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드가자
대산의 홍보실.
실장 최리아가 모니터를 바라봤다.
# 탄 들어간다.
팀장 전수희가 급히 알려온 동영상.
‘그 남자네.’
하늘로 치솟는 탄환.
적색과 청색이 담긴 빛에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개미굴의 남자, 백운.
개미굴 때부터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굳이 언론에 공개하거나 하지 않았었다.
안 그래도 백운 때문에 물 먹어서 화가 나는데, 물 먹인 남자를 더 유명하게 만들어 줄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허… 21만?”
눈에 띄는 조회수에 최리아가 혀를 찼다.
올라온 지 하루도 안되는 동영상이었다.
그것도 무기왕이란 닉네임으로 올라온 첫 동영상.
그런 동영상이 조회수 21만이라니.
끼익.
의자에 몸을 기댄 최리아가 이마를 짚었다.
개미굴부터 엄청난 임팩트를 보여줬던 백운.
그때는 대산의 삽질로 운 좋게 퍼진 거라 그러려니 했었는데, 눈앞의 영상은 달랐다.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업로드된 동영상.
국가엔 수많은 헌터가 소속되어 있었고, 그 숫자에 비례하여 한튜브에 올라오는 동영상의 수는 하루 만 개에 육박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런 조회수라니.
“이것 봐라?”
저 정도 화력을 뿜어낼 수 있는 인원은 대산에도 많이 있었다.
화력만 놓고 보면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존재.
하지만, 이 영상은 달랐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몰입감을 극한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동영상.
대부분의 헌터가 돈벌이와 유명세만을 위해 대충 안전한 사냥감을 찾아다니며 영상을 찍는 게 현실이었다.
그런데 이런 목숨을 건 데몬 사냥 동영상이라니.
띡.
최리아가 호출 버튼에 손을 올렸다.
“전수희 팀장.”
- 네! 실장님.
“저 백운이란 남자.”
최리아의 눈에 확신이 깃들었다.
“데려오세요.”
* * *
구룡산을 오르기 시작한 지 세 시간.
덕문이 그려준 옹달샘까지는 쉽게 갈 거라 생각했는데 큰 착각이었다.
“크와오!”
잊을만하면 데몬이 튀어나와 길을 가로막았다.
푹푹!
“크오.”
쿵.
그나마 다행이라면 약한 녀석들이라 무기고의 무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상대가 가능하다는 것.
오는 길에 사왔던 정글도는 지금까지 데몬을 죽인 것만으로도 충분히 뽕을 뽑을 것 같았다.
“후우우.”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초코바와 물을 꺼냈다.
이건 뭐 산이 아니라 던전이었다.
강하지 않다 하더라도 데몬이 이렇게나 자주 나오다니.
냠.
초코바를 씹으며 매고 있는 화기를 내려다봤다.
최대한 면도칼과 리볼버를 안 꺼내기 위해 챙겨온 건데, 소음 때문에 데몬이 몰려들까 쉽게 쓰지 못하고 있었다.
물속에서라도 잘 써야지.
슥슥.
“허어어!”
계획과 달리 열일 중인 정글도를 정성스럽게 닦아줬다.
입김까지 불어가며 뽀득뽀득 소리가 날 때까지 닦아 줄 생각이다.
그나저나 많이 좋아졌구만.
산을 올라오며 첫 데몬을 만났을 때는 잠시 고민했었다.
면도칼을 꺼내야 하나?
리볼버에 비하면 길지 않지만, 면도칼에도 두어 시간 정도의 쿨타임이 존재했기에 가능하다면 최대한 넣어두고 싶었다.
막 썼다가 정말 필요할 때 못 쓰는 사태가 생길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위험해 처하면 꺼내야지 하는 마음으로 달려드는 데몬을 향해 정글도를 휘둘렀었다.
그리고, 놀라고 말았다.
다가온 데몬의 발톱을 가볍게 피한 후 들고 있던 정글도를 휘둘렀다.
- 서걱.
깔끔한 소리와 함께 피를 뿌리며 쓰러진 데몬.
?
너무 간단해서 놀랐고, 생각보다 더 잘 움직여 주는 몸에 다시 한번 놀랐다.
면도칼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몸 상태가 올라오고 있다는 건 알았는데 이 정도라니.
