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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25화 (25/473)

25화. 용과 소녀

둘의 첫 만남 이후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오늘도 심는 것이냐?”

“당연하지! 씨앗에서 싹이 트고, 그 싹이 나무가 되고, 나무가 숲이 되고, 숲이 산이 될 때까지 심을 거야.”

짧다면 짧은, 길다면 긴 시간 동안 많은 대화를 나눠왔다.

“율아, 용이면 좀 싹이라도 트게 해봐.”

유탈라스란 이름이 길다며 율이라 줄여 부르기 시작한 윤슬.

정체를 밝혔음에도 다른 이들과 달리 윤슬은 두려워하거나 유탈라스를 멀리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기하다며 눈을 크게 뜬 채 이것저것 물어온 윤슬.

“내가 매일같이 도와주지 않느냐.”

유탈라스가 쭈그려 앉아 호미를 집어 들었다.

용이 씨앗을 심기 위해 땅바닥에 앉다니.

누군가 들으면 거짓말하지 말라며 손을 내저을 이야기였다.

“어허, 그대의 친구를 도와주는 것은 당연한 것! 돕는 거 말고 손가락 튕기면 갑자기 씨앗이 발아한다거나 나무가 된다거나 그런 거 말이야.”

윤슬이 생글생글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윤슬은 항상 유탈라스에게 고마워하고 있었다.

항상 같은 시간에 나와 씨앗 심기를 도와주는 유탈라스.

매일 밝은 모습으로 나와 씨앗을 심었지만, 혼자뿐이란 사실은 때때로 찾아와 윤슬을 무겁게 짓눌렀었다.

그런 윤슬에게 유탈라스는 씨앗 심기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친구였다.

“그런 능력은 없다, 난 신이 아니니까.”

진지하게 받는 유탈라스를 윤슬이 묘한 눈으로 바라봤다.

지상에서 승천을 기다리고 있는 청룡.

“율아 이제 1년 남은 거지?”

승천을 하기 위해서 용에게 주어진 조건은 간단했다.

이무기에서 용이 된 후, 지상에서 천 년이란 시간을 기다리는 것.

간단하지만 용에게 있어서도 천 년이란 시간은 기나긴 시간이었고, 모든 지상의 용들은 하루빨리 천 년이 가기를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윤슬의 질문에 유탈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려야 하는 천 년 중 유탈라스에게 남은 건 고작 1년.

1년 뒤면 유탈라스는 하늘로 승천할 수 있었다.

“그런데 승천하면 어떻게 되는 거야? 보통 사람은 하늘로 간다고 하면 죽었다는 의미거든.”

“그건 나도 알지 못한다. 그저 들은 이야기가 몇 가지 있을 뿐이지.”

호미질을 멈춘 유탈라스가 하늘을 바라봤다.

맑아도 너무 맑아 비 한 방울조차 내리지 않는 마른하늘.

“지금은 인식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위해 일한다고 들었다.”

“우와…. 사람들이 말하는 신… 그런 건가?”

신이란 단어에 잠시 고민하던 유탈라스가 어깨를 으쓱 올려 보였다.

“그럴 수도 있겠지.”

윤슬이 작은 한숨을 내쉬며 유탈라스를 응시했다.

이제 남은 시간은 1년.

유털라스와 함께 하며 지나온 시간을 생각하면, 1년이란 시간은 정말 짧은 시간이었다.

‘율이는 빨리 지나가길 바라고 있겠지.’

당연할 거라 생각했다.

천 년이다.

백 년도 아닌 천 년.

백 년조차 살지 못하는 인간으로선 쉽게 이해할 수도, 가늠할 수도 없는 길고 긴 시간이었다.

그런 긴 시간을 기다려온 유탈라스.

1년 남은 승천이 얼마나 기다려지겠는가.

‘남은 시간이 천천히 가기를 바라는 건 너무 이기적인 거겠지.’

윤슬은 유탈라스와 함께 할 수 있는 이 시간을 좋아했다.

무뚝뚝하지만 유탈라스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시간.

오랜 시간을 살아온, 인간과는 존재 자체가 다른 유탈라스.

윤슬은 궁금했다.

과연 유탈라스에게 있어 자신은 어떤 존재인 걸까.

“율아, 승천해도 나 잊어버리면 안 돼. 알겠지?”

윤슬의 질문에 유탈라스가 고개를 돌렸다.

윤슬이 커다랗고 맑은 갈색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난 모든 걸 기억한다.”

유탈라스가 윤슬의 눈을 바라보며 따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니 너 또한 잊지 않을 것이다.”

* * *

오늘은 메마른 고지에 세 명의 사람이 있었다.

