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불장난
빛의 탄환이 마운티거에게 뻗어 나갔다.
콰가가가가!!
닿자마자 시원하게 마운티거를 갉아나가는 탄환.
쉴새 없이 탄환을 뿌리며 아래를 바라봤다.
시… 시발.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이 있었다.
난 지금 하늘에서 추락하며 총을 쏘고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그대로 추락사다.
개무섭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바람의 저항을 느끼며 마른침을 삼켰다.
어딘가에 발을 디디고 쏘는 것과는 천지차이였다.
그나마 마운티거의 크기가 커서 아무대나 쏴도 맞는 게 다행이었다.
아니었다면 발아래를 신경쓰느라 다 빗나갔을 터.
우어어어---!!
열심히 총을 쏜 보람이 있는 걸까.
마운티거가 천천히 몸을 돌리기 시작했다.
효과가 있다.
다행이었다.
시원하게 뻗어 나간 탄환이 앞에 있는 지반을 박살 내고 있었지만, 산 그 자체인 마운티거에게 있어선 그리 큰 데미지가 아니었다.
이 정도 데미지로 나를 돌아봐 준다는 건 무척이나 감사해야 하는 일.
거기다 밥 시간을 방해한 게 나란 것도 알 테니.
마운티거가 왜 최대한 몸을 일으키지 않았겠는가.
사람으로 치면 극한의 귀차니즘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참 모자라지만 문진국 같은 놈이라도 잡아 계약해 먹이를 구해오게 한 것.
그런 마운티거를 시원하게 일으켜 세웠으니 아마 날 찢어 죽이거나 다른 사람으로 배를 채우기 전까진 멈추지 않을 터였다.
후우우우웅!
[비전 수리검]
가까워져 가는 지반을 바라보며 다시 수리검을 꺼내 들었다.
리볼버를 벌써 집어넣어야 한다는 게 아쉬웠지만 조금 더 미뤘다간 내가 추락사할 것 같았다.
일단 살고 생각하자.
뒤에 있는 산으로 수리검을 던졌다.
쿵!
수리검이 박히는 걸 확인하자마자 몸을 옮겼다.
슥.
아직도 고개를 돌리고 있는 마운티거.
어그로는 끌었고.
날 바라보게 하는 건 성공했으니 이제 누군가 도착할 때까지 신나게 도망치기만 하면 된다.
되는데….
만약 아무도 안 온다면?
늦은 시간에 곡성이라.
결국 누군가 오긴 하겠지만 몹시 늦게 올 경우도 고려해야 했다.
시선을 계속 끌며 저 마운티거의 엄청난 공격 범위에서 도망치려면 수리검의 비전이 필수적인 상황.
무한대로 던질 순 없다.
사용시간이나 쿨타임은 없지만 내 팔이 견디지 못하기에 타임리밋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마냥 세월아 네월아 도망만 치다 아무도 도착하지 않으면 그대로 마운티거에 깔려 쥐포가 되고 말 터.
마운티거의 약점.
산에 가면 항상 조심하라고 귀에 못이 박히게 듣는 게 있다.
바로 산불.
작은 불씨만으로도 커다란 산을 홀라당 다 태워버릴 수도 있기에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항상 불조심을 강조한다.
저놈한테는 유일하게 불조심을 안 해도 되니까.
산 그 자체인 마운티거 역시 불에는 쥐약이었다.
몸집을 다 때려 부수는 방법도 있지만 그건 마운티거의 크기를 봤을 때 쉽지 않은 일.
쉽게 번지게 만들 수 있는 불이 마운티거에게 가장 많은 데미지를 줄 수있는 방법이었다.
지반은 알아서 약해진다.
몸에 있는 나무와 풀을 태워버릴 때마다 마운티거의 생명력은 줄어들고 동시에 몸을 지탱하고 있는 바위와 토반은 약해진다.
박살 내는 건 나중의 일, 일단은 다 태워버려야 했다.
불을 어디서 구해야 되나.
이럴 때 무기고에 불에 관련된 무기가 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지금은 당장 없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시골이라 주유소도 없을 거고.
시골 중에서도 상시골인 곡성의 마을.
어디 민가에 쳐들어가서 LPG가스라도 뽑아오지 않는 이상 불을 구할 방법이 없어 보였다.
아.
순간 문진국과 진선미가 있던 요새가 떠올랐다.
분명 첫 만남 때 화기를 들고 있었던 몇몇의 인원.
거기다 요리까지 했으니 불이 아니더라도 가스통 혹은 기름이라도 있을 터였다.
스윽.
