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10급 헌터
“이… 이게 머선 일이여.”
대한민국에서 한 군데밖에 없는 헌터 등록소.
근처에 왔을 때부터 사람들이 우글거리길래 불안했었는데.
“대기번호 341번!”
등록소엔 사람이 말 그대로 미어터지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대체 어디서 나온건가 궁금할 지경이었다.
- 저희는 먼저 가볼게요!
체크아웃 시간보다 일찍 일어나 빠르게 떠나버린 김소연과 김희연.
빨리 떠난 이유가 있었다.
너무 느긋하게 왔나.
일부러 느긋하게 온 건 아니었다.
언제 갈지 모른다며 같이 가고 싶어 하는 두 사람을 거절해버렸던 어제.
그렇게 거절해놓고 혹여나 등록소로 가는 버스라던가 길가에서 만날까 봐 시간을 늦춰 온 것이었다.
“헌터 지원하러 오신 거죠?”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직원이 다가왔다.
줄이 하도 길어 돌아다니면서 대기 번호표를 나눠 주는 것 같았다.
“네 맞아요.”
“몇 급 지원하러 오셨나요?”
질문을 건네며 기계의 특정 번호를 누르려 하는 직원.
아마 지원하려는 급수별로 대기 줄이 따로 있는 듯하다.
“10급 지원하려고 왔어요.”
“…?”
무언가 잘못 말한 걸까.
10급이라 하자 잘못 들었다는 듯 직원이 고개를 들었다.
앞과 뒤에 서 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
“10급이라고?”
“굳이 10급을 지원한다고?”
수군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직원이 다시 한번 물어왔다.
“10급 확실하신가요?”
“네. 확실해요.”
사방에서 저런 반응을 보이니 괜한 걱정이 들려고 한다.
이전에도 심심할 때마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헌터 영상을 가끔 봤을 뿐, 국가직 헌터의 시스템이나 구조에 대해선 잘 알지 못했다.
오히려 소설책이나 역사책, 유물에 대한 기록들을 더 즐겨 읽었던 과거.
“음…”
잠시 난처한 표정을 지은 직원이 입을 열었다.
“10급 헌터도 국가직에 속하긴 하지만 받을 수 있는 혜택이 가장 적어요. 제가 이런 말을 하긴 좀 뭐하지만 거의 소속만 국가에 되어있는 프리랜서라고 봐야 되거든요. 여기서 혜택에는 수준별 팀 배정이나 지역 선정 등도 포함되고요.”
다른 사람들이 웅성거린 이유였다.
혜택이나 지원 수준이 다르다 보니 자신이 가능하다 생각하는 높은 급수부터 낮은 급수로 차례대로 지원하는 게 보통이었다.
처음부터 10급에 지원하는 건 아주 아주 드문 케이스인 것.
“10급도 데몬을 잡으면 국가에서 포상금 주는 건 맞죠?”
“네 당연하죠. 그건 모든 급수가 동일합니다.”
하지만, 이 정도면 됐다.
오히려 좋다.
급수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혜택이나 케어가 늘어나긴 하겠지만, 그만큼 어딘가에 긴밀히 소속되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난 어딘가에 깊이 소속되어 시간을 쏟거나 누군가와 함께하느라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다.
최소한의 밥벌이.
이것이 내가 헌터에 원하는 전부였고, 이것만 가능하다면 국가에서 가장 관심을 덜 가지고 덜 챙겨 주는 10급이 좋았다.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래도 10급으로 할게요.”
“알겠습니다, 여기 번호표입니다.”
직원이 건넨 번호표, 10급의 대기표 600번.
현재 처리 중인 번호 100번.
뭐요?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곧바로 탈주하고 싶게 만드는 대기자 수.
“10급 줄은 이쪽입니다.”
“고… 고맙습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줄을 이동했다.
우글우글.
저건 대체 어느 급수의 줄인가 했었는데, 내가 서야 하는 줄이었다.
침착하자.
어쨌든 온 김에 해야 된다.
돈이 조금 남아 모텔이나 찜질방에서 자는 건 가능했지만, 내일이라고 줄이 적으란 법은 없었다.
이왕 온 거 끝을 보고 간다.
막상 와보니 아까 줄의 사람들이 갸웃거린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사람이 많은 이유도 말이다.
“허허 김씨 할머니도 왔는가.”
“이잉. 내가 뜨개질 하나는 빨리 하지 않는가 껄껄! 저기 사랑방 박씨도 왔네 그려.”
“박씨는 경운기를 빨리 모는 능력이 개방됐다지? 아주 마을의 그 레이싱 선수 머시기냐 박마허여 박마허.”
