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39화 (39/473)

39화. 70층에서

토벌전이 끝난 다음 날.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난리가 나 있었다.

“와 미쳤다 진짜.”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유동 인구가 모이는 지역, 강남.

강남의 중앙에 위치한 스크린으로 어제 토벌전의 인터뷰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 이… 이게 무슨 영상인가요!

# 진실입니다.

진실이라는 한 마디와 함께 재생된 영상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대산에 가지고 있던 모든 이미지를 박살 내는 영상.

“저게 김대석이라고?”

“합성 아니야?”

합성이란 단어가 나올 정도로 영상엔 믿기 힘든 내용 들이 담겨 있었다.

나름 대산의 간판 헌터 역할을 해오던 김대석.

그 김대석이 제일 먼저 싸움에서 도망친 건 물론, 아직 팀원과 민간인인 게스트들이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도어를 내려버리고 있었다.

“와 진짜 개쓰레기 새끼네.”

“질질 짜는 거 봐.”

평소 김대석을 응원하던 시민들도 이번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 개미굴 영상 분석한 사람 있지? 그 사람 말이 맞았네.”

무기왕의 개미굴 영상이 퍼진 후.

마냥 환호하는 사람들 외에 몇몇은 대산의 행동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었다.

@ 저기 현장 지나가던 사람 말 들어보니까 대산 헌터들은 한참 전에 도착했다던데?

@ 한참 전에 도착했는데 왜 아직도 저기에 있음?

@ 그러니까 이상하다는 거지. 기자들 기다리느라 안 들어갔다는 말이 있음.

@ 개소리 노노, 음모론자인 건 알겠는데 우리 지켜주는 사람들까지 의심하진 말자.

물론 의문을 제기했던 사람들은 대산과 김대석의 팬들에게 몰매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대산의 스타이자 대중들 사이에서도 위기에 처한 시민을 돕는 헌터로 알려진 김대석.

김대석이 카메라나 기다리자고 위기에 처한 시민을 버리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 저번에 음모론자라고 깠던 인간들 다 어디 갔음?

@ 내가 저 새끼 이상하다고 했제? 맨날 멋있는 최적의 타이밍에만 나온다고.

단단했던 김대석에 대한 옹호 여론은 어제 무기왕의 인터뷰로 한 방에 뒤집히고 말았다.

정확히 말하면 산산조각이나 가루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 정말 강한 데몬이었습니다.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도 않았고요. 하지만! 전 싸웠습니다!

“와 저 새끼 진짜 낯짝 두껍네.”

“안에서 저 지랄을 하고 서는 우와.”

“저게 사람 새끼가 아니여, 저게.”

스크린 앞에 모인 사람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세상 믿을 사람 하나 없다지만 어떻게 대기업 대산이 이렇게 뒤통수를 칠 수 있단 말인가.

“그나저나 무기왕은 괜찮을까?”

한참 김대석을 씹어대던 사람들의 얼굴에 걱정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영상의 파장이 센 만큼 무기왕은 현재 시민들의 영웅이었다.

노네임드로 의심되는 데몬을 상대로 모두가 도망칠 때도 홀로 맞서 싸운 헌터.

심지어는 엄청난 전투로 그 데몬을 잡아내기까지 한 영웅이 바로 무기왕이었다.

“아마 엄청 곤란하지 않을까? 용기 있는 행동이었지만 상대가 대산이니까.”

“진짜 무기왕 건드리면 쓰레기다, 쓰레기.”

한숨을 내쉰 사람들이 스크린 속의 무기왕을 바라봤다.

“무기왕 화이팅.”

* * *

여기서 죽이진 않겠지.

축축.

등은 이미 식은땀으로 바싹 젖어있었다.

대기업의 본사다 보니 방마다 에어컨도 잘 돌아가고 있는데 여긴 왜 이렇게 더운 걸까.

아, 나만 더운 건가.

슬쩍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눈에서 레이저 나오겄네.

엄청난 인원 배치였다.

현재 내가 위치한 곳은 대산의 70층, 최리아의 사무실.

당연히 정면엔 사무실의 주인인 최리아가, 양옆과 뒤로는 정장을 쫙 빼입은 대산의 직원들이 가득 차 있었다.

