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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55화 (55/473)

55화. 뜻밖의 동행

“정말 감사드립니다.”

몇 번째 감사 인사인지 모르겠다.

내리는 그 순간까지 계속해서 고개를 숙이는 승무원들.

꾸벅!

비행기가 착륙한 뒤에는 기장까지 버선발로 나와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이쯤 되니 기장과 승무원들의 허리가 걱정될 지경이었다.

슥.

기장 최명호가 금색으로 된 티켓을 건넸다.

뒤에 바코드가 찍혀 있는 걸 보아 무언가의 쿠폰으로 쓰이는 것 같았다.

“아이고… 이런 건 안 주셔도 돼요.”

무슨 쿠폰인지는 몰라도 굳이 쓸 거 같지도 않은 걸 받을 필요는 없었다.

마음만 받겠다고 말해야지.

훈훈하게.

“에티드 항공의 골드 쿠폰입니다. 항공사 사이트에 입력하시면 앞으로 어딜 가시든 6회 퍼스트 클래스를 타실 수 있습니다.”

훈훈 같은 건 중요하지 않지, 암.

자본주의 시대에 머선 훈훈이야.

사삭.

누가 뺏어갈세라 재빠르게 쿠폰을 안 주머니 깊은 곳으로 찔러 넣었다.

퍼스트 클래스 6회는 참을 수 없었다.

꽈악.

두 손을 잡은 최명호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다음에도 꼭 저희 에티드 항공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끄덕.

최명호에 응수해 힘차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당연하죠.

타지 말라고 하셔도 최소 6번은 탈 겁니다.

“그럼 즐거운 여행 되시기 바랍니다!”

* * *

백운보다 먼저 심사를 마친 대산의 인원들.

전수희에게 무언가를 들은 최리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마음에 안 드는데.’

- 백운 님께 동행을 부탁드리는 게 어떨까요?

조금 전 전수희가 건넨 말이었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었다.

대산의 인원들이 향하는 회담 장소는 효고현의 히메지 성.

백운 역시 히메지 성이 목적지라니.

“흐음.”

토벌전에서 제대로 물을 먹었기에 마음에는 안 들었지만.

‘느낌이 안 좋아.’

내리기 전 들었던 기장의 말이 떠올랐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는 말.

실제로 간사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먹통이 됐던 관제탑과 방어 팀과의 통신도 모두 연결되었다고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 아침에 지시가 내려왔다고 합니다. 저희가 지나가는 경로인 기존 작전 지역에서 전부 철수하라는 지시가요.

상부에서 내려온 명령이었기에 그대로 따랐던 방어 팀.

하지만 사건이 일어나고 알아보니 상부에서는 그런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고 했다.

통신 체계를 통해 명령을 하달했던 이가 안개처럼 사라져 버린 것.

‘아무나 건들 수 있는 통신이 아니야.’

여기까지만 봐도 누군가 의도적으로 비행기를 노렸다는 건 분명해 보였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비행기에 타고 있던 이백 여명의 승객들.

과연 승객들 중 누구를 노리고 이런 일을 벌인 것일까.

슥.

고개를 든 최리아가 대산의 경호팀을 바라봤다.

국가직으로 쳐도 최소 4급은 될 헌터들이었다.

‘더 강한 헌터들이 와주길 바랐지만.’

일정이 맞질 않았다.

그저 홍보용이던 김대석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어둠 속에서 대산을 지켜내고 있는 진짜 기둥들.

위협을 받는 상황이었기에 그 헌터들의 지원을 받고 싶었지만 한 명 한 명이 모두 따로 임무를 가지고 파견 나가 있는 상태였다.

그렇다고 이번 일정을 미룰 수도 없는 일.

‘백운이라.’

대산에 제대로 엿을 먹인 토벌전 동영상.

볼 때마다 이가 갈렸지만 한 가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강하다.’

토벌전에서 모습을 드러냈던 데몬은 대산의 4급, 5급 헌터들을 어린애 다루듯이 썰어버렸었다.

그런 데몬을 상대로 엄청난 대인 전투를 선보이며 승리를 거둔 백운.

‘거기다 어제 곡성에서 있었던 마운티거의 처치와 오늘 있었던 공중전까지.’

토벌전에서도 강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더 다채롭게 강해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자존심을 세우기에는.’

