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선택지는 하나
하느님, 어째서 저놈 아가리 안에 빛이 있단 말입니까.
믿지도 않으면서 신을 찾아도 되는지는 의문이었지만, 그만큼 난감한 상황이었다.
스윽.
고개를 돌려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아무 반응도 없는 걸 보아 확실히 저 보랏빛은 나에게만 보이는 것 같았다.
그렇다는 건 카이안의 능력과 관련이 있다는 것.
차라리 지금까지와 같이 황금색 빛이었다면 무기구나 했을 텐데, 대체 저 빛은 뭐란 말인가.
아, 물론 색깔에 상관없이 집으러 가야 된다는 건 동일하지만 말이다.
저 보랏빛은 처음 보다 보니 집으러 가야 된다는 의무감에 더해 궁금증까지 솟아나고 있었다.
무기를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큼이나 중요한 건 내 무기왕 능력의 파악이었다.
특정한 조건이 갖춰질 때마다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무기고의 시스템.
지금 저 보랏빛을 놓친다면 언제 나타날지 몰랐고, 그만큼 관련된 시스템을 언제 파악하게 될지 역시 기약이 없어지게 된다.
선택지는 없다.
무조건 집어야 된다.
“빨리 지원이 도착하기를….”
옆에서 임수빈의 간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임수빈이 긴급 연락을 했으니 열심히 달려오고 있을 지원팀.
조금 전까지는 나도 지원팀이 빨리 도착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변했다.
지원팀이 도착해 크럭커를 잡아버리는 순간.
크럭커의 입안에서 빛나고 있는 물건이 모두의 눈앞에 나타나게 될 것이다.
빛만 안 보인다뿐이지 물건 자체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보일 터.
그렇게 됐을 때 과연 헌터들이 그 물건을 내게 넘겨줄까?
절대 안 주지.
나 같아도 안 주겠다.
빛이 나는 걸 봤을 때는 보통 물건이 아닐 터.
바닷가에서 발견된 유리병도 대기업에서 사람을 보내 가져가는 판국에 크럭커가 뱉은 걸 내게 줄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난 10급 헌터니까.
1급이었으면 감히 내 물건을 탐내는 녀석들의 뺨따기를 한 대씩 때리고 갈취했겠지만, 지금은 그랬다간 공무 집행 방해 같은 걸로 깜빵 행이다.
지금 밖에 없다.
지원팀이 도착하기 전에 내가 잡아야 한다.
생각해라, 백운.
머리를 최대치로 돌리기 위해 미간에 힘을 줬다.
조금 전까지는 과연 도박을 해가면서까지 유한이란 팀장을 구해야 하나를 고민했다면, 지금은 어떻게 아무도 없는 곳에서 저 보물 상자년을 처치하는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회귀 전 읽었던 크럭커에 대한 정보를 떠올렸다.
아니지, 떠올릴 필요도 없었다.
크럭커의 약점은 명확했다.
약점은 아가리…. 아니, 입속.
미믹의 특징은 상자처럼 생긴 외관과는 달리 안쪽은 생물과 같다는 것이다.
크럭커도 마찬가지.
다른 미믹보다 내구성이야 강하겠지만, 입안으로 화력을 때려 박으면 제아무리 크럭커라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크럭커 역시 자신의 약점을 알기에 관리가 철저하다는 점.
어떻게 화력을 때려 박는 동안 저 입을 벌리게 하고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스윽.
필요한 정도까지의 생각은 마쳤다.
일단은 움직인다.
“백운 님…?”
바짝 엎드려 있다가 슬금슬금 몸을 일으키니 옆에 있던 임수빈이 작은 목소리로 날 불렀다.
다 죽고 싶은 거 아니면 당장 몸뚱이를 낮추라는 무언의 말이 섞여 있었다.
“전 팀장님 구하러 갈게요.”
“!?”
나머지 세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날 향했다.
이 사람이 미쳤나?
모두의 얼굴에서 보이는 의문이었다.
이해 가는 반응이었다.
자기들도 못 잡아서 침통한 심정으로 포기하고 있는 크럭커를 10급 헌터 지원자가 잡겠다니.
“백운 님 심정은 이해 가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맞아요. 백운 님 마음은 충분히 알겠으니까….”
뭘 알아, 이 사람들아.
지금 내 마음이 얼마나 급한데.
“아뇨, 전 저분이 죽는 걸 지켜볼 수만은 없어요. 아무리 말리셔도 전 갈 겁니다.”
