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구룡산
“다… 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구지?
혹시 또 나도 모르는 사이 어떤 공간으로 들어오게 된.
“다 왔습니다!!”
벌떡!
명확히 들려오는 두 번째 목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츄릅.
입가로 흘러있는 침 한 줄기.
필시 병 말기였다.
예나 지금이나 차에만 타면 잠들어버리는 병.
호다닥 침을 닦는 모습에 앞에 있던 직원들이 으…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필이면 두 명이나 타고 있어서 창피도 두 배였다.
“구룡산입니다.”
“네.”
구룡산이라 말해준 직원이 조수석을 돌아봤다.
“수빈아 아직도 전화 안 받어?”
“네. 이상하네요. 아무도 안 받다니.”
“아까는 받았지?”
“그쵸. 받았으니까 저희가 출발한 거니까요.”
조심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명찰을 살폈다.
임수빈와 김경찬.
임수빈은 구룡산에 도착하는 시점부터 계속 어딘가로 전화를 걸고 있었다.
“백운 님이라고 하셨죠? 원래는 구룡산 입구로 인수인계 받는 인원들이 내려와 있어야 하는데… 안 보이네요.”
“아… 그렇군요.”
“음, 연락을 좀 더 해보고 안 받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돌아갔다가 나중에 다시 오실래요?”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고민이 시작됐다.
간단한 테스트라고는 했지만 어쨌든 통과해야 공식적인 10급 헌터가 되는 셈.
지금 돌아가면 아무것도 얻은 것 없이 하루종일 등록소와 차 안에서 기다린 게 된다.
차 안에서 퍼질러 자긴 했지만 어쨌든.
“혹시 조금만 더 기다려보거나, 아니면 제가 직접 그분들이 있는 곳으로 가면 안 될까요?”
서로를 바라보는 김경찬과 임수빈.
무언가 조용히 대화를 나누던 김경찬이 메고 있던 안전벨트를 풀었다.
“같이 올라가시죠. 퇴근 시간이긴 하지만.”
살짝 감동할 뻔했다.
직장인이 되어 본 적은 없지만, 유물관에서 일할 때도 김덕만이 퇴근 시간 넘어서까지 일을 시키면 정말 화가 났었기 때문이다.
오늘 처음 본 한 명의 지원자를 위해 아무런 보상 없이 함께 산을 올라주다니.
대한민국의 미래는….
“선배님, 초과 근무 신청했어요.”
“그래, 초과 근무 신청할 땐 몇 시까지 하라고?”
“무조건 10시요.”
“그렇지.”
조금은 어두울지도 모르겠다.
차에서 나와 조금 걸어가니 보이는 구룡산의 입구.
항상 가지고 다니는지 두 사람이 재빠르게 운동화로 갈아 신었다.
“…?”
어허.
임수빈과 김경찬은 똑같은 신발을 신고 있었다.
사내 연애와 동시에 비밀 연애.
직장에선 아닌 척 하다가 퇴근하면 커플 신발로 갈아 신는 모양이었다.
좋을 때네, 훈훈하구먼.
나도 모르게 사십 대 아저씨의 미소가 띠어졌다.
휙!
올라가다 말고 뒤를 돌아보는 임수빈.
“?”
“백운 님, 혹시 산 이름이 왜 구룡산인지 아시나요?”
음….
갑작스러운 질문에 미간을 찌푸리며 기억을 되살렸다.
되살렸지만, 애초에 모르던 걸 기억해내려 한다고 해서 기억이 날리는 없었다.
모르겠다.
전설이나 기록된 역사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고장난 몸 덕에 운동 같은 건 별로 안 좋아했었다.
그러다 보니 건강 운동의 끝판왕인 등산에 대한 관심도 역시 낮은 상태.
관심도가 낮으니 에베레스트나 설악산, 백두산 같은 유명한 산들을 제외하곤 무슨 산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어….”
“모르시는구나! 제가 알려드릴게요.”
내가 모르는 표정을 짓자 재빠르게 알려주겠다 말하는 임수빈.
임수빈이 스마트폰으로 고개를 내렸다.
뭐시여.
방금 검색을 해본 모양이다.
뭐, 그래도 알려주려는 자세가 기특하니 넘어가 주기로 한다.
“산에서 열 마리의 용이 승천하려고 했다고 해요. 그러던 중에 임신한 여성이 그 장면을 보게 됐고 비명을 질렀는데, 그 비명을 듣고 놀란 용 한 마리가 떨어져 버리고 말았대요.”
