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깡촌의 천재 작가-123화 (123/126)

< 어깨의 힘을 빼고(1) >

*

정신 차려 보니 어느새 5월.

시드니 캘러한은 4월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도통 알 수가 없 었다.

<캐슬>을 담당하는 리암홀트 문학1팀 편집자인 그녀는 한  달 내내 쉴 새 없이 일하는 중이었다.

웬만해서는 에곤 작가와 약속한 대로 정시퇴근을 하고 싶었 지만-

‘그게 어디 상황이 따라줘야 말이지.’

물론 어디까지나 기쁜 비명을 지르는 상황이긴 했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피플, NPR 등 유수 일간지에서  호평의 리뷰가 매일처럼 쏟아져 나오는 것은 물론.

“시드니! 이거 봐봐!”

잔뜩 흥분한 채 닉이 보여준 것은 다름 아닌 ‘티미 샐먼이 추 천한 책 리스트’.

그의 팬들이 만들어서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는 이 비공식  리스트 맨 첫 번째에 <캐슬>이 올라 있는 것을 보니 절로 기 분이 좋아진다.

‘보기만 해도 배부른 기분인걸.’

안 그래도 <캐슬>의 순위가 점점 더 올라가는 추세이긴 했 지만.

티미 샐먼이 본인의 SNS 계정에 그런 글을 남긴 이후, 판매 량이 수직 상승했고.

‘덕분에 1위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질 않고 있지.’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잔뜩 올라간 채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데.

그런 그녀를 본 닉이 농담조로 말했다.

“전미 베스트셀러 1위 도서의 담당자가 된 기분은 어때, 시 드니.”

“음··· 되게 비현실적이네.”

“하하, 담당이 아닌 나도 이런 정도인데 담당은 더하겠지.”

자신뿐이 아니라 닉을 비롯, 문학1팀 전원이 이 <캐슬>을  위해 힘써주고 있음을 잘 아는 만큼.

시드니가 고마운 마음으로 그를 돌아보는데, 닉이 사내 메신 저로 파일 하나를 보냈다.

“그리고 이거, 기사 발췌문.”

“오, 고마워.”

각종 매체에 실리는 에곤 K의 신작 장편 <캐슬>의 본격적인  리뷰.

그 본문 중 인상 깊은 부분을 발췌해 각종 대형 온라인 포털 의 작품소개페이지에 넣는 것도 편집부의 일이었다.

시드니는 닉이 정리해준 파일의 내용을 살펴보았다.

[“무엇이 우리 자신을 규정짓는지를 질문하는, 장르를 넘어 선 보편적인 이야기.” - <뉴욕타임스 북리뷰>

“에곤 K의 문체는 <더 로드>의 코맥 맥카시를, 현란한 플롯 과 영상미 넘치는 서사는 <다빈치 코드>의 댄 브라운을 떠올 리게 한다.” - <월스트리트저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의 작가  에곤 k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판타지 역작. 거대한 스페이스오 페라 세계관 속, 여러분 자신을 찾는 여행을 떠나보시길.” - < 보스턴글로브>]

···

그야말로 호평, 아니 극찬에 가까운 리뷰의 연속에 시드니가  기분 좋은 한숨을 짓는데.

그 아래로 화려하기 그지없는 홍보용 문구가 나열돼 있었다.

[-아마존 베스트셀러 2주 연속 1위

-티미 샐먼이 좋아하는 책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보스턴글로브, 세인트루이스 퍼 블릭 라디오 선정 베스트셀러

-엘레노어 퍼시 공작부인의 북클럽 추천도서]

···

그것을 쭉 읽어내려가던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뭐야? 공작부인의 북클럽 추천?”

“아, 서포크 공작부인이라고 영국의 유명한 로열패밀리인데  본인의 이름으로 북클럽을 하더라고.”

이 북클럽에 선정된 도서들은 주로 중장년 여성 독자 사이에 서 선풍적인 인기를 자랑한다는 것.

“생각지도 못한 독자층이 개척되겠는데?”

“흐흐, 그치?”

닉의 대꾸에 픽 웃어버린 시드니가 그 외 여기저기서 보내온  자료들을 한데 정리하며 생각에 잠겼다.

‘평론가 안젤라 반스도 본인 블로그에 리뷰를 썼고.’

[···에곤 K는 이번 신작 <캐슬>로 자신의 전작들을 또 한 번  뛰어넘는 저력을 보여준다. 첫 페이지부터 독자를 사로잡는 치 밀한 음모와 장대한 스토리텔링의 미로가···.]

독자 커뮤니티의 분위기도 그에 뒤처지지 않기는 마찬가지 였다.

리젠 속도가 상당히 빨라진 가운데, 제목에 <캐슬>을 언급 하는 게시물이 상당히 많았고.

└캐슬 이렇게 진짜 끝이라고?