“!”
비장한 얼굴로 말하자 세 사람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은 겁에 질려 숨어있는 걸 선택했는데 처음 보는 10급 지원자가 팀장을 구하러 나가겠다니.
“그럼… 저도 가겠습니다.”
김경찬이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니야, 오지 마.
인원수가 많을수록 잡을 확률이 늘어난다면 데려갈 만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어차피 김경찬의 화력은 크럭커한테 통하지 않는 상태.
“경찬 님이랑 수빈 님은 여기에 계세요. 저는 싸우러 가는 게 아니에요. 체력이 남으니 따돌려보려는 거죠. 둘 이상 나가면 괜한 위험만 더 증가시킬 뿐이에요.”
“하지만…!”
김경찬이 무언가를 말하려는 순간.
김경찬이 옆구리에 끼고 있는 기다란 중화기가 눈에 들어왔다.
어허?
요것 봐라?
“경찬 님, 절 정말 돕고 싶으신가요?”
“당연하죠, 어떻게 백운 님 혼자 보내….”
슥.
손을 들어 김경찬의 중화기를 가리켰다.
“그럼 그거 좀 빌려주세요.”
“이걸 왜…?”
쿵! 쿵! 퍼엉!
“빨리요, 시간 없어요. 저러다 팀장님 죽겠어요.”
김경찬의 허락이 떨어지기 전.
다급한 척을 하며 중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럼 잘 숨어 계세요! 저를 위해서라도 나오시면 안 돼요!”
다시 한번 강조를 한 후,
팟!
크럭커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 * *
‘크으….’
구룡산 팀을 이끌던 팀장, 유한.
유한이 입술을 깨문 채 위로 내달렸다.
쿵! 쿵! 쿵!
뒤에서 무섭게 쫓아오는 변종 미믹, 크럭커.
대체 저놈이 왜 여기에 있는 건지는 유한 역시 알지 못했다.
- 팀장님, 주말에 내려가면 뭐 사주실 겁니까?
몇 년째 구룡산에서 함께 생활해 온 팀원들을 떠올렸다.
교대 시간을 제외하곤 산에 처박혀 있어야 하는 근무.
그런 환경에서도 팀원들은 한 마디 불평 없이 잘 따라 와줬다.
- 뭘 사줘, 임마. 오늘 저녁에 뭘 먹을지나 고민해봐.
- 하긴… 아직 주말 멀었죠. 오늘은 라면이나 끓일까요?
여느 날과 다름없는 하루였다.
평소처럼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시간이 되면 라면을 끓이거나 고기를 굽거나 하는 평범하고도 평화로운 하루.
그리고,
이런 평화를 깬 위험은 소리소문없이 다가왔다.
처음부터 크럭커를 발견한 건 아니었다.
밥 시간이 되었음에도 돌아오지 않는 팀원이 걱정되어 마중 나갔을 뿐이었다.
- 으적. 으적.
팀원 몇 명과 함께 마중을 나간 장소.
그곳엔 기다리고 있던 팀원들이 있었다.
사지가 뜯기거나 상반신이 사라진 채로 말이다.
- 으아아!!!
동료를 잃었다는 분노.
몇 년을 함께 했던 동료가 저딴 데몬에게 씹어 먹히고 있었다.
그 분노에 눈이 돌아간 유한과 팀원들은 크럭커를 향해 가지고 있는 화력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유한과 팀원들의 분노를 비웃듯 크럭커에겐 작은 상처 하나조차 남지 않았다.
전부 다 튕겨 나와버리는 말도 안 되는 몸의 강도.
- 으직!
공격이 전부 막힌 후엔 참극이 시작되었다.
크럭커의 일방적인 식사 시간.
- 으아아! 티… 팀자….
- 으득.
유한은 인정할 수 없었다.
현실성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지금 보고 있는 게 정녕 현실이란 말인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같이 웃고 떠들던 팀원들이 지금은 데몬의 입속에서 처참하게 분해되고 있었다.
- 날 따라와라!!
이미 많은 팀원들이 죽었지만, 남은 인원이라도 살려야 했다.
다시 가지고 있는 화력을 쏟아부어 크럭커의 관심을 끌었다.
- 와작! 와작!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는지 크럭커가 흉측한 이빨을 보이며 따라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다.
해가 저물어 산에 어둠이 찾아오는 지금까지 크럭커와 술래잡기를 하게 된 것은.
‘젠장!’
여전히 바짝 쫓아오는 크럭커.
