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세계로의 여행(3) >
*
티미 샐먼의 트윗이 거대한 광풍을 일으키기 전에도.
이미 각종 독서 커뮤니티는 에곤 K의 <캐슬>로 난리 아닌 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출간 직후부터 판타지&SF 분야 신간부문에 내내 노출된 것 은 물론, 하루에도 수없이 새로운 -대부분 호의적인- 독자 리뷰 가 달렸다.
별점이 5천 개, 리뷰 수가 2천 개를 넘어서는 가운데.
“···오, 역시 서브레딧이 제일 시끄럽구만.”
‘우리 에곤 작가님’의 신간에 늘 그렇듯 관심이 많은 SFF프레 스의 마크는 -이제는 자신의 담당이 아니었지만- <캐슬> 관련 인터넷 반응을 즐겁게 살펴보는 중이었다.
[5.1k 에곤 K 캐슬 읽은 사람]
└완독했음. 페이지 줄어드는게 너무 아깝더라
└존잼
└다 읽고 나니 아침이 됨 이것도 시간여행에 포함되냐
└ㅋㅋㅋㅋ
└눈도 못 깜박이고 읽어서 그런가 다음 날 눈이 건조하더라
└표지에 ‘5분마다 눈을 깜박이시오’ 경고문이 붙어 있어야 할 듯
└딱 에곤 K 스타일이네
└ㅋㅋㅋㅋㅋㅋ
···
그렇지.
이 감상에는 마크 또한 완전히 동감한다.
두 개의 전작들에서 보여주었던 원숙한 완급 조절, 여러 떡 밥들과 후반의 반전, 휘몰아치는 서사 속에 스며들어 있는 철 학은 고스란히 유지하면서도-
“···그 휘몰아치는 게 한층 더해진 느낌?”
원래도 판타지&SF 팬으로 유명했던 투나잇쇼의 진행자, 티 미 샐먼의 표현이 정확했다.
···마크 자신 또한 다른 차원으로 여행을 떠나 그 세계의 삶을 엿보고 온 듯한 감상이었으니까.
마크는 고개를 끄덕이는 한편, 실시간으로 이어지는 댓글들 을 더 살펴보았다.
└이번엔 사인본 이벤트 안 하나
└<피터 팬> 때밖에 안 했을걸 사인본 판매 이벤트
└에곤 K 친필사인이라니 부럽다
└산 사람들 계 탔네
└캐슬이 이 장르의 판도를 또 한 번 바꾸지 않을까
└에곤 K는 게임체인저임
└크으 반전의 대가
└반전밖에 못 쓰는 거 아님? 이젠 좀 지겨움
└ㅇㅇㅇㅇ 반전이 없으면 글을 못 써요···
└난 좋은데?
└장담하는데 내년 네뷸러, 로커스, 휴고상은 캐슬이 휩쓸지 않을까
···
종종 에곤 K의 작풍을 비난하는 어그로성 댓글을 달리긴 했 지만.
거기에 신경 쓰는 독자는 딱히 많지 않은 듯했다.
‘인기가 많아지는 만큼 안티도 생겨나기 마련이지.’
이성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에곤 K의 데뷔부터 지금 까지 곁에서 지켜봐온 담당자 입장에서는 거슬리는 것이 사실.
애써 그것을 넘긴 마크의 눈에, 조금 더 반가운 댓글들이 들 어왔다.
└난 라이언 캐릭터가 너무 좋음 성장하는 영웅 주인공
└그것도 그런데 전형적인 영웅캐가 아니라··· 이런 걸 혼돈 선(Chaotic Good) 타입이라고 하나?
└그치 약간 목표를 위해서라면 손에 피 묻히길 주저하지 않 는
···
└아 근데 결말이 진짜 미쳤지 않냐
└ㅇㅇ 소름돋더라
└처음이랑 완벽하게 쌍을 이루는 느낌
···
마크 자신 또한 그랬다.
첫 부분에서만 해도 과연 이 비루한 소년이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지 가늠이 안 되었지만-
‘어느샌가 놀라운 지적 능력에 상대를 사로잡는 언변, 사람 들을 홀리는 카리스마의 소유자로 거듭났지.’
정재계를 휘어잡은 젊은 백작, 아니 라이언은 이후 선거에서 승리해 명실상부한 제국의 황제로 선출되기에 이른다.
그런 그가, 제위에 오르자마자 제일 먼저 한 것은···.
마크는 <캐슬>의 마지막 장을 펼쳤다.
[황제의 단상에 오르자, 자신을 올려다보는 귀족과 시민들의 모습이 보인다.
첨예한 이해관계 대신, 단순하고도 맹목적인 믿음으로 자신 의 한 표를 행사한 이들을 보고 있자니 이런 의문이 들었다.
‘···저들이 과연 캐슬의 무지몽매한 주민들과 무엇이 다른가.’
