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곡성
드디어 왔네.
도착한 기쁨과 동시에 고개가 절로 내저어졌다.
버스도 더럽게 없었지.
오는 길이 순탄치 않았다.
사람의 발길이 끊겼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니 버스 편도 없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
터미널에서 다음 버스 시간표를 보고 눈을 비비고 말았다.
쉽지 않았어.
여섯 시간을 기다리다니.
다행이라면 주변이 번화가라 맛있는 음식점이 널려있었다는 것.
한두 군데로 만족하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한참 동안 먹방을 찍은 뒤에야 곡성행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개미굴과 광산에 이은 먹방 영상… 은 한튜브에 안 올려주겠지.
세 번째 식당을 갔을 때 문뜩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맛있게 잘 먹는데 먹방 헌터로 이름을 떨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흠.
뭐 어쨌든, 도착했다.
그나저나.
돌아가고 싶네.
곡성이란 장소를 보며 떠올린 첫 소감이었다.
까악. 까악.
저게 독수리여 까마귀여.
산 여기저기를 날아다니는 검은 물체.
까악 하고 울지 않았다면 당연히 독수리라고 생각했을 만한 크기였다.
뭐가 이렇게 휑해.
사람이 살긴 하는 건지 인기척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마을.
버스가 여기에 서는 걸 봤을 때 그나마 번화한 곳이라는 의미일 텐데.
번… 번화의 기준은 지역마다 다른 거니까.
터미널까지만 해도 무슨 버스 간격이 이렇게 기냐고 욕을 했었는데.
막상 와보니 오는 버스가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지경이었다.
저벅.
천천히 마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무리 휑하다 해도 사람 한둘쯤은 살고 있을 테니.
그곳에서 무언가 시작해 볼 생각이었다.
초희 님도 찾아야 하고.
올 때까지만 해도 이름과 얼굴만으로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었는데.
인적이 드문 정도를 보니 워낙 사람이 귀해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
길옆의 정자에 앉아 담배를 태우고 있는 할머니를 발견했다.
사람이 없어도 그러려니 싶을 동네에서 만나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자 손을 휘적 들어 보이는 할머니.
쿠… 쿨하다.
“누구여?”
“서울에서 왔는데요.”
다음 질문을 놓고 잠시 고민이 됐다.
내가 곡성에서 해야 하는 일은 두 가지.
스이카와 이초희 찾기.
뭔가 검에 대해서는 물어봐도 모르실 거 같으니.
“혹시 여기에 이런 분 오시지 않았나요?”
아저씨에게 받아뒀던 사진을 내밀었다.
무심한 얼굴로 사진을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이는 할머니.
“여기 왔던 처자네. 저어기 산으로 올라갔어.”
어딘가를 가리키는 할머니의 손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진짜 저기로 갔다고?
크거나 높진 않지만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질 정도로 으스스한 산이었다.
해까지 저물어서 그런지 더 소름 끼치는 모습.
“가지 말어.”
“예?”
화가 나신 건지 아니면 귀찮아하시는 건지 애매한 표정의 할머니.
할머니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가지 말라고. 올라간 사람들은 아무도 못 내려왔으니께.”
보… 복선?
공포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이었다.
영화의 주인공이 위험한 곳으로 향하기 전.
항상 가지 말라며 주인공에게 경고를 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주인공이 개고생을 안 할 수있는 유일한 기회.
- 아니 가지 말라면 가지 말아야지. 쯔쯧!
기회가 있었지만 그 경고를 무시하고 가버리는 주인공.
그런 주인공을 보며 얼마나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는지 모른다.
주인공도 이런 심정이었을까.
갑자기 말 더럽게 안 듣는다 생각했던 주인공이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할머니.
고생해가며 여기까지 왔는데 그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혹시 무슨 일 일었나요?”
아무리 무서운 얘기를 듣더라도 어차피 가겠지만.
모르고 무서운 것 보다 알고 무서운 게 낫지 않겠는가.
“자네가 찾는 처자도 안 나왔어. 처자 전에 왔던 학생들도 안 돌아왔고. 그 전에 갔던 사람들도 전부 다 말이여.”
