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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15화 (15/473)

15화. 입 벌려

누군가에게 쫓기는 꿈.

다들 꾸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뭐가 쫓아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엄청난 공포에 휩싸여 온몸이 벌벌 떨리는 꿈.

이런 꿈의 결말은 쫓기던 것에 잡히는 것이었고, 식은땀과 함께 잠에서 깨어나게 된다.

덜덜!!

지금의 내 상황이 그 꿈과 같았다.

문제가 있다면 꿈이 아닌 슈퍼 리얼이라는 것.

와작!

뒤에서 머리를 쭈뼛 서게 하는 입질 소리가 들려왔다.

당장 널 씹어버리겠다는 의지가 가득 담긴 입질.

후다다다다닥.

빠르게 달리며 드는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개무섭다.

진짜 미치도록 무서웠다.

뒤에서 내 몸을 씹어 먹기 위해 쫓아오는 데몬이라니.

여느 추격 꿈처럼 잡히면서 끝나는 엔딩은 절대 안 된다.

우지끈!

오랜 술래잡기 끝에 먹으려던 식사를 방해해서일까.

크럭커는 아까보다 더 화가 나 보였다.

와작! 와작! 와작! 와작!

미친놈이 입질을 몇 번 하는 거야?

그만큼 내가 화가 났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했다.

그만했으면 좋겠다, 저 입질.

그냥 조용히 따라오면 얼마나 좋을까.

저 소리를 들을 때마다 오금이 저려왔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은 지린 것 같았다.

조금 전 유한을 낚아채느라 크럭커에게 가까이 다가간 순간.

예상보다 조금 더 다가가서인지 입을 벌리고 있는 크럭커를 정면으로 봐버렸다.

사람의 몇 배는 되어 보이는 입의 크기와 삐죽삐죽 흉측하게 솟아있는 이빨.

그리고 이빨에 묻어 있는 무언가의 붉은 잔여물까지.

시발.

반사적으로 시발 소리가 절로 나오는 생김새였다.

순간이지만 내 판단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의심이 들 정도.

와작!

녀석과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건지 궁금했다.

하지만 돌아보는 건 사치였다.

어느덧 어둠이 내려 깜깜해진 깊은 산 속.

산에는 걸려 넘어질 게 얼마든지 있었다.

해까지 사라져 바로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상황.

뒤를 돌아본다는 건 미친 짓이었다.

쿵!

앞이 잘 안 보이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미믹보다야 낫겠지만 크럭커의 눈은 제대로 발달되지 못했다.

사방이 밝은 낮이야 어느 정도 보이겠지만, 지금 같이 밤이 깔린 상황에서 크럭커의 시야는 거의 없다 봐도 무방한 상태.

와자자아악!

계속 보이지 않는 지형에 부딪혀서인지 크럭커의 소리가 점점 흉폭해졌다.

운아 집중하자.

스스로의 이름을 부르며 눈에 모든 신경을 쏟아부었다.

지금은 기본 속도만으로도 크럭커에겐 잡히지 않는 상황.

하지만, 산속인 만큼 방심은 금물이었다.

조금이라도 돌뿌리에 걸리거나 하는 순간 면도칼을 꺼내 들어야 했다.

스윽.

달리는 속도만큼 빠르게 지나쳐 가는 나무와 바위들.

뒤까지는 못 보지만 달리는 내내 주변은 살피고 있었다.

적절한 장소.

내 행동에 변수가 없어지고 완벽히 크럭커의 입에 탄을 박아 넣을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

거기다 아래에 있는 네 명의 사람들.

개미굴에서의 화력을 봤을 때 아래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가는 사람들이 휘말릴 수도 있었다.

- 팀 구성은 30명이에요.

대부분 죽었다곤 하나 생존자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사람들이 휘말리지 않을 장소를 찾고 있었다.

모두를 구해야 한다거나 하는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살 수 있는 죄 없는 사람까지 죽이는 건 다른 일 아니겠는가.

탓.

사람들이 있던 곳에서부터 얼마나 달려온 걸까.

정상으로 가까워지고 있는 건지 사방을 채우고 있던 나무가 많이 사라졌다.

자연스럽게 시야가 트이며 달빛에 의해 웬만한 지형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상 쪽은 바위인 산이구만.

쿵. 쿵. 쿵.

시야는 너만 트인 게 아니라는 듯 이젠 부딪히지 않고 잘 따라오는 크럭커.

저 짧은 팔다리로 이렇게 잘 쫓아오다니, 정말 대단한 놈이다.

크럭커의 사지.