소일거리를 찾아 나오신 어르신들이 계셨고,
“엄마한테 말하고 왔음?”
“말했더니 바로 해보라 함. 되면 용돈 올려 준댔음.”
소풍을 나온 듯한 어린이들도 있었다.
물론 개방이 시작되고 몇 년이 지났으니 이른 나이에 개방을 한 청소년일 가능성도 있지만,
“어제 뽀통령 지리지 않았음? 반박 시 뽀알못 인정임.”
“오졌지, 별로라고 했으면 뽀알못 반박 불가임. 이거 끝나자마자 가서 볼거임.”
어린이들이 맞는 것 같다.
….
아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잠시 흔들렸다.
스르르 10급 줄을 이탈해 9급으로 갈 뻔했다.
소정의 지원금.
아마도 이렇게 줄이 몰려 있는 이유일 것이다.
헌터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이 지원금 때문에 지원자가 꽤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되면 좋고 안돼도 그만인 10급 헌터.
등록만 된다면 주기적으로 활동에 대한 지원금이 나오기에 안될 것 같아도 일단 지원해보는 게 현명해 보이긴 했다.
처음 등록했던 계열에 따라 계속해서 활동하고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하는 게 좀 귀찮지만, 최소한의 검증이니 어쩔 수 없었다.
난 전투 계열이니까 데몬을 주기적으로 잡아야겠네.
아마 앞에 계신 어르신의 등록이 성공한다면, 뜨개질 한 걸로 다른 사람들을 돕던가 하는 활동을 증명해야 할 터였다.
“하아….”
한숨 나오게 만드는 사람 수.
시간이나 때울 겸 어제 잠들기 전을 떠올렸다.
- 잭 더 리퍼
무기를 꺼내 계속해서 사용하는 것.
잠자리에 들기 전 내가 항상 하는 일이었다.
물론 이미 어느 정도 적응해서인지 처음 사용했던 때처럼 몸이 확 좋아지는 느낌은 없었다.
처음엔 숫자로 치면 제로인 몸 상태였으니 체감상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겠지.
어쨌든, 처음보다 체감은 덜 되더라도 면도칼을 꺼내어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몸 상태가 조금씩이나마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였다.
몸이 피곤하더라도 빼먹지 않고 면도칼을 꺼내고 있는 것은.
멈춰있는 것.
나아가지 못하는 것.
회귀하고부터였던 것 같다.
이런 것들에 대한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생긴 것은.
조금씩이나마 계속 나아가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기에 호텔에 머무르면서도 계속해서 면도칼을 꺼내고 앞으로의 계획을 정리한 것이었다.
그리고,
면도칼을 꺼내며 알게 된 게 있었다.
지속시간의 증가와 쿨타임의 감소.
이건 보니와 리드의 리볼버 덕인 것 같았다.
무기고의 무기가 늘어날수록 다른 무기에도 영향을 끼친다.
정확히는 시너지가 생기는 것 같았다.
리볼버가 새로 추가되며 기존에 있던 면도칼에 생긴 변화들이 그 예였다.
또 하나.
잭 더 리퍼의 면도칼이 처음과 달랐다.
하운드를 썰어버리고 개미굴에서 다시 꺼냈을 때는 상황이 급박해 몰랐지만, 호텔에서 차분히 꺼내고 나니 차이를 알 수 있었다.
뭐라고 표현하긴 힘들지만 면도칼이 조금씩 발전? 하는 느낌이었다.
베어내고 뒤집어쓴 피에 따라 마치 경험치가 쌓이는 듯한 그런 느낌.
참 밀당 오지는 능력이란 말이야.
보통 사람들은 개방과 함께 자신의 능력을 자연스럽게 깨닫는다.
사용법이나 한계, 성장 방법 등등을 말이다.
하지만, 카이안이 계승해 준 무기왕의 능력은 달랐다.
내 능력임에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다고 할 수 있었다.
일단 공간.
카이안과 만났던 공간은 내 안에도 존재했다.
존재하는데, 들어갈 수가 없었다.
처음엔 나의 공간이 되기도 했고 공명도 있으니 들어갈 수 있겠지 했는데 아니었다.
아직 자격이 없다는 건가?
대충 짐작해볼 수 있는 이유였다.
그나마 공간 자체를 볼 수 없는 건 아니다 보니 어떤 무기들이 존재하는지는 알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무기들.
무기들에 대해서도 얼추 사용법은 알지만 완벽하게 아는 건 아니고.
기존 무기의 지속시간이 늘어나며 쿨타임이 줄어든다는 걸 제외하고는 정확히 무기 추가에 따라 어떤 시너지가 발생하는지도 아직 몰랐고, 면도칼에 경험치가 쌓이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게 다 쌓였을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역시 모르는 상태였다.