꿀꺽.
100%라니.
한 명이라도 돌아온 사람이 있었으면 마음이 훨씬 편했을 텐데.
99%와 100%는 가능성이 있고 없고의 차이라 와닿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그리고 저 산, 저거 원래 없었어.”
“네…?”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산이 없었다니.
구룡산의 케이스에서도 봤지만 산 하나가 만들어지는 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누군가 뚝딱 한다고 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닌 것.
“어차피 자네도 갈 거지?”
뜨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할머니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처자도 그렇게 가부렀어. 가지 말라고 얼마나 말렸는디.”
나 같아도 한숨 쉬겠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렇게 가지 말라고 말렸는데 기어코 가서 못 돌아오고 있으니.
“감사합니다, 할머니.”
조심스럽게 할머니께 고개를 숙였다.
걱정해서 말씀해주신 건데 안 들어 처먹는 게 죄송할 따름이었다.
저… 저는 돌아올게요.
휘휘.
손을 내젓는 할머니께 다시 한번 인사를 한 뒤 산으로 향했다.
엄청나게 내키지 않았지만 올라가긴 해야 했다.
꼭 이초희를 찾는 게 아니더라도 스이카의 흔적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를 뒤지긴 해야 하니 말이다.
부디 귀신 안 나오기를 비나이다.
한 차례 기도를 올린 후 산의 입구로 발을 뻗었다.
“가… 가즈아아.”
* * *
뭐지.
산으로 오른 지 한 시간.
고개가 절로 갸웃거려졌다.
데몬이 이렇게 안 나온다고?
몇 발자국 갈 때마다 데몬이 튀어나왔던 구룡산.
도심지에 위치한 구룡산도 그런데 사람의 발길이 끊긴 이곳은 얼마나 데몬이 득실댈까.
라는 생각을 하며 언제 데몬이 나올까 기다리고 있었다.
0.
산을 오른 뒤 지금까지 나온 데몬의 숫자였다.
생각보다 안 나온다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다.
누가 관리하는 건가.
이상한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반듯하게 잘려있는 나뭇가지들과 짧게 깎여 있는 풀까지.
귀신 나올 것처럼 우거져 있던 건 산의 초입 부분뿐이었다.
그 이후로는 이게 발길이 끊긴 지역에 있는 산이 맞나 싶을 정도로 잘 정돈되어 있었다.
- 아무도 못 돌아왔어.
심지어 출발 전 들었던 할머니의 경고까지.
얼마나 긴장했었는지 모른다.
산으로 돌아오는 순간 무조건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척이나 의외인 상황이었다.
바스락.
나왔냐!?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힘차게 고개를 돌렸다.
얼레.
모습을 나타낸 건 데몬이 아니었다.
사람들.
그것도 열댓 명은 되어 보이는 다수의 사람이 숲 사이에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길을 잃어버리신 건가요?”
“어… 아직 잃어버린 건 아닌데요.”
자신감 넘치게 아뇨! 라고 대답하긴 힘들었다.
길을 잃어버린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아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단 발이 닿는 데로 뒤져보자는 생각이었는데 길을 잃어버린 거에 가까운 거 같기도 하고.
“깜짝 놀랐네요. 데몬이 언제 나올지 모르는 시간대에 산에 홀로 계시다니. 위험해요, 위험해.”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제각각 화기를 포함한 무기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저벅.
무리의 가장 앞으로 화기를 든 남자가 걸어 나왔다.
“전 윤명구라고 합니다. 무슨 일 때문에 올라오신 건가요?”
순박하실 것 같다.
질문을 건넨 윤명구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커다란 안경을 쓴 세상 착한 얼굴, 거기다 나긋나긋한 말투까지.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전 백운이라고 해요. 뭐 좀 찾고 있어서요.”
“찾는다? 야밤에 이 산에서 무얼…?”
“사람을 찾고 있어요.”
“네? 사람요? 이 산에서요?”
화들짝 놀란 윤명구가 되물어왔다.
안 놀라는 게 이상하지.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닌가 의심해도 할 말은 없었다.
