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지키다
현장에 도착한 오태구와 헌터들.
“최대한 다리로 쏟아부어!”
팀원들에게 지시한 오태구가 마운티거를 쳐다봤다.
도착했을 때부터 이미 활활 불타고 있었던 마운티거.
자기들 외에 먼저 도착한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저렇게 전체에 불을 붙여놓다니.’
마운티거는 불에 약하기에 불을 놔야 한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고, 불을 놓는 행위 역시 어려운 건 아니었다.
단지, 유의미한 데미지를 주기 위해선 그만큼 넓게 불을 질러야 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었다.
‘누군지 얼굴이나 보고 싶군.’
저렇게 불을 붙인 걸 보니 적어도 불과 관련된 능력자인 듯했다.
어찌 됐든 누군지 모를 헌터 덕에 마운티거는 상당한 타격을 입은 상태였다.
우어어어어---!
문제는 마무리였다.
아무리 약해졌더라도 여전히 규모는 엄청난 마운티거.
저런 거대한 녀석에게 마지막 큰 한 방을 먹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거기다 저놈이 향하고 있는 방향은… 시내다.’
시내도 조금 전 대피를 시작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최소 필요 시간은 세 시간.
아무리 못해도 세 시간 동안 마운티거의 발을 묶어놔야 했다.
‘가능할까…?’
오태구가 개방한 능력은 들고 있는 도끼를 강화시키는 엑스 인첸트.
대인전에선 강한 능력을 발휘했지만 마운티거에게 있어선 있으나 마나 한 능력이었다.
두두두두두… 쾅!
고개를 돌려 화기를 쏘고 있는 팀원들을 바라봤다.
모두가 최선을 다해 퍼붓고는 있지만 마운티거는 시선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냉정하게 봤을 때 마운티거의 발을 잡아두는 건 불가능한 일.
‘다가가서 도끼질이라도 하고 싶은데.’
이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엄청난 크기인 만큼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 위협적이었다.
조금만 틀어지더라도 그대로 깔아뭉개질 수 있었다.
“지… 지부장님, 어떡하죠? 멈추질 않습니다.”
“데미지를 주고 있는 게 맞는지도 헷갈립니다!”
팀원들의 말대로였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불에 의해 마운티거의 몸은 많이 약해져 있었지만 그렇다고 대인전에서나 사용하는 화기에 데미지를 입을 정도는 아니었다.
‘딱 한 방… 한 방이면 되는데… 정말 없는 건가.’
몸 곳곳에 붉은 균열이 생긴 걸 봤을 때 한 방이면 될 것 같았다.
마운티거를 눕힐 수 있는 커다란 한 방 말이다.
번쩍.
“…!?”
“조금 전에 뭔가…?”
오태구가 쏘던 화기를 멈추고 조금 전 빛이 발생한 곳을 응시했다.
마운티거에게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위치였다.
번쩍!
또다시 반짝이는 빛.
“저… 저게 뭐야?”
오태구를 포함한 모두가 빛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주기적으로 계속 반짝이는 금색 빛.
빛은 계속해서 마운티거의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 * *
되나?
후우웅… 팟.
될까?
후우웅… 팟!
백운아 진짜 되겠냐아아!!
내면이 의문 섞인 비명을 질렀다.
조금 전, 천천히 걸어가는 마운티거를 보며 미친 생각이 떠올랐다.
- 콰아아앙!
옹달샘에서 시원하게 깨부숴버렸던 거북이 쉨.
강도로만 따지면 거북이의 등딱지가 마운티거보다 몇 수는 위였다.
차이가 있다면 크기에 따른 엄청난 밀도 정도였다.
거북이를 부술 때는 아래에서 위로, 그것도 물속에서 올라가는 상태였다.
반대로 내가 빠르게 떨어지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그때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이 실릴 것이었다.
등껍데기를 다 깨부수고도 기스 하나 안 났던 유탈라스의 비늘.
비늘이라면 반대의 경우에도 날 지켜줄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꽈아악!
그렇게 급조된 싸구려 생각에 의한 결과가 이것이었다.
현재 몸이 있는 곳은 공중.
마운티거보다 조금 더 위인 위치였다.
빙글.
몸을 한 바퀴 돌려 수리검을 하늘로 던졌다.
바람을 가르며 시원하게 뻗어 나가는 수리검.
[비전]
팟.
현재 내가 반복하고 있는 행동이었다.
수리검을 하늘로 던지고 시야에서 벗어나기 전 비전을 사용해 이동한다.
그리고 다시 잡은 수리검을 또 하늘로 던진다!
구름이 점점 가까워지네.
열심히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현재 소감이었다.
별은 왜 안 가까워지는 걸까.
