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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50화 (50/473)

50화. 산을 부수다

“….”

오태구가 멍하니 정면을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 마운티거의 발을 묶기 위해 화기를 쏘아대던 것도 멈춘 채였다.

“….”

오태구의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순간부터 공격하는 걸 멈추고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드드드득!!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진동하고 있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오태구와 팀원들은 그저 알고 싶었다.

대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를 말이다.

우르르르릉!!

엄청난 굉음을 자아내고 있는 건 조금 전까지 시내로 향하던 마운티거였다.

온몸에 불이 붙어 주변을 밝히고 있었던 마운티거.

그랬던 마운티거가 지금은 산산조각 박살이나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냐?”

“….”

지부장인 오태구가 물었지만 대답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살면서 산의 극히 일부분이 무너지는 산사태는 본 적이 있었어도 산 자체가 박살 나는 건 처음 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오태구가 조금 전 보였던 빛을 떠올렸다.

마운티거의 중심지에서 시작되어 계속해서 위로 올라가던 금색 빛.

끝도 없이 하늘로 올라가던 빛은 어느샌가 너무 높이 올라가 보이지 않게 됐었다.

사라라락!

그리고 잠시 후.

하늘에서부터 무언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먼 거리까지 영롱한 청색빛을 뿜어내던 무언가는 마치 하늘에서 부서진 유리가 흩날리며 빛을 반사하는 것 같았다.

- 용…?

말도 안 된다는 건 알지만 오태구는 그 빛을 보며 거대한 용을 떠올렸었다.

무수히 잘게 쪼개진 청색 빛이었지만 멀리서 보니 왠지 모르게 용의 형태를 띠고 있었던 것.

그렇게 지상을 향해 내려온 청색의 용이 마운티거에게 떨어지고.

- 콰아아아앙!!!

귀를 찢는 굉음이 터지며 지금의 믿기 힘든 광경이 시작되었다.

화르륵!

불타던 거대한 산이 무너져 내리는 장관

무시무시했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꿀꺽.

오묘한 광경을 보며 오태구가 마른침을 삼켰다.

‘대체 뭐가 있는 거냐.’

* * *

“와… 이걸 사네.”

엄청난 토사가 쌓여 있는 중앙.

그 중앙에 누워 하늘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왔다.

용님 아주 그냥 확실하구만.

지켜주겠다고 말했던 유탈라스.

처음에 하늘로 올라갈 때까지만 해도 의구심이 남아있었다.

과연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물론 살아남을 거란 생각이 더 컸기에 하늘로 향한 것이긴 했지만 말이다.

- 지켜주마.

하지만 유탈라스의 말을 들은 다음부턴 조금 있던 의구심마저 깨끗하게 사라져버렸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강한 확신이 들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난 죽지 않을 거란 확신이.

감사합니다, 용님.

그 덕에 최대 파워로 마운티거의 머리를 내려찍을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망설였다면 오른손에 들어가는 힘에도 지장이 있었을 텐데.

무조건 산다는 확신이 생기고 나니 망설임 따위는 존재하지 않게 됐다.

“하아….”

다 박살 나서도 여전히 활활 타오르고 있는 마운티거의 잔해들.

뜨듯허네.

딱 좋은 온도였다.

차가운 밤바람과 주위에서 몸을 데워주는 천연 장작들까지.

어디 가서 이런 최적의 온도를 맛볼 수 있겠는가.

어찌 됐든.

씨익.

또 한 발자국 올라갔다.

발끝을 시작으로 온몸에 퍼져 가는 짜릿한 만족감.

분명 삐끗했으면 죽을 뻔했던 상황임에도 이상하게 미소가 지어졌다.

좀 오그라들지만,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다다다다---!

멀지 않은 곳에서 헬기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사람들이 도착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으챠.”

몸을 일으켜 이초희가 있는 산을 바라봤다.

시끄러워지기 전에 탈주할 생각이었다.

호다다…?

“엉?”

열심히 달려가려는 찰나.

파묻혀 있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익숙한 모양의 꽃이었다.

시… 시발?

