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탱커
강태황과 기태랑.
두 사람이 대화를 주고받던 장관실로 전화벨이 울려왔다.
“강태황입니다.”
“장관님! 50번 CBC 채널입니다!”
전화를 받기 무섭게 채널명을 말하는 비서.
평소라면 인사부터 안 하냐며 농담이라도 건넸을 강태황이지만.
“알겠다.”
삑.
비서의 다급한 목소리에 군말 없이 TV를 틀어 채널을 돌렸다.
“!!”
그렇게 두 사람 앞에 틀어진 TV 속.
왼쪽 상단엔 기업 대산의 토벌전이란 제목이 달려있었다.
어느 광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듯한 토벌전.
문제는 지금 카메라가 찍고 있는 장면이었다.
# 저… 저건 대체….
중계를 하고 있는 리포터조차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
“설마…!”
모습을 드러낸 데몬이 헌터들을 썰어버리기 시작했다.
사람과 비슷한 체형에 붕대를 감고 있는 데몬.
데몬은 일반적인 놈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 아아… 허… 헌터들이!
“노네임드!?”
데몬을 저지하려던 대산의 헌터들이 우수수 쓰러지고.
대검을 든 헌터의 뒷걸음질을 시작으로 데몬과 헌터들의 쥐와 고양이 게임이 시작되었다.
# 저… 저건 대체!
삐이이이----!
# 앗 화면이…!? 카메라! 카메라 무슨 상황인가요!
“제가 가겠습니다.”
기태랑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사북에 있는 놈한테도 연락해놨으니 그 녀석이 먼저 갈 거다.”
“알겠습니다.”
입술을 깨문 기태랑.
아직 광산에 나타난 게 노네임드 급인지는 모르지만.
왠지 모르게 불길했다.
‘어째서….’
저벅.
‘불길한 생각은 한 번을 틀리지 않는거냐…!’
* * *
“시… 실장님. 각 방송국에서 항의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전수희가 흔들리는 눈으로 최리아를 바라봤다.
- 회선이랑 전파 다 차단해요.
조금 전 최리아의 지시에 따라 전국으로 송출되던 전파를 다 차단 시켜 버렸다.
당연히 돈을 주고 방송권을 따낸 방송사들에선 난리가 난 상태.
대산에서 고의적으로 끊은 게 아니냐며 당장 켜라는 전화가 쏟아지고 있었다.
“송출에 문제가 생겼다고 하세요. 방송사에서 피해입은 금액은 대산에서 전부 보상하겠다 하시고.”
“괘… 괜찮을까요?”
전수희의 말에 최리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저거 내보낼 거야?”
“….”
전수희가 최라아의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다.
방송사들의 영상은 끊겼지만 대산에서 직접 설치한 카메라는 돌아가고 있는 상황.
카메라 속에선 팀장 김대석과 대산의 헌터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어로 달려가고 있었다.
지끈.
최리아가 뜨거워진 머리에 두 눈을 감았다.
이게 대체 다 무슨 일이란 말인가.
예상을 뒤집어버리는 백운의 행동도 모자라 저딴 게 나오다니.
‘김대석 정말….’
그리고 궁지에 몰리자 밑바닥을 드러내며 제일 먼저 등을 보인 김대석.
다행히 빠르게 방송을 끊어 김대석의 추태가 송출되진 않았다.
애초에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김대석을 능력 이상으로 띄워주며 인기를 얻게 해준 건 이유가 있었다.
다른 헌터들이 가지지 못한 걸 갖고 있었기 때문.
‘인기에 대한 정신병적인 집착, 그리고 그걸 위해선 어떤 더러운 짓도 서슴지 않는 인간.’
카메라 앞에서 할 말 못 할 말까지 잘 가렸기에 대산에서도 굳이 김대석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팀장 자리까지 줘가며 키워줬는데.
‘생각보다 밑바닥이 더 깊구나.’
아무리 쓰레기라도 오랫동안 함께 한 부하들을 저렇게 버릴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마음 같아선 전국으로 송출되는 카메라에 다 까발려 나락으로 떨어뜨려 주고 싶었지만, 김대석을 열심히 밀어줬던 만큼 회사에 끼치는 악영향을 무시할 수 없었다.
