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마운티거
곡성의 어느 경찰서.
“으으! 지겹다 지겨워!”
순경 김수찬이 기지개를 켜며 밖으로 걸어 나왔다.
끝나지 않는 당직 근무.
거의 퐁당퐁당 하루건너 하루 당직이었다.
“하아. 난 왜 여기로 오게 된 걸까.”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여기로 배치되었단 말인가.
멋있는 제복을 입고 서울에서의 도시 라이프를 꿈꿨었는데.
후릅.
“이거라도 있으니까 사는 거지.”
믹스 두 개가 들어가 무척이나 달달한 커피.
당직 중에 마시는 이 커피마저 없었다면 아마 우울증에 걸렸을 것이다.
“사방이 그냥 다 산이네 산이야.”
앞에도 산, 뒤에도 산, 옆에도…?
“어?”
옆에도 산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산이 있긴 있는데 무언가 이상했다.
미묘하지만 위치가 바뀐 듯한 느낌.
“뭐… 뭐지? 새벽도 아닌데 잠이 덜 깼나.”
구우우우우우----!!
김수찬이 스스로를 의심하려는 찰나.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으… 어!”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산이 움직이고 있었다.
“뭐야! 무슨 소리야!”
퇴근 준비를 하다 말고 뛰쳐나온 이경장.
굳어 있는 김수찬의 눈을 따라간 이경장의 입이 벌려졌다.
“저게 뭐야?”
“어… 어떡하죠? 이경장님.”
꿀꺽.
침을 삼키며 심호흡을 한 이경장이 몸을 돌렸다.
“뭘 어떡해!! 군이든 국가 헌터든 빨리 연락 돌려!!”
* * *
이런 샹.
갑자기 죽어있는 문진국이 다르게 보였다.
무슨 얼빠진 데몬이 저런 놈이랑 거래를 했나 했는데 마운티거라니.
소식주의여서 가능한 건가.
엄청난 몸집을 자랑하지만 멈춰있는 마운티거에게 필요한 건 최소한의 양분이었다.
보통은 산으로 착각하고 올라온 등산객을 먹이로 삼는다고 들었는데 이곳 곡성은 사람의 발길이 끊긴 장소였고, 가능하다면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 마운티거의 특성상 편안한 식사를 제공받기 위해 문진국과 계약을 한 것 같았다.
하이라이트 제조기 새끼.
지금까지 발견된 데몬들 중에서도 손에 꼽는 크기를 자랑하는 마운티거.
크기가 거대한 만큼 헌터와 싸울 땐 항상 장관을 연출하던 녀석이었다.
이걸 어쩐다.
별다른 공격 능력이 있다거나 움직임이 빠른 건 아니지만.
문제는 크기였다.
아무 능력이 없어도 크기가 작은 산과 맞먹다 보니 걸음만 걸어도 재해 수준이었다.
“꺄악! 대… 대체 무슨 일이!”
쿠구구구---!
마운티거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건지 지대가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지금 서 있는 곳이 마운티거의 어느 부위인지를 모르니 일단 피하고 봐야 했다.
“초희 님, 괜찮으시죠? 내려갈 거예요.”
“네… 네!”
다행이라면 이초희의 멘탈이 멀쩡하다는 것이었다.
문진국과 진선미가 있을 땐 죽을 거라는 공포 때문에 울음을 터뜨렸지만, 지금은 또렷한 눈으로 내 말을 잘 알아듣고 있는 상태였다.
쿠우…!
“어… 어떻게 내려가죠?”
마운티거가 일어나며 경사는 가팔라지고 있었다.
산의 지형 역시 바뀌기 시작해 길을 알아보기 힘든 상태.
어쩔 수 없구만.
조금 더 여유로울 때 첫 개시를 하고 싶었는데.
살아 움직이는 산에서 이초희를 데리고 평범하게 하산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잘 부탁한다.
[비전 수리검]
* * *
곡성으로 출발하기 전날.
사찰에서 얼마 안 떨어진 숲속으로 향했다.
꿀잠 좀 자려고 했더니.
광산에서 피렌조와 싸운 뒤.
오랜만에 마음이 편한 오늘이었다.
밤바람도 선선하겠다 각 잡고 사찰에서 늘어지게 자볼 생각이었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비전 수리검.
낮에 무기고에 넣은 수리검이 계속해서 머리에 떠올랐다.
당장 누가 날 잡아먹는 것도 아니기에 급할 게 없는데도 이상한 일이었다.
얼른 써보고 자자.