커다란 상자 형태를 띄고 있는 몸체완 달리 크럭커는 사람과 비슷한 팔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사실 저 짜리몽땅한 팔다리만 보면 귀여운 녀석이다.

와작!!

저 주댕이를 벌리면 얘기는 달라지지만 말이다.

!?

열심히 달리던 중 눈에 들어오는 거대한 바위 하나.

내가 찾고 있던 생김새의 바위였다.

사람의 키보다 높게 뻗어 있으면서도 크럭커의 입질에 부서지지 않을 두께의 바위.

퉁!

크럭커의 텐션을 올려주기 위해 유탄을 한 발 발사해줬다.

퍼엉!

정확히 크럭커의 안면에 직격하는 유탄.

내가 이래 봬도 군 시절 4번 분대원, K201 유탄 사수였다 이거야!

와자자자자자!!

예상대로 속도를 붙이는 크럭커.

놈을 바위의 위쪽으로 유인하며 머리속으로 되뇌였다.

[잭 더 리퍼]

오른손에 면도칼이 나타나며 몸이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안에서 끓어오르는 무언가.

계속 꺼내도 적응이 안 된단 말이지.

끓어오르는 건 특유의 갈증이었다.

당장 뭐라도 베지 않으면 몸이 간질간질한 그런 갈증.

잭 더 리퍼 이 자식….

희대의 네임드 살인마다운 놈이다.

척.

적당한 위치에 도착한 시점.

달리는 걸 멈추고 몸을 돌렸다.

짧은 다리를 구르며 열심히 달려오고 있는 크럭커.

저벅.

크럭커에게 파고들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 * *

구룡산의 입구.

백운이 크럭커를 데리고 올라간 덕에 네 사람은 무사히 산을 벗어날 수 있었다.

….

지원팀을 기다리는 네 사람 사이엔 무거운 정적이 깔려있었다.

살아남은 건 천만다행이었지만, 국가직 헌터라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민간인의 희생으로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끼이익!

그때 정적을 깨며 도착한 특수 차량 한 대.

멈춘 차 안에서 한 명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 한 명?”

“어째서 한 명만 온 겁니까! 위에 있는 건 크럭…!?”

자리에서 일어났던 김경찬이 말을 멈췄다.

만사가 귀찮다는 얼굴로 서 있는 중년의 남자.

모를 수 없는 얼굴이었다.

국가에서 몇 안 되는 1급 헌터 중 한 명, 기태랑.

긴급 구조 신호를 보냈다곤 하나 보기조차 힘들다는 1급 헌터가 오다니.

“기… 기태랑 님!”

저벅.

다가온 기태랑이 상황을 살폈다.

팔이 잘려있는 한 명과 팀장급 한 명, 그리고 비전투 인원으로 보이는 8급 헌터 두 명까지.

“괜찮나?”

“지… 지혈은 했지만 빨리 병원으로 옮겨야 할 것 같습니다.”

“너네는 환자 데리고 병원으로 가.”

다급해진 임수빈이 앞으로 나왔다.

“위에 민간인이 한 명 있습니다!”

“뭐?”

“10급 헌터 지원자인데… 그분이 크럭커를 몰고 위로 올라갔습니다.”

믿기 힘든 말에 눈썹을 꿈틀거리는 기태랑.

기태랑이 발아래로 힘을 집중시켰다.

“어느 방향이야?”

* * *

쐐엑.

조금 전까지 도망치던 놈이 돌격이라니, 누군가 보면 미친놈이라 할 수 있겠지만.

면도칼을 꺼낸 시점부터 크럭커보다 월등한 속도를 가지게 된 상태.

놈에게 잡힐 일이 없기에 더 이상 맞서는 걸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스악!

갑자기 먹이가 돌진하자 놀랐는지 한 차례 입질을 하는 크럭커.

와작!

귓가로 크럭커의 입질 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굳이 따지면 50cm도 안 되는 거리였다.

갈아입어야겠다.

적셔졌을 무언가를 떠올리며 크럭커의 짧은 다리로 쇄도해 들어갔다.

몸처럼 단단하지 않지만 크럭커의 팔다리가 약점으로 분류되지 않는 이유는 하나였다.

너무 짧았다.

거기다 거대한 몸에 가려져 있기까지 하니 저 숏다리를 노리고 무언가를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

하지만,

난 가능하다.

서걱.

크럭커가 다음 반응을 하기도 전.

빠르게 숏다리 하나를 베고 지나갔다.

사람의 형태라곤 해도 혈관 같은 게 존재할 리 없는 다리.

