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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24화 (24/473)

24화. 용

비늘을 통해 왔었던 허허벌판의 고지.

아.

같은 장소인 걸 깨달은 후 하늘로 고개를 돌렸다.

저번엔 고지에 도착하고 얼마 안 돼서 엄청나게 큰 용이 떨어졌었는데.

…없네.

떨어지는 용은커녕 구름 한 점 존재하지 않는 파란 하늘.

하늘에선 따가운 햇살만이 내리쬐고 있었다.

“뭘 찾는 거지?”

“!!”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비늘 속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한 목소리였다.

얼레.

눈동자가 나만 했던 용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나와 비슷한 키의 남자가 서 있었다.

비늘의 색과 똑같은 영롱한 청색 빛의 머리와 눈을 가진 남자.

물론,

사람의 생김새였지만 풍겨오는 기운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용님이구만.

내가 용 전문가가 아니라도 알 수 있었다.

비슷한 체구지만 가만히 있어도 몸이 미세하게 떨릴 정도의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남자.

비늘에서 보았던 청룡과 같은 느낌이었다.

“별일이군. 여기서 나 이외의 존재를 보게 되다니.”

역시 비늘의 기억에서 용은 날 인지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슥.

바지춤으로 손을 넣었다.

옹달샘으로 들어오기 전 챙겨놨던 비늘.

없네?

이번 무기를 찾은 뒤에 팔아야지 했었는데, 황금빛에 손이 닿으며 함께 사라진 모양이었다.

“이곳으로 들어올 수 있는 건 그대의 능력 덕이라 치고, 어떻게 날 찾은 거지?”

남자가 신기하다는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가볍게 건넨 말이었지만 한 마디 한 마디에서 묵직한 무게가 느껴졌다.

“용님 맞으시죠? 밖에서 용님의 비늘 조각을 발견했습니다. 제 능력으로 비늘을 따라 이곳까지 왔고요.”

잠시 놀란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비늘이 하나 새어나갔나 보군. 그나저나….”

남자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날 응시했다.

잡아먹으려는 건 아닌 것 같고, 흥미롭다는 듯한 미소였다.

“내가 용이란 걸 알면서도 여기까지 찾아온 건가?”

“그… 렇죠?”

“대담한 인간이군. 보통은 용이란 존재를 만나면 도망치거나 기절해버리는 게 정상일 텐데 말이야.”

아마 저도 그랬을걸요.

만약 사람의 생김새가 아닌 비늘에서 봤던 용이 나를 마주하며 미소 지었다면?

거품 기절 확정.

사람이든 뭐든 외관보단 내면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항상 예외는 존재하는 법이다.

“어쨌든, 반갑구나. 난 유탈라스.”

“백운입니다.”

용 유탈라스를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용님이 이름을 알려주며 반갑다고 해주다니, 가문의 영광이다.

….

서로의 이름을 소개한 후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뭐가 그리 흥미로운 건지 날 응시하며 여기저기 훑고 있는 유탈라스.

저벅.

!

유탈라스가 날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쿵!

그저 가볍게 발을 내딛었을 뿐인데도 사방을 울리는 거대한 발소리.

부피 자체는 인간처럼 줄였지만 담겨 있는 건 역시 용이란 건가.

“찾아오는 길이 쉽지 않았을 텐데.”

정확하십니다.

두 다리랑 목숨 중에 하나를 잃을 뻔했거든요.

아니면 둘 다 잃거나.

“뭘 원해서 왔지?”

!!

망설임 없는 직구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이런 내 마음이 표정으로 드러난 걸까.

“당황할 필요 없다. 인간은 욕심에 의해 행동하는 존재, 무언가를 원하고 바라는 건 자연스러운 것이다.”

역시 용님이다.

모든 것에 통달한 듯한 모습.

그런 유탈라스 앞에서 거짓말을 한다는 건 현명하지 않아 보였다.

괘씸하게 여길 거 같긴 하지만.

“저는 무기를 모읍니다.”

“그리고?”

한 차례 심호흡을 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게 무기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유탈라스가 내게 어떤 무기를 줄 수 있는지는 미지수였다.