“후우웁.”
시원한 산바람을 들이켠 뒤.
[비전 수리검]
무기고에서 수리검을 꺼내 들었다.
가만히 들고만 있는데도 거대한 수리검의 묵직한 무게가 느껴졌다.
가운데 일자로 된 손잡이를 중심으로 네 방향으로 뻗어 있는 곧은 삼각형의 날.
무게 봐라.
회귀 전 TV에서 봤을 때도 겁나 무겁겠구나 했었는데.
직접 들어보니 수리검은 예상했던 것보다 두세 배는 더 묵직했다.
그냥 팔 힘만으로 계속 던지는 건 무리겠는데.
그만큼 무거웠다.
대충 팔만으로 던지다간 탈골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무게.
힘 자체는 늘어나지 않는 건가?
잭 더 리퍼나 유탈라스 같은 경우엔 신체의 능력 역시 함께 증폭됐었는데 지금은 아닌 것 같았다.
수리검이 크다곤 하나 이 정도까지 무겁게 느껴지다니.
작은 크기의 표창 던지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별 힘을 들이지 않고 던질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너무 욕심이었나 보다.
어떻게 던져야 잘 던졌다고 소문이 나려나.
잠시 고민하던 찰나, 올림픽 종목 중 하나인 투포환을 떠올렸다.
엄청난 무게의 쇠공을 원심력으로 내던지는 스포츠였다.
그렇게 여러 바퀴 돌 필요까진 없다.
슥.
수리검을 든 팔을 내린 뒤 무게를 느낀 뒤 발을 내디디며 몸을 회전시켰다.
회전을 하자 수리검에 힘이 실리는 게 느껴졌다.
이대로 힘을 잘 살려서.
던진다.
회전력이 실린 수리검을 앞으로 냅다 집어 던졌다.
후우웅!!
응?
예상보다 엄청난 소리를 내며 수리검이 전방으로 나아갔다.
쿠직!
경로에 놓여 있는 것들을 가르는 건 기본이었다.
드드… 쿵.
드드… 쿵.
경로에 있던 나무들이 몇 그루 쓰러지고.
쾅!!
암벽에 도달한 수리검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쾅… 요?
소리를 듣고 지켜보고 있음에도 믿기지 않았다.
잘못 생각했네.
수리검을 꺼내며 몸의 힘은 전혀 늘어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경로에 있던 나무는 물론이고 도착지점에 있던 암벽을 완전히 박살 내버린 수리검.
이런 효과가 날 정도로 세게 던져서가 아니었다.
더럽게 무거운 거다.
겨우 한 바퀴의 회전력을 실어 수리검을 날려 보냈다.
그만큼 속도도 빠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암벽을 부순다? 이건 그저 수리검이 미친 듯한 무게를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고, 이런 수리검을 던진 나 역시 힘이 크게 늘어나 있단 증거였다.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비전 수리검 님.
그리고 아직 끝이 아니었다.
도윤이 기억 속에서 피렌조를 봉인의 문까지 끌고 갔던 기술.
무슨 느낌이려나.
순간이동.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는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기술이었다.
항상 순간이동을 하는 사람은 무슨 기분일까 궁금했었는데.
드디어 오늘 그 궁금증을 풀 수 있을 것 같다.
“휴우우.”
작은 심호흡을 한 뒤 머릿속으로 단어를 떠올렸다.
[비전]
팟.
!!
내가 내 의도로 사용했지만, 놀라웠다.
휘이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무들 사이에 서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발아래로 느껴지는 수리검의 묵직한 쇠의 무게.
쩐다.
눈 깜짝할 사이, 내 위치는 암벽에 박혀 있던 수리검 위로 옮겨져 있었다.
* * *
쿠구우--!
“초희 님,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점점 기울어져 가는 땅에 호다닥 달려가 이초희를 들쳐 엎었다.
“네!”
돌발행동에 깜짝 놀랄 거란 예상과 달리 또박또박 대답을 하는 이초희.
역시 보통 멘탈이 아니다.
“조금 이상할 수도 있어요!”
비전으로 이동하는 기분은 뭐라 말로 설명하기 힘들었다.
굳이 설명하자면 찰나의 순간 빛이 되어 원래 위치부터 수리검까지 날아가는 느낌이랄까.
초희 님 정도는 거뜬하다.
다시 사찰로 돌아가기 전 몇 가지 확인 겸 테스트를 했다.
기억 속에서 피렌조를 끌어안고 함께 이동했던 도윤.
