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7화 (7/473)

7화. 개미굴

교통사고?

차가 허공에 뜬 순간 떠오른 단어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순간이지만 땅에서 무언가 솟구쳐 차를 쳐낸 느낌.

“아오….”

욱씬거리는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젊음이 좋긴 좋다.

돌아오기 전의 고장 난 몸이었다면 몸을 일으키긴커녕 여기저기 부러져 있었을 테니.

“아아….”

“다들 괜찮아요?”

“네….”

“조금 욱씬거리지만 괜찮아요.”

대기업이 지원해 준 차의 위엄일까.

허공에 체류한 시간이 꽤 길었는데도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에어백 덕인지 크게 다치지 않았다.

“뭐… 뭐야!?”

뒤늦게 일어난 전국현이 목소리를 높였다.

“쉿.”

그 옆에서 조용하라고 신호를 보내는 이대현.

제일 먼저 일어난 듯한 이대현은 앞 좌석의 에어백을 찢고 밖을 살피고 있었다.

“뭔가 있어요.”

서서히 어둠에 눈이 적응되기 시작하고,

허.

밖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개미…?

내가 아는 개미는 작고 귀여웠다.

저렇게 사람만 한 덩치로 징그러움을 뽐내는 게 아니었는데.

“개미 계열 데몬 같아요. 그리고 여기는… 개미굴인 거 같네요.”

개미굴.

읽은 적이 있었다.

거대한 개미 형태를 한 데몬으로 한 마리 한 마리의 전투력은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다.

하지만, 지금 있는 장소가 개미굴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여왕 개미를 중심으로 밀집 생활을 하는 개미 데몬.

개미굴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개미굴엔 수백 마리의 데몬이 살고 있었다.

아무리 위협적이지 않은 전투력이라도 수백 마리를 사방이 막힌 굴에서 만나는 건 최악의 상황.

“지… 지원 요청을 해. 멀지 않은 곳에 대산 인원들이 있을 거야.”

“무전은 먹통이라 지원 신호만 보내놨어요. 잘 도착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이대현의 침착한 설명을 들으며 뒷좌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망했네.

처음 봤을 때 안전벨트를 해줬어야 하는데.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깨져 있는 트렁크 창문과 사라져 있는 나의 상자.

정확히는 내거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상자가 없었다.

개미굴로 추락하며 어디론가 떨어진 모양이었다.

철컥.

조수석에서 화기를 챙겨 든 이대현과,

따각.

기다란 케이스를 열어 거대한 저격총을 꺼내는 김희연.

덩달아 옆에 있던 김소연이 팔뚝만 한 대바늘을 꺼냈다.

바… 바늘?

무슨 능력인지 상상도 안 가는 무기였다.

“저 혹시….”

저마다 준비를 하는 상황.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단검 같은 거 있나요?”

“본인 무기도 안 챙겨 다닙니까? 뭐하는 사람이야?”

1초 만에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전국현.

얼굴에는 한심하다는 표정이 한가득했다.

저건 인정.

데몬이 나타나는 곳을 다니며 무기도 안 가지고 있다면 저럴 만하다.

“꺼낼 수는 있는데 막 사용할 수가 없어서요.”

고개를 끄덕인 이대현이 서랍에서 작은 단검 하나를 건넸다.

꽈악.

오?

면도칼보다 크기는 컸지만, 그리 낯설지 않은 느낌이었다.

약간이긴 하지만 면도칼을 사용했을 때의 감각이 몸에 남아 있는 듯했다.

“…?”

퉁명스럽게 대답했던 전국현을 바라봤다.

어찌 됐든 모두가 준비를 마쳤는데 혼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전국현.

“전 비전투 인원입니다. 고장 난 기계들을 수리하는 능력이거든요.”

뭐지, 이 새끼.

나도 오랜 시간 민폐 역할을 해왔다 보니 웬만하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양심 없는 자식.

“개미들도 차를 주시하고 있을 거예요. 최대한 조용히 나가서 위로 향할 길을 찾아보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일행이 이대현을 따라 밖으로 나섰다.

자박.

신발 아래로 느껴지는 모래의 감각.

피부로 느껴지는 습함이 현재 있는 장소가 지하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떨어질 때 느껴졌던 충격으로 봐선 직선으로 추락하진 않은 거 같아요.”

똑똑한 친구였다.