유탈라스와 윤슬, 그리고 윤슬의 갓난 동생까지.

“귀엽지?”

유탈라스가 곤히 자고 있는 아기를 내려다봤다.

이렇게 작은 존재라니.

“너무 작구나.”

“율이 너도 어렸을 땐 이렇게 작았을걸?”

윤슬의 말에 기억을 되살려보지만, 성체가 되기 전의 기억은 존재하지 않았다.

한 단계 나아갈 때마다 다른 존재가 되며 이전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용.

- 모든 걸 기억한다.

윤슬에게 했던 말은 거짓이었다.

승천하는 순간 윤슬과 지내왔던 시간은 모두 사라지고 만다.

“오늘은 씨앗을 심지 않는 건가?”

“응! 오늘만이야 오늘만!”

오늘만 쉬는 것임을 강조하며 윤슬이 안고 있는 동생에게 눈을 돌렸다.

동생을 바라보는 윤슬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포기하지 않을 거야.”

윤슬이 포기하지 않는 이유였다.

동생을 위해서.

윤슬은 동생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메마르고 메말라 생명 하나 찾아볼 수 없는 황폐한 땅이 아닌, 아주 작지만 새로운 생명이 생겨날 수도 있는, 그런 땅을 말이다.

“꼭! 보여 줄 거야.”

* * *

유탈라스의 승천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

오늘따라 오지 않는 윤슬에 유탈라스가 마을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박.

평소와 달리 힘없는 얼굴로 걸어온 윤슬.

윤슬의 손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매일 같이 챙겨왔던 호미도, 소중히 봉투에 싸왔던 씨앗도.

“오늘은 안 심는 건가?”

유탈라스의 물음에 윤슬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남은 씨앗이 다 떨어졌거든…. 여기까지야.”

“….”

윤슬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아. 진짜 보여주고 싶었는데.”

윤슬의 입가로 슬픈 미소가 어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알고 있었다.

이런 황폐한 땅에 아무리 씨앗을 심어 본들 나무가 피어날 리 없다는 건 말이다.

하지만, 인정할 수 없었다.

인정해버리는 순간 아주 조금 가지고 있던 희망마저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미안해, 율아. 지금까지 열심히 같이 해줬는데. 다 의미 없는 일이 되어버렸네.”

그렇게 조금이지만 남아있던 희망.

그 희망은 씨앗이 줄어들 때마다 조금씩, 함께 줄어가고 있었다.

마침내 동이 나버린 씨앗.

어딘가에서 씨앗을 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윤슬의 작았던 희망은 동이 난 씨앗과 함께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아이고. 하하….”

웃고 있지만 슬퍼하고 있는 윤슬.

그런 윤슬을 바라보며 유탈라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슬퍼하는 사람을 위해 무슨 말을 해줘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저,

‘미안해할 필요 없다. 내가 기다려온 천 년의 시간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으니.’

말로 정리되지 않는 마음을 속으로 되뇔 뿐이었다.

* * *

승천까지 일주일이 남은 시점.

며칠째 나타나지 않는 윤슬에 유탈라스가 마을로 내려왔다.

‘괜찮은 건가.’

“싫다고 했잖아요! 그게 말이 돼요!?”

조심스럽게 들어간 마을에선 큰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슬아! 그 방법밖에 없다는 거 잘 알잖느냐!”

“슬아!!”

“절대! 절대! 그럴 일 없을 거예요!”

윤슬은 마을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목이 쉬어라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쨍!

바닥으로 무언가를 던지는 윤슬.

부적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칼이었다.

“전 절대 못해요! 아니, 안 해요! 율이를 죽이라니. 어떻게 그런 말을 하실 수 있어요?!”

“네가 하지 않으면 마을 모두가 죽는다! 이젠 식량도 얼마 남지 않았어. 우릴 도와줄 곳도 없고!”

“그렇다고 해도….”

“네 동생까지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둘 게냐!”

“!”

마을은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

바닥을 보이는 식량과 점점 지쳐가는 사람들까지.

그런 절망적인 마을로 한 명의 무당이 찾아왔다.

- 난 신을 모시는 사람일세. 그리고, 이 마을을 살리라는 계시를 받았지.

마을을 찾은 무당은 사람들에게 그 방법을 알려줬다.

- 용이 죽은 자리엔 생명이 돋아난다네. 그 어떤 척박한 환경에서도 풀이 피어나고 나무가 자라 숲을 만들고, 수많은 생명이 살 수 있는 환경을 탄생시키지.

방법을 일러주는 무당에게 사람들은 고개를 내저었다.

도대체 어디서 용을 찾을 것이며, 찾는다 한들 그런 존재를 어떻게 죽일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 스윽.