“아홉 마리만 승천해서 구룡산이군요.”
“딩동댕! 그리고 용이 떨어져 죽은 자리에 물이 생기면서 양재천이 됐다고 해요!”
“우와!”
신나 하는 임수빈에 맞춰 박수까지 곁들여주었다.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해서 구룡산이라.
어쩐지 산 치고는 이름이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설화가 있을 줄은.
물론 내가 용이었으면 조금 킹 받았을 거 같긴 하지만 말이다.
개고생 해서 승천하고 있었을 텐데 비명 소리 때문에 떨어지다니.
“음?”
용의 입장에 빙의해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앞서가던 김경찬이 몸을 수그렸다.
“왜 그러세요, 선배?”
손으로 흙을 만져보는 김경찬.
평온하던 김경찬의 얼굴에 작은 주름이 그려졌다.
“이거… 피 같은데.”
“피… 피요?”
구룡산 이야기로 신이 났던 임수빈도 깜짝 놀라는 모습.
고개를 빼꼼 내밀어 김경찬의 손을 내려다봤다.
피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바닥에 묻은 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빈아, 무기 꺼내.”
“네… 네!”
철컥.
철컥.
두 사람이 메고 있던 가방에서 화기를 꺼내 들었다.
오면서 듣기로는 김경찬과 임수빈 모두 전투와는 상관없는 능력이라고 들었는데, 헌터들은 유사시에 대비한 기본적인 무장을 가지고 다니는 듯했다.
“천천히 올라가 보죠. 별다른 일은 없겠지만요.”
두 사람을 따라 천천히 길을 올랐다.
데몬이 자주 출몰하는 장소 중 하나인 산.
그렇기에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산에는 국가직 헌터가 팀을 이뤄 배치되어 있다고 들었다.
“어디 깊은 곳은 몰라도, 대부분의 데몬은 기존에 있던 팀이 처리했을 테니까요.”
대부분의 데몬이라.
수색 인원을 대규모로 투입하는 게 아닌 이상 산에 있는 데몬의 수는 파악하기 힘들어 보이는데.
“팀은 보통 몇 명으로 구성되나요?”
“책임지는 구역에 따라 다른데, 구룡산 같은 경우엔 30명 규모라고 들었어요.”
30명이라니.
다른 산에 비하면 작다 하더라도 구룡산 전체를 30명이 커버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인원수가 적죠? 그렇다 보니 전체를 책임지는 건 불가능하고 등산로 위주로…!!”
앞서가던 김경찬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내려가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왜 그래요? 선… 흡!!!”
김경찬 옆으로 섰던 임수빈이 입을 틀어막았다.
두 사람의 반응에 천천히 주변을 살피자 처참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풀 속.
붉은 피와 함께 신체 일부분이 흩어져 있었다.
어림잡아 봐도 두세 명 분을 훨씬 넘는 듯한 부위들.
“이게 대체….”
끔찍한 광경에 임수빈이 미간을 찌푸렸다.
“수빈아, 지원 요청해.”
“알겠습니다.”
“백운 님, 아래로 천천히….”
부스럭.
뒤를 돌아내려 가려던 찰나.
근처 수풀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사… 살려주… 세요.”
“!!”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가자 팔 하나를 잃은 남자가 바위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유니폼을 입고 있는 걸 보아 구룡산을 지키던 팀원으로 보였다.
“괜찮아요?!”
남자의 옆으로 다가간 임수빈이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10급보다 높은 헌터들은 기본적인 응급처치법도 배우는 모양이었다.
“후우… 여긴… 위… 위험합니다.”
대충 봐도 적지 않은 출혈량.
남자는 정신만을 간신히 붙잡고 있는 상태였다.
뭐에 당했길래 팔이 이렇게 된 거지.
얼핏 보긴 했지만 절단면이 고르지 않았었다.
무언가의 이빨에 뜯겨진 듯한 상처 부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다른 팀원들은요?”
“변종 미믹… 크럭커가 나타났습니다..”
“!! 산에서 왜 크럭커가….”
상자 모양을 한 데몬, 미믹.
대부분의 미믹은 이동 수단이 없기에 보물 상자인 척 함정을 파고 먹이를 기다리지만, 변종인 크럭커는 달랐다.
팔과 다리를 가지고 태어나 이동이 가능하며, 다른 미믹들보다도 더 단단한 몸체를 지닌 것.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나타났어요. 팀원들 대부분이 죽었습니다…. 몇 명은 도망치긴 했지만… 어떻게 됐을지….”