일부러 저러는 거겠지.

난 애초에 도망갈 생각도 없었다.

오라 그러면 올 것이고 가라 그러면 갈 생각이었는데.

- 저희랑 함께 가시죠. 몸 상태도 안 좋으신 거 같으니까요.

기자들이 떠나자마자 날 둘러싼 최리아와 대산의 헌터들.

그대로 난 대산으로 점잖게 끌려오게 되었다.

- 치료 끝났습니다.

그나마 인간적이었던 건 하나 있었다.

데려오자마자 방에 가둔 게 아니라 본사 내부에 있는 의료시설로 보내준 것.

- 이거 설마? 진짜 치료만 해주고 보내주나.

잠시 기대했지만.

의사 선생님의 끝났다는 말과 함께 밖에서 대기 중이던 덩치들이 우루루 난입했다.

밤새도록 문밖을 지키고 있었겠지.

난 그때 코 골면서 자고 있었는데 말이야.

그렇게 덩치들과 함께 온 곳이 이곳, 최리아의 방.

도착하기 무섭게 최리아와 대산의 인원들을 날 가운데에 두고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백운 님, 무슨 짓을 한지 아십니까?”

드디어 입을 여는 최리아.

저거 물어보려고 그렇게 뜸을 들인 걸까.

“토벌전에 참가해서 데몬을 잡았죠.”

“지금은 말장난을 칠 기분도, 상황도 아닙니다. 그리고 데몬을 잡았다는 건 중요한 일도 아니고요.”

“그 중요하지 않은 일을 제가 함으로써.”

천천히 옆과 뒤를 둘러봤다.

어제 김대석이 문을 닫아 함께 갇혀 있던 대산의 헌터들이 섞여 있었다.

“대산의 헌터분들이 목숨을 구했죠.”

“….”

몇몇의 헌터들이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회사에 속해 있기에 이 자리에서 무언가 말해줄 순 없겠지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 고맙습니다.

- 감사합니다.

-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광산을 떠나 다시 서울로 향하던 길.

최리아의 눈을 피해 몇몇의 헌터가 감사의 인사를 건넸었다.

“이거나 다시 한번 읽어보시죠.”

잠시 미간을 찌푸린 최리아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토벌전 참가 요청을 받았을 때 싸인한 계약서였다.

“대산이 허하지 않은 정보를 유출했을 시엔 그에 따른 손해 배상을 한다.”

음… 분명 엄청나겠지.

손해 배상을 들으니 떠오르는 건 하나뿐이었다.

도망갈까?

옛날의 아무 무능력 하던 내가 아니었다.

지금은 어딜 가든 먹고살 수 있었다.

무기 구하기도 마찬가지다.

굳이 한국이 아니더라도 어디서든 계속할 수 있었다.

회귀 전의 정보가 한국이 많아서 아쉬울 뿐이지.

사실 이것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내가 먼저 차지하지 않는다면 대산이 찾게 될 유물 무기들.

일단 찾으라고 둔 다음, 다른 곳에서 무기를 모아와 힘으로 뺏으면 될 일이다.

음…!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여기까지 생각이 도달하니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 온들 난 무너지지 않는다!

“그리고.”

계약서를 내밀었던 최리아가 오늘자 뉴스를 재생시켰다.

# 그건 완전 국민을 기만한 겁니다.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할거예요, 대산!

# 저희가 대산과 교류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런 기업과 공생을 택할 바엔 죽는 걸 택하겠습니다!

오우, 맵네.

이때다 싶어 우루루 나와 대산을 공격하는 라이벌 기업들.

각 기업을 대표하는 대변인들이 나와 대산을 잘근잘근 씹어먹고 있었다.

“백운 님으로 인해 대산이 입은 막대한 이미지 손상. 계약서엔 없었지만 이것 역시 모조리 청구할 겁니다.”

도망가자.

조금 전까진 진짜 도망가야 되나 했었는데.

저 말을 듣고 나니 오늘 밤에라도 밀입국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가기 전에 또 동영상 올리고 가야지.

만약 진짜 한국을 떠나게 된다면 그냥 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오늘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다 까발리고 MSG까지 팍팍 쳐서 동영상을 뿌린 뒤에 도망갈 예정.