잭 더 리퍼의 경우를 제외하곤 무기를 통해 공간에 도달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기라…. 그런 건 없다만.”

“네…?”

용님.

없다뇨.

없으면 안돼요.

싱긋.

지진이 나버린 동공을 봐서일까.

유탈라스가 재밌다는 미소를 그려 보였다.

“무기는 없지만, 무언가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부디!”

나도 모르게 유탈라스에게 부디라는 말을 해버렸다.

이 정도면 불경죄 아닌가.

“그런데 내 비늘에서 뭘 봤길래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지?”

시작부터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던 유탈라스.

“비늘의 기억은 유탈라스 님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걸로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꿀꺽.

유탈라스가 죽음에 이른 것부터 그 주변으로 생명이 깃든 물이 나와 산이 생겨나는 이야기까지.

비늘을 통해 봤던 걸 모두 유탈라스에게 들려주었다.

“그렇군, 신기한 능력이구나. 나조차 알지 못하는 걸 봤다니.”

떨어진 뒤에 목숨을 잃었던 유탈라스.

유탈라스는 자신에 의해 폐허였던 고지에 생명이 돋아나는 걸 보지 못했다.

무덤덤하네.

하늘에서 떨어져 죽고만 유탈라스.

그 죽음에 분노하거나 억울해할 줄 알았는데.

유탈라스는 예상외로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스윽.

유탈라스가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풍경이 이것이다.”

그래서 공간이 여기였구나.

지금이야 어떻든 유탈라스 본인이 마지막으로 본 건 허허벌판의 황무지였다.

그 영향으로 공간 역시 똑같은 모습으로 만들어진 듯했다.

“만나자마자 내가 너무 질문만 해댔구나. 자, 인간. 아니지, 백운.”

들으셨나요, 여러분?

무려 용님이 제 이름을 불러 주셨습니다.

지금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면 당장 SNS에 이 상황을 자랑하고 싶었다.

“궁금한 게 있다면 물어보거라.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거라면 답해주마.”

유탈라스의 말을 듣자 임수빈이 해줬던 구룡산 이야기가 떠올랐다.

10마리의 용이 승천하던 중 임신한 여자의 비명 소리에 놀라 한 마리가 떨어져 버렸다는 설화.

아닐 거 같긴 한데 말이지.

유탈라스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을 봤을 때 불가능할 것 같았다.

저런 기운을 가진 용이 비명 소리에 놀라 떨어진다니.

그래도 물어봐야지.

아마 살아가며 용을 만날 수 있는 건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었다.

조금이라도 궁금한 게 있다면 전부 다 물어보는 게 현명한 선택.

“제가 살고 있는 시대에서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임수빈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하하하하!”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는 유탈라스.

그렇게 한참을 웃던 유탈라스가 입을 열었다.

“대부분은 맞고, 두어 가지는 틀리구나.”

대부분이 맞다고?

다 틀릴거라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역시 옛말이 다 틀리진 않다니깐.

옛말의 위엄에 고개를 끄덕이며 유탈라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열 마리의 용이 승천하려던 것도 맞고, 그중 한 마리가 떨어진 것도 맞다. 예상대로 그 떨어진 한 마리가 나지.”

자신이 떨어진 걸 말하면서도 뭐가 그리 즐거운지 유탈라스는 계속해서 웃고 있었다.

“하지만, 깜짝 놀라서 떨어진 건 아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인 듯했다.

틀린 부분을 정확히 바로 잡아 주는 유탈라스.

“그리고.”

해맑던 유탈라스의 얼굴에 슬픈 빛이 어렸다.

“한 여인이 소리를 지른 것 역시… 사실이다.”

이쯤 되니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오래전의 일일 텐데.

조금 변형되었다곤 하나 어떻게 그때의 일이 현대에까지 전해질 수 있는 걸까.

흠.

궁금하다.

인간의 호기심은 끝이 없다고 하던데, 맞는 말인 것 같았다.

전해지던 이야기가 대부분 사실이라는 답변을 들었음에도 그 뒤에 있는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인간 최초라서 그런가.