└속편 속편은 안 나오냐

└캐슬주민들 해방된 이후도 궁금한데

└이런 건 3부작으로 써줘야지

···

그 대부분이 캐슬앓이를 하느라 여념이 없는 와중-

└근데 말야 그 성자와 성녀 얘기 나만 신경 쓰이나?

···어느 심상치 않은 댓글 하나가 그녀의 눈에 띄었다.

└아 맞아 맞아

└성자 앨러릭이랑 성녀 이졸데도 중간에 나오지 않았나

└그것도 떡밥 아닐까 했는데 궁금

···

<캐슬>은 이것으로 끝이지만.

이 세계관의 이야기는 이대로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독 자들의 기대감 섞인 추측이었다.

‘하긴, 나도 이 생각을 하긴 했었지.’

어쩌면 에곤 작가님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또 다른 작품을 기 획 중이신 게 아닐까.

그것이 <캐슬>의 속편일지 혹은 아예 별개의 이야기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에곤 K의 작품들은 늘 그래왔듯 이번에도 영화계와  드라마업계에서 상당히 탐을 낼 텐데.

‘서사의 양도 상당하고, 이 정도 규모의 IP라면··· 이번에는 그 냥 영화 한 편으로 끝나기는 좀 아쉬운 느낌인걸.’

장편 드라마는 어렵더라도, 한 시즌으로 끝나는 정도라면 괜 찮지 않을까.

나중에 작가님께 한 번 여쭤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모니터에 서 눈을 떼던 그때.

“시드니 담당자님!”

마케팅 부서 담당자가 잔뜩 흥분한 기색으로 문학1팀 사무 실로 달려 들어왔다.

“네?”

“캐슬, 출간부터 지금까지 누적부수 총합 나왔습니다!”

판매부수 보고를 위해 굳이 여기까지 왔다고? 라고 일순 생 각했지만.

“···!”

이내 담당자가 보여준 보고서상의 숫자를 보고는, 그 이유를  납득했다.

[-집계 기간 : 출간 후 3주

-종이책 누적 판매부수 : (페이퍼백, 하드커버 도합) 513,532  부

-전자책 누적 판매부수 : (킨들, 애플북스, 누크 등 도합) 132, 801부]

종이책만 51만 부, 거기에 전자책까지 합하면-

“벌써··· 60만 부가 넘게 팔렸다고?”

출간한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은 책이라고 보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성적에, 시드니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확실히 그것은-

“우와아아—!”

···다같이 모인 자리에서 함께 기뻐해야 할 만한 수준의 수치 였으니까.

*

나는 한동안 <캐슬>에만 가 있던 마음을 추스리고 일상으로  다시 돌아오려고 했다.

이처럼 원래의 리듬을 되찾는데 가장 좋은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역시 신작을 집필하는 거겠지.’

엄밀한 의미의 신작, 그러니까 <알파벳 D의 이야기>를 쓴  지는 물론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내게는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온 원고 일정이 있 었는데.

그것은 바로 <토끼 남작의 모험> 시리즈의 3권을 집필하는  것.

원래 원더테일 측에선 올해 상반기에 출간하고 싶어했지만···.

‘작가님 상황도 그렇고, 제 생각도 그렇지만, 3권을 너무 급 하게 출간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나 또한 미스터 케빈의 의견에 동의하는 바였다.

이미 작년에만 책이 두 권이나 나오지 않았던가.

각 권의 출간 텀이 너무 짧은 것보다는 적당히 간격을 두고  신간을 내주는 것이 마케팅 측면에서도 훨씬 효율적이며.

“···그 편이 아무래도 시리즈의 생명을 오래 가져가는 데에 유 리하지.”

즉, 너무 자주 빠르게 출간하기보다는.

더 많은 고민을 통해 양질의 신작을 내자는 것에 세 명의 저 자들- 나와 네드, 케이트를 비롯해 원더테일 편집부 또한 동의 한 상황.

···그러다 보니 벌써 5월이 된 만큼, 이제는 3권의 기틀을 어 느 정도 잡을 타이밍이었는데.

“고민은 계속해왔지만,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 감이 안  온다는 거로구나.”

내 얘기를 다 들은 새어머니가 그 말을 간략하게 정리했다.

“바로 그거예요.”

지금 나는 여느 때처럼 클럽활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참.

클로이는 옆집의 마리사네에 가서 놀고 있다는 얘기에, 내심  고민하던 것을 케이트에게 털어놓은 참이었다.

“판타지스러운 요소를 섞는 것도 생각해봤고, 아니면 2권의  공룡왕국 때처럼 북극이라든가, 바닷속이나 하늘 왕국 같은 곳 으로 가는 것도 생각해봤는데···.”

그 모두 내 마음에는 딱히 차지 않았다.

무대를 바꾸는 것 자체는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자칫 앞서 2권에서 보여줬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 를 반복하는 셈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물론, 이런 아동서 시리즈에서 어느 정도의 패턴화는 오히 려 장점으로 작용하지만.’

너무 예상 가능한 범주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건 뭐랄까···.