사방에서 데몬이 덮쳐오는 상황이 아니라면, 무기를 꺼내지 않고도 웬만한 녀석들은 충분히 상대가 가능할 것 같았다.
다행이네.
무기고를 사용하지 않아도 데몬을 잡을 수 있다는 걸 확인한 후.
마음엔 한층 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간단한 데몬 한 마리조차 그냥 잡지 못 했다면 무기들의 쿨타임이 도는 동안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을 텐데.
정말 다행이었다.
꿀꺽.
초코바 하나를 게 눈 감추듯 삭제시킨 뒤 다시 몸을 일으켰다.
계속 가야 했다.
조금 있으면 해가 지는 시간.
어둠 속에서 후레쉬를 켠 채 나 여기 있소! 광고하면서 다니는 건 위험했다.
그렇게 멀진 않아.
덕문이 추가로 그려준 그림이 네비게이션처럼 정확한 지점을 나타내고 있진 않지만, 거리상으로 봤을 땐 근처였다.
“후우우웁!”
목표는 옹달샘.
해가 지기 전까진 어떻게든 도착한다.
* * *
풀썩.
“으어.”
땅바닥에 몸을 뉘었다.
대체 몇 시간이나 헤맨 걸까.
해가 진 뒤에도 도착하지 못해 몇 번을 왔다 갔다 했는지 모르겠다.
뭐 어쨌든.
도착했다.
사아아아.
물이 있어서인지 시원하게 불어오는 산바람.
죄송합니다, 어르신!
마음속으로 덕문에게 사과를 올렸다.
길을 헤매며 마음속에서 덕문에 대한 불신이 스멀스멀 피어올랐었기 때문이다.
거리상으론 얼마 안됐는데 이렇게까지 도착을 못 하다니.
설마 사기?!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애초에 거리에 따른 시간에 맞춰 딱 도착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덕문의 찍어준 건 대략적으로 이쯤이다 였기에 캄캄한 산에서 단번에 도착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
엉금엉금.
샘까지 기어가 물 앞에 자리를 잡았다.
땀에 절여진 얼굴이라도 씻어낼 생각이었다.
첨벙.
!!
그렇게 물에 손을 담근 순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내가 물 감정사 같은 건 아니었지만, 비늘을 통해 몸을 담궜던 물과 똑같은 감각이 느껴졌다.
제대로 왔구만.
다시 한번 덕문의 가게 쪽으로 인사를 한 후 가져온 짐을 풀었다.
물속으로 들어갈 때 착용할 슈트와 오리발, 물안경, 산소통까지.
더럽게 힘든 일이었다.
이것들을 다 들고 산을 오른다는 것은.
장하다, 백운.
잘 올라온 스스로를 다독이며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짐을 꺼내 들었다.
바스락.
사각형의 라면 두 봉지.
물속 탐험을 하기에 앞서 가장 중요한 짐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니까.
앞으로 최소한 몇 시간은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상황.
체력이 떨어져 오리발을 젓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산을 오른 건 모두 헛수고가 되고 만다.
팡.
예쁘게 뜯긴 라면 봉지 위로 챙겨왔던 보온병을 기울였다.
뜨거운 김을 내며 부어지는 보온병의 물.
야외에선 뽀글이지.
군대의 추억팔이에서 빠지지 않는 아이템이었다.
라면 봉지째로 물을 부어 먹을 수 있는 간단한 한 끼 요리.
물론 그 추억을 가지고 집에서 해 먹는다면 십중팔구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될 것이다.
이 맛이 아닌데?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군대에서 맛있었던 이유는 극한의 추위 속에서 새벽 근무를 선 후 먹었기 때문이니까.
돌돌돌.
가져온 나무젓가락으로 돌돌 만 봉지를 잘 찝었다.
이젠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하아.”
면이 익기를 기다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산속.
들리는 거라곤 찌륵거리며 우는 벌레 소리와 바람에 의해 움직이는 나무 소리뿐이었다.
그 중심에서 뽀글이라니.
이건 FM 중대장도 못 참지.
왠지 모르게 신나는 기분.
허겁지겁 봉지를 풀고 젓가락을 집어넣었다.
후르릅!
“오. 시발.”
한국인의 공통 감탄사.
정말 감탄했을 때만 나온다는 최고의 감탄사가 육성으로 터져 나왔다.