“왜 게스트 헌터들이 가만히 있었는지, 한 번만 생각해봤어도 그런 무모한 행동은 안 하셨을 텐데.”

아니 근데 이 년이.

지금은 대기업의 힘으로 눌리고 있는 중이니 가만히 들어주려고 했는데 안될 것 같았다.

애초에 모두를 속여온 게 잘못인데 힘 좀 쎄다고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

난 어차피 도망갈 거니깐.

“그런데 최리아 님은 참 보면 볼수록 뻔뻔하네요.”

---!!!

쳐다보고 있진 않았지만, 사무실에 있던 모두가 놀랐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뭐라고요?”

“아니 양심이 없어도 너무 없으셔서요. 안 창피해요?”

옛날부터 이랬었다.

머리를 굴리며 최대한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다가도 입이 한 번 열리기 시작하면 브레이크 없이 술술 내뱉어지기 시작하는 것.

“사북까지 데려다주는 척하면서 능력까지 건 인간이 말이야. 좀 쪽팔려 하는 구석이라도 있는 거 아니에요?”

“!!”

최리아의 얼굴로 놀라움이 물들어갔다.

아마 내가 몰랐을 거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머지 분들, 나가 계세요.”

우루루.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이야기는 숨기고 싶었던 걸까.

사무실에 있던 인원을 내보낸 최리아가 조용히 날 응시했다.

“언제부터였죠?”

“?”

“제 능력에서 언제부터 자유로워졌냐는 겁니다.”

역시 최리아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는 스타일이다.

언제부터 자유로웠냐니.

“자유로워지고 자시고 처음부터 안 걸렸는데요.”

“?!”

그렇게 냉정을 유지하던 최리아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눈이 커지다 못해 튀어나올 기세였다.

내가 연기를 잘한 것도 있긴 하지.

세상 멍청하고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었으니.

아무리 최리아가 눈치가 빠르더라도 그걸 알아챈다는 건 불가능했다.

“어떻게 한 거죠?”

“….”

아마 궁금해 죽겠지.

나였어도 이유도 없이 면도칼이나 리볼버가 안 나오면 저런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얼굴에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스윽.

그다음, 깍지 낀 손으로 턱을 괴며 최리아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본인 능력이시잖아요. 누구한테 왜 안 걸리는지는 누구보다 잘 아실 텐데요.”

“!!!”

사실 나도 몰라.

짐작도 안 가지만 일단 최리아가 저런 표정을 짓게 했으니.

성공적이었다.

꽈아악.

오우야.

능력이 최리아의 아킬레스건인 것 같았다.

앞에 있는 종이를 저렇게 꾸길 정도로 화를 내다니.

“각오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있는 힘을 다해 날 노려보는 최리아.

분노를 넘어 거의 한이 맺힌 눈이었다.

땀 났던 몸이 식을 정도의 한기.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후회하게 만들어드리죠. 대한민국 안이라면 그 어디에서도, 아무것도 못하고 비참해지도록 말이에요!”

도… 독한 년.

독사도 울고 갈 년이다.

똑똑.

독사 년의 독기에 잠시 놀라고 있는 사이.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어휴, 누군지는 몰라도 욕먹겠네.

저렇게 화나 있는데 눈치 없이 노크를 해버렸으니.

미안합니다, 다 저 때문이에요.

“나중에!!”

아니나 다를까.

일단 꽤엑 소리부터 지르고 보는 최리아.

철컥.

방문이라 하기엔 몹시도 거대한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허… 이걸 들어온다고?

큰일이다.

죄 없는 사람이 나로 인해 불운의 희생자가 되게 생겼다.

“나중에 오라고 했잖…!!”

소리를 빼엑 지르려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최리아.

최라아가 문을 향해 급히 고개를 숙였다.

“회… 회장님!”

뭐?

회장이라니?

일이 이 정도로 커진다고?

긴장되어 뻣뻣해진 목을 천천히 돌렸다.

“안녕하세요.”

어?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목소리다.

슥.

!!

고개를 돌리자 모습을 드러낸 외국인 소녀.

계단에서 봤던 소녀였다.

싱긋.

소녀가 밝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또 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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