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1화 (1/473)

1화. 유물관의 아저씨

웅성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눈 앞으로 채워지는 캄캄한 천장.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지겨운 광경이다.

일어날 시간인가.

시계를 볼 필요는 없다.

귓가에 웅성거림이 들려오고 눈이 저절로 떠졌다면 어차피 똑같은 시간일 테니까.

더 늦으면 또 무슨 욕을 들어먹을지 모르니 일어나야겠다.

물론 내 몸을 생각해 천천히…

우두둑.

“으….”

천천히 신경을 써서 일어났는데도 이 모양이다.

이제는 조심해서 괜찮을 정도는 지난 듯했다.

틱.

익숙한 위치로 손을 가져가 스위치를 켰다.

캄캄했던 방을 밝히는 빛.

더 암울하네.

차라리 빛이 없을 때가 더 좋았다.

빛이 없으면 내가 이런 2평 남짓한 골방에 있다는 현실을 잠시나마 망각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쏴아아.

방에 딸려있는 세면대로 가 물을 적셨다.

손으로 느껴지는 시원한… 아니지,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줄기.

일부러 차갑게 튼 건 아니었다.

나도 따듯한 물에 씻는 걸 좋아하지만 이 쓰레기 같은 방에 온수는 사치였다.

“후우.”

하루를 시작하며 현실을 깨닫는 순간은 총 두 번이다.

불을 켜 내가 좁고 쾨쾨한 골방에 처박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리고,

세면대의 거울을 통해 주름이 자글자글한 내 얼굴을 봤을 때.

나이에 비해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보통의 40대보다도 훨씬 주름이 많았다.

그래도 젊었을 땐 나름 인기도 많고 인싸라는 소리까지 들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매일 같이 지겹게 하는 자조 섞인 한탄.

한탄을 조금만 더 이어가면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 수 있겠지만, 나에겐 그런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철컥.

나갈 시간이다.

정확히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잔인한 현실로 집어 삼켜질 때다.

* * *

골방을 나오니 밝은 빛이 날 반겼다.

내 방에서 얼마 남지 않은 수명으로 제 역할만을 간신히 하는 어두침침한 전구의 빛이 아니었다.

눈을 제대로 뜨기조차 버거운 밝디밝은 빛.

그 아래로는 빛만큼이나 밝은 표정의 사람들이 앞에 놓인 전시물들을 구경하며 거닐고 있었다.

세상 걱정 하나 없는 행복한 얼굴들.

“야! 백운!”

백운.

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항상 이름을 부르기 전에 야부터 시작하는 놈.

목소리의 주인공은 외관상으로 나보다 10살은 어릴 듯한 이곳의 관리장, 김덕만이다.

“뭘 밍기적거려! 저기 앞에 아이스크림 떨어뜨리셨잖아, 당장 가서 치워!”

“알겠습니다.”

반말을 한다고 기분 나빠할 필요는 없다.

저래 봬도 김덕만은 나보다 10살은 더 많으니까.

그런데 생김새가 왜 이러냐고?

그건 내가 무능력하기 때문이다.

원래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고 하려는 노력조차 안 하는 사람을 무능력자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좀 다르다.

능력의 개방.

오늘날, 인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능력을 개방한 사람과, 개방하지 못한 사람.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누어 놓으니 50 대 50 아닌가 라고 착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쉽게도 아니다.

비율로 따져봤을 때 개방에 성공한 사람과 못한 사람은 99.9:0.1 정도다.

그리고 내가 그 0.1에 속해 있었다.

개방하지 못한 인간, 그래서 아무 능력도 없는 인간, 열심히 살아보려는 의지와 노력이 있어도 제대로 살 수 없는 인간.

그게 지금의 무능력이 의미하는 바다.

개 같구만.

지나가는 젊은이들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개방되는 능력에 따라 사회적 위치와 대우도 달라졌지만, 이건 나중의 이야기였다.

개방이 되냐 안 되냐에 따라 극명히 갈리는 게 있었다.

수명.

오랫동안 사람들은 고민하고, 또 연구해왔다.