이 야밤에 산에 올라서 한다는 게 사람 찾기라니.
“음….”
윤명구가 고개를 돌려 함께 온 일행을 바라봤다.
끄덕.
무언가 눈빛을 교환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는 일행들.
다행이야.
아직 말은 안 했지만 날 도와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다른 이유 때문에라도 부디 그래 줬으면 했다.
“일단 저희가 머무는 곳으로 가시죠. 너무 어두워져서 지금 사람 찾기는 위험하니까요.”
나이스.
“고맙습니다!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
90도로 꾸벅 고개를 숙였다.
….
내가 고개를 숙이는 있는 지금.
저들은 과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이상하단 말이야.
법 없이도 살게 생긴 윤명구였지만.
그것과 별개로 의구심이 들었다.
할머니가 말에 따르면 이곳은 들어간 다음 아무도 돌아오지 못한 산이었다.
곳곳을 다 뒤져본 건 아니었지만 아직까지 데몬은 나오지 않은 상태.
그럼 왜?
왜 산으로 갔던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한 걸까.
산을 완전히 넘어 반대로 나갔다?
힘든 이야기였다.
그러던 중 곧 나오겠지라 생각했던 데몬이 아닌 윤명구와 일행이 등장했다.
아직 정확한 건 아무것도 없지만, 사람들이 돌아오지 못한 이유.
어쩌면 데몬 때문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절 따라오시죠.”
* * *
허…. 산 속에 이런 곳이 있다고?
윤명구와 일행을 따라 도착한 곳은 계곡 옆에 위치한 마을… 이라기 보단 요새에 가까운 곳이었다.
어째서 산속에 이런 걸 지은 거지.
짓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애초에 이곳은 데몬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산속.
마음만 먹는다면, 시간과 인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굳이?
텅텅 빈 마을도 있는데 굳이 이런 첩첩산중에 요새를 짓는다는 건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힘드시죠? 혹시 식사는 하셨나요?”
“하하. 아뇨, 아직이에요.”
뒤에 있던 일행 중 한 명, 자신을 진선미라 소개했던 여자가 내게 다가왔다.
“나이도 어리신 거 같은데 굶고 다니면 쓰나요. 식사를 준비해드릴 테니 절 따라오세요. 그동안 명구가 방을 준비해놓을 거예요.”
“이야~ 식사까지. 너무 염치없네요.”
“호호, 아니에오. 오랜만에 오신 손님인데 식사는 당연히 대접해드려야죠. 명구야?”
“맞아요, 마음 편하게 드세요. 전 주무실 방을 준비하고 가겠습니다.
사람 좋게 웃어 보인 윤명구가 자리를 떠나고.
눈웃음을 지은 진선미가 날 한쪽 건물로 안내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 * *
요새의 가장 높은 방.
똑똑.
“진국이 형, 명구에요.”
“들어와.”
노크를 한 윤명구가 방으로 들어섰다.
“그래서, 뭐 하는 놈이야?”
피식!
웃음을 터뜨린 윤명구가 고개를 내저었다.
“국가 헌터래요. 10급짜리.”
“풉.”
요새를 이끄는 대장이자 무리의 맏형인 문진국이 덩달아 웃음을 터뜨렸다.
10급이라니.
동네 코흘리개도 종종 합격하는 급수 아니던가.
“그래서 데려왔어요. 10급따리 하나 없어져도 찾는 사람 하나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친척이나 가족도 없다고 하더라고요. 여기 오는 거 아는 사람도 없고.”
“순수하긴 한데 좀 멍청한 것 같네. 겁대가리 없이 10급이 야밤에 산을 올라?”
으쓱.
어깨를 올려 보인 윤명구가 고개를 내저었다.
“어차피 다른 곳이었으면 데몬한테 죽었을 놈이에요. 그러니까.”
법 없이도 살 것 같은 순박한 얼굴의 소유자, 윤명구.
그의 얼굴로 소름 끼치는 미소가 그려졌다.
“어차피 죽었을 목숨, 저희가 좋은 곳에 쓰도록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