라이언의 얼굴에 조소가 떠올랐다가 금세 사라졌다.
조각처럼 근사한 얼굴에 드러난 것이라고는 황제의 막중한 책임감과 제국을 향한 불타는 사명으로 가득한 젊은 영혼 그 자체.
자신을 향한 열광적인 눈빛들을 마주하며 라이언이 입을 열 었다.
“짐은 오늘부로 4년간 제국의 태양으로 군림하는 동시에, 가 장 밑바닥에서부터 제국민들을 섬기는 진정한 종이 될 것이 다···.”
그의 목소리가 드넓은 광장에 울려퍼지며 승리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이내, 젊은 황제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그리고 오늘 부로 짐은, 황제의 전권을 행사하여 ‘캐슬’을 개 방하노라.”
그 충격적인, 아니 이해조차 되지 않는 선언에 군중은 잠시 숨을 멈췄다.
“···.”
광장이 적막에 휩싸인 가운데.
시민들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소리 죽인 속삭임이 점차 커져 이내 웅성거림에 가까워질 때 즈음.
쿠구구궁— 강렬한 굉음과 함께 ‘캐슬’의 문이 움직이기 시 작했다.]
그것은 바로 라이언의 가문이 소유한 캐슬이었다.
[단 한 번도 열린 적 없는 거대한 문.
그것이 듣기 싫은 소음을 일으키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열 리는 전대미문의 광경이 시민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렇게 열린 문 너머, 희뿌연 먼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들.
캐슬의 주민들은 찬란한 태양빛 아래서 처음으로 진짜 세계 를 마주했다.
마치 10년 전의 제 모습을 보는 듯한 기분 속, 라이언의 입가 에 미소가 그려졌다.
“···열어라.”
젊은 황제가 손을 들어 자신의 추종 세력에게 신호를 보낸 바로 그 순간.
제국 전역에 자리한 수많은 캐슬들의 문이 차례대로 열리기 시작했다.
‘이제야 나의 첫 소명이 달성되었구나.’
그 순간 라이언은 실감했다.
···성이, 캐슬이 이제야 비로소 살아 있다는 것을.]
“후우.”
다시 읽어봐도 또 소름이 돋는다.
···그건 역시 이 <캐슬>의 첫 문장, ‘성은 살아 있었다’와 완 벽하게 상응하는 마지막 문장 때문일까.
이 부분을 처음 읽었을 때의 전율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가운 데, 마크는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말하긴 뭐하지만, 에곤 작가님도 작품마다 더 성장하시는 느낌이신걸.’
처음에는 한 명의 담당자.
그러나 어느 순간 한 명의 순수한 독자가 되었으며.
이제는 완벽한 팬이 되어버린 마크가, 마음속으로 진심 어린 응원을 보냈다.
*
그로부터 시간이 빠르게 지나 어느새 5월이 되었다.
그동안 유진은 어느 정도 여유 있는 시간을 보냈다면, 그의 에이전트 케빈 클레그는 도리어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는데.
그것은 케빈뿐이 아니라 <캐슬>의 관계자들, 즉 시드니 담 당자를 비롯해 리암홀트 전 직원들, 라이터스홈 에이전시 직원 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오늘 케빈 클레그는-
‘<캐슬>에 관련된 것 말고도 보고드릴 소식들이 아주 많은 걸.’
에곤 K, 아니 권유진 작가와 미팅을 앞둔 상황.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 의 영화 제작과 관련하여 확정된 사항들이었다.
‘일단 감독이 엄청난 사람이지.’
알랭 노에.
프랑스계 캐나다인 영화감독으로, 데뷔작이자 SF영화 <366 일째의 어느 오후>로 칸영화제에서 주목받으며 화려한 커리어 를 걸어온 헐리우드의 신성.
이후 <12인의 비밀>, <스텔라 애니그마> 등이 연속 대박을 내며 SF장르 전문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은 그가 <피터 팬> 영 화화를 진두 지휘하게 되었으며-
‘이 알랭 노에의 사단이자 파트너가 바로 릭 그로브라니.’
릭 그로브.
지금이야 브로드웨이에서 대흥행 중인 연극 의 연출가로 유명하지만.
본래는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더 알려져 있으며, 특히 알랭 노에와 매번 함께 작업하는 것으로 유명세를 얻었다.
이미 유진과는 관련하여 안면을 튼 바 있는 릭 그로브가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 각본을 맡게 되었다는 것.
‘그 자체로, 유진 작가님께는 의미 있는 인연이 아닐까.’
여하튼.
케빈은 유진에게 보고할 자료들의 정리를 진작에 마친 터였 다.
그리고 미팅까지는 아직 제법 시간이 남은 만큼 그 전까지는 -
“이제는 디모인 주민이 되셨으니 자주 뵐 수 있겠군요, 마커 스 작가님.”
