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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32화 (32/473)

32화. D-1의 밤

“응?”

사북에 도착한 수송 버스.

버스에서 내린 김대석이 뒤를 돌아봤다.

‘저건 불여우 찬데.’

멀리서 봐도 눈에 띄는 파란색 스포츠카.

사북에 저런 차를 몰고 올만한 사람은 최리아 뿐이었다.

‘허.’

조금 전 차에서 내린 건지 떠나가는 스포츠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남자, 백운.

머릿속으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순식간에 정리되기 시작했다.

‘큽…크…,하하!’

육성으로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이런 자리를 만들어 준 것만 해도 최리아에게 감사해 하고 있었는데.

만약의 변수마저 제거해버리는 최리아.

‘날 못 믿는 거 같아서 기분은 더럽지만. 일 처리 하나는 확실하단 말이야.’

백운이 조금 전 당했을 일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다.

‘눈을 쳐다봤겠지. 그리고 무언가 말을… 아니지. 명령을 들었을 테고.’

벗어날 수 없는 암시.

최리아가 개방한 능력이었다.

능력의 디테일 한 것까지는 김대석도 알지 못한다.

단지 한 번 호되게 당한 적이 있기에 그런 능력이구나를 짐작하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한계가 있는 듯 하지만 저런 10급 나부랭이한테 해당될 내용은 아니지.’

김대석 외에도 용병단 안에서는 최리아의 능력에 대한 토의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대상에게 암시를 걸어 조종하는 엄청난 능력이지만, 제약이 있다는 게 현재의 정설.

‘자신보다 높은 사람에게는 능력이 통하지 않는다.’

이런 추측의 증거로는 최리아가 대산의 홍보 실장으로 머물러 있다는 것이었다.

제약 없이 모두에게 통했다면 대통령을 넘어 세계 정복도 꿈이 아닐 터.

건물 70층에 얌전히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었다.

‘높은의 기준이 직급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높은의 기준은 다들 추측성 발언만 넘쳐나고 있었다.

어찌 됐든, 그 생각만 하면 기분이 더러워졌다.

당한 적이 있다는 건 높은의 기준이 뭐가 됐든 자신이 최리아보다 낮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쯧.’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하지 않았다.

현시점에 중요한 건 단 하나.

‘무기왕은 끝났다.’

* * *

부우웅.

미련 없이 떠나가는 최리아의 차를 바라봤다.

….

차에서 내리기 직전, 최리아가 한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 차에서 내리는 순간, 조금 전 암시를 들었다는 사실은 잊어라.

잊으라길래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서운 년.

처음엔 갑자기 반말을 뱉길래 뭐하는 건가 싶었다.

그리고,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스아아…!

드문드문 느꼈던 그 찜찜한 기운이 물밀 듯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눈 색깔까지 변해버린 최리아.

그 모습까지 보니 확신이 들었다.

능력을 쓰고 있구나.

확신이 든 후엔 나도 인생 연기를 시작했다.

무언가에 홀린 듯 최대한 멍한 표정을 지었고, 최리아가 뭐라뭐라 말할 때마다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차 태워준다고 한 이유가 이거였구만.

사북까지 데려다주는 것도 모자라 정체 숨기라고 가면까지 내준 최리아.

눈을 마주치거나 대화를 나눌 때 기분은 좀 찜찜하더라도 좋은 사람으로 등록하려고 했는데.

취소다.

불여우 같은 년.

토벌전에서 내게 쏠린 관심을 뺏어 가려는 건 알았지만, 솔직히 좀 놀랐다.

이렇게 능력까지 써야 해야 했단 말인가.

아니지, 최리아 입장에선 일 잘하는 거지.

동시에 최리아가 김대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알 것 같았다.

완벽한 불신.

그렇기에 저런 암시를 나에게 시도한 거겠지.

- 토벌전이 시작되면 아무것도 하지 말고 숨어 있어.

- 데몬이 보이면 겁쟁이처럼 도망쳐.

무기왕을 아주 그냥 전국급 겁쟁이로 만들 심산이구만.

무기왕의 이미지가 밖에서 어떤지에 대해선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얘기가 다르다.

어찌 됐든 지금 토벌전에 참가하게 된 것도 무기왕의 이름과 인기 덕분.