입술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마운티거에 관한 글을 본 적이 있었다.

얼마나 산지 모르겠는 마운티거를 잡으니 산삼 중에서도 귀하다는 천년삼이 나왔다는 글이었다.

- 데몬계의 로또, 마운티거!

이런 기사의 제목과 함께 해맑게 웃고 있던 심마니 헌터의 얼굴이 떠올랐다.

호다닥.

달려가 몸을 바짝 엎드렸다.

사삭 사삭.

조심스럽게 양옆으로 흙을 파헤쳤다.

조금이라도 다쳐선 안 된다.

덮고 있던 흙이 사라지며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 꽃의 정체.

하악. 시… 심 봤다!!

심마니들의 꿈이라고 불리는 산삼.

산삼을 발견한 뒤 돌아오는 심마니의 어깨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쳐 있다고 들었는데.

난 어깨 대신 콧구멍이 벌렁거리고 있었다.

몇 년 산이지?

마운티거가 품고 있던 산삼은 특히 더 높은 효능을 자랑한다고 들었다.

물론 사람의 양분을 빨아들이며 컸다는 게 조금 찜찜하긴 하지만, 일단 내가 먹을 건 아니니까.

“이쪽을 돌아봐! 깔린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멀리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소리.

사삭.

신속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산삼을 챙긴 뒤 이초희가 있는 산을 향해 발을 뻗었다.

* * *

머엉.

“….”

예상은 했었는데.

휘휘.

멍하다 못해 얼이 빠져있는 이초희의 눈앞으로 손바닥을 휘둘렀다.

“배… 백운 님이… 무기왕이었어요?”

뜨끔.

죄를 지은 건 아니지만 들을 때마다 움찔거리게 만드는 단어였다.

“하하.”

머쓱한 기분에 머리를 긁적였다.

꽤 먼 거리긴 했지만 리볼버의 이펙트가 워낙 화려하다 보니 못 봤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었다.

“이제 그만 멍하셔도 되지 않을까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자 이초희가 황급히 벌리고 있던 입을 다물었다.

“누가 봤든 아마 이런 표정일 거예요.”

입은 다물었지만 여전히 눈은 튀어나오기 직전이었다.

하긴, 내가 해서 그렇지 남이 했으면 나도 놀랐겠네.

고개를 돌려 박살 나 있는 마운티거의 잔해를 바라봤다.

산을 부수다니.

곤란하네.

고개가 절로 내저어졌다.

어디까지 강해지려는 거냐구.

내가 생각해도 무시무시한 성장 속도였다.

“아! 백운 님은 괜찮으세요?”

“네 저는 멀쩡해요.”

멀쩡한 걸 보여주기 위해 양팔을 들어 올리자 다시 한번 고개를 내젓는 이초희.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쩔긴 해.

하늘에서 날 감싸줬던 유탈라스의 비늘을 떠올렸다.

오른손의 변형까진 1단계 의태와 같았지만, 주변을 감쌌던 비늘은 달랐다.

이렇게 완벽하게 지켜주다니.

몸엔 조금 전 누워 굴러다니며 묻은 재 말고는 작은 생채기마저 존재하지 않았다.

“초희 님은 괜찮으세요? 정신이 없어서 물어보지도 못했네요.”

“아… 네! 전 괜찮아요.”

멘탈 점수 100점.

꾸벅.

이초희가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백운 님이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살인마들 손에 죽을 뻔했어요.”

그런 이초희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워 보였다.

“아니에요, 당연히 해야 될 일을 했을 뿐인데요.”

해보고 싶었다.

정의로운 천사의 멘트.

“제가 사람들 있는 곳까지 바래다 드릴게요. 얼른 가서 아버지께 연락하세요.”

“네…!”

이초희가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뎍였다.

“아! 백운 님도 뭔가 볼일이 있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마운티거에게 향하기 전.

계속해서 미안해하는 이초희에게 나도 볼 일이 있어 온 거니 신경 쓰지 말라고 말했었다.

혹시…?

조금 전까진 마운티거를 잡느라 정신이 없어 생각하지 못했었다.