이쯤 되니 별생각이 다 들었다.
아마 본능이 정신줄을 놓지 않기 위해 아무 생각이나 쏟아내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이라도 쏟아내지 않으면.
시… 시발….
아래를 향해 고개를 돌리게 될 테고 그럼 잔뜩 멀어져 있는 지상과의 거리에 기절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적셔도 무죄다.
맨날 농담으로 지리겠다는 표현을 썼었는데 그 대가를 오늘 받을 것 같았다.
내 판단은 과연 옳았나?
벌써 정신이 아찔해지는 높이까지 올라오자 의구심이 들었다.
과연 이런 행동을 하기까지 충분한 고민과 갈등을 거친 게 맞는지, 나는 옳은 판단을 내릴 만큼 정신이 또렷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너무 부족했어!!
사람은 왜 항상 저질러 놓고 후회를 하는 걸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너무 성급했던 것 같다.
다른 방법이 있을 수도 있는데 왜 난 하늘로 올라오는 선택을 했단 말인가.
지금쯤이면 다른 헌터들 도착한 거 아니야!?
화끈한 화력을 가진 헌터가 도착했다면 내가 이런 짓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펑--! 펑--! 쾅--!
하지만, 기대와 달리 아직 그런 헌터는 오직 않은 듯했다.
마운티거의 발에 집중해 화력을 쏟아붓고는 있지만 여전히 끄떡하지 않는 상태.
꽈악… 후웅!
심호흡을 한 뒤 다시 한번 수리검을 위로 날려 보냈다.
이젠 뒤는 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후회를 하거나 판단에 의구심이 들어서는 아니었다.
그냥,
너무 개무서웠다.
조금 전에도 오금이 저렸는데 지금 돌아본다면?
지리는 건 기본이요 자칫하다간 정신줄을 잃음과 동시에 심장마비가 올 것 같았다.
번지점프 하다가도 심장마비 온다던데.
꿀꺽.
믿는다, 젊은 백운의 심장아.
무책임하게 책임을 전가한 후 계속해서 위를 향해 올라갔다.
최대한 올라가야 했다.
기회는 단 한 번.
지금 유탈라스를 사용해서도 저놈을 막을 수 없다면, 그때는 정말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올라온 걸까.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주변의 산소량이 급격히 줄어든 느낌이었다.
한 번만 더.
마지막 한 바퀴를 돌며 최대한 위로 수리검을 내던졌다.
후우…!
마지막 비전을 마친 뒤 잠시 눈을 감았다.
멀쩡했던 괴물 거북이도 부쉈다.
정신 차려! 그건 겨우 거북이 한 마리고 밑에 있는 건 산이야!
짝!
재수 없는 소리를 하는 부정적인 백운의 뺨을 후려갈긴 후 긍정적인 생각을 떠올렸다.
아래에 있는 건 다 타버린 장작 나무 같은 놈이다.
불에 의해 약해질 대로 약해져 몸마저 갈라지고 있는 그런 허우대 자식.
부술 수 있다.
아니,
부숴야 한다.
스르르.
호흡을 고른 뒤 천천히 눈을 떴다.
눈앞으로 펼쳐지는 곡성의 밤 풍경.
저 멀리로 시내의 빛들이 눈에 들어왔다.
늦은 시간임에도 빼곡하게 켜져 있는 불빛들.
비행기도 안 타봤는데 더 높게 올라 와버렸네, 맨몸으로.
“스으으….”
마지막으로 호흡을 정리한 후.
몸을 뒤집어 머리를 아래로 향하게 했다.
올라오면 떨어져야 한다.
변하지 않는 불변의 법칙이었다.
휘이이이이이--!!
귓가로 들리는 건 바람 소리뿐이었다.
떨어지고 있는 내 얼굴을 반기는 것 역시 눈 뜨기조차 힘든 매서운 바람.
이러다 눈알이 터지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그렇다고 감을 순 없었다.
봐야 한다.
아래에서 불타고 있는 마운티거.
너무 높이 올라와 삐끗하면 다른 위치로 떨어질 수도 있었다.
마운티거를 눈에서 놓치지 않으며 떠올렸다.
유탈라… 번쩍.
?!
비늘을 꺼내려는 순간.
주변의 배경이 바뀌었다.
내가 떨어지고 있던 장소는 밤 시간의 곡성.
하지만 이곳은 낮이었다.
구룡산…!
어째서 익숙한가 했는데 배경은 유탈라스가 추락했던 날의 구룡산이었다.
한낮의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
번쩍. 번쩍. 번쩍.
번갈아가며 배경이 전환되고 있었다.