앞으로도 어딘가에 접근이 필요할 때 사람들을 납득 시키기에는 이만한 게 없었다.

이런 소중한 나의 무기왕을 쫄보로 만드려 하다니.

으득.

대석이랑 리아.

나쁜 년놈들.

* * *

밤이 깊어지자 떠들썩 해진 사북의 임시 숙소.

토벌전 전날은 항상 이런지 시끌벅적한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와작!

한쪽에선 술판이 벌어지든 말든.

난 내 앞에 있는 음식에 집중했다.

호텔 조식 이후에는 제대로 된 밥을 못 먹어서인지 쑥쑥 들어가는 음식들.

“안녕하세요, 무기왕 님.”

움찔.

매번 들어도 닉네임으로 불리는 건 익숙해지지 않는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간질간질한 느낌.

- 대산의 헌터들은 원래도 백운 님이 무기왕이란 걸 알고 있어요. 그리고 참가하는 게스트 헌터분들은 서약을 했으니 외부에 발설할 일은 없을 거고요.

카메라와 외부 인원이 보는 토벌전 당일을 제외하면 가면을 쓰고 다닐 필요가 없단 말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온 건 짧은 단발을 한 게스트 헌터였다.

“전 프리랜서 헌터를 하고 있는 유연경이라고 해요. 옆에 앉아도 되나요?”

“아! 저도요, 그 유명한 무기왕 님이라니.”

텅 비어있던 좌석을 채우기 시작한 게스트 헌터들.

“저는 배이슬요!”

“하하… 안녕하세요.”

인사를 나눈 뒤 어색함을 풀기 위해 잔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대학교 MT의 유사 버전일까.

“와… 무기왕 님이 참가한다는 말이 돌아서 설마 했는데.”

이젠 못 버티는 단계에 도달했다.

“전 백운이라고 합니다, 하하… 이름으로 편하게 불러주세요.”

“오… 백운이라… 생각보다 훨씬 멀쩡한 이름이네요.”

“네…?”

배이슬이 손을 내저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보통은 다 본명으로 하니까요. 이름이 너무 이상해서 닉네임으로 했나 했거든요.”

다행이다.

이름 멀쩡해서.

“다른 게스트 분들은 아직 안 오셨나 봐요?”

초대된 게스트만 해도 열 명 가까이 된다고 들었었는데.

보이는 건 눈앞에 있는 둘이 다였다.

“아마 안 올걸요.”

“그쵸, 보통은 안 오죠.”

배이슬과 유연경이 손가락으로 한참 시끌벅적한 술판을 가리켰다.

“저분들을 위한 토벌전이니까요. 저희야 그냥 흥 돋우는 들러리들이고요.”

그래서 안 왔구만.

대외적인 이유야 어쨌든 토벌전은 대산의 헌터들을 뽐내기 위한 행사였다.

행사의 전날 밤마다 열리는 이 자리도 마찬가지.

이미 들러리인 걸 알고 있기에 흥도 안 나는 상태, 게스트들이 굳이 올 이유가 없었다.

“기본 참가비라도 두둑하게 주니까 오는 거지. 어휴, 꼴 보기 싫어요.”

주변에 게스트 헌터들을 없는 사람 취급하며 자기들끼리 신이 난 대산.

토벌전에서의 입장 때문에 안 그래도 기를 못 펴고 있을 텐데 챙겨주긴커녕 더 대놓고 무시를 하고 있었다.

나도 빨리 먹고 올라가야지.

굶주린 배만 채우면 빠르게 올라갈 생각으로 음식에 손을 뻗었다.

“아니 이게 누구야! 그 유명한 무기왕 님 아니십니까!”

그냥 들어갈걸.

맛있는 고기로 손을 뻗은 순간, 어디선가 술잔을 든 김대석이 나타났다.

그런 김대석의 외침 때문인지 자기들끼리 잘 놀던 헌터들의 시선이 쏠리기 시작했다.

“이야! 정말 영광입니다! 영광!”

이미 목소리에 한껏 비아냥이 묻어있는 김대석.

실망스러웠다.

대석이 새끼 동영상으로 볼 땐 그렇게 안 봤는데.

생각보다 더 시건방진 자식이었다.

“무기왕 님 능력은 뭐라고 했었죠? 뭐였지? 뽀록이었나? 하하하!”

