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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53화 (53/473)

53화. 공중전 가능

내가 이렇게 숨어서 쳐다보는 이유는 절대 무서워서가 아니다.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겠는가.

그저 마주치기 싫기에 빼꼼 내다 보고 있는 중이다.

설마 아니겠지.

마침 내가 가야 하는 카운터에 서 있다니.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나의 첫 여행을 최리아와 함께?

절레절레.

고개가 절로 내저어지는 상황이다.

같은 비행기라도 칸은 다르겠지.

난 무려 퍼스트 클래스다.

물론 주제에 안 맞는 비싼 가격을 치루었지만 어쨌든.

아무리 대기업의 홍보 실장이라 할지라도 퍼스트는 무리일 터.

비즈니스겠지.

최리아의 옆엔 찹쌀떡… 아니지, 팀장 전수희도 함께였다.

오늘도 호다닥거리며 열심히 무언가를 최리아에게 어필하고 있는 상태.

뭔가 짠하단 말이야.

마주하고 있기만 해도 선함이 풀풀 풍기는 사람, 전수희.

어쩌다 저런 실장 밑으로 가서 하루가 멀다하고 푸드덕거리며 힘들게 사는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갔네.

체크인을 마친 최리아와 일행이 떠나고.

약 오 분 정도의 시간을 보낸 뒤 체크인 카운터로 걸어갔다.

정말 다시는 보지 맙시다, 최리아 님.

* * *

신은 없어.

조금 전 탑승한 퍼스트 클래스 좌석.

처음 들어와서 터뜨린 건 감탄이었다.

어떻게 비행기 안에 이런 공간이 있을 수 있는 걸까.

작은 사이즈의 고급 호텔 방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푹신.

좋은 침대야.

침대 전문가는 아니지만 알 수 있었다.

손을 대자마자 딱 알맞게 감싸주는 매트리스의 감촉.

이건 고급 침대다.

비싼 술도 나온다고 하던데.

고급 침대였지만, 몸을 눕힐 시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사카 간사이 국제공항까지 비행 시간은 약 2시간 30분.

그 시간 안에 먹을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술을 때려 넣을 생각이었다.

신나는구만.

매일 박물관의 골방에 박혀 우울하게 먹는 맥주가 최대였는데.

엄청 높은 상공에서 이런 고급진 의자에 앉아 먹는 고급 양주라니.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임에도 이미 내 기분은 하늘에 붕 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여기인가요?”

숭헌 것의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말이다.

시발.

왜 저게 여기에 있지.

사실 최리아가 퍼스트 클래스에 있는 게 그리 이상한 건 아니었다.

단지 싫었다.

회사 자금은 저것이 다 까먹는구먼.

일원이라도 더 영업이익을 올려야 할 판에 퍼스트 클래스라니.

주주들이 알면 경을 칠 노릇이었다.

다행히 거리상으로는 꽤나 떨어진 위치였다.

복도에 나가서 삼바 춤이라도 추지 않는 이상 마주칠 일이 없는 거리.

“저희 에티드 항공은 승객 여러분의 안전을 최우선 시 합니다.”

퍼스트 클래스의 중앙에 선 승무원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에티드 항공이 비행하는 하늘은 항공사의 인원들이 지키고 있기에 데몬으로부터 안전하다는 것과 기내에서도 비상시에 대처할 수 있는 항공사 소속 헌터들이 항시 대기 중이라는 설명이었다.

어떻게 지키나 했더니 항로 자체를 방어하는 거였군.

개방 시대 전과 다를 바 없는 비행기의 모습에 잠시 의문을 가졌었다.

분명 비행형 데몬이 언제 어디서든 나타날 수 있을 터.

일반 비행기로 어떻게 데몬을 막는 건지 궁금했다.

안전하겠지?

근거 없는 우려는 아니었다.

회귀 전에도 잊을만하면 올라오던 기사가 데몬에 의한 비행기 추락이었기 때문이다.

내부엔 항상 추락 시에도 승객들을 지킬 수 있는 보호형 헌터가 타고 있었지만, 모두를 구한다는 건 한계가 있기에 비행기 추락 사고는 언제나 많은 사상자를 동반했다.