옆에서 눈을 똘망이고 있는 전수희를 바라봤다.

혼자 왔다면 모르겠지만 자존심 때문에 백운을 놓치기에는 함께 하고 있는 전수희가 마음에 걸렸다.

‘….’

대산을 위해 외부의 적에겐 피도 눈물도 없는 최리아였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해온 전수희에게만큼은 달랐다.

- 퇴사하겠습니다.

- 그만두겠습니다.

입사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최리아의 성격을 못 견디고 도망쳤던 수많은 사람들.

하지만, 전수희는 달랐다.

힘들어하는 게 눈에 보였음에도 끝까지 곁을 지켜준 부하였다.

“하아.”

한숨을 내쉰 최리아가 입을 열었다.

“가서 협조를 구해보도록 하죠.”

* * *

불펴어어어어언.

기분 좋게 쿠폰을 받아 나온 간사이 국제공항.

입국 심사를 마치고 나오자 뜻밖의 인물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휘적휘적.

작은 키에 열심히 까치 발을 들고 손을 젓고 있는 전수희.

전수희의 뒤엔 선글라스를 끼고 팔짱를 낀 채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 최리아가 있었다.

- 저희와 동행해 주시면 안 될까요?

지금 앞에서 눈을 반짝이고 있는 전수희가 건넨 말이었다.

전수희와 동행이라면 모를까 내 첫 여행을 저 독사 년이랑?

절대 안 될 말이지.

칼 같이 거절을 하려던 찰나.

- 백운 님은 지금 히메지 성으로 가실 수 없어요.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곧 있을 회담으로 인해 히메지 성으로 가는 모든 길이 막혔다는 것.

- 히메지 성이 있는 효고현은 현재 삼엄한 경비로 둘러싸여 있어요. 회담과 관련이 없으면 최소 다음 달은 되어야 들어가게 해줄 거예요.

다음 달요?

내가 가지고 있는 스이카에 대한 정보라곤 검의 주인이었던 남자가 귀신같이 백발을 늘어뜨리고 있다는 것과 기억이 보여줬던 배경이 히메지 성이었다는 것, 두 개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 달을 기다리라니.

안되지, 안돼.

여기까지 왔는데.

스윽.

조심스레 고개를 돌려 기다리고 있는 최리아를 바라봤다.

질끈!

존나 싫다.

벌써부터 온몸이 비틀리며 불편해지는 기분이었다.

- 백운 님이 히메지 성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대산에서 신분을 보증해드릴게요. 히메지 성까지만 같이 가요, 네?

디테일한 이유는 말할 수 없다고 했지만, 뻔했다.

누군가로부터 노려지고 있는 최리아와 전수희.

대산의 경호팀이 있긴 하지만 최대한 더 안전을 기하고 싶은 것이었다.

“백운 님…?”

전수희가 다시 한번 되물어왔다.

대답을 해야할 때였다.

침착해.

난 최리아를 지키는 게 아니다.

스이카를 구하러 가는 거야.

히메지 성에 들어가는 순간 바로 빠이 짜이찌엔이야.

스스로를 다독이며 기다리고 있는 전수희를 바라봤다.

“조… 좋습니다! 같이 가시죠.”

* * *

와우.

생각보다 더 불편하네.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목이 뻐근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돌릴 순 없었다.

바로 정면에 앉아있는 최리아.

정면을 바라볼 바엔 담에 걸리는 게 나았다.

“백운 님, 히메지 성으로 가시는 이유가 뭐죠?”

!?

무거운 침묵을 깨며 최리아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 대산을 위해 옳지 않은 방법을 택하긴 했지만, 리아 님은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너무 미워하지 말아 주세요.

최리아가 한 행동에 대해 대신 사과를 건넸던 소피아.

겉으론 알겠다고 했지만 어쩌겠는가.

싫은 건 싫은 건데.

“해외여행이라고 하시진 않겠죠?”

뜨끔.

이거 봐.

사람을 뜨끔하게 만들기나 하고 말이야.

이래서 눈치 빠른 녀석은 싫다니까.

“개인 용무입니다.”

솔직히 물어볼 거라 예상은 했었다.

어떤 미친놈이 관광하자고 이 불편한 차에 올라타겠는가.

지나가던 꼬맹이도 의심할만한 상황이었다.