“푸하하하하!”

술까지 들어가 눈에 뵈는 게 없어서인지 열심히 떠들어 재끼는 김대석.

대산 헌터들의 웃음이 잦아들자 김대석이 커다란 맥주통을 들고 와 내 앞으로 내려놨다.

“제가 한 잔 따라드리죠!”

“안 주셔도….”

애초에 내 대답은 중요하지 않았던 듯하다.

꼴꼴꼴꼴!

잔에 한가득 따라지는 맥주.

아니지, 맥주 거품.

잔의 4/5를 하얀 거품이 채우고 있었다.

“자! 무기왕 님에 딱 맞게 따라드렸습니다! 맛있게 드시고 들어가세요! 그럼! 하하하!”

맥주만 따라놓고 사라지는 김대석.

“배… 백운 님, 괜찮으세요…?”

“진짜 꼴불견이에요. 방송에서는 세상 사람 좋은 척 다 하면서, 원래 저러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하하 신경 안 써요. 취하면 저럴 수도 있죠.”

덥썩.

따라 준 맥주를 원샷 한 후 신이 난 김대석을 바라봤다.

저럴 수도 있긴.

마음 같아선 뺨이라도 몇 대 갈기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는 상황.

그런데 뭐, 상관없다.

갚아 줄 기회는 올 테니까.

드륵.

“저는 먼저 들어가 볼게요.”

“아… 네! 내일 봬요, 백운 님.”

“들어가세요.”

빨리 자러 가야겠다.

그래야,

내일이 빨리 온다.

* * *

숙소로 향하는 길.

김대석을 어떻게 박살 내야 하나 고민을 하며 길을 걸었다.

훗날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대산과 척지는 건 안 될 일.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동시에 김대석을 밟아주고 싶었다.

먼지를 일으켜서 카메라의 시야를 가린 다음에 힘줄을 끊….

짝!

조금 전 당한 치욕에 잔인한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다.

너무 잔인하니까 강도를 좀 낮추자.

그렇게 여러 방법을 고민하던 중.

“… 로… 옮겨.”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

목소리가 들리고 있는 곳은 내일 토벌전이 열리는 광산 근처.

이 시간에 인적이 있을 만한 장소가 아니었다.

사삭.

자세를 바짝 낮추고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다가갔다.

이 지역 일대는 대산이 관리하고 있을 터.

그럼에도 들어와 있다는 건 대산의 인원일 가능성이 컸다.

뭐하고 있는 거지?

열댓 명의 인원이 무언가를 옮기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내일 토벌전이 끝나면 바로 들어갈 거니까 준비해.”

“여기에 있을까요? 괜한 곳에다 지원 요청한 게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지원 요청?

토벌전이 열릴 곳에서 무슨 지원이 필요한 걸까.

“없어도 상관없어. 우리가 요청해서 토벌전이 열리긴 하지만, 우리를 위해서만 여는 건 아니니까.”

“그렇군요. 야 이 대리, 해석은 제대로 한 거 맞지?”

“예, 책자에서는 분명 이곳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최소한 찾아갈 수 있는 길 정도는 이곳에 있을 겁니다.”

무언가를 해석해 이곳을 지목했고 그 장소에 토벌전이 열릴 수 있도록 지원 요청을 했다… 가 되는 건가.

얼추 말들을 조합해봤을 때 도출되는 결론이었다.

말하는 걸로 봐선 지금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도 대산의 직원들.

대산이 무언가를 찾고 있다. 뭘 찾고 있을까.

작은 기업이 아니다 보니 여러 가지를 동시에 찾고 있겠지만, 머리에 떠오르는 건 하나였다.

비전 수리검.

비전 수리검은 2년 뒤에 발견되었다.

어느 정도 시간을 들여 수리검에 도달했는지는 몰라도, 얼추 시간을 계산해 봤을 때 지금은 이미 찾고 있어야 했다.

대산이 여기서 찾으려는 게 무엇에 대한 흔적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하지만, 무언가를 찾기 위해 왔다는 건 분명한 사실.

그게 비전 수리검이면 좋겠지만, 아니더라도 내 무기 찾기에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광산 안에 있는 무언가에 대한 흔적.

씨익.

내가 먼저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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