“아쉬운 기분이 든다, 이거지? 유진 네 기준에서는 말이야.”

그런 내 마음을 뻔히 알겠다는 듯, 케이트가 받아친 말에 나 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솔직한 심정을 덧붙이자면-

‘부담감이 조금 드는 것도 사실이긴 하지.’

원래 이 <토끼 남작의 모험>은 어디까지나 클로이를 위한  생일 선물로 만든 책이다.

애초 회귀 이전에도 동화와는 딱히 상관 없는 커리어를 걸어 왔고, 그런 만큼 이쪽 분야를 여전히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일 까.

···1권과 2권에서 보여줬던 것 이상을, 3권에서 보여줘야 한 다는 생각을 떨치기가 어려웠다.

“음, 글쎄.”

그리고 이내.

방금 내가 털어놓은 이야기를 잠시 고민하는가 싶던 새어머 니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앞서 두 권의 책들이 모두 잘됐으니 부담이 되는 건 이해하 지만.”

내 속마음을 읽은 듯한 말에 움찔하는 것도 잠시.

“그냥,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하면 되지 않을까?”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나도 모르게 반문했다.

“하던 대로···라고요?”

왜냐면 그 말은, 언젠가 내가 새어머니에게 들려줬던 말이었 으니까.

“그래. 전에 유진, 네가 나한테 그렇게 말했었잖니.”

그래.

당시 케이트는 클로이의 생일 선물로 만든 이 책이 큰 화제  속에서 정식 출간된다는 사실 자체에 큰 부담을 느꼈었다.

그리고 그때 내가 했던 말이 바로···.

“클로이를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고, 해보자고.”

“···.”

“정식 출간이 되든, 베스트셀러가 되든. 결국 이 책은 우리  클로이를 위한 선물이라는 사실이 제일 중요하니까, 그 점만  잊지 말자고. 그러고 나면-”

케이트의 단아한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나머지는 저절로 해결될 거라고 말이지.”

···내가 새어머니에게 그런 말까지 했던 것 같진 않지만.

어깨의 힘을 빼보라고 지나가듯 했던 말을, 그녀는 그런 식 으로 해석하여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건 굉장히 핵심적인, 중요한 지적이기도 했다.

“그 말이 맞네요.”

“그렇지?”

“네. 저도··· 그걸 놓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 나 또한 명확하게 의식하진 못했지만.

알게 모르게 대형 베스트셀러 시리즈에 걸맞는 신작을 보여 야 된다는 부담감에 사로잡혔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 이 책은 내 동생 클로이를 위한 거잖아?’

클로이가 재미나게 읽고 또 다른 친구들에게도 재밌게 들려 줄 수 있는 이야기.

···그게 시작점이자 도착점이 돼야 하는 법.

“고마워요, 케이트.”

“고맙긴.”

내 말에 어깨를 으쓱한 그녀가 이렇게 덧붙였다.

“들은 그대로를 돌려줬을 뿐인걸.”

*

새어머니와 나눈 대화 덕분일까.

나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토끼 남작> 3권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며칠간 더 고민해보았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 네드가 차 안에서 했던 말도 떠올랐는데.

‘베니가 아예 알파벳 왕국에 가는 건 어때?’

알파벳, 알파벳이라.

가만히 중얼거리던 그때, 무언가가 떠올랐다.

“···베니의 동생들이 있었지!”

생각해보니 베니의 동생들 이름을 알파벳순으로 짓지 않았 던가.

‘1권의 서두에 그렇게 등장시켜놓고서 지금껏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잖아.’

이 동생들이 어떤 아이들인지, 베니가 모험을 나가 있는 동 안 동생들이 무얼 하고 있을지도 고민해본 적이 없는데···.

“동생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라.”

벌써부터 재미있는 이야기가 떠오를 것 같은 기분 속, 펜 끝 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머리를 굴려본다.

그러다 이내 한쪽 입꼬리가 스르륵 올라갔고.

사각 사각, 삭삭.

떠오른 그대로를 노트에다가 적어보았다.

[누나는 애니Annie, 주인공은 베니Bennie]

[그 아래 24마리가 넘는 동생들]

[Cennie Dannie Ennie Fannie···]

A, B, C, D, E···.

Z까지 다 써서 이름을 지었는데도 동생이 한 마리 더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 동생들은-

‘음, 아무래도 형이나 오빠처럼 본인도 모험을 하고 싶어하 지 않을까?’

그 하고 많은 동생 중에서도···.

케니, K로 시작하는 Kennie가 본인도 베니 형처럼 유명해지 겠다며 토끼 성을 나섰고.

‘그런 동생을, 베니가 울며 겨자먹기로 찾으러 나서는 이야 기를 해보는 건 어떨까?’

그것을 시작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듯 연상되는 재미있는 장면들에 실실 웃음 이 지어지는 가운데.

이내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3권의 제목을-

슥, 스스슥.

펜으로 휘갈기듯 적었다.

[토끼 남작의 모험 3권]

[잃어버린 동생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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