저 저 눈알 희번덕거리는 거봐라.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최리아는 묘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휙.

더러워서 안 물어본다는 듯 창밖으로 다시 고개를 돌리는 최리아.

“하하….”

그런 둘 사이에서 전수희만이 전전긍긍하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분위기 개선을 위해 무언가 하고 싶어도 옆에 있는 건 다름 아닌 상사 최리아.

회사에서의 관계를 생각해보았을 때 뭔가를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도 가는 길엔 아무 일 없어서 다행이네요.”

어허 저런 복선 깔리는 말을 하다니.

“계속 이 상태로 히메지 성까지….”

퍼엉!!

!?

“꺄악!”

차량 좌측 아래를 때리며 폭발한 무언가.

무언가에 의해 차량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 * *

“끄아… 괜찮아요?”

그대로 나뒹굴며 뒤집혀버린 차량.

특수 소재의 차량이라 그런지 폭발이 닿은 건 아니었지만, 정신없이 구른 탓에 아직도 눈앞이 핑핑 도는 것 같았다.

“네… 네, 괜찮아요. 실장님 괜찮으세요?”

“….”

구르며 부딪힌 건지 최리아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시… 실장님!”

최리아를 살피는 전수희를 뒤로 하고 뒤집혀 있는 차 문을 열어젖혔다.

동굴을 찾는 것부터 이상하게 순탄하다 싶었는데.

아까 데몬도 한 통속인지는 모르겠지만 벌써 두 번째 공격이었다.

어떤 새끼들이야.

아직도 빙빙 도는 눈에 머리를 흔들며 몸을 일으켰다.

챙! 챙! 쾅!

먼저 차에서 내려 정체불명의 적들과 교전 중인 대산의 헌터들.

헌터들이 밀릴 거 같진 않았지만 적의 숫자가 배는 더 되어 보였다.

요즘 세상에 닌자야 뭐야.

검은색 복면을 뒤집어 쓴 채 대산의 헌터들과 싸우고 있는 적들은 흡사 영화에서나 보던 닌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 명 한 명의 움직임이 잘 훈련되어있는 듯한 느낌.

처음 전수희의 말을 들었을 땐 과한 우려가 아닌가 했었는데.

이건 제대로 작정하고 죽이려는 것 같았다.

“후우…!”

천천히 숨을 들이쉬며 초점을 맞췄다.

저벅.

팽팽하게 싸우고 있는 곳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잭 더 리퍼]

* * *

“가… 감사합니다, 백운 님.”

“고맙습니다.”

적들을 상대로 치열하게 싸웠던 대산의 헌터들이 고개를 숙였다.

토벌전 이후로 나를 대하는 태도가 180도 변해버린 대산 헌터들.

“아니에요. 그나저나 이 닌자 새끼들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묻은 피를 털어낸 뒤 면도칼을 해제시켰다.

싸움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훈련을 받은 듯 했지만 닌자들이 잭 더 리퍼의 움직임을 따라오는 건 무리였고, 내가 참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망친 몇몇을 제외한 모든 닌자들이 피를 뿜으며 바닥에 널브러지게 되었다.

부우우우웅!

멀리서 이곳을 향해 달려오는 차량들이 보였다.

“아! 히메지 성에서 나오기로 했던 호위 병력입니다.”

“공항 도착해서부터 마중 나왔어야지 뭐하다 이제 오는 거예요?”

내 투덜거림에 옆에 있던 헌터가 고개를 내저었다.

“원래는 시간을 맞춰 마중 나오기로 했었습니다. 도착하고 나서 연락이 안 닿았지만요.”

구린내 봐라 이거.

비행기부터 호위 병력의 마중 시간까지.

마치 누군가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고 있는 기분이었다.

고개를 돌려 차에 기대있는 전수희와 최리아를 바라봤다.

다행히 최리아는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의외네.

보려고 본 건 아니었다.

전수희는 놀라느라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지만, 차가 공중으로 떠오른 뒤 떨어지는 순간.

최리아는 온몸으로 전수희를 감싸 안았었다.

“실장님, 괜찮으신 거죠?”

최리아의 옆에서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전수희.

전수희는 최리아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 너무 미워하지 말아 주세요.

소피아의 말이 떠올랐다.

흠… 뭐.

누군가한테는 좋은 사람일 수도 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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