고개를 들어 요새가 있는 위치를 가늠했다.
아까 저쯤에서 던졌을 테니까.
마운티거가 일어서면서 어느 정도 위치가 달라졌겠지만 워낙 움직임이 둔한 녀석이었다.
오차가 있더라도 크진 않을 듯했다.
부디 기름이랑 화기가 가득하길.
속으로 소박한 기도를 한 후.
후웅…!
마운티거를 향해 수리검을 던졌다.
* * *
“빨리 다 깨워서 오라고 해!”
곡성 근처의 소규모 헌터 지부.
이제 막 퇴근의 달달함을 느끼려던 헌터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시랑 군 헌터 지부는!?”
연락 담당인 헌터가 고개를 내저었다.
“높은 급수 중엔 가용한 헌터가 없다고 합니다. 일단 가능한 헌터라도 보내준다고는 하는데 그마저도 꽤 오래 걸린다네요.”
“헌터 중앙처에서 마운티거에게 긴급 현상금을 붙여 준다고는 합니다. 주변에 프리랜서 헌터라도 있으면 와 줄 겁니다.”
으득.
지부를 이끄는 5급 헌터 오태구가 인상을 찌푸렸다.
웬만한 데몬이라면 보통 오태구의 선에서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마운티거는 아니었다.
아무리 대인전에서 강한 능력을 가졌더라도 압도적인 크기를 가진 마운티거에겐 무소용.
불 능력자 같은 화력이 강한 헌터가 필요했다.
‘나타난 위치가 외진 곳이라 다행이지만… 마운티거의 걸음이라면 시내까지도 금방이다.’
지금은 근처의 경찰서에서 마을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있다고 했다.
살고 있는 사람이 워낙 소수다 보니 마을 사람들의 대피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주거지역이 밀집해 있는 시내였다.
‘거긴 오래 걸릴 텐데.’
서울만큼은 아니지만 시내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살았다.
오밤중에 일어나 도망치라 해도 길이 제한 되어있는 이상 제 시간 안에 모두가 피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어떻게든 지체라도 시키자.’
고개를 돌린 오태구가 당황하고 있는 부하들을 바라봤다.
배치된지 얼마 안 된 인원도 있는데 다짜고짜 산이랑 싸우라니.
저런 표정을 하고 있는 것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 갈 수는 없는 노릇.
“마운티거는 공격 자체가 강한 녀석이 아니다! 기름, 가스통, 수류탄 할 것 없이 불을 낼 수 있는 건 다 챙겨!”
“예!”
명령을 전달한 오태구가 장비를 챙겨 문으로 향했다.
“최대한 빨리 간다!”
* * *
빙고.
감을 따라 도착한 산속의 마을.
마운티거가 움직이며 기울고 부서지고 아수라장이 되었지만 쓸만한 게 많이 놓여있었다.
이 새끼들은 탈옥하면서 뭘 훔쳐온 거야.
도움 될 만한 걸 찾다 보니 도착한 집.
집 안엔 별의별 화기가 다 놓여있었다.
유탄 발사기부터 기관총, 수류탄까지.
생긴 것 뿐만이 아니라 갖추고 있는 화력 역시 요새라 부를 만했다.
우우우우우우우---!!
와씨.
아주 느리지만 저 멀리서부터 마운티거의 손이 다가오고 있었다.
날 쥐포로 만들겠다는 일념을 담은 채 말이다.
호다닥.
혀를 내두르는 걸 멈추고 재빠르게 소총과 수류탄 몇 개를 챙겨 담았다.
모기가 이런 느낌이었나.
먹고 살기 위해 어깨에 앉아 피를 빠는 모기.
그 모기의 입장에서 다가오는 사람의 손을 생각해보니 지금의 나와 비슷할 것 같았다.
다음엔 한 번 봐주자.
무기를 다 챙긴 뒤 음식을 내오던 주방으로 달려갔다.
여러 개의 LPG통과 휘발유 통이 놓여있는 주방.
주방에 왜 이런 것들이 모여있나 궁금했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영화에서나 보던 건데.
놓여있는 노끈을 이용해 LPG통에 수류탄을 연결 시켰다.
기름통은 몸이 버텨주는 만큼 최대한 등으로 둘러멨다.
우어어어어어---!
다시 한번 마운티거의 손 위치를 확인한 뒤.
옆에 있는 철막대를 집어 밖으로 달려나갔다.
부디 지옥 가시길.
엎어져 있는 살인마의 옷을 찢어 막대에 감은 다음 기름통에 한 번 담궈줬다.
칙!
라이터로 불을 붙이니 훌륭한 휴대용 횃불이 탄생했다.