한밤중에 불타고 있는 마운티거를 향해 떨어지고 있는 나와, 한낮에 황무지로 떨어지고 있는 유탈라스의 시점이었다.
“너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건가?”
!!
떨어지고 있는 중 눈앞에 나타난 유탈라스.
유탈라스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묘… 묘한 만남이네요.”
대화를 나누기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둘 다 머리를 아래로 한 채 열심히 추락하고 있는 상황.
“이대로 떨어지면 넌 죽을 수도 있다. 뭘 믿고 이런 행동을 하는 거냐?”
너무 무책임하게 책임을 전가하는 건가 싶은 마음에 살짝 대답이 망설여졌다.
“용을 천 년 동안 지켜온, 그 무엇에도 뚫리거나 부서지지 않는 비늘을 믿고…?”
조심스럽게 대답하자 유탈라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유탈라스가 내게 비늘을 건넬 때 했던 말이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냐? 무엇을 지키기 위해서?”
천 년을 기다려온 승천을 포기하고 윤슬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했던 용, 유탈라스.
“저 밑에 있을 다른 인간들을 지키기 위해서인가?”
“음… 아뇨.”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잠시 대답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닌 건 아닌 거니까.
이기적인 새끼! 라고 할 거 같은데.
그래도 솔직하게 말해야지.
“저를 지키기 위해서요.”
뜻밖의 대답이었는지 유탈라스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하긴 비행기도 안 다닐 상공까지 올라와 떨어지고 있는 놈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이 짓을 하고 있다니.
내가 말해놓고도 궤변이었다.
하지만, 그게 솔직한 내 마음이었다.
“전 계속 올라가야 하거든요.”
나도 사실 계속 의문이었다.
그렇게 정의로운 성격도, 그렇다고 영웅이 되고자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도망치면 만사가 편할 일이었다.
그런데 왜 난 항상 뒤를 돌아 사서 고생을 하는 걸까?
음… 스스로를 몹시 유하고 융통성 터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럴 때 보면 아닌 거 같기도 하고.
- 어쩔 수 없었어.
회귀 전.
항상 똑같은 핑계를 대고 도망치며 후회를 잔뜩 쌓았었다.
그렇기에 회귀 후의 삶에선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게 마운티거를 상대로 도망치지 않는 것과 무슨 상관이냐고?
뭔가 한 발자국 뒤로 후퇴하는 느낌이란 말이지.
- 왕이 되거라.
카이안의 말을 들은 이후로는 조금씩이지만 멈춤 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 걸음을 절대 멈출 생각은 없었다.
….
그런데 안될 거 같으니 물러선다?
강해 보여서 물러나고, 못 부술 거 같아서 물러나고, 죽을 거 같아서 물러나고.
이렇게 물러나다 보면 대체 어디까지 물러서야 하는 걸까?
계속 물러나다 보면… 내가 올라가야 하는 길을 잃어버리고 마는 게 아닐까?
“올라가는 길을 잃어버릴 바엔… 그 앞의 길이 낭떠러지일 망정 계속 올라갈 생각이거든요.”
내 깊은 감정을 표현하려고 애써보지만 쉽진 않다.
올라갈 길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올라가기 위해 물러서지 않으려는 날 지키기 위한 행동.
유탈라스가 미친놈 헛소리라고 생각 안 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입니다. 내가 길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지키기 위해서요.”
“….”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싱긋.
대답이 마음에 든 건지 유탈라스가 미소를 그려 보였다.
“나를 지킨다라…. 궤변이구나.”
“윽.”
역시 너무 이상한 소리였나보다.
“궤변인데, 마음에 드는구나.”
“…!”
“궤변이었어도 내가 하려고 했던 행동은 달라지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
행동이라니.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는 유탈라스.
“어디 한 번 계속 올라 가보거라.”
유탈라스가 청색 비늘이 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 길을 계속 오를 수 있도록.”
스으으.
“내가 지켜주마.”
번쩍.
다시 되돌아온 곡성의 밤 하늘.
돌아왔다는 걸 깨달은 뒤 오른손에 힘을 집중시켰다.
[유탈라스 - 2단계 의태]
용의 숨결.
1단계 의태와 마찬가지로 오른손에 유탈라스의 비늘이 모여갔다.
그리고, 이전보다 더 많은 비늘이 내 주변으로 둘러졌다.
오른손처럼 밀착되어 감싸지는 건 아니지만,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비늘이 따라오며 날 지켜주는 느낌이었다.
- 그 길을 계속 오를 수 있도록, 내가 지켜주마.
씨익.
미소를 지으며 아래에서 불타고 있는 마운티거를 바라봤다.
산 녀석아, 아무래도 내가 훨씬 단단한 거 같으니.
꽈아악!!
부서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