남자가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도감에서만 봤을 뿐 실제로 만난 적은 없는 크럭커.
단단한 신체 강도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걸 뚫을 만한 화력이 없으면 공략이 불가능한 녀석이었다.
음… 일단 작전상 후퇴를 하는 게 낫겠지.
보니와 리드의 화력이라면 뚫릴 것도 같았지만, 어디까지나 가정에 불과했다.
만약 크럭커의 피부가 더 단단해서 리볼버의 탄환이 먹히지 않는다면 위험할 수도 있었다.
면도칼로는 당연히 안 썰릴 거고.
잭 더 리퍼의 강점은 어디까지나 상대의 급소인 혈관을 끊어낼 수 있다는 것.
혈관이란 것 자체가 없는 크럭커를 상대로는 무용지물이었다.
“응급처치만 한 후 바로 내려가시죠. 지원 요청을 해놨으니 높은 급수의 헌터들이 도착할 겁니다.”
“후욱… 알겠습… 니다.”
찌익.
마지막으로 테이프로 붕대를 마무리한 임수빈.
임수빈이 김경찬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려가….”
쿵! 쿵! 쿵! 쾅!
“!?”
쓰러져 있는 남자를 부축해 내려가려는 때.
멀지 않은 곳에서 땅을 울리는 발소리와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단 숙여요.”
섣불리 움직였다간 크럭커를 만나게 되는 상황.
김경찬의 말대로 바닥에 몸을 바짝 엎드렸다.
군대 훈련소에서 배웠던 각개전투 포복을 여기서 사용하게 될 줄은.
크럭커 님, 부디 이쪽은 신경 쓰지 말고 위로 올라가 주세요.
아직 보이지도 않는 크럭커 님에게 기도를 올렸다.
쿠웅! 쿠웅!
하지만 종교를 믿지 않아서일까.
소리는 조금씩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쾅!
잠시 후, 무언가 터지는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휘릭! 쾅! 펑! 펑!
조금 지나자 달려 올라오는 큰 덩치의 크럭커와 함께 유탄기와 총을 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유… 유한 팀장님!”
쓰러져 있던 남자의 팀장인 것 같았다.
아슬아슬하게 크럭커의 깨물기를 피하며 화력을 쏟아붓고 있는 팀장, 유한.
속도 자체는 크럭커를 앞서고 있었지만, 쏘고 있는 탄들이 전부 통하지 않고 있었다.
무언가 날아 올만 하면 바로 입을 다물어 공격을 몸으로 버텨내는 녀석.
얄밉구만.
상대의 화력이 자신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 못 버티겠는데.
멀리 떨어진 데다 해까지 지는 상황.
제대로 볼 순 없었지만, 얼핏 봐도 유한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어느 정도 떨어진 이곳까지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걸 봐선 체력이 거의 바닥인 듯했다.
“팀… 팀장님을… 도와야….”
“잠시만요.”
침통한 표정의 김경찬이 팔을 뻗어 일어나려는 남자를 말렸다.
“?”
남자가 얼굴에 의문을 띈 사이.
김경찬이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현실적이구만.
어떤 생각인지 알 것 같았다.
남자는 부상이 심한 상태였고, 김경찬과 임수빈이 가진 화기로는 크럭커를 잡을 수 없었다.
괜히 나서서 크럭커에게 인식 당했다간 모두가 죽을 수도 있는 상황.
잔인하긴 하지만 김경찬의 판단대로 몸을 숨기고 있는 게 옳았다.
남자도 그런 김경찬의 생각을 읽은 건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흠, 가서 리볼버라도 한 번 부어봐야 하나.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도의상으론 나가서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보는 게 옳았지만, 말 그대로 도박.
이성적인 판단은 아니었다.
잔인하지만 현실적인 선택을 한 시점.
앞에서 크럭커와 유한이 싸우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지만, 모두가 죄책감 섞인 얼굴로 그 소리를 못 들은 척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그래도 나가서 해보는 게 옳지 않을….
번쩍.
내가 심각하게 갈등하는 걸 알아준 걸까.
갈등을 해결해주려는 빛이 보였다.
이전과 같은 황금빛은 아니지만, 마치 날 부르는 듯한 연보랏빛의 반짝임.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크럭커가 공격을 위해 입을 열 때마다, 그 안에서 말이다.
크럭커의 입안.
왜 하필….
와작! 와작!
저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