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일단은 한국
“백운 님! 여기요!”
호텔의 조식 시간.
김소연이 여기라며 힘차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하하.
김소연에 부응하기 위해 나도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이렇게 서로 힘차게 손을 흔들며 반길만한 사인지는 살짝 의문이 들었지만, 어쩌겠는가.
상대방이 흔드는데 나도 흔들어야지.
“어제는 일찍 잠든 거 같아서 안 깨웠어요.”
“정확하십니다. 씻자마자 뻗어버렸어요.”
물론 피곤으로 인해 침대에서 뻗은 건 아니었다.
몇 시간 동안 뜨신 물에 몸을 담그며 냉장고에 있는 맥주를 털어먹은 어제.
취한 건 아니었지만, 김소연이 전화한 시간엔 나도 모르는 사이 맥주와 목욕물의 노곤함에 패배해 잠들어버리고 말았다.
“괜찮은 거죠? 눈이 엄청 퀭한데요.”
오, 감동이다.
첫 만남 때부터 수상하게 보는 걸 넘어 바리게이트를 치고 경계했던 김희연.
그런 김희연이 날 걱정해주고 있었다.
“제가 눈이 원래 팬더상이서요. 다들 퀭해보인다고 하더라고요.”
“아… 네. 원래 그런거면 다행이네요.”
다행이라니.
원래 이랬으면 슬펐을 것이다.
그나저나, 난 잠이 부족하면 티가 많이 나는 스타일인가 보다.
어젯밤.
맥주 흡입에 달콤한 쪽잠까지.
욕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아침 댓바람까지 그러고 있었던 건 아니다.
- 따각 따각 따각
호텔인데도 불구하고 최신 컴퓨터까지 갖추어져 있던 방.
컴퓨터를 보자마자 최대한 빨리해야지 했던 게 떠올랐다.
앞으로의 계획 정리.
좀 더 디테일하게는 회귀하기 전의 기억을 바탕으로 내 무기고에 넣을 수 있을 만한 유물들을 기록해나가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별로 없었지.
정리해보기 전까지는 많을거라 생각해 신이 났었는데, 막상 기록하고 보니 유물관엔 무기라고 할만한 게 몇 개 없었다.
물론, 꼭 무기가 아니더라도 찾을 가치는 있었다.
보니와 리드의 경우처럼 유리병이 무기에 직빵으로 연결될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다른 무기에 대한 정보가 담겨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백운 님! 저기로 가서 앉아요.”
아직 덜 끝난 기록과 정리.
호텔 체크아웃이 내일이니 오늘 저녁까진 어떻게든 정리를 마쳐봐야겠다.
“옙! 갑니다!”
김소연이 음식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세 명이 앉을 수 있게끔 준비되어있는 자리.
드륵.
의자를 빼고 자리에 앉았다.
“와! 맛있겠다. 그치? 언니.”
“응, 또 저번처럼 너무 많이 먹진 말고.”
“아이고 알겠어, 알겠어, 내가 애야?”
서로 티격태격 대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와 같이 먹는 밥이라니.
대체 얼마 만인지 감도 오지 않았다.
- 백운! 오늘은 배 터지게 먹어! 혹시라도 우리가 못 돌아오면 이게 너의 마지막 만찬이 될 테니까! 와하하!
- 딱 기다리고 있어, 돌아오는 날에 아주 제대로 사줄 테니까!
모두가 무능력자라고 내려다보는 날 친구로 대해줬던 사람들이 있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와 이야기 동무를 해주며 밥까지 사줬던 녀석들.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다 바꿔줄 테니까.
“백운 님, 음식 가지러 가요.”
“옙, 얼른 가요.”
김소연을 따라 음식이 진열된 곳으로 걸어갔다.
벌써부터 코를 괴롭히는 향긋한 음식 냄새들.
콰로로록!
배에서 엄청난 소리가 들려왔다.
큰일이다.
이 정도의 배고픔이라면 필시 인간답지 못한 모습으로 처먹을 터.
첫 만남 때 봤던 김희연과 김소연의 눈초리를 다시 보게 될 것 같다.
“백운 님.”
뒤에서 따라오던 김희연의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김희연이 묘한 표정으로 자리에 서 있었다.
“어제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백운 님이 아니었다면 저랑 소연이는 어떻게 됐을지….”
돌아보기 무섭게 김희연이 고개를 숙였다.
아까부터 뭔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는데 이거였나 보다.
“아니에요.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거예요.”
얼굴에 한껏 정의감 불타는 표정을 그려줬다.