직선으로 떨어졌다면 아무리 에어백이 있다 해도 충격이 컸을 터.

떨어지는 중 빙빙 돌았던 느낌은 어딘가를 굴러 내려왔다는 걸 의미했다.

적응된 눈을 움직이며 사방을 살폈다.

어둠에 적응되긴 했지만 완벽히 보이는 건 아니었다.

거뭇거뭇한 시야와 몸의 감각을 살려 나아가야 하는 상황.

“그런데 데몬들이 왜 공격하지 않는 거죠? 우리가 움직이고 있는 걸 알 텐데.”

“지휘관이 아직 안 온 거죠.”

김소연의 물음에 천천히 답변했다.

개미 계열 데몬의 공통적인 특성.

선천적으로 겁이 많고 주의가 깊어 누군가 지휘해 주는 게 아니라면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은 그 누군가가 도착하지 않아 우릴 지켜보고 있는 것.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놈이 오기 전에 빨리 빠져나가야 해요.”

“와~ 백운 님 엄청 잘 아시네요.”

다른 이들에게 보이진 않겠지만 묘한 미소가 지어졌다.

소연 님도 할 게 독서밖에 없으면 열심히 읽게 될 거예요.

“이쪽인 거 같아요.”

이대현을 필두로 기차놀이를 시작하고 잠시 후.

이대현이 올라가는 길을 찾은 듯했다.

위로는 미세하지만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는 길.

“빛 방향으로 빠져나가면 되겠어요.”

키이이이이이----!

길을 발견함과 동시에 들려오는 불길한 울음소리.

소리가 울려 퍼지자 멈춰있던 개미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착한 모양이다.

“달려요!!”

* * *

이대현의 외침을 신호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뒤에서 우글우글 몰려오는 개미들과 끊임없이 등장해 길을 막는 놈들까지.

탕! 탕! 탕!

이대현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한 발 한 발이 치명상인지 픽픽 쓰러져가는 개미들.

역시 철갑탄이구만.

뛰기 전에 들었었다.

이대현의 능력은 일반 총알을 철갑탄으로 바꾸는 것.

일반 총알이라면 개미들에게 박히고 끝났겠지만, 철갑탄의 위력 덕에 더 치명적인 유효타를 입히고 있었다.

사사삭.

죽은 개미들의 시체에 바느질을 시작한 김소연.

김소연의 능력은 꿰매기였다.

바늘이 통과할 수 있는 모든 걸 특수한 실로 꿰매어 버리는 능력.

김소연은 개미들의 시체를 꿰매서 장애물을 만들고 있었다.

타아아앙!

그리고 그사이 총을 거치하고 한 발씩 쏘아내고 있는 김희연.

거대한 저격총에서 쏘아진 탄의 위력은 엄청났다.

웬만한 방탄유리도 그냥 찢어버릴 것 같은 위력.

발사될 때마다 따라 올라오던 개미들의 한 열이 우수수 쓸려나갔다.

서걱.

아직 숨이 붙어있는 개미에게 단검을 휘둘렀다.

개미굴을 따라 달리며 깨달은 게 있었다.

움직임이 훨씬 빨라졌다.

착각 같은 게 아니었다.

하운드에게 쫓겨 달아날 때와 지금의 몸 상태는 확연히 달랐다.

숨 차는 것 하나 없이 더 빠르게 움직여지는 몸.

추측이지만,

면도칼을 들고 있을 때 재연해냈던 잭의 비정상적으로 민첩한 움직임.

그때만큼 빠르고 유연하진 않지만, 그 움직임에 몸이 어느 정도 적응해버린 것 같았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

내 몸을 격하게 칭찬하며 고개를 들었다.

“으아아아악!”

아까 미리 말하지 않았다면 비명이 전국현의 능력인 줄 알았을 것이다.

그 정도로 전국현은 쉴 새 없이 비명을 질러 대고 있었다.

욕하지는 말자.

옛날 생각해야지.

어제 식당부터 해서 조금 전 내게 했던 퉁명스러운 대답까지.

마음 같아선 비명만 질러 대는 전국현에게 욕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올챙이 시절을 잊으면 되겠는가.

자제하기로 한다.

쉬시시시식---!

뒤에서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착각이면 좋겠지만,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헉… 헉….”

개미들과 다르게 사람들은 지쳐가고 있었다.