“10급 400번 창구로 와주세요.”
생각보다 진행이 빠르다.
조금만 있으면 600번을 부를 기세다.
아,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그래도 깨달은 게 하나 더 있었다.
뭐…. 의문이나 깨달음이라기보단 새삼스러운 이해였다.
- 단순히 휘두르는 것이 아닌, 각 무기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다룰 수 있는 것이다.
무기가 가지고 있는 능력.
보니와 리드의 리볼버 같은 경우는 무기 자체적인 능력일 수도 있지만, 잭 더 리퍼의 경우는 확실히 달랐다.
면도칼 자체는 평범한 면도칼.
특별한 건 그런 면도칼을 잭 더 리퍼라는, 보통 사람보다 월등한 움직임과 감각을 가진 살인마가 사용했다는 점이다.
즉, 무기에 담긴 능력은 두 가지로 볼 수 있었다.
무기가 가지고 있는 고유 능력과 주인이었던 사람들이 자신의 무기를 사용함으로써 발생시킬 수 있었던 능력까지.
어…?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옛날에 읽었던 책의 한 소절.
[왕은 검과 함께 호수에 잠들었다]
전설로 전해지는 왕과 검의 이야기.
만약 왕과 검이 실존한다면, 그리고 내가 그 검을 찾을 수만 있다면?
오우야.
알 수 없는 전율이 몸을 관통했다.
엄청난데? 라고 생각하는 사이,
“10급 600번, 600번 창구로 와주세요.”
드디어 번호가 불리었다.
* * *
“백운 님 10급 전투 계열 지원하셨고요, 능력은 저장해둔 무기를 꺼내는 거네요.”
사무적인 목소리로 빠르게 지원서를 훑어 내려가는 접수관.
“10급이긴 하지만 전투 계열은 이곳에서 검증이 불가능해서요. 외부에 있는 국가 헌터 팀에서 간단한 테스트가 이루어질 거고요.”
부스럭.
접수원이 옆에 있는 봉다리를 건넸다.
“액션 캠이에요. 실제로 자신이 데몬을 처치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한 카메라입니다. 캠은 데몬을 잡을 때마다 자동으로 데몬의 급수와 숫자를 카운트하고, 기록된 것에 따라 포상금을 지급합니다. 그리고 국가의 판단에 따라 홍보용 혹은 세금을 위해 인터넷에 올릴 수도 있습니다. 영상에는 후원금 제도가 존재하는데, 세금을 제하고는 모두 제공해주신 헌터에게 돌아갑니다.”
후원금이라니.
조회수를 통해 발생하는 이익은 모두 국가로 돌아가는 듯했지만, 후원금 자체는 내게도 나쁜 시스템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이런 비싸 보이는 액션 캠을 공짜로 주다니.
“아, 감사합니다.”
10급이라도 줄건 다 주는….
휙.
봉다리를 받으려 손을 뻗자 뭐하냐는 얼굴로 다시 거둬들이는 접수관.
“40만 원입니다.”
뭐?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40만 원이라니.
내 남은 돈의 50%를 넘어가는 금액이 아니던가.
“뭐, 영상만 보내 주시면 되는 거라서요. 비싼 거 같으면 여기서 안 사셔도….”
“아닙니다. 살게요.”
하운드의 이빨을 팔고 받은 80만 원이 담긴 일회용 카드.
낮에 강남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사먹느라 액수가 조금 줄어든 카드였지만 액션 캠 가격 정도는 남아 있었다.
“여기 카메라요.”
“네… 넵. 감사합니다.”
떨리는 손으로 액션 캠을 받아 들었다.
고장나기만 해봐라.
“테스트는 등록소 밖에 10급 전투 계열을 위한 차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걸 타고 가세요. 테스트 장소에는 미리 연락을 해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601번!”
빨리 가라는 듯 다음 번호를 부르는 접수관.
이렇게 간단하다고?
물론 아직 어떤 테스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너무 간단해서 놀랐다.
뭐, 간단하면 좋은 거지.
좋은 게 좋은 거지란 생각으로 등록소 밖을 향해 걸어나갔다.
* * *
강남에서 멀지 않은 구룡산 정상.
“선배님, 10급 전투 계열 지원자 한 명 온답니다. 10급 전투 계열이라니… 있긴 있네요.”
….
“선배님?”
아무 대답도 없는 선배에 9급 헌터인 배영태가 고개를 돌렸다.
“어…?”
배영태의 바로 뒤에 서 있는 무언가.
그건 더 이상 선배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와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