예상대로 활활 타오르는 기름 횃불에 고개를 한 번 끄덕여 준 후,
팅.
수류탄의 핀을 뽑은 가스통을 사방으로 굴려버렸다.
경사를 따라 데굴데굴 잘 굴러가는 가스통.
콰앙! 콰앙! 콰앙! 콰앙!
잠시 후 수류탄과 함께 가스통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화륵!
동시에 생겨난 불씨까지.
폭발 지점을 중심으로 마운티거의 몸에 불이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모자르다.
불은 계속 커지겠지만 마운티거의 전체에 번지려면 한참 걸릴 것 같았다.
가볼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어릴 적부터 어른들이 하지 말라고 누누이 말했던 것.
자기 전에 하면 오줌 싼다고 했던 그것.
불장난.
* * *
“우오오오오!”
잭 더 리퍼를 꺼내 들고 열심히 내달렸다.
왼손엔 면도칼, 오른손엔 급조한 횃불이 들려 있었다.
화르륵!
급조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날씨가 건조해서인지 횃불이 닿았다 하면 무섭게 불이 옮겨붙고 있었다.
우아아아아아아----!!
왠지 모르게 분노가 더 쌓인 듯한 울음소리.
화날 만하지.
모래알만 한 모기 새끼가 빈혈이 일어날 정도로 피를 빨아먹고 있으니.
어찌 화를 안 낼 수 있겠는가.
휙!
메고 있던 휘발유통 하나를 내던지고 K2 소총을 겨눴다.
탕! 퍼엉!
그대로 적중해 주변으로 불붙은 기름이 흩뿌려졌다.
흐뭇.
이래 봬도 군 시절 특등사수였다 이 말씀이야!
다시 내달리며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길이 끊기면 수리검을 던져 이동했고 달릴만한 곳이 있으면 다시 면도칼을 꺼내 빠르게 불을 질렀다.
꽤 돌아다닌 거 같은데.
마운티거의 몸 전체를 돌진 못했다.
하지만, 내가 굳이 다 돌 필요는 없었다.
화마가 무서운 속도로 마운티거의 몸을 집어삼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어어어어---!
마지막 남은 기름까지 탈탈 털어 마운티거에게 부은 뒤 반대쪽 산으로 몸을 이동시켰다.
장관이네.
몸 대부분이 활활 타고 있는 마운티거.
워낙 덩치가 크다 보니 대낮이 된 것처럼 사방이 밝아져 있었다.
쩌적!
괴로워하던 마운티거의 몸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됐다!
몸을 감싸고 있던 나무와 풀들의 소실로 몸을 지탱하는 힘이 많이 약해진 것.
이제 화력을 쏟아 약해진 마운티거의 본체를 박살 내면 됐다.
이쯤이면 누가 와야 할 텐데.
쿠웅!
…!?
누가 안 왔나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찰나.
몸부림치던 마운티거가 서서히 방향을 틀었다.
지금까진 몸에 불을 지르는 날 잡기 위해 바둥거렸었는데.
이젠 공격이 아닌 생존으로 방향을 튼 모양이었다.
이런 샹.
불은 지를 만큼 다 지른 상태.
불에 타면 탈수록 마운티거의 몸은 약해지겠지만, 시간이 필요했다.
저쪽은 시내 방향인데…!
온몸이 활활 타고 있는 산, 마운티거.
죽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불을 질렀지만 저런 게 시내로 나갔다간 재앙이었다.
타앙! 펑! 다다다다다!
…!
그런 마운티거의 발아래로 탄과 미사일이 부어졌다.
마을에서 가까운 곳에 있던 헌터들인 것 같았다.
반가운 이들이었지만,
부족하다.
전투 계열이라 할지라도 이런 거대한 적에게 통할 만한 화력을 가진 헌터는 소수였다.
지금 도착한 이들 중엔 충분한 화력을 가진 헌터들이 없는 듯했다.
어떡하지.
헌터들의 공격에도 마운티거는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급격히 줄어든 생명력을 채우기 위해 가벼운 공격쯤은 무시하려는 듯했다.
쿵… 쿵… 쿵.
천천히지만 조금씩 멀어져 가는 마운티거.
쩌저적!
몸 자체는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
꿀꺽.
- 콰아앙!!
산산조각 났던 옹달샘의 거북이를 떠올린 뒤, 마운티거의 머리 위를 바라봤다.
될까?
확신은 안 섰지만, 할 수밖에 없었다.
해보자.
심호흡을 한 뒤 몸을 일으켰다.
[비전 수리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