특히 티는 안 내고 있지만, 거대한 저격총을 들고 뛰어야 하는 김희연의 체력 소모는 더 빨랐다.

“푸헤엑… 푸헥….”

특히 저놈, 아니지. 전국현 님.

제일 저질이었다.

아니 저렇게 힘들어할 거면 소리라도 지르지 말던가.

“힘내요! 거의 다 왔어요!”

점점 따라잡히고 있는 걸 알아서일까.

이대현이 힘내라며 힘을 북돋았다.

사각 사각 사각

귀를 간지럽히는 개미들의 이동 소리.

저런 소리까지 들려오는 걸 보니 정말 가까이까지 좁혀진 모양이다.

고개를 들어 출구의 빛을 바라봤다.

따라잡힌다.

남은 거리와 개미들의 속도를 봤을 때, 출구를 나서기 전엔 무조건 따라잡힐 것 같았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할까.

나 혼자 냅다 달리면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겠지만.

정말 방법이 없는 걸까.

반짝.

!!

맨 뒤에서 보조를 맞추며 달려가고 있던 중.

낯익은 황금빛이 눈에 들어왔다.

올라가는 길의 샛길 부근.

추락하던 차에서 흘러나온 상자가 저곳으로 굴러 들어간 듯했다.

마음 같아선 당장 주우러 가고 싶었지만, 이런 급박한 상황에 저곳으로 갈 여유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허억… 헉….”

김소연과 김희연, 전국현에게 한계가 온 듯했다.

더 이상 달리지 못하고 걷는 수준까지 떨어진 속도.

고개를 돌린 이대현의 얼굴로 낭패감이 물들었다.

이젠 서로의 얼굴이 보일 정도로 빛에 가까이 온 시점.

이대로 계속 올라가는 건 무리라는 걸 깨달은 듯했다.

그리고 현재 상황과 별개로.

조금 전 봤던 금색 빛이 눈에 아른거렸다.

무기 욕심에 눈이 멀어서는 아니었다.

지금 느껴지는 건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날 포기하지마.]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날 두고 가지마.]

정신이 나간 걸까.

이대현의 말대로 상자에 든 건 무기가 아니었다.

쪽지가 든 유리병일 뿐.

[난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아.]

유물관 창고에 있던 신살도가 떠올랐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반으로 쪼개져 바스러지는 결말이 아닌, 자신의 힘을 뽐내며 빛날 수도 있었던 검.

으득.

정신차려라, 백운.

저거 가지러 가는 순간 죽음 확정이다.

알고 있었다.

알고 있는데….

머리의 생각과는 별개로 발걸음은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다른 이들과 보조를 맞추느라 느려진 게 아니었다.

뒤에 두고 온 것 때문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멈추지 마, 미친놈아.

움직여! 어쩔 수 없는 상황이야!

내 이성의 외침과는 별개로, 어느새 내 발은 멈춰있었다.

인정한다.

난 미친놈이다.

미안하다, 내 이성.

“배… 백운 님…?”

뒤따라오던 김소연과 김희연이 안 달리고 뭐하냐는 눈빛을 보냈다.

“먼저 올라가세요.”

“!!”

“백운 님! 안돼요!”

표정과 반응으로 보건대 둘은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 그런 거 아니니까 빨리 가요.”

“안돼요! 백운 님만 두고 안 갈 거예요!”

“아니 그런 거 아니라니깐. 다 죽을 거예요? 빨리 올라가요, 일단.”

김희연에게 눈짓을 보냈다.

뭔가 죄책감 가득한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김희연.

김희연이 김소연을 붙잡고 위로 달리기 시작했다.

“백운 님!”

아니 그냥 올라가요, 좀.

생각하시는 그런 희생 아니라니깐.

“후웁.”

숨을 들이마시며 몰려오는 개미들을 바라봤다.

미친 짓인 건 안다.

아는데.

두 번째 삶에서까지 어쩔 수 없다 라는 말로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거기다 미친 짓이긴 해도 죽음이 확정인 건 아니다.

더 따라잡혔을 때 꺼내려고 했던 면도칼.

꺼내는 김에 상자 구출도 하는 것이다.

아직 해볼 수 있는 게 있으니, 작은 가능성이라도 있으니 해보는 것뿐.

사사삭!

형체가 보일 정도로 다가온 개미들.

개미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잭 더 리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