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산 그 자체
“뭐…?”
잘됐다는 말에 진선미가 눈썹을 찡그렸다.
대놓고 너도 곧 친구들 곁으로 보내 준다고 말한 진선미.
진선미가 원하는 반응은 겁에 질려 살려달라며 비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영화든 현실이든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 유형.
내가 너 같은 애들을 좀 안단다.
“너 같은 애들이 있더라고. 내가 찐 싸이코다 를 보여주고 싶어서인지 깨발랄한 척하는 애들 말이야.”
“이 새끼가 미쳤나, 뭐라는 거야?”
“잘 들어 이년아. 사람들은 널 무서워하는 게 아니야. 지금 자기가 놓인 상황 때문에 겁에 질리는 거지. 너 같은 게 그렇게 진성 싸이코인 척을 해서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고.”
진선미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무언가를 말하려는 순간.
“으흑…!”
다시 한번 이초희가 참던 울음을 뱉어냈다.
“넌 좀 조용히 해봐 이년….”
옆에서 우는 이초희가 거슬린 건지 진선미가 손을 치켜올렸다.
쩌억!
우다탕!
----!!
그 자세 그대로 날아가 데굴데굴 굴러가는 진선미.
처음부터 너무 세게 때렸나.
나도 모르게 그런 진선미의 뺨을 있는 힘껏 갈겨버렸다.
어디까지 굴러가나 했는데 진선미는 어느새 문진국의 옆까지 도달해있었다.
“어? 뭐… 뭐야.”
이런 경우가 처음인지 여기저기서 낄낄대던 자리에 정적이 찾아왔다.
아마 지금까지는 다 살려달라고 빌었으면 빌었지 왕언니 뻘로 보이는 진선미의 뺨을 갈긴 사람은 없었던 듯했다.
“이 미친 새끼가!”
옆에 있던 윤명구가 무언가를 꺼내기 위해 주머니로 손을 집어넣었다.
이 새끼가 있었지.
세상 착한 인상을 하고 사람 등쳐먹는 놈이었기에 더 나쁜 새끼였다.
괘씸한 놈.
푸욱!
뭘 꺼내려고 한 지는 모르겠지만 기다려 줄 생각은 없었다.
그대로 식탁에 있던 포크를 들어 윤명구의 손과 허벅지를 연결 시켜줬다.
“끄아악!”
“계속 넣고 있어, 사기꾼 새끼.”
자리에서 일어나며 앞에 있던 이초희를 뒤로 당겨왔다.
“…!”
쩔었다.
본능적으로 한 행동이었지만 내가 생각해도 멋있는 것 같았다.
행동 하나만으로 내가 지켜주겠다는 강력한 어필을 한 것과 마찬가지인 셈.
영화나 드라마였다면 심쿵 포인트가 아니겠는가.
“으… 으.”
뺨을 얻어맞고 날아갔던 진선미가 고개를 들었다.
아직도 자기가 맞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저렇단 말이야.
어째선지 자기는 안 처맞을 거라 생각하며 대드는 놈들이 꼭 한 명씩 있었다.
저런 애들은 쥐어패야 한다니까.
조금 전 뺨을 올려붙인 건 참 잘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해 이 새끼들아! 당장 안 죽이고!”
스윽.
“…!!”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진선미 앞으로 문진국의 손이 내밀어졌다.
문진국이 뭐라 한 것도 아닌데 고개를 숙이며 입술을 깨무는 진선미.
저 저 깨갱거리는 거 보소.
“10급 형씨, 어디서 힘 좀 꽤 썼나 봐?”
드륵.
자리에서 일어난 문진국이 조소를 머금었다.
“그 여자 전에 왔던 대학생들도 그랬거든. 능력 하나씩 가지고 데몬도 상대해보고 해서 그런지 자신감이 넘치더라고.”
문진국이 엄지를 세워 자신의 목을 그어 보였다.
“그런데 다 뒤졌어, 왜? 키키킥!”
갑자기 웃음을 터뜨린 문진국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댔다.
“사람을 못 죽이더라고. 지들이 뒤질 위험에 처했는데 좀 약한 척하고 살려달라니까 알겠다며 등이나 보이고 말이야, 크큭.”
고개를 든 문진국이 날 응시했다.
너 정도는 뻔히 보인다는 건방진 눈빛이었다.