- 막강한 전력인 용병단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헌터!
‘실수다.’
더 띄워주겠다며 너무 과한 수식어를 달아버렸다.
그런 김대석이 망가지는 순간 대산의 용병단의 이미지는 완전 나락행.
“어… 어!”
“…?”
전수희의 탄성에 최리아가 고개를 들었다.
쳐다보기조차 힘든 일방적인 학살극.
학살극을 피해 모두가 도어로 달리고 있을 때, 단 한 명만이 반대로 달려 가고 있었다.
* * *
콰아아아앙!
엄청난 괴력에 걸맞은 굉음이 터져 나오고, 일직선으로 날아간 피렌조가 광산의 벽으로 박혀버렸다.
맞았다!
오른손에서 유탈라스의 비늘이 해제되는 게 느껴졌다.
“으… 으아!”
몸을 숙였던 헌터가 재빠르게 도어를 향해 달려갔다.
후우.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피렌조가 날아간 벽을 바라봤다.
단단한 광산의 벽이 파일 정도로 강하게 부딪힌 상태.
일반 사람이었다면 몸이 터지고도 남을 위력이었다.
제발 뒤졌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몸을 돌렸다.
리볼버와 함께 쿨타임에 들어간 유탈라스의 비늘.
이제 안 뒤졌더라도 어쩔 수 없다.
해볼 건 다 해봤다.
여전히 뛰고 있는 헌터들과 함께 도어를 향해 열심히 달렸다.
기억에서 본 피렌조는 분명 강했지만, 괴력이 있다거나 특수한 기술을 쓰는 건 아니었다.
다른 숨겨둔 힘이 있는 게 아닌 이상 엄청난 두께의 도어를 뚫어내는 건 불가능.
외부랑 통하는 도어를 닫고 지원을 기다리….
드드드드!
…?
한참을 달리고 있을 때.
“무… 문이!!”
“문이 닫힌다!”
아직 들어가지 못한 헌터가 태반인데 도어가 닫히고 있었다.
그 도어의 뒤에서 잔뜩 겁에 질려 이빨을 부딪히고 있는 김대석.
저 새끼 설마….
김대석이었다.
문 옆에 위치한 비상레버로 문을 닫고 있는 것은.
“티… 팀장님!!”
“기다려요!”
“뭐하는 짓이야!!!”
숨이 턱까지 차오를 정도로 달려온 헌터들이 소리를 질러댔다.
다른 문으로 돌아가려면 조금 전 피렌조가 나타났던 중앙홀을 거쳐야 했다.
“으… 으…!”
저렇게 겁쟁이 새끼였단 말인가.
머리가 잔뜩 헝클어진 채 얼굴이 구겨져 있는 김대석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바로 옆에서 피렌조를 마주했던 탓인지 공포에 잡아 먹혀버린 듯했다.
“야! 김대석!!”
“미친놈아!!”
김대석은 중앙 홀에서 팀원들의 부름에도 제일 먼저 도망쳤었다.
그리고 이젠 아직 팀원들이 도착하지 않았는데도 도어를 내리고 있었다.
“뭐하는 거예요! 당장 멈….”
퍽!
…!
같이 도착해 있는 게스트 헌터 중 한 명이 말리자 김대석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입 닥쳐! 저 괴물한테 다 죽고 싶어!?”
스릉.
“레버에 손대지 마!!”
저 쓰레기 새끼가!
레버 옆엔 대검까지 꺼내든 김대석을 이길 수 있는 헌터가 없었다.
모두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
그 상황 속에서도 도어는 반 이상 닫혀가고 있었다.
“야 김대석, 이 개새끼야!!”
아직 도착하지 못한 팀원들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인간이 덜된 건 알았지만 일해 온 세월이 있는데 이렇게 버리다니.
쿵.
“….”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소용없었다.
그대로 멈추지 않고 닫혀버린 2번 도어.
있는 힘껏 달리던 헌터들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절망하고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천천히 중앙 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도어가 닫혀 나갈 수 없는 이상, 바랄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부디 유탈라스의 한 방으로 놈이 뒤졌기를 바라는 것.
제발….
두근.
제발 그대로 누워 계세요.
두근두근.
