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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51화 (51/473)

51화. 귀신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해골에 손을 댄 뒤 펼쳐진 건 어느 평야였다.

와아아아아---!

엄청난 숫자의 부대가 성을 향해 달려 들어가고 있었다.

“와아아아아!”

병사 중에 한 명이었나.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해골의 주인에게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미카이! 바로 성을 뚫고 들어가라! 승리가 눈앞에 있다!”

“예!”

몸 주인의 이름은 미카이인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들리는 건 일본어인데 다 알아듣고 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요즘이야 나노 알약 하나만 먹어도 다 알아들을 수 있는 세상이긴 하지만.

알약을 안 먹는데도 다 알아듣는 걸 보니 언어 역시 미카이 그 자체가 된 듯했다.

두근.

빠르게 뛰는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거대한 성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미카이와 군대.

아마 어느 전장의 한복판인 듯하다.

“마지막 성이다! 안에 적의 장군이 있을 것이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마지막 성이라니.

무슨 전쟁인지는 몰라도 짧지 않은 여정이었을 터.

마지막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끼아아아아아악---!

!?

얼마나 달렸을까.

성안에서 귀를 째는 비명이 들려왔다.

사람이 지르는 것과는 다른 느낌의 비명.

듣는 이로 하여금 몸을 얼어붙게 만드는 소리였다.

귀신이 소리 지르면 이런 느낌이려나.

소리를 들은 당사자인 미카이도 마찬가지였다.

본능적인 불안감을 느끼며 약간이지만 주춤거리는 발걸음.

바글바글.

왜 안 들어가는 거지?

성의 마지막 관문인 성문은 열린 지 오래였다.

이제 밀고 들어가기만 하면 전투를 끝낼 수 있을 거 같은데 왜 안 들어가는 걸까?

“뭣들 하는 거냐! 안 들어가고!”

미카이는 어느 정도 계급이 되는 병사인 듯했다.

앞에서 멈칫거리는 부하들을 다그치며 전진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안 갈 거라면 비키거라!”

그렇게 병사들을 비집고 앞으로 튀어나가려는 찰나.

누군가가 미카이의 뒷덜미를 붙잡아 뒤로 잡아당겼다.

끼아아아아아악---!!

동시에 조금 전 들려왔던 비명이 귀를 찢고 들어왔다.

핏…!

!!

왼쪽 뺨을 시작으로 콧등을 지나 오른쪽 뺨까지 그어지는 검흔.

눈앞으로 피가 터져 나왔다.

“끄악!”

조금 전 누군가 뒷덜미를 당겨준 게 아니었다면 머리가 반으로 갈라졌을 것이다.

뭐냐… 저건.

붉게 물든 시야로 머리를 풀어헤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허리까지 오는 기다란 백발의 남자.

적으로 보이는 남자는 홀로 서 엄청난 수의 대군을 막아내고 있었다.

“미.. 미카이 님! 저곳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무슨 소리냐! 갈 수가 없다니!”

“조금 전 보시지 않았습니까! 저 남자의 검을!”

남자가 휘두르고 있는 검을 응시했다.

스이카…!

보라색의 검손잡이를 시작으로 새하얗다 못해 투명한 검신이 곧게 뻗어 있었다.

검신에 새겨진 붉은색의 줄기들은 마치 사람의 혈관이 뻗어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 우와아아---!

회귀 전.

대산의 이사가 처음 검을 뽑아 들었을 때의 반응이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투명한 검날과 검날의 구석구석까지 뻗어 있는 핏줄까지.

소름 끼치지만 동시에 귀신의 검이란 이름이 잘 어울리는 멋들어진 생김새였다.

“전쟁은 끝났다! 헛된 저항을 멈춰라!!”

뒤늦게 도착한 남자가 소리를 내질렀다.

비싸 보이는 갑옷과 말에 타 있는 걸 보니 이번 전투의 장수인 것 같았다.

“끝났다니…?”

백발의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

차갑다고 느껴질 정도로 차분하게 가라앉아있는 남자의 눈.

저게 압도적인 대군을 마주하고 있는 사람의 눈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지원군이 오고 있다. 너희는 그 전에 이곳을 함락시켜야 하지. 안 그런가?”