“잠시 후 이륙하겠습니다.”

비상시의 대처에 대한 승무원의 안내가 끝이 나고.

비행기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우.

비행기 처음 타보는 사람답게 창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내가 하늘을 날다니.

물론 어제도 하늘에 있긴 했지만 그건 날았다기보단 떨어진 거에 가까우니 제외다.

우우우우우웅!

차츰 속도를 올려가던 비행기가 하늘로 떠올랐다.

* * *

스윽.

“필요한 거 있으신가요?”

몸을 복도로 내밀기 무섭게 승무원이 달려왔다.

이게 돈의 힘인가.

새삼스럽게 데몬을 열심히 잡아 돈을 많이 벌어야겠단 다짐을 했다.

“발렌타인 한 잔 더 주실래요?”

흔들.

흔들렸다.

순간이지만 분명히 흔들렸다.

퍼스트 클래스라고 너무 양심 없었나.

지금까지 먹은 발렌타인의 양만 해도 두 병이 넘을 듯했다.

그냥 병째로 가져다주시면 마음이 참 편할 텐데.

라고 말하면 워낙 볼품없을 것 같아 마음속으로만 말해봤다.

“어디… 불편하거나 하신 곳은 없으시죠?”

애써 해맑게 웃는 승무원 분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건넸다.

이륙한 지 이제 막 한 시간 반 정도가 지났는데 양주 두 병을 마셔댔으니 걱정이 될 만도 했다.

소곤.

최리아 자리까지 목소리가 들릴세라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낮췄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나이 백운, 술에 지지 않습니다.”

“네… 네. 바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두 잔으로 좀.”

“아… 알겠습니다.”

끄덕.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후 창밖을 바라봤다.

넘나리 좋고.

입안을 가득 채우는 발렌타인의 향.

내리기 전에 최대한 많이 축적 시키고 싶었다.

“말씀하신 발렌타인입니다.”

술잔을 받기 위해 몸을 돌리려는 찰나.

“응…?”

순간이지만 창가의 구름 사이로 무언가 보인 것 같았다.

“손님…?”

창문에 집중하는 나를 봐서일까.

술을 가져왔던 승무원이 내 시선을 따라 밖으로 눈을 돌렸다.

이런 샹.

잠시 후, 날개를 펄럭이며 열댓 마리의 데몬이 모습을 드러냈다.

“!!”

데몬의 모습을 인지하자마자 어딘가로 달려가는 승무원.

어떻게 된 거야?

분명 비행기가 날아가는 항로는 지키고 있다고 했을 텐데.

어째서 데몬들이 여기까지 다가온 걸까.

비둘기 새끼들.

도번.

사람보다 두 배 정도 큰 몸집을 가진 조류형 데몬이었다.

기다란 부리에 보기만 해도 밥맛 떨어지는 깃털의 색까지.

도시의 비둘기를 떠올리는 외형 때문에 도번이란 이름보단 비둘기 데몬이라고 더 많이 불리는 녀석이었다.

# 기장실입니다. 창가에 데몬이 출몰했지만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곧 주변에 있을 방어 팀이 와 처치할 예정입니다.

그런 것 치고는 너무 가까운데.

걱정말라는 기장의 방송이 흘러나왔지만 이상한 상황이었다.

방어 팀이 어떤 공격 수단으로 데몬을 잡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비행기와 가깝다면 뭘 사용하든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치직.

첫 방송이 흘러나오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잠시 후 기장의 두 번째 방송이 흘러나왔다.

# 긴급 사태입니다.

* * *

“여긴 에티드 항공 A768, A768. 응답하라.”

잠시 응답을 기다리던 기장 최명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여기는 A768! 데몬이 출몰했다! 왜 아무도 응답하지 않는 건가!”

“기… 기장님.”

상황을 알리러 온 승무원 이다혜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인지 관제탑은 응답하지 않고 있었다.

마치 비행기의 통신이 먹통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쾅.

“어제까지만 해도 잘 되던 게 왜 이러는 거야!”

기기판을 내려친 최명호가 옆에 있던 명단을 살폈다.