하느님, 제발 저 새끼 그냥 누워있게 해주세요.
그렇게 해주시면 앞으로 꼭 교회 다닐게요!!
비척.
….
아주 미세한 소리였다.
온 신경을 쏟고 있는 게 아니라면 들리지 않을 아주 작고 미세한 소리.
환청이었으면 했지만,
비척.
분명히 들리고 있었다.
무언가를 질질 끌며 걷고 있는 듯한 소리.
“….”
“….”
소리를 들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 김대석을 욕하며 절규하던 이들도 지금은 모두 중앙 홀 쪽을 바라보며 얼어버린 상태.
굳은 표정을 보아하니 소리는 분명 저들에게도 들리고 있었다.
비척… 뚝.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소리의 정체.
하느님… 부처님… 알라시여….
머리로 떠오르는 신들을 전부 찾아보았다.
그러지 않고서는 너무 무서워서 정신이 남아날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조금 전 유탈라스의 주먹에 가격당한 피렌조의 좌측 가슴.
가슴을 기점으로 왼쪽이 전부 사라져 있었다.
….
그리고 무언가 질질 끌리던 소리.
피렌조는 오른손에 떨어져 나간 왼쪽 어깻죽지를 든 채 걸어오고 있었다.
어깻죽지에서 떨어질랑말랑 달랑거리며 땅에 끌리고 있는 왼팔이 소리의 정체였다.
무섭다.
너무 무서우면 비명조차 안 나온다 했던가.
지금 내가 딱 그 상태였다.
저런 몸 상태가 되었는데도 피렌조의 입은 여전히 양옆으로 벌어져 있었다.
마치 이렇게 돼서 더 즐겁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트… 틀렸어….”
뒤에서 절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 죽을 거야.”
“흑흑. 누가 좀….”
“살고 싶어…. 살려줘….”
누가 보면 이미 다 죽어서 요단강 건너고 있는 줄 알 정도의 절망.
“포… 포기하지 마요!”
“저런 상태잖아요! 다 같이 싸워봐요!”
그나마 있었다.
정상인 사람들이.
어젯밤 만났던 게스트 헌터, 배이슬과 유연경이었다.
“맞… 맞아요! 수적으론 우리가 더 유리해요!”
그나마 공포에 집어 삼켜지지 않은 대산의 헌터 몇 명도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다행이네, 멀쩡한 인간들도 있어서.
“전 대상의 속도를 줄여나갈 수 있어요. 상대의 강함에 따라 줄어드는 속도나 맥스치는 존재하지만….”
“주변에 놓인 10개 내의 돌을 강화하고 움직일 수 있어요.”
유연경과 배이슬을 시작으로 헌터들이 번갈아 가며 자신의 능력을 밝혔다.
어쨌든 함께 싸우게 되었으니 서로의 능력을 아는 게 필요했다.
….
마지막 헌터의 설명까지 들은 후.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지금 있는 헌터들은 전부 서포터 혹은 원거리 딜러들이었다.
당연히 근접 전투에 있어선 취약한 상태.
이들이 무언가 할 수 있도록 피렌조로부터 지켜줄 사람이 필요했다.
나네.
어렸을 때부터 굳이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역할을 나눠 플레이하는 MMORPG 게임을 할 때도 탱커 같은 부담이 큰 역할은 피해왔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내가 탱커라니.
꿀꺽.
할 수 있을까.
애초부터 피렌조는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니었다.
거기에 더해 예상치 못했던 일격까지 맞으며 부상까지 얻은 상황.
해보….
비척… 비척… 비척… 비…. 타다다!!
시벌.
비틀거리며 걸어오던 피렌조가 속도를 올려 달려오기 시작했다.
잘려나간 한쪽 팔을 든 채 비틀거리며 달려오는 모습은 정말… 무서웠다.
“키리리!!”
당한 부상 때문에 화가 난 건지.
아니면 지금 상황이 즐거운 건지 미묘한 괴성을 내지르는 피렌조.
저벅.
그런 피렌조를 향해 첫발을 내딛었다.
[잭 더 리퍼]
오른손으로 생겨나는 면도칼.
지금 내겐 이것뿐이었다.
타닷.
나도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와라.
빠르게 가까워져 오는 피렌조.
붕대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