“하하 그렇네요.”
···그의 또 다른 담당 작가인 마커스 스톤과 잠시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지금 이 시각.
두 사람은 아이오와대학 내의 라이터스홈 산학협력 사무실 에 있는 중이었다.
‘마커스 작가님, 조금 늦었지만 이사 오신 거 축하드립니다!’
디모인의 드레이크 대학교 MFA 과정에 등록을 마친 마커스 스톤.
학기는 9월에 시작되지만, 디모인의 어느 아파트로 미리 이 사를 마친 그에게 케빈은 전화로 연락했는데.
‘하하,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바로 연락드리려 했는데···.’
근황으로 시작된 대화는 자연스럽게 차기작 아이디어 논의 로 이어졌고.
마침 이 아이오와시티에 와 있다는 마커스의 말에, 반색하며 제안했던 것이다.
‘아, 그러면 아예 저희 사무실에서 잠깐 얘기 나누실까요?’
그리하여 지금 이 라이터스홈 산학협력 사무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
마커스의 얼굴은 전보다 훨씬 밝아 보였다.
“···대학 측에서 마련해준 아파트가 저희 형이 사는 곳과 가깝 더라고요. 차로 10분 정도?”
“오 그거 잘됐네요.”
마커스의 근황을 잠시 듣고 있던 찰나, 지잉- 하고 케빈의 핸 드폰이 진동했고.
“괜찮으니까 얼른 확인해보세요 미스터 케빈.”
“아 네 그럼 잠시.”
마커스의 배려 덕분에 케빈은 스마트폰을 들어 확인했다.
아까부터 대화에 푹 빠져 있느라 확인 못 한 메일이니 메시 지가 한가득이다.
‘···어?’
30분쯤 전에 온 메시지.
그것은 권유진에게서 온 것이었는데.
[유진 작가님 : 오늘은 계속 산학협력 사무실에 계신다고 했 죠? 제가 클럽활동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잠깐 일만 보고 바로 그쪽으로 갈게요!]
[유진 작가님 : 아마 5시 반 정도 될 겁니다]
얼른 현재 시각을 확인해보니, 어느새 5시 25분이 아닌가.
“어, 저, 그··· 마커스 작가님.”
케빈이 황급히 상황을 설명하자, 마커스 스톤은 웃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 작가님이면 <토끼 남작> 저자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안 그래도 제가 그 책 엄청 재밌게 읽어서, 저야 이 참에 얼 굴도 익히고 좋죠.”
마커스가 흔쾌히 양해해주는 것에 케빈이 안도의 한숨을 내 쉰 것도 잠시.
‘음, 유진 작가님이 많이 당황하실 것 같은데.’
톡, 토독-
재빨리 유진에게 ‘마커스 스톤 작가님도 이곳에 계신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지만.
‘안 읽으시네···.’
케빈 클레그의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던 바로 그때.
똑똑-
노크 소리에 벌떡 일어나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그 앞에 있는 것은 예상대로 권유진.
클럽활동을 마치고 씻고 온 듯 머리가 덜 말라 있었다.
“어서 오시죠, 유진 작가님. 그, 제가 좀 늦게 메시지를 보냈 는데, 지금 안에 다른 작가님도 함께 계시거든요···.”
케빈이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하자.
“그래요? 메시지를 주셨구나.”
폰을 꺼내서 확인한 유진이 눈을 크게 뜨던 그때-
“안녕하세요 유진 작가님!”
마커스 스톤이 활짝 웃으며 일어나 문 앞까지 다가왔다.
잠시 굳어 있던 유진은, 마커스를 보자마자 이내 얼굴 만면 에 미소를 띠었다.
“안녕하세요, 마커스 스톤 작가님 맞으시죠?”
“어, 어떻게 아셨어요?”
“당연히 알죠. 작가님 작품들, <여우굴>과 <전선의 끝> 정 말 의미 깊게 읽었거든요.”
“어··· 정말로-”
“하하, 사실 제가 마커스 작가님 팬이라서.”
유진은 순진하기 그지없는 고등학생의 얼굴로 환하게 웃어 보였다.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너무 영광입니다.”
“와, 이거··· 너무 반가운걸요.”
기분 좋으면서도 민망한지, 마커스 스톤은 얼굴이 벌게진 채 로 어쩔 줄 몰라했고.
‘···.’
내심 옆에서 가슴 졸이며 서 있던 케빈은 또 다른 의미로 놀 라고 말았다.
‘유진 작가님의 처세술이 보통이 아니라는 거야 잘 알고 있 었지만···.’
구렁이 담 넘어가듯 자연스러운 표정 변화는 말할 것도 없고.
출판사 담당자가 작가를 대하는 듯한 유들유들한 말투에, 그 저 혀를 내두를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