비행기에 타고 있는 상시 대기 중인 헌터들의 목록.

“사람 크기의 배리어, 손가락 튕김으로 공기 탄알… 이런.”

몇몇의 헌터가 타 있긴 했지만 공중에 있는 데몬을 처치할만한 사람이 없었다.

접근하고 있는 데몬이 비행기를 공격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하는 상황.

“방어 팀은 응답하지 않는 건가요?”

이다혜의 물음에 최명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수많은 비행 중 두어 번은 데몬이 어느 정도 가까이 온 적이 있었지만.

이 정도까지 접근하게 둔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 전에 영공을 비행하고 있을 방어 팀에 의해 모두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응당 있어야 할 방어 팀은 나타나지도 않는 데다 통신까지 먹통이라니.

마치 누군가 작정하고 준비한 것처럼 최악의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다.

“배리어…! 배리어라도 키면 되지 않을까요?”

최명호가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A768 항공기에는 배리어가 없어.”

수많은 기술을 개발하는 능력자가 나온 현시대.

당연히 비행기를 데몬으로부터 지킬 수 있는 기술들도 많이 개발되었다.

문제는 비용.

개발된 기술들을 장착하려면 비행기의 모델 자체가 달라져야 했다.

이미 매입한 항공기들을 쌩으로 내다 버릴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항공사들은 모델의 교체 대신 헌터의 고용과 방어 팀을 꾸리게 한 것이었다.

“아….”

저번 비행에선 배리어가 달려있는 VIP 항공기를 탔기에 헷갈려버린 이다혜.

“기장님, 구형 모델로는 데몬들의 공격을 버틸 수 없습니다.”

빠르게 활강하며 들고 있는 창으로 찌르는 게 공격의 다인 도번.

특별하다 할 것 없는 공격이었지만 구형 항공기에겐 이마저도 치명적이었다.

여러 마리가 떼 지어 한 곳을 공격하면 기체에 상처가 생길 터였고.

만 미터 상공에 이런 상처가 생기는 순간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올 것이었다.

꽈악.

고민하던 최명호가 기내 방송으로 채널을 돌렸다.

“긴급 사태입니다. 방어 팀과의 연락이 끊겨 접근 중인 데몬을 처치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승객분들 중에 공중에서의 전투가 가능하신 분이 있다면 속히 기장실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훈련 상황이 아닌 실제 상황입니다.”

한 번 더 방송을 반복한 뒤 채널을 닫은 최명호.

최명호의 얼굴엔 낭패감이 물들어 있었다.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방송을 하긴 했지만 확률은 희박했다.

‘없을 거야….’

이백 명이 넘는 승객이 타 있는 만큼 다양한 능력자가 있겠지만.

만 미터 상공에서 전투가 가능한 인원이 있을 확률은 높지 않았다.

높지 않은 걸 떠나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는 수준.

“일단 비상 착륙 준비해주세요. 기내에 있는 헌터들에게도 준비하라고 말씀해주시고요.”

“네…!”

비상 착륙이라 말은 했지만 데몬 열댓 마리를 달고 바다로 착륙하는 게 가능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들리십니까? 기장실입니다.”

채널을 돌린 이다혜가 기내에 타고 있는 헌터들에게 상황을 전달했다.

“뭐라고 합니까?”

“헌터들도 동요하고 있습니다. 승객들을 구조하는데 특화된 헌터들이지만 한계가 있을 거 같아요. 이백 명을 모두 챙기는 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암울한 상황에 기장실로 무거운 침묵이 찾아왔다.

“….”

다가오고 있는 데몬을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게 침통할 따름이었다.

똑똑.

기장실의 침묵을 깨며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저기요…? 방송 듣고 왔는데요.”

위잉.

기장실의 문이 열리고.

“…!”

열린 문과 함께 등장한 사람에 이다혜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무섭게 쉬지 않고 발렌타인을 들이키던 사람.

혹여나 너무 취해 술주정을 부리지 않을까 걱정하던 사람.

알콜 중독이 아닐까 걱정했던 사람이 지금 기장실 문 앞에 서 있었다.

“저 비둘기들, 제가 잡을 수 있을 거 같은데… 딸꾹!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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