“네놈들의 지원군은 아직도 5일 거리에 있다! 최대 속도로 달려도 3일은 족히 걸리거늘! 네놈 혼자 무슨 수로 버티겠다는 거냐!”

내가 봐도 무리였다.

검을 든 남자의 아군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태.

미카이 측의 군대는 어림잡아도 몇만은 되어 보였다.

일당백이란 말은 들어봤어도 일당십만이란 건 못 들어봤는데.

안 들리는 이유가 있었다.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

“글세…. 내가 무슨 수로 버틸지는 이제부터 알게 될 것이니 네가 걱정할 필요는 없다.”

“!!”

압도당하고 있다.

누가 보든 승기는 이쪽에 있었다.

수만 대 일의 싸움.

대충 물량으로만 밀어붙여도 일 분을 채 못 버틸 터였다.

두근 두근 두근.

미카이의 심장박동이 처음보다 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전쟁의 끝이라는 설렘에 의한 두근거림이었다면 지금은 아니었다.

어쩌면… 어쩌면 저 남자에게 막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한 발자국만 더 넘어가면 저 남자에게 목이 베일지도 모른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두근거림의 원인이었다.

겁 먹었군.

소리 지르고 있는 장군과 달리 미카이는 조금 전 경험하고 말았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검이 날아와 자신의 얼굴을 벤 게 조금 전의 일.

미카이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저 남자에게 다가가면 죽는다는 것을.

“뭣들 하는 거냐!!”

장수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단 한 놈이다! 쉬지 말고 몰아붙여라!!”

“와아아아아아!!”

장수의 외침 덕분이었을까.

사기가 살아난 병사들이 남자를 향해 돌격하기 시작했다

덜덜.

미카이를 제외하고 말이다.

다른 병사들과 달리 몸이 굳어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미카이.

철컥.

백발의 남자가 검을 검집으로 집어넣었다.

우웅!

원…?

동시에 남자의 주변으로 푸른색의 경계가 그려졌다.

미카이의 몸을 빌렸다보니 직접 현장에 서 있는 건 아니었지만, 한 가지는 알 것 같았다.

저 경계를 넘으면 죽는다.

무조건.

탁.

끼아아아아아아악--!!

병사들이 경계를 넘어간 순간.

조금 전 들렸던 비명이 퍼져나갔다.

!!

귀를 울리는 비명에 잠시 눈을 찌푸린 사이.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다.

우수수.

경계로 발을 디뎠던 병사들의 목이 떨어져 내렸다.

“계속 돌격해라! 한계가 있을 것이다!”

장수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긴 어떻게 멈추겠는가.

전쟁의 끝이, 그토록 바랐던 승리가 코앞에 있는데 단 한 명 때문에 포기를 하다니.

불가능한 일이었다.

철컥.

그때부터는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남자가 검을 휘두르면 경계 안에 있는 모두의 목이 떨어져 내렸고.

다음 병사들이 경계에 들어올 때 쯤이면 남자는 다시 검을 집어넣고 타이밍을 기다렸다.

얼마의 시간… 아니, 며칠이 지났을까.

함성이 가득했던 주변은 고요해져 있었다.

툭.

미카이의 눈앞으로 장수의 머리가 굴러왔다.

패닉이군.

미카이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함께 했던 수천, 수만의 병사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나저나 완전 미쳤네.

당사자가 아니다보니 패닉까진 아니지만.

기가 찰 정도의 발도였다.

말 그대로 귀신 같은 발도.

비명이 들리면 그걸로 끝이다.

아마 경계 안의 이들은 비명을 끝까지 듣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찰나의 순간 목이 날아갔기 때문이다.

“현명하구나.”

차가운 달빛이 백발의 남자를 내리쬐고 있었다.

달빛 아래서 검에 묻은 피를 닦아내는 남자.

남자가 무심한 표정으로 덜덜 떨고 있는 미카이를 응시했다.

“불가능에 부딪히는 건 용기가 아니다. 무모함이지.”

미카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 자신의 목숨은 눈앞에 있는 남자의 결정에 달렸기 때문이었다.