“형씨도 사람 죽여본 적 없지?”
뜨끔.
어떻게 알았지?
“거 사람 죽이는 거,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형씨도 버둥거리지 말고.”
부스럭.
문진국이 한참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사이.
뒤에서는 윤명구가 무언가를 든 채 슬금슬금 일어나고 있었다.
사람을 죽인다라.
확실히 문진국의 말대로 난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었다.
죽여보긴커녕 사람과 싸워보지도 못한 상태.
확실히 데몬이랑 사람은 다르긴 하지.
문진국이 저런 말을 뱉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보통의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해치거나 상처 입히는데 본능적인 거부감과 죄책감을 느낀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이 아무리 짐승 같은 놈이라도 생명을 뺏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망설이거나 주춤거리게 되는 것.
음.
“사람 죽여본 적이 없긴 한데.”
씨익.
예상대로라는 듯 미소를 그리는 문진국.
슬금.
쐐에엑.
날카로운 무언가가 목으로 날아들었다.
“앞으로 안 죽일 거라고 생각 한 적은 없어.”
“뭐…?”
[잭 더 리퍼]
한 손으로 이초희의 눈을 가리며 반대 손에 있는 면도칼을 뒤로 뻗어냈다.
서걱.
“!”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에 다시 한번 무거운 정적이 찾아왔다.
나에게 칼을 휘두르던 윤명구는 목을 감싼 채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영화보면 불살주의니 뭐니 하면서 자기를 해하려는 놈들까지 용서해주는 히어로들 있잖아.”
씨익.
당황하고 있는 문진국과 패거리들을 향해 소름 끼치는 미소를 그려주었다.
“제일 싫어하거든.”
푸화악!
뒤에서 붉은 핏방울이 솟구쳐 올랐다.
* * *
윤명구의 목에서 피가 뿜어지고 몇 분 후.
‘시… 시발. 저거 뭐야.’
문진국이 입을 벌린 채 조금씩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끄아악!”
푹! 푹! 서걱!
분명 국가 소속 10급 헌터라고 했었다.
9급도 아닌 10급.
동네 코흘리개나 칠순이 넘어간 노인들도 할 수 있는 급수였다.
‘저게… 10급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손에 시뻘건 면도칼이 생겨남과 동시에 시작된 학살극.
백운은 웃옷을 벗어 이초희의 머리에 덮은 뒤 면도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사… 살려…!”
스걱.
“끄르륵.”
문진국의 패거리에도 전투에 특화된 능력자들이 있었다.
교도소에서도 한 끗발 날렸던 싸움꾼도 있었다.
하지만, 누가 됐든 지금은 모두가 평등했다.
면도칼을 들고 있는 백운에겐 갓난아이처럼 아무것도 못 한 채 썰리고 있는 패거리들.
꿀꺽.
마른침이 넘어갔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항상 반대편 입장에 서 있었기에 눈앞에 있는 인간의 공포와 비명을 즐기기만 했었다.
“자… 잠깐만. 내가 잘못…!”
푹.
“꺽!”
엉금엉금 뒤로 물러나던 진선미에게 면도칼이 날아들었다.
‘아… 악마다.’
악마라는 단어 말고는 눈앞에 있는 남자를 설명할 길이 없었다.
다른 이보다 몇 박자는 빠른 움직임 때문이 아니었다.
면도칼이 지나가는 곳마다 솟아오르는 새빨간 피의 분수.
백운은 그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새빨간 피를 뒤집어쓰면서도 조금의 표정 변화조차 없었다.
사람을 한 번도 죽여보지 않았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수십의 사람을 죽여온 자신조차 첫 살인을 하기까지는 많은 망설임과 시도가 있었는데.
저렇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살아있는 사람의 목을 긋다니 말이 안 됐다.
“후우….”
진선미를 마지막으로 백운이 한숨을 내쉬었다.
5분?
아니다.
3분도 걸리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낄낄거리며 숨 쉬던 열댓 명의 패거리가 지금은 빨갛게 물들어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뚝. 뚝. 뚝.
“!!”
그리고 잠시 후, 다가오기 시작했다.
저벅.
온몸에 칠해진 피엔 아랑곳 않는, 진짜 악마가.
* * *
“너 뭐냐, 그 표정.”
어이가 없었다.
바지에 오줌을 지린 채 바닥에 엎어져 있는 문진국.