피를 다 뿜어내게 해서 죽일 생각은 당연히 아니었다.

와자아아악!!

기대에 부응하는 반응을 보여주는 크럭커.

크럭커가 이리저리 몸을 회전시키며 입질을 시작했다.

쐐엑!

그러든 말든.

계속해서 주위를 빙빙 돌며 크럭커의 숏다리를 베어 나갔다.

누군가를 팰 때도 팼던 곳만 패야 되듯, 지금도 같은 숏다리만을 베고 있었다.

쿠웅!

몇 번이나 면도칼을 휘둘렀을까.

숏다리가 끊어지며 크럭커의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스으으.

“!?”

크럭커에게 의사소통 능력은 없지만, 녀석의 당혹감이 내 발을 타고 올라왔다.

왜 내 발을 타고 올라오냐면, 난 지금 크럭커의 위에 올라와 있기 때문이다.

와… 와자… 악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녀석의 몸이 조금씩 떨려오는 것 같았다.

내가 무서워서는 아니겠지.

오히려 반대일 것이다.

몸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분노.

한낱 먹이 주제 소중한 다리 하나를 끊어낸 것도 모자라 머리 위에 서 있다니.

빡칠만 하지.

여름밤, 피곤한 몸을 눕히고 달콤한 잠에 빠지기 직전.

위이이잉.

귓가에 들려오는 모기 소리를 떠올려보라.

다급하게 귀 옆으로 손을 휘둘러보지만 얍실한 모기 놈이 잡힐리는 만무.

일어나기 싫은 귀차니즘에 몇 번은 무시해보지만, 계속해서 들려오는 소리에 마음을 먹는다.

죽여버린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끼며 불을 켠 뒤 졸린 눈을 비비며 한참을 찾아보지만.

날 괴롭히던 녀석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그리고 불을 끈 뒤 다시 누우면?

위이이잉.

그때의 기분일 것이다.

와자아아아아아아아악!!!

예상대로 폭발해버린 크럭커.

크게 입을 벌리는 녀석에게서 벗어나 봐뒀던 바위로 위치를 바꿨다.

정확히는 바위 아래로 사사삭 기어들어 갔다.

등으로 느껴지는 바위의 편안함.

투우웅!!

오우야.

남은 숏다리 하나로도 저 정도 점프력이라니.

숏다리가 열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우우웅!

바위에 기댄 채 날아오는 크럭커를 바라봤다.

눈에 뵈는 게 없지?

크럭커는 생각보다 약삭빠른 데몬이었다.

공격이 올만 하면 입을 다물고, 가끔은 입을 벌리는 척 하면서 상대를 유인할 때도 있었다.

그런 크럭커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하나.

주변을 살필 겨를이 없을 정도로 눈이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다.

쩌어어어억!!

도발은 성공적이었다.

입이 저렇게 컸구나 싶을 정도로 주댕이를 쩌억 벌린 채 날아오는 크럭커.

김경찬에게 뺏어 빌려왔던 화기를 준비했다.

크럭커의 벌려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할 2차 나무 막대기.

그 막대기의 역할을 화기가 해줘야 했다.

콰드득!!

날아든 크럭커의 이빨이 1차 막대기 역할인 바위에 파고들었다.

예상대로 단단히 버텨주는 바위.

바위가 버티지 못하고 부서지면 바로 쨀 생각으로 면도칼을 해제하지 않고 있었는데, 다행이었다.

휙.

화기를 세로로 세워 크럭커의 입 안쪽으로 던져 넣었다.

쏙 들어가며 안쪽에서 지지대의 역할을 해주는 화기.

화기의 역할은 끝났다.

드드드드.

내가 바로 아래에 있다고 여겨서일까.

크럭커는 바위에서 이빨을 빼긴커녕 어떻게든 나와 함께 씹어버리겠다는 심산인 것 같았다.

번쩍!

그런 놈의 입안에서 흘러나오는 보라색 빛.

빛은 크럭커의 입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앤 보니&메리 리드]

손에 있던 면도칼이 사라지며 리볼버 두 자루가 생겨났다.

스윽.

소중한 보라색 빛에 맞지 않도록 크럭커의 벌려진 입 중앙을 조준했다.

사람을 치면 목에 해당하는 위치.

와자아아아!

녀석의 부들부들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것 같았다.

후우.

조준을 마친 후, 나를 씹으려고 애 쓰고 있는 크럭커를 올려다봤다.

“야.”

“?”

“아가리 벌려라.”

철컥.

시원한 느낌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쳤다.

씨익.

“탄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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