굳이 진실을 듣고 밖으로 나가, 사실은 이 설화가 이랬습니다! 라고 소리 지르며 뽐내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저, 궁금했다.

어째서 여인은 소리를 질렀고, 승천하던 유탈라스는 왜 떨어질 수밖에 없었는지가 말이다.

스윽.

유탈라스가 가볍게 팔을 휘둘렀다.

드드드.

고지의 중심에 솟아나는 두 개의 의자.

“바쁘지 않다면, 좀 앉지 않겠나?”

“네!”

바쁘긴요.

호다닥 달려 의자로 몸을 날렸다.

누구보다 용님의 말을 잘 듣고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

그리고 밖에서는 시간이 정지되어있는 상태.

정지되지 않았다면 줄어 가는 산소통 때문에 곤란했겠지만, 그럴 일도 없었다.

“하도 오랜만에 만난 말벗이라서 말이야. 반갑구나.”

와우.

저절로 몸을 굽신거리게 만드는 말이었다.

“인간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기에 항상 진실을 탐구해 나간다고 들었다.”

맞습니다요.

적이 있을 확률이 높은 걸 알면서도 직접 그곳에 들어가 확인해야만 적성이 풀리는 게 바로 인간입니다요.

“어떠냐?”

“네?”

유탈라스가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하늘에서 용이 추락해야만 한 이야기, 들어보지 않겠느냐.”

!!

추락해야만 했다니.

누가 이런 이야기를 거절할 수 있겠는가.

스윽.

두 손을 모은 채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꼭 듣고 싶습니다.”

싱긋.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유탈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 년 전, 용이 있었다.”

* * *

풀 한 포기 없는 황폐한 장소.

생명이 살아남기 힘든 장소였지만, 그런 장소에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슬아, 또 어딜 나가는 게냐.”

마을의 이장이 마을을 나서려는 윤슬에게 물었다.

“아, 이장님! 안녕하세요!”

작은 키와 긴 흑발, 선명한 갈색 눈을 가진 윤슬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슬아. 너 또….”

“하하.”

윤슬이 들고 있는 종이에 이장이 슬픈 표정을 지었다.

날이 지날수록 부족해지는 식량과 척박해지는 환경.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기에 마을은 속수무책으로 쇠퇴하고 있었다.

“혹시 모르니까요!”

그런 마을을 살리겠다며 윤슬은 하루가 멀다하고 나가 나무의 씨앗을 심고 있었다.

“슬아. 아무리 간절히 바라더라도 사람의 힘으로 불가능한 게 있는 것이다. 자연의 이치이니 받아들여야 한다.”

이장을 포함한 사람들은 이미 마을을 포기한 상태였다.

그저 남겨진 것을 아끼며 근근이 목숨을 연명할 뿐이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나 네가 심은 씨앗이 살아남더라도 제 시간 안에는….”

나무는 심는다고 해서 며칠 만에 자라는 게 아니었다.

기적이 일어나 나무가 자란다 하더라도 이미 마을은 사라졌을 가능성이 컸다.

“당장 저한테는 도움이 안 될지라도.”

저벅.

여전히 미소 짓고 있는 윤슬이 마을의 출구를 향해 발을 뻗었다.

“나중의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 * *

“휴우!”

윤슬이 가는 팔로 땅을 파나갔다.

매일 매일 해도 도통 적응이 안 되는 고된 작업이었다.

쩍쩍 갈라진 땅을 어느 정도 판 후.

윤슬이 가지고 있던 씨앗을 꺼내 들었다.

“부디 살아남아서 커다란 나무가 되어 주세요.”

한차례 기도를 한 뒤 파인 땅으로 씨앗을 넣었다.

슥슥.

조심스레 마른 흙을 덮은 후, 다음 씨앗을 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꺄악!”

콩.

언제 온 건지 그런 윤슬 앞에 서 있는 청색 머리의 남자.

“아야.”

엉덩방아를 찧은 윤슬이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봤다.

….

윤슬과 청룡 유탈라스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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