“그리고 저 역시 다시 돌아간다 하더라도 똑같은 선택을 할 거고요.”
“…!!”
고개를 든 김희연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져나갔다.
만났을 때부터 왠지 모르게 무뚝뚝한 얼굴이었는데, 저런 표정도 가능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뜨끔.
물론 술술 터져 나오는 말과 별개로 양심은 조금 찔렸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많이 찔렸다.
과연 보니와 리드의 유리병이 없었더라면?
그래서 올라가던 중 반짝이는 상자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흠.
“희연 님, 얼른 밥 먹으러 가요. 소연 님이 다 퍼가겠어요.”
쓸데없는 가정은 넣어두기로 한다.
마음이야 어쨌든 난 올라가던 중 몸을 돌렸고, 그 결과로 모두가 살 수 있었다.
중요한 건 결과 아니겠는가?
암!
그렇고말고.
* * *
“휴우!”
만족스러운 한숨을 뱉으며 포크를 내려놨다.
“…”
“…”
그제서야 알았다.
나머지 두 명이 흔들리는 눈동자로 날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슥.
둘의 눈동자를 따라 테이블 위를 보니 좀 이해가 갈 것 같았다.
서빙하는 로봇이 주기적으로 다녀갔지만 그릇이 쌓이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고, 결국엔 테이블 가득 접시가 쌓이게 되었다.
“백운 님, 대단하시네요.”
김희연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젓고 있었다.
진짜 노답이다 하며 젓는 건 아니었다.
그저 엄청나구나 하며 무의식중에 고개를 젓는 듯했다.
… 그래야 했다.
어떡하지.
포크를 내려놨다고 해서 오해를 하는 것 같다.
아직 디저트랑 과일 먹어야 되는데.
“백운 님, 실례가 안된다면….”
포크를 내려놓기 무섭게 김희연이 입을 열었다.
내가 도야지처럼 먹는 데 방해될까 봐 이제야 입을 연 듯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어떤 능력을 개방하신 건지 말해주실 수 있나요?”
개미굴을 걸으며 김희연과 김소연의 능력은 들었었다.
김희연은 거리가 멀면 멀수록 총의 위력을 배로 증가시키는 능력.
김소연은 바늘이 통과할 수 있는 모든 걸 꿰매어 버릴 수 있는 능력.
내 차례 때는 조금 얼버무렸었다.
그냥 간단하게 무기를 꺼낼 수 있는 것으로 말이다.
- 흑….
개미굴에서 나온 뒤, 한창 기자들을 따돌리고 돌아온 날 보며 김소연은 울음을 터뜨렸었다.
그렇게 방법 없이 같이 도망치다가 뒤를 돌아버렸으니.
아마 자기들을 살리기 위해 희생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100% 죽었을 거라는 생각은 덤으로.
그런데,
죽었다고 생각한 인간이 비실거리며 기어나오긴커녕 개미굴에 있던 데몬들을 다 쓸어버리며 밖으로 나와버렸다.
그냥 보통의 모습으로 처치 했으면 그나마 나을 텐데, 하늘에 대고 화려한 축포를 쏘아 올리면서 등장해버렸으니 김희연이 궁금해하는 게 당연했다.
“저는 무기를 저장하고, 다시 꺼낼 수 있어요. 물론 일단 무기가 생겨야 저장할 수 있는데, 이게 능력을 가지고 있는 저조차도 언제 생길지 알 수가 없거든요. 개미굴에서도 거의 죽기 직전에 생겨나서 간신히 살아난 거고요.”
진실과 거짓을 양념 후라이드 반반 느낌으로 섞어서 말을 시작했다.
난 높은 확률로 미래의 유물 도둑이 될 수 있는 몸.
쫓길 일이 많을 수도 있는데 능력을 완전히 밝힐 수는 없었다.
“그런 능력이었군요. 눈앞에서 직접 봤는데 너무 엄청났었거든요. 하늘로 솟아오르는 데몬들과 그 데몬들을 분쇄하는 무수히 많은 총알들.”
김소연이 어제 일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김희연 역시 고개를 끄덕이는 상황.
더 물을 것 같지는 않지만, 혹시 모르니 화제 전환을 시도해본다.
“두 분은 내일 바로 등록소로 가시나요?”
“네, 체크아웃하고 바로 가보려고요. 백운 님은요?”
“저는….”
처음엔 가는 김에 등록소까지 같이 갈까 했지만.
완전히 속인 건 아니나 능력에 대해 다 말하지 않은 부분이나, 앞으로의 활동하는데 있어 혼자가 더 마음이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강남이나 좀 구경하다 천천히 가려고요.”
