머릿속은 자신이 나고 자란 ‘캐슬’에 대한 기억으로 세차게 요동쳤다.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어둠에 휩싸여 있던 고성.
오래된 태피스트리와 비밀문, 숨겨진 패널과 통로, 비밀 도 서관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이 잊혀진 과거의 유물 같던 그곳이-
‘거짓과 환상으로 만들어낸··· 노예 사육장이었단 말이지.’]
놀랍다 못해 충격적인 진실 앞.
라이언은 제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는 지독한 배신감에 사로 잡힌다.
[···모든 것이 신의 뜻이고 이곳 주민들의 비루한 삶 또한 숭 고한 소명이라던 파이톤 사제의 말이 그의 머릿속을 울리는 가 운데.
라이언은 풀을 채취하다가 죽어버린 조슈아를 떠올렸다.
자신을 볼 때마다 끔찍한 저주를 퍼붓던, 그러다 어느 아침 채석장에서 얼굴이 보라색이 된 채로 발견된 이웃집 여인을.
자신에게 남들 몰래 본인 몫의 빵을 쪼개어 나눠주곤 했던 아랫집 아이 또한.
다들 지독할 정도로 우매하고 어리석었지만···.
“라이언, 너라면 충분히 할 수 있다.”
“···.”
“물론 지금의 너는 백지와 다름없겠지. 하지만 무릇 백지야 말로 최상의 그림을 그리기에 가장 적합한 종이가 아니더냐?”
소년의 머릿속이 복잡한 가운데, 중년의 가신 클라이브가 설 득을 이어나갔다.
“너라면 충분히 젊은 백작의 대역을 해낼 수 있을 거다. 그리 길게는 필요없어, 단 3년이면 충분하다.”
라이언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 중년 사내의 말대로 필사적인 노력을 요한다고는 하나, 각종 지식과 문화, 예술, 교양을 섭렵하여 귀족 행세를 할 수 있는 거라면···.
노예와 귀족, 시민이 다른 점이 무엇인가.
그토록 쉽게, 아주 단순한 속임수만으로 ‘백작’의 대역을 할 수 있다면-
그들은 어째서 그 말 같지도 않은, 빌어먹을 소명을 위해 거 기 갇힌 채로 혹사당해야 하는 것인가.
‘소명? 웃기지도 말라고 해.’
수많은 의문이, 분노가, 증오심이 라이언의 심장을 뜨겁게 타오르게 했지만.
“좋아요.”
소년은, 아니 이제는 청년에 가까워진 라이언이 무표정한 얼 굴로 말했다.
“알려주시면, 그대로 할게요.”
“···잘 생각했다.”
3년의 기간이 지나면 아마 저자는 자신을 제거하려 들겠지 만, 그 전에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고 다짐하며.
라이언이 자신 있는 것.
그것은 순종하는 척, 순한 양이 되어 상대방에게 무조건적으 로 복종하듯 행세하는 것이었다···]
점점 흥미를 더해가는 전개에 에밀리 던칸은 저도 모르게 흐 으, 소리를 냈다.
에곤 K야 전작과 전전작에서도 반전을 즐겨 쓴 만큼, 이번 작품에서도 그런 장치가 있으리라고 예상하긴 했지만.
‘이번은 세계관이 압도적으로 커지는걸.’
그에 따른 독서의 쾌감 또한 비례하듯 커진다고 생각하던 그 때.
“잠깐만, 그러면···.”
여태 장르를 불문하고 수많은 소설을 섭렵해온 헤비 독자답 게.
뭔가를 깨달은 그녀가 정신 없이 페이지를 넘겨 앞부분으로 되돌아갔다.
[···조슈아네는 바로 지난달에 ‘신입 주민’, 그러니까 아이를 인도받은 참이었다.
주민 모두가 모여 새로운 아이의 도착을 축하해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렇지. 바로 이 부분이 마음에 걸렸었다. 그리고···.
팔락팔락, 그녀의 손가락이 또 한 번 더 책장을 넘긴다.
[신기하게도 이곳 주민들은, 그 돌처럼 단단한 빵 한 덩어리 만으로도 온종일 배불러하며 쉴 틈 없이 일을 하곤 했다.
아마도 그것이 라이언과 주민들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
이 부분은 캐슬 주민들과 라이언의 차이를 알려주는, 일종의 떡밥이 아닐까.
주민들의 정체는 무엇이며-
‘라이언이 젊은 백작과 닮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가 두 눈을 반짝이며 앞뒤를 오가며 살펴보던 그때.
지잉- 핸드폰이 진동하며 반가운 인물에게서 전화가 왔다.
“젬마! 공연은 잘 하고 있어?”
그 상대는 바로 유명 배우 젬마 도노반으로, 에밀리 던칸과 는 같은 중학교를 나온 친구 사이였다.
-그럼 잘하고 있지. 안 그래도 에밀리 니가 오픈런 때 와줘서 너무 좋았어···.
이런 저런 근황을 나누던 두 사람의 화제가 자연스레 <캐슬> 로 향했다.
-···에미 넌 <캐슬> 다 읽었어?
“그럼, 안 그래도 지금 읽는 중이었는데!”
취미가 비슷한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학교 다닐 때도 만나면 늘 책이나 영화, 드라마 얘기로 꽃을 피웠던 것처럼 책 이야기를 신이 나서 이어가는 가운데.
에밀리는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생각했다.
‘그때 연락하길 참 잘했어.’
그게 작년의 일이었던가.
그녀는 에곤 K의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을 읽다가 문득 충동적으로-
‘오랜만에 연락해볼까. ···잘 지내고 있는지, 몸은 건강한지.’
옛 친구 젬마 도노반을 떠올렸다.