그런 마을 사람들의 물음에 무당은 손을 들어 윤슬을 가리켰다.

- 저 아이와 함께 해온 자, 인간이 아닐세. 인간의 모습으로 둔갑한 용이지.

- !

윤슬이 그저 친구라 말하며 숨겨왔던 정체였다.

- 저 아이라면 죽일 수 있을 걸세. 아니. 오직 저 아이만이 용을 죽일 수 있네.

유일하게 마을을 살릴 수 있는 사람.

그게 윤슬이었기에 그 날부터 마을 사람들은 윤슬을 어르고 달래며 설득하기 시작했다.

“슬아, 내 아이야. 힘든 선택이겠지만 동생을 생각해서라도 제발…. 제발 해다오.”

윤슬의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두 손을 붙잡았다.

“응애--! 응애--!”

뒤이어 들려오는 동생의 울음소리까지.

그런 동생을 바라보는 윤슬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저벅.

모든 걸 보고 들은 용, 유탈라스가 조용히 마을을 떠났다.

* * *

승천까지 남은 시간은 3일.

“안녕, 율아.”

오랜만에 윤슬이 찾아왔다.

“오랜만이구나.”

“헤헤, 미안, 좀 아팠어서.”

둘러대는 윤슬에 유탈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껏 둘 사이에 없던 정적이 찾아온 후.

유탈라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3일 뒤면 난 떠난다. 그 전에 말해주고 싶은 게 있었다.”

“말해주고 싶은 거라니?”

“널 잊지 않겠다는 말, 거짓이었다.

“응?”

갑작스러운 고백에 당황하는 윤슬.

그런 윤슬에게 유탈라스가 담담히 말을 이어나갔다.

“용은 진화를 겪을 때마다 그 전의 기억을 잃어버린다. 아니지, 정확히는 지워버린다.”

“지워버려…?”

“당연한 것이다, 더 위대한 존재가 되었을 때 이전의 기억이란.”

유탈라스의 얼굴에 차가운 빛이 어렸다.

“하찮은 존재였을 때 생긴 하등 쓸데없는, 가치 없는 것이니까.”

“!!”

최대한 숨기고 있었지만, 갑작스러운 말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당혹감이 윤슬의 얼굴로 묻어나왔다.

“어….”

너무 갑작스러워서였을까.

윤슬의 눈가로 눈물이 맺혔다.

“유… 율아,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눈물을 숨기려는 듯 윤슬이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스윽.

유탈라스가 대답 대신 천천히 몸을 돌렸다.

“착각하지 않길 바라서였다.”

“착각?”

“너와 난 존재 자체가 다르다.”

“나에게 있어 최근 몇 년의 시간들은, 용이 사는 억겁의 시간 중 아주 작고 하찮은….”

으드드득.

어째서인지는 유탈라스 본인도 알지 못했다.

그저, 미칠 듯한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주 잠깐의… 여흥이었을 뿐이다.”

* * *

승천의 날.

지난 3일 동안 윤슬은 나타나지 않았다.

후우우우웅.

이 땅에 살던 나머지 9마리의 용이 승천을 마치고, 유탈라스의 차례가 돌아왔다.

저벅.

‘!’

뒤에서 나타난 기척.

돌아보지 않았지만 윤슬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왔구나.’

승천을 준비하며 유탈라스가 입고 있던 웃옷을 벗었다.

그러면서 드러난 등 뒤의 붉은 반점.

역린.

용의 거꾸로 난 비늘로 건드린 자는 분노한 용에 의해 무조건 살해 된다고 알려져 있었다.

‘약점.’

용이 분노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용이란 절대적인 존재를 한순간에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급소였기 때문.

- 우와. 절대 건드리면 안 되겠네.

윤슬도 알고 있었다.

역린에 대해 말해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저벅.

천천히 다가오는 윤슬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현명한 선택이다.’

그 어떤 착한 인간이라도, 선택을 하게 된다.

자신과 소중한 이들의 목숨이 걸려 있다면 말이다.

윤슬에게 선택지는 한 가지뿐이었다.

어차피 모든 걸 잊을 용을 죽여 소중한 동생과 마을 사람들을 살리는 것.

인간이라면 당연한 선택지였다.

‘이상하군.’

다가오는 기척을 느끼며 유탈라스가 하늘을 바라봤다.

그토록 애타게 기다려온 승천의 순간인데.

난 어째서 이러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피식.

유탈라스의 입가로 미소가 지어졌다.

어차피 머리로 생각해 본들 알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머리로 생각해 결정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척.

바로 뒤까지 다가온 윤슬.

윤슬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너를….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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