유한의 얼굴에 낭패감이 물들어갔다.
크럭커의 속도가 빠른 건 아니기에 지금까진 잘 도망치고 있지만, 문제는 체력이 바닥이라는 것.
“허억….”
이미 숨이 턱 밑까지 차올라 호흡 한번 한번이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상태였다.
그에 반해 조금의 처짐도 없이 계속해서 따라오는 크럭커.
체력이란 한정된 자원이 존재하지 않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딱 한 번…!’
유한이 고개를 내려 들고 있는 화기를 바라봤다.
아직 마지막 한 방이 남아있었다.
유한의 능력은 미리 표식을 새겨둔 물체에서 가시를 돋게 하는 것.
그리고 들고 있는 화기 속의 탄환엔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저 입속으로 한 발만 넣을 수 있다면!’
가능성은 있었다.
펑! 펑! 펑!
계속해서 화기의 유탄을 쏘아댔다.
통하지 않을 거란 건 알고 있다.
유탄의 용도는 크럭커의 화를 돋우기 위한 것.
빨리 잡아먹고 싶어 안달 나도록 도발해야 했다.
‘속도를 조금씩 줄이자.’
크럭커가 의심하지 않도록 조금씩 속도를 줄여나갔다.
사실 일부러 줄이지 않더라도 이미 체력이 바닥이기에 어차피 오래가진 못했다.
흥분한 크럭커가 유한을 잡아먹기 위해 입을 벌리는 순간.
‘입안으로 박아 넣어 주마!’
어느 정도 거리가 좁혀진 상태.
쩌억!
유한을 다 잡았다고 생각한 크럭커가 입을 벌렸다.
‘지금이다!’
유한이 빠르게 몸을 돌렸다.
팀원들의 미래를 뺏어간 놈.
이놈을 죽인다고 해서 죽은 팀원들이 돌아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죽여서 최소한 원수라도 갚아야 했다.
“뒤져라 이 새끼야!!”
유한이 크럭커의 벌려진 입을 향해 화기를 조준하고,
타다라라라라라!
표식이 새겨진 수십 발의 총알이 크럭커의 입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빠르게 쏘아졌기에 입을 다물 틈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발현!”
드드드드!
유한의 외침과 함께 크럭커의 입으로 들어간 탄환에서 무수한 가시가 솟아져 나왔다.
아무리 크럭커라도 입안은 생물과 동일할 터.
이제 저 가시와 탄환에 갈기갈기 찢겨….
“어?”
드드… 득.
크럭커가 입을 벌린 타이밍과 그 타이밍에 맞춰 총을 쏜 유한.
모든 게 유한이 계획한 대로 흘러갔다.
단 하나.
유한의 예상과 다른 게 있었다.
크럭커 입안의 강도.
일반 미믹보다는 강할 거라 생각했지만, 이건 예상 범위 밖이었다.
발사된 탄환과 유한의 능력으로 인해 발현된 가시는 크럭커의 내막을 뚫지 못하고 있었다.
카칵!
오히려 내막의 내구성에 밀려 부러져 버리는 가시.
쩌어어억!
입안에서 돋아나는 가시는 아랑곳하지 않는 크럭커.
크럭커의 벌어진 입이 유한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이미 가속력을 잃었고, 체력도 바닥인 상황.
‘죽는다….’
한계였다.
이제 남은 건 죽은 팀원들을 뒤따라가는 일뿐이었다.
가까워져 오는 흉측한 이빨을 보며 유한이 천천히 눈을….
덥석!
‘!?’
죽음을 인정하고 포기하려는 순간, 누군가의 손이 유한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휙!
그대로 뒤로 당겨져 옆으로 던져지는 유한.
죽었다고 생각한 찰나였는데 내던져지다니.
유한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처음 보는 남자가 서 있었다.
자신이 삶을 포기하고 앉아있던 자리보다 조금 더 떨어진 자리.
퍼엉!!
남자가 들고 있던 화기에서 탄을 발사됐다.
‘저건 국가 헌터들에게 주어지는 화긴데?’
“누… 누구…?”
반사적인 물음에 크럭커와 대치하고 있는 남자, 백운이 입을 열었다.
“10급 헌터..”
쩌어어억!
백운이 자기소개를 하려는 찰나, 식사를 방해받은 크럭커가 돌진해 왔다.
후다닥!
곧바로 등을 돌려 도주를 시작한 백운.
그런 백운이 못 다한 소개를 마쳤다.
“지원자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