영생이란 목표를 위해서 말이다.

옛날 진나라의 진시황은 영생을 위해 안 다녀본 곳이 없을 정도였고, 수많은 권력과 돈을 가지게 된 이들도 엄청난 상금을 걸며 삶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았지만.

결과는 실패.

수명은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니었으며 시간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법칙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능력의 등장과 함께 발현된 개방이란 현상.

이것이 지금까지 거스를 수 없었던 법칙을 완전히 부숴버렸다.

개방이 된 시점부터 사람들은 나이를 먹지 않았으며 각각 개성 있는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

모든 게 한순간에 변해버린 세상.

지금은 그런 세상이었다.

우두둑.

“크으….”

물론, 누군가 떨어뜨리고 간 아이스크림을 치우느라 허리 통증을 겪고 있는 날 제외하고 말이다.

난 어째서 개방하지 못했을까?

아니지, 왜 안 되는 걸까?

불혹의 나이가 된 지금도 의문이다.

사람마다 개방의 조건은 제각각이었다.

누군가는 가만히 있어도 개방이 됐으며, 누군가는 평생 안 먹던 오이를 먹는 순간 개방이 됐다.

그야말로 제각각.

그래서 개방과 능력이 등장했던 23살엔 여유로웠었다.

개방의 방식이 워낙 제각각이니 급하게 여기지 않아도 알아서 되겠지란 생각.

하지만, 착각이었다.

엄청나게 큰 착각.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며 주변 사람들 모두가 개방했지만 난 아니었다.

난 왜 안 되는 걸까, 설마…. 평생 개방을 못 하는 건 아닐까?

그때부터 마음이 조급해졌었다.

운동, 칼질, 주먹 휘두르기, 달리기, 여행, 수영 등등등 안 해본 짓이 없었다.

가능한 모든 행동을 다 해봤다.

내 개방 조건이 얻어걸리길 기도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포기하게 되었다.

포기라기보단 인정하게 되었다.

난 개방이 안 되는 무능력자라는 걸.

“어이! 이것도 좀 치워.”

철퍽.

닦고 있던 아이스크림으로 던져지는 휴지 뭉치.

한국이란 유교 나라에 살아서 그런가 지금도 저런 새파랗게 젊은 얼굴이 반말을 하면 움찔거리곤 한다.

하지만 이젠 외관과 나이가 연결되지 않는 세상이니 그러려니 할 뿐이다.

우두둑.

“으.”

지겨운 뼈 소리와 허리 통증.

굽히고 펼 때마다 한번도 빠짐없이 이러니 미칠 지경이다.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고통이다.

“….”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허리를 괜히 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 세상에 속하지 못했다는 소외감.

남들은 당연한 듯이 누리는 것들을 누리지 못하는 상실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능감까지.

난 매일매일 이런 것들과 마주하며 살고 있었다.

나도 개방만 됐다면.

수만 번, 아니지, 수천억 번은 생각한 것 같다.

개방이 됐다면 난 어떤 능력을 가졌을까?

영생을 가진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훨씬 행복하게 살았겠지?

아, 이건 아닐 수도 있겠다.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유물관이 위치한 장소는 서울의 외곽.

외곽 밖으론 하늘까지 솟은 장벽과 에너지 장막이 쳐져 있었다.

옛날 독일에 있던 베를린 장벽 수준이 아니라 서울 전역을 둘러싸고 있는 벽이다.

개방했으면 죽었을 수도 있겠네.

개방으로 인해 나이를 먹지 않음에도 지구가 식량 부족 같은 기근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는 이유,

종말의 날.

사람들은 그 날을 이렇게 부른다.

세상이 변하며 생겨난 건 능력뿐 만이 아니었다.

어디서 온지 모르는 괴생명체들.

처음엔 몬스터, 괴물, 좀비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지만, 지금은 데몬이란 이름으로 통일되어 불리고 있었다.

- 시민 여러분, 빨리 가장 가까운 곳으로 대피해 주십시오!

어느 날이었다.

능력자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듯 드문드문 등장하는 데몬을 잡고 있던 시기.