내 대답에 김소연과 김희연이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네요, 등록소까지 같이 갔으면 좋을 텐데.”
“네 그러게요. 정확히 저도 언제 갈지를 모르겠어서 하하. 그런데 두 분은 왜 헌터에 지원하시는 거예요?”
자세히는 듣지 못했지만, 둘의 헌터 지원 동기는 나와 다른 것 같았다.
나와 달리 인천에 집도 있고 먹고 살만함에도 지원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김소연이 잠시 대답을 망설이는 사이, 김희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찾고 있는 게 있어요.”
나랑 비슷하군.
“어떤 데몬을 찾고 있는데… 그 데몬을 찾으려면 저희 둘만의 힘으론 부족하거든요. 발견하게 됐을 때도 둘만으론 역부족이고요. 그래서 조직에 소속되려고 헌터에 지원하는 거예요.”
새삼 비장해지는 김희연의 표정과 왠지 모르게 서글퍼지는 김소연의 열굴.
가볍게 물어본 건데 질문을 잘못 선정한 것 같다.
무슨 데몬을 찾아요?
라는 궁금증은 삼킨 채 빈 그릇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분위기에선 달달한 게 필요하다.
“저는 디저트 가지러 갈 건데, 두 분도 같이 가시죠!”
* * *
호텔에서의 마지막 밤.
두 사람과 저녁까지 먹은 후 부지런히 방으로 돌아왔다.
따각 따각 따각.
컴퓨터가 필요하면 PC방으로 가도 되겠지만, 가능하다면 쾌적한 호텔방에서 끝내고 싶었다.
흠.
어느 정도 정리를 마친 화면을 바라봤다.
다 끝내고 나니 살짝 암담한 심정이 들었다.
역시 별로 없네.
유물관에서 지내며 알게 된 정보들은 대게 두 가지였다.
유물관으로 들어오는 유물들 정보와 다른 국가에서 발견된 유물들의 정보.
정보 자체 양은 꽤 많았지만, 어제와 마찬가지로 무기에 직결되는 게 마땅히 없었다.
대부분이 어떤 역사나 고대 민족의 생활, 혹은 이런 무기가 있었을 것이다 정도를 보여 주는 정보들 뿐.
그렇다고 직결되는 게 하나도 없는 건 아니었다.
몇 가지 정보는 무기와 직결되는 유물들 중 약 10년 후엔 발견되지만 아직은 발견되지 않은 것들이 있었다.
물론 여기서도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이런 정보의 대부분은 장소가 외국이라는 점.
아직은 헌터가 돼서 외국에 갈 기반이 마련되지도 않았고, 한국보다 더 다양하고 강한 데몬이 나타나는 외국에 가서 살아남을 만큼 강해지지도 못한 상태였다.
따각.
기억을 되살려 외국에서 발견된 것들 옆에 발견 날짜와 장소를 적어 넣었다.
시간이 완전 여유롭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당장 가야 할 만큼 촉박하지도 않은 상황.
공식적으로 발견되기 전에만 내가 가서 후려오면 되는 일이다.
그럼 우선은 한국이다.
페이지를 넘겨 직접 발견된 적은 없지만, 한국에서 주어진 정보들로 찾아갈 만한 무기들을 나열해놓았다.
음… 쉽진 않겠네.
접근성 좋은 한국이라고 해서 쉬워 보이는 건 없었다.
무기라고 해서 전부 왕의 무기고에 넣을 수 있는 게 아니었기에 가능할 거라 여겨지는 몇 개만 추려 놓은 것들.
무기가 직접 발견된 건 없었기에 단서를 따라 찾아가야 했다.
“으어어어!”
기지개를 켜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괜히 정리를 했나, 오히려 막막한 심정이다.
아니지.
잭 더 리퍼의 면도칼과 앤 보니&메리 리드의 리볼버.
이 두 가지는 그 어떤 역사서나 기록에도 없던 무기인데 지금은 내가 가지고 있다.
“조급해하지 말자.”
조급해할 필요 없다.
스스로 되뇌며 충혈된 눈을 감았다.
공명이 있는 이상 언제 어디서 무기를 발견할지 모르는 일.
기록한 것들을 목표로 나아가되, 그 여정에서도 무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웃챠.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음을 옮겼다.
언제 또 와볼지 모르는 호텔이니 창밖이나 한번 볼 생각이었다.
오우.
낮에는 복잡 그 자체지만 밤에 보면 형형색색 빛을 뿜어내는 아름다운 도시, 서울.
야경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었다.
내일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