두 사람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최고의 절친이었지만, 사회 에 나간 이후 자연스레 멀어졌으니까.
아니, 사실은 에밀리 자신이 톱스타가 된 그녀를 멀게 느꼈 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에서 피터와 웬디가 화해하 는 장면을 읽으며 한때 최고의 친구였던 그녀를 떠올렸고.
‘저기··· 젬마, 잘 지내? 혹시 나 기억하는지 모르겠는데-’
‘에밀리! 당연히 기억하지. ···너는, 잘 지냈어?’
어렵게 낸 용기가 보답받기라도 한 듯 두 사람은 다시 급격 하게 가까워졌다.
젬마 도노반이 자신의 SNS에 에곤 K를 언급할 정도로 그를 좋아하게 된 것도, 당시 <피터팬>에 푹 빠져 있던 에밀리 던칸 의 영향이기도 했다.
그때부터 우정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이어져오는 중.
물론 서로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가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점이 좋다고 해야 할까.’
각자 걷는 길을 묵묵히 응원해주는 친구.
···그것이야말로 ‘오래 가는’ 친구 사이에 어울리는 모습이 아 닐까 싶어서.
“아 잠깐 잠깐! 나 아직 거기까지 다 안 읽었다니까?”
-후후, 스포 안 할게~
예전과 마찬가지로.
책 취향도 비슷한 두 사람은 <캐슬>을 두고 한참이나 즐거 운 대화를 나눴다.
*
<캐슬>이 출간된 이후 며칠간, 나는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소식들로 정신이 없었다.
‘아무래도 첫 스타트를 전체 5위로 한 덕분인지, 전작들에 비 해 훨씬 순조로운 느낌인걸.’
하지만 스타트 성적이 좋다고 해서 안심은 금물이다.
전작들로 쌓은 이름값이 있는 만큼, 그저 ‘에곤 K’라는 이름 만 보고 선택한 독자가 있기 마련이고-
‘사전예약 기간에 구매한 독자 수도 상당하지.’
스타트 시점의 매출은 이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보면 된 다.
그렇다 보니 인기 작가의 신작이 나올 경우, 보통은 초반에 반짝 하고 높은 순위를 찍은 뒤 계속 내려가기 마련.
···꾸준히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역주행한, 지난 두 작품이 드 문 케이스였다.
그리고 진짜 싸움은-
‘독자들의 초반 평가가 나온 후에야 시작되는 법.’
영화나 드라마도 마찬가지이지만, 출판 시장 또한 독자들의 평가와 입소문이야말로 돈 한 푼 들지 않으면서도 가장 효과적 이고 가장 강력한 마케팅 수단이다.
···그 말은 곧, 아무리 전작이 화려하거나 강력한 광고를 했어 도 책 내용이 좋지 않으면 금방 거품이 꺼져버린다는 것.
그 사실을 잘 아는 만큼, 그저 신이 나 있는 주변과는 달리 나는 한 주 내내 조금 초조해져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4월 20일, 정확히 출간 후 일주일이 된 시점.
평소 늘 차분하게 연락해오던 시드니 담당자가 흥분 가득한 메시지를 보내왔다.
[리암홀트편집부_시드니 : 작가님 작가님! <캐슬>의 베스트 셀러 순위가···]
즉- <캐슬>의 출간 일주일 만에, 아마존 베스트셀러 전체 1 위를 달성했다는 것.
“···!”
나는 그대로 아마존 사이트에 접속해보았고.
‘정말···이잖아?’
[Best sellers in Books]
[#1 The Castle
★★★★★ 1253]
무려 전체 순위 1위를 기록한 것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
내 눈으로 보고도 잠시 실감이 안 났지만.
아마존 이주의 차트, 즉 4월 3주차 차트에서는-
‘제일 많이 읽은 책, 제일 많이 팔린 책 모두 1위.’
그것뿐이 아니다.
차트를 자세히 살펴보니, <캐슬>의 제목 옆에 ‘내려놓을 수 없는(unputdownable)’이라고 적힌 마크가 붙어 있다.
“···오.”
찾아보니 이건 다른 책들보다 한 번에 더 많이, 빨리 읽은 책 들에 붙는 마크라고.
‘전자책으로 읽는 경우 이런 식의 데이터도 수집이 되는 모 양이지.’
그런 것들을 하나둘 체크하며 가슴이 두근거리던 그때.
이번에는 미스터 케빈이 각종 유명인들이 <캐슬>을 자신의 SNS에 언급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에이전트_케빈 : 작가님! 이 링크들 좀 보시죠.]
···링크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책을 들고 아예 인증샷처럼 찍어 올리신 비숍 작가님이라든 가.
배우 젬마 도노반, 감독 막성스 라미, 작가 마커스 스톤 등 내가 익히 아는 인물들은 말할 것도 없었고.
‘이런 사람들까지 올렸다고?’
나와는 딱히 일면식도 없는, 온갖 유명인들의 SNS 링크가 줄 줄이 나열돼 있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이 바로-
[에이전트_케빈 : 티미 샐먼 투나잇쇼의 티미 샐먼 아시죠 작 가님?]
그를 모르는 미국인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투나잇쇼의 진행자 티미 샐먼.
무려 5천만 명이 넘는 팔로워 수를 자랑하는 그의 트위터 계 정에 이런 게시물이 올라왔다는 것이다.
[Timmy Salmon @timmysalmon . 4월20일
[에곤 K의 <캐슬>. 4시간짜리 영화, 혹은 8부로 이뤄진 드라 마를 보고 온 느낌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다른 차원으로 여행을 떠나 또 다른 세계의 삶을 엿보고 온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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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차원으로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라···.’
애독자 특유의 흥분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트윗 내용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