갑자기 하늘과 땅, 바다에서 감당할 수 없는 수의 데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중엔 웬만한 능력자 열댓명이 붙어도 이길 수 없는 강한 녀석들도 섞여 있었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데몬.

그 결과,

살아남은 소수의 사람들은 패배를 인정하고 서울로 모여들어 요새화를 시작했다.

고립을 선택하고 방어에 모든 걸 쏟아부어 데몬들이 접근할 수 없는 성역을 만든 것이다.

처음엔 다 끝났다며 자포자기했었다.

이 좁은 곳에서 어떻게 평생을 사냐며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했던가.

좁디좁은 서울 안에서 사람들은 터전을 꾸렸고, 어느 정도 살만해지자 서로 급을 나눠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리고 우연히 서울 쪽방에 거주하며 무능력자인 탓에 데몬과 전투를 하지 않았던 나는 시스템의 바닥에 속한 채 기생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래, 무능력자라 40살까지 살았다.

오늘도 쓸데없는 자기 위로를 하며 몸을 돌렸다.

“야! 백운!”

좀 쉬려고 하면 귀신같이 무언가를 시키는 김덕만.

“내일까지 창고 비워야 하니까 가서 청소해!”

이런 샹.

허리 때문에 미루고 미뤘던 창고 정리라니.

내일 아침엔 지옥 확정이다.

* * *

끼이익.

“콜록!”

문을 열기 무섭게 묵은 먼지가 날아들었다.

사람의 발길이 얼마나 끊겼길래 이 정도로 먼지가 쌓인 걸까.

틱.

….

창고의 불을 켜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내쉬어졌다.

먼지와 함께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물건들.

숫자가 많지는 않지만 부피가 있는 것들이 꽤 섞여 있다.

툭툭.

발에 치이는 물건들을 밀며 앞으로 나아갔다.

유물관의 창고.

유물이라 여겨져 들여왔지만 확인해보니 가짜인 물건들이 버려지는 장소다.

“이걸 언제 다 치우나.”

혀를 내두르며 창고의 끝으로 천천히 걸어나갔다.

손대기엔 막막하니 일단 견적이라도 내보자는 심산이었다.

저벅.

조심조심 한 발자국씩 내디디며 버려진 물건 사이를 거닐던 중,

창고의 가장 구석에 버려져 있는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잔뜩 먼지를 먹어 기존의 색을 잃어버린 붉은 천에 감싸져 있는 물건.

한 번도 이 구석까지 온 적이 없어 보지 못 했던 물건이었다.

….

전시관에 놓인 다른 유물들과 다르게 창고의 가장 구석에 처박혀 썩어가고 있는 녀석.

왠지 모르게 나와 닮은 구석이 있었다.

큰 흐름에서 벗어나 있는 듯 없는 듯 살다가 바스러질 존재.

털썩.

무슨 바람이 불어서일까.

당장 쓰레기 자루에 버려도 모자란 판국에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슥.

천천히 감싸져 있는 천을 풀어냈다.

그나마 먼지가 덜 먹은 천의 안쪽은 과거의 선홍빛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었다.

툭.

천을 다 풀어내자 나타난 것.

검…?

정확히는 부러진 검이었다.

천보다 훨씬 낡아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바스러질 것 같은 모양새.

검의 옆에는 휘갈겨 써진 쪽지 한 장이 있었다.

[출처나 연혁을 확인할 수 없음. 가품 판정.]

검이 창고에 처박히게 된 이유였다.

“….”

다른 환경과 조건이었다면, 이 검도 다른 결말을 맞이하지 않았을까?

창고의 구석이 아닌 멋진 주인의 손에서 전장을 누빌 수도 있지 않았을까?

스윽.

검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제일 낡은 놈부터 치워버리자는 생각은 아니었다.

그저, 왠지 모르게 동질감이 느껴지는 검을 들어보고 싶었다.

툭.

손이 검의 손잡이에 닿은 순간.

우웅!

“!!”

엄청난 빛이 쏟아지고, 몸이 조금씩 검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한 단어가 본능적으로 머리에 떠올랐다.

개방(開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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