이 인간이 정녕 조금 전까지 그렇게 기세등등하게 말하던 인간이 맞나 의심이 들었다.
“무서워서 그런 거면 양심 참 없다, 너도.”
탁! 하고 맥이 풀리는 것 같았다.
너무나 자신만만하고 확신에 찬 말투에 나도 마지막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어이가 없다, 어이가 없어.
하지만, 저 표정을 보니 아닌 것 같았다.
순식간이긴 했지만 패거리들이 다 죽을 동안에도 문진국은 그저 오줌이나 뽑아내고 있었다.
천천히 걸어 문진국에게 다가갔다.
“자… 잠깐! 잠깐만!!”
문진국이 허겁지겁 손을 내저었다.
설마.
“설마 살려달라고 하려는 건 아니지?”
아무리 미치광이 살인마라고 해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다른 죄 없는 사람들은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죽였으면서 말이다.
“나… 날 죽이면 안 돼!”
이건 또 무슨 개소리지?
살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죽이면 안 된다니.
“나랑 거래한 데몬! 내가 죽으면 그 거래가 끝나! 그럼 너네도 끝이라고!”
아까 데몬과 거래를 했다느니 마느니 하더니 그건 사실인 모양이었다.
신기한 능력일세.
잘 어울리는 능력이기도 하고.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는 싸이코패스 살인마에게 딱인 능력이었다.
“이… 이제 비용을 지불해야 할 시간이야!”
“아니 근데 이 새끼가 아직도 비용 타령을 하고 있네.”
“진짜야! 당장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거래가 깨질 거라고!”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혹시 모르니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본 후 죽여도 늦지 않을 것 같았다.
“기회 줄 테니까 얘기해 봐.”
스윽!
물어보기 무섭게 문진국이 손을 들어 이초희를 가리켰다.
“당신이랑 내가 살려면 당장 살아있는 인간을 비용으로 지불해야 돼!”
“….”
괜한 걸 물은 듯했다.
말할 기회를 주자마자 저런 소리를 지껄이다니.
“불합격.”
핏.
면도칼이 붉은빛을 내며 문진국의 손목을 스쳐 지나갔다.
“어?”
순식간에 지나간 면도칼에 문진국이 눈을 꿈뻑였다.
워낙 순간이라 무슨 일이 일어난 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푸확!
“끄아아아!”
솟구친 피와 함께 문진국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으아악! 살려줘!! 제발 살려줘!”
문진국이 뒹굴며 소리를 질러댔지만 무의미한 짓이었다.
“근처에 아무도 없잖아. 뭐하러 그렇게 소리를 질러.”
그런 문진국을 뒤로하고 이초희에게 다가갔다.
뒤덮어진 옷을 끌어안고 귀를 막은 채 덜덜 떨고 있는 이초희.
이초희가 놀라지 않도록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전 초희 님 아버지 부탁으로 온 사람이에요.”
“!!”
아버지란 단어에 옷 너머로 놀라는 게 느껴졌다.
스윽.
옷 밑으로 받아왔던 사진을 밀어 넣었다.
조금이지만 떨림이 줄어들고 있는 이초희.
조금만 더 진정이 되면 데리고 내려가면 될 것 같았다.
우르르릉.
…?
이초희가 진정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발아래로 정체불명의 진동이 울려왔다.
지진인가?
“끄… 끄르…. 다… 다 죽었어… 이제.”
숨이 끊어지고 있는 문진국이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쿠쿠쿠궁!!
서 있기조차 힘든 진동에 이초희를 챙겨 주변을 살폈다.
어디냐!
뭘 하길래 이런 진동이 생기는 건지 모르겠지만.
땅이 이 정도로 울릴 정도라면 분명 거대한 크기의 데몬이었다.
우르르르르릉!!
그렇게 두리번거리며 문진국과 계약했다던 데몬을 찾고 있을 때.
이런.
데몬이 보이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어어어어--!!
무언가의 울음소리가 귀를 찢을 듯이 울려 퍼졌다.
정확히는 산 전체에 메아리처럼 퍼지고 있었다.
- 그리고 저 산, 저거 원래 없었어.
오르기 전에 만났던 할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그땐 무슨 말인가 했었는데.
꿀꺽.
말 그대로였네.
본능적으로 깨달아버린 사실에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이 산이….
으득.
데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