“가거라, 보내주마.”

“!!”

보내주겠다는 말에 미카이가 조금씩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주춤.

처음엔 엎어져 있는 상태로.

벌떡.

잠시 후엔 몸을 일으켜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어디로 향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저 성과 멀리, 저 성을 지키고 있는 귀신과 최대한 먼 곳을 향해 내달렸다.

도망쳐야 돼.

미카이의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말이었다.

최대한 멀리…. 저 남자가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미카이는 계속해서 달렸다.

* * *

여기까지 와버린 건가.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미카이의 유골은 깨끗했다.

무언가에 의해 상처를 입거나 하지 않았다는 것.

도망치고 도망치다 결국엔 타국의 동굴까지 숨어들어 그대로 죽은 건가.

도망치던 미카이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저 도망쳐야 한다는 일념 하나만을 가지고 이곳에 도달했을 터.

끊임없이 몰려왔을 배고픔이나 외로움, 쓸쓸함 따위로는 백발의 남자에게서 받은 공포를 떨쳐낼 수 없었다.

그렇기에 여기서 최후를 맞이한 것이었다.

스이카… 라.

귀신의 검이라 불리기에 그저 멋있어 보이려고 붙인 이름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긴 백발을 늘어뜨리고 있던 남자.

분명 사람이었지만, 어느 쪽에 가깝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귀신이었다.

누굴까.

배경이 중국이었고 생긴 게 조금 더 거칠었다면 장비를 떠올렸을 것이다.

홀로 조조의 군사 수만을 막아냈다는 장판파의 전투.

일본이었지.

하지만 기억의 배경은 분명 일본이었다.

그리고 일본에서 장판파의 장비 같은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는 신화나 구전되어 온 이야기가 전부는 아니겠지만 비슷한 것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다.

수만을 베었는데도 안 남을 정도라니.

이 정도의 일이 무슨 연유가 있어야 작은 기록조차 안 남을 수 있는 건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아.

미리 구비 해놨던 수첩을 꺼내 들었다.

역시 난 천재야.

흔적에서 무언가 보거든 잊기 전에 메모해놓기 위해 산 수첩이었다.

스슥.

이번에 적고 있는 건 글씨가 아닌 그림이었다.

처음 미카이가 달려갈 때 봤던 거대한 성의 모습을 그렸다.

더럽게 못 그리네.

중고등학교 때부터 미술 선생님이 누누이 말씀하셨었다.

넌 예체능을 가는 순간 굶어 죽을 거라고.

혜안을 가지고 계셨어.

개차반으로 성을 그리고 있자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흠.

성을 다 그린 뒤 감상을 시작했다.

일본에 있는 성들은 주기적으로 보수 겸 리모델링을 하지만,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성의 원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해놓는다.

역사가 깊은 성의 본 모습을 최대한 헤치지 않기 위함이었다.

먼저 해야 할 건 그림 맞추기인가.

배경이 일본인 건 알았지만 먼저 성을 찾아야 했다.

이런 엄청난 일이 벌어졌던 성이니 그곳으로 가면 뭐라도 있을 게 분명했다.

큰일이네, 해외여행 한 번도 못 가봤는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회귀 전의 삶.

종말의 날이 오기 전에도 남들 다 가보는 해외여행을 한 번도 못 가봤었다.

나의 첫 해외여행이 귀신 찾기라니.

첫 여행은 뜨듯한 남태평양으로 떠나 바다와 일몰을 보며 시원한 모히또 한 잔 하는 게 꿈이었는데.

모히또는 좀 미뤄야겠어.

저벅.

수첩을 잘 넣어둔 뒤 동굴을 빠져나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곡성으로 오기 전보다 한층 가벼워진 발걸음.

여러 산을 다 뒤져야 할까 걱정했었는데 이초희 덕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다다다다다---!

동굴을 빠져나와 여전히 소란스러운 마을 쪽을 바라봤다.

마운티거의 뒷처리가 한참인 듯했다.

스윽.

소란스러운 마을 쪽을 피해 걸음을 걸었다.

그럼 가볼까.

일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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