식물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이초희의 능력.

첩첩산중에서 스이카의 흔적을 찾아야 하다 보니 막막했는데.

무언가를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

“저 초희 님, 안 그래도 무서운 일 겪어서 힘드실 텐데.”

“아니에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제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제가 뭐든 못해 드리겠어요.”

해맑게 대답하는 이초희에게 천천히 이야기를 꺼냈다.

단도직입적으로 스이카를 찾고 있다고 말하진 못했지만 몇 가지 특징을 말해주었다.

“혹시 식물들에게 한 번 물어 봐주실 수 있을까요?”

“네. 한 번 물어볼게요. 구체적인 의사소통 능력까지 되는 건 아니라서 너무 기대하시면 안 되지만요.”

“괜찮습니다. 원래도 막막했으니까요.”

고개를 끄덕인 이초희가 깊은 산 쪽으로 걸어갔다.

풀이 무성한 곳으로 걸어가 몸을 숙이는 이초희.

제발 풀님들!

아까 하늘에서 보니 곡성에 산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산속에 있는 데몬들이야 별로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물리적으로 시간이 너무 들 것 같았다.

스윽.

몇 번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난 이초희.

이초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동굴이 하나 있는 거 같아요. 풀들이 말하기로는 그곳에서 계속 들려온다고 해요.”

“드… 들려온다 하면?”

“비명이 들려온대요.”

* * *

두어 시간 후.

이초희를 마을에 데려다준 후 조금 전 있던 곳으로 복귀했다.

- 이쪽으로 쭉 가시면 될 거예요.

이초희가 찝어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둘이 있다가 혼자 있으니까 개무섭네.

둘과 하나의 차이는 엄청난 것 같았다.

데몬이 나온다고 이초희가 대신 잡아줄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귀신이 나오면 같이 비명을 질러 줄 순 있었을 텐데.

“나와라, 있는 거 다 안다!”

찐따 특.

아무도 없는 집에다가 으름장 놓기를 시전하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우우우우--!

“뒤… 뒤질래!”

귀를 스치는 바람 소리가 마치 귀신이 우는 소리 같았다.

저벅.

그렇게 의미 없는 소리를 지르며 얼마나 걸었을까.

오.

딱 봐도 흉흉해 보이는 동굴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나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끊긴 건지 입구가 전부 넝쿨과 거미줄로 막혀 있는 동굴.

스이카만 아니었다면 억만금을 준다 해도 안 들어갈 동굴이었다.

아니지, 억만금이면 들어가야지.

고개를 끄덕이며 오다 주운 막대기로 넝쿨과 거미줄을 걷어냈다.

끼아아아아아아아아----!!

거미줄을 치우기 무섭게 들려오는 엄청난 비명.

주륵.

몸에서 무언가 흘러내렸다.

식은땀인지 지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놀라서 비명조차 안 나왔다.

[잭 더 리퍼]

아직 데몬이 나오거나 한 건 아니지만 일단 꺼내 들었다.

이거라도 안 꺼내고 있으면 안으로 못 들어갈 것 같았다.

저벅.

와 분위기 봐라.

끼아아아아아아아아---!

두 번 들으니까 좀 낫네.

시원한 바람과 함께 쏟아져 나오는 소리.

처음엔 귀신이 우는 건가 싶었는데 이제 보니 깊은 동굴에서 바람이 빠져나오며 만들어진 소리였다.

반짝.

!

빙고.

동굴의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보라색 빛.

황금색 빛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렇게 쉽게 찾을 수 있다고는 생각 안 했었다.

애초에 대산에서도 제일 고생했다고 했었으니까.

빛을 따라 동굴로 조금 더 들어갔다.

힉.

보라색 빛을 뿜어내고 있는 것의 정체.

심장 약했으면 오늘 최소 세 번은 죽었다.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유골이었다.

꺼림직하긴 했지만 어쩌겠는가.

천천히 해골을 향해 손을 뻗었다.

스윽.

누군지 모를 해골 님.

손을 뻗음과 동시에 작은 기도를 올렸다.

제게 검의 흔적을 보여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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