꿀꺽.
뜨끈한 라면 국물 한 모금까지.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국물의 뜨끈함에 나도 모르게 깨달음을 얻고 말았다.
인생.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다!
* * *
“오리발 멀쩡하고.”
후읍. 후읍.
“산소통 멀쩡하고.”
뽀글이 두 개로 배를 가득 채운 뒤.
곧바로 입수 준비에 들어갔다.
어둠이 무겁게 내려앉은 밤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동굴까지는 빛 하나 없는 물길을 가야 하는데 해가 떠 있고 안 떠 있고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찰칵.
산소통 꾸러미를 허리춤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절대 잃어버리면 안 되는 나의 생명통.
혹시나 연결한 줄이 끊어질까 제일 비싸지만 가장 튼튼한 로프로 구매했다.
딸깍.
위이이이이잉!
그리고 대망의 아이템.
큰마음 먹고 구매한 아이템의 모터가 힘차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쓰담쓰담.
너만 믿는다.
소중하게 쓰다듬고 있는 아이템은 수중 제트모터.
영화에서 특수 부대원들이 물속으로 잠입할 때 쓰던 장비다.
- 손님, 혹시 제가 하나 더 보여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비장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던 스킨 스쿠버 가게의 주인 아저씨.
아저씨의 입은 이미 귀에 걸린 상태였다.
잠수 장비에 더해 가격대가 쎈 수중 화기까지 몽땅 판매를 했으니 당연한 일.
하지만, 아저씨의 욕심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야심차게 꺼내온 아이템.
힘들게 오리발을 젓지 않아도 물속에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제트모터였다.
자. 필요한 건 다 확인했고.
만약의 사태에 사용할 화기까지 잘 챙긴 후.
옹달샘으로 걸어갔다.
“후우우.”
커다란 심호흡을 한 뒤 아저씨가 알려줬던대로 산소 호스를 입으로 가져왔다.
입수 준비 완료.
부디,
무사히 돌아오게 해주세요!
첨벙!
* * *
와.
옹달샘으로 드가자를 시전한 직후.
눈이 크게 떠졌다.
그렇게 작게 보이던 옹달샘에 들어온 건데 이런 깊이와 넓이라니.
어르신 그림 정확도가 장난 아니네.
다시 한번 덕문의 솜씨에 감탄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그림에서도 깊이가 꽤 됐었던 옹달샘의 깊이.
실제로 들어와 보니 정말 깊다는 게 새삼스레 느껴졌다.
우우우우웅.
잘 샀다.
열심히 회전하는 프로펠러에 따라 내 몸은 빠르게 나아가고 있었다.
오리발을 흔들지도 않는데 이 정도라니.
3km 가는데 너무 오바를 했나 싶었는데 이 순간만큼은 대만족이었다.
스윽.
모터를 한 손으로 잡은 채 방수 처리를 한 도화지를 꺼냈다.
옹달샘을 따라 바닥까지 내려간 뒤 U자 형태를 한 좁은 물길을 따라 공간까지 올라가야 하는 루트.
일단은 바닥이 보일 때까지 가면 되겠구만.
생각보다 길 자체는 복잡하지 않았기에 길을 잃어버리거나 할 것 같진 않았다.
지금까지는 몹시 순조로운 상황.
하느님, 제발 뭐가 안 튀어나오게 해주세요.
순조롭지만 무서운 건 무서운 것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물속.
내가 볼 수 있는 시야라곤 머리에 달려있는 헤드라이트가 닿는 범위가 끝이었다.
부처님, 제발!
만약 이 상태에서 무슨 그림자라도 움직인다면?
오우야.
상상만으로도 오금이 저려 오는 상황.
물 속이라서 별 상관은 없겠지만 바로 지려버리고 말 터였다.
재수 없는 상상하지 말자.
말이 씨가 된다고 속으로라도 이딴 무서운 상상은….
꿀렁.
!?
순간이지만 심장이 내려앉았다.
저 밑에서 무언가 움직인 것 같았는데.
잘못 본 거겠지?
하하. 나도 참. 헛것이나 보고.
애써 머쓱한 척 하는 겉과 달리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제발 잘못 본 것이길.
하지만,
삶은 녹록치 않다고 했던가.
부우우우우우웅!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는 귓가로, 무언가의 울림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