추후 실전에서 제대로 사용하려면 내가 함께 비전할 수 있는 한계를 몸에 익혀야 했다.
무기왕의 능력 때문인지 머리로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 상태지만, 중요한 건 실전.
- 비전.
그렇게 시작된 수십 번의 테스트.
주변에 있는 작은 돌멩이부터 꺾인 나무, 박살 나 있는 암벽 덩어리까지 여러 가지로 테스트를 진행했었다.
그 결과,
내가 들 수 있는 건 함께 비전이 가능하다.
라는 한계점을 설정했다.
손을 얹고 있는 게 다 함께 비전됐다면 사기였을 텐데.
아쉽게도 그러진 않았다.
나름 양심이 있는 무기.
거기다 비전 역시 이동 가능한 거리는 무한대가 아니었다.
수리검이 육안으로 보이는 거리.
거기까지가 나의 이동 가능한 최대 거리였다.
그래도 쿨타임은 없으니까.
수리검의 또 다른 장점이었다.
몇 개의 무기를 더 모으고 나서야 쿨타임이 사라졌던 면도칼과 달리, 수리검엔 처음부터 쿨타임이 존재하지 않았다.
팔이 뒤지게 아프긴 하지.
물론 팔이 버텨줘야 했다.
어제 테스트를 하느라 던져댄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을 정도로 수리검을 던지는 건 팔에 무리가 갔다.
이게 어디냐.
적을 한 방에 전멸시키는 강력한 능력은 없었지만 여러 상황에 이동기로 써먹을 수 있는 유틸형 무기.
지금 이 순간만 해도 가뭄의 단비 같은 능력이었다.
“후웁.”
이초희를 들쳐메고 몸을 몇 바퀴 회전시킨 뒤.
후웅!
마운티거와 마을에서 최대한 먼 곳으로 수리검을 집어 던졌다.
콰앙!
멀리까지 날아가 굉음과 함께 먼지를 일으킨 수리검.
수리검이 도착했다는 걸 확인한 후 비전으로 몸을 옮겼다.
“휴, 도착.”
“!!”
이상하다고 미리 말한 걸론 부족한 듯했다.
이초희가 깜짝 놀란 토끼 눈이 되어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럴만도 하네.
마운티거 쪽을 바라봤다.
처음 있던 곳에서 한 방에 키로미터 급으로 멀어졌으니 이런 반응도 무리가 아니었다.
“초희 님, 여기서 잘 숨어 계세요.”
“!”
무언가 말하려다 망설이는 이초희.
맞다.
“전 백운이에요.”
“아! 백운 님도 여기 같이 있어요. 다른 헌터들이 곧 도착할 거예요.”
저도 그러고 싶네요.
마음 같아선 다른 이들이 도착할 때까지 숨어있고 싶었다.
아무리 곡성이라도 주변 큰 도시엔 마운티거를 상대할만한 화력의 화기나 버금가는 능력을 가진 헌터들이 존재할 터.
지금 당장 저놈을 쓰러뜨릴 방법이 마땅치도 않다 보니 그들을 기다렸다 가는 게 나아 보이긴 했다.
그럼 지옥 가겠지.
문제는 밥 시간을 놓친 마운티거가 화가 많이 나 있다는 것.
마운티거가 저 걸음걸이로 조금만 걸어도 처음 내가 도착했던 마을이었다.
어그로라도 끌어야 한다.
내가 잡진 못하더라도 다른 이들이 올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했다.
어차피 문진국을 죽인 나한테 제일 화나 있을 테니까.
씨…씨익.
미소를 지으며 엄지를 치켜세워 보였다.
“잘 숨어 계세요, 그럼!”
“아! 조… 조심하세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거의 다 일으킨 마운티거를 바라봤다.
액션 캠 켜고.
쓰러뜨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캠을 켰다.
저벅.
앞으로 걸어나가며 몸을 회전시켰다.
“으랴아!”
후웅!
빠르게 마운티거의 근처로 날아가는 수리검.
수리검이 어딘가로 박히기 전, 마운티거 근처 적당한 허공에 도달했을 때 비전을 사용했다.
팟.
와씨.
이동과 동시에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수리검의 위.
수리검 아래는 그야말로 아찔 그 자체였다.
일단 나 좀 쳐다봐라.
[앤 보니&메리 리드]
발아래를 지탱해주던 수리검이 사라지고 양손에 리볼버가 생겨났다.
“여기 봐라! 나무 새끼야!!”
[빛의 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