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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56화 (56/473)

56화. 히메지 성

햇빛이 들지 않는 회의실.

어두운 회의실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성에 도착할 일은 없다더니 어떻게 된 거죠?”

# 크흠!

듣는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는 날카로운 목소리.

목소리에 어울리는 예리한 질문이었는지 연결되어 있는 화상 회의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추락할 거라던 비행기는 멀쩡히 공항에 도착했고, 공항에는 내렸어도 성까진 못 올 거라 하더니… 하!”

# 진정하시죠, 연 이사님.”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요?”

연 이사라 불리는 여자, 연수정이 고개를 내저었다.

“히메지 성에 도착했다는 건 곧 일본의 장군을 만난다는 거예요. 그럼 대산과 일본의 대화가 시작된다는 거고요!”

# 대화만으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되고 안되고가 문제가 아니에요, 상징이 중요한 거죠. 첫 물꼬를 트는 게 어려운 거지 그 이후는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거잖아요.”

연수정이 담배 한 대를 꺼내 물었다.

그녀는 대산의 최리아가 히메지 성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애초에서 대산에서 미리미리 일을 하셨으면 이런 수고도 없었을 텐데 말이죠.”

# 허허허!

중후한 남자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 대산은 애들 소꿉장난으로 세워져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렇게 쉽게 차지할 수 있다면 전부 회장하고 있게요.

“그러니까 미리미리…!”

#진정하세요, 연 이사님. 멀지 않은 시기에 제 손에 떨어질 테니까요.

“후우…!”

한숨을 내쉰 연수정이 몸을 파묻었다.

나이가 든 늙은이들 뿐이라 그런지 행동이 굼뜨고 느릿느릿 한 게 정말 꼴 보기 싫었다.

“그래서 대체 왜 실패한 거죠? 배리어도 없는 일반 항공기에 항로를 지키던 팀도 철수시켰고, 비행기 안엔 공중전이 불가능한 헌터만 배치했는데요.”

# 승객이라고 하더군요. 우연히 공중전에 능한 자가 타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히메지 성을 가는 길에서는요?”

# 기존 대산 인원들 외의 헌터가 한 명 더 있었다고 합니다. 살아 나온 자들 말로는 귀신처럼 강했다고 하고요.

“풉!”

설명을 들은 연수정이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별명도 가지가지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세상에 귀신이라니.

# 조금 지연되긴 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네.

“…!”

일본어와 함께 새로운 목소리가 등장했다.

듣기만 해도 눅눅하고 끈적한, 몹시 기분 나쁜 목소리였다.

# 이틀 후, 히메지 성의 장군과 대산 측 인원들은… 모두 죽을 걸세.

* * *

와 겁나 크네.

굴곡은 있었지만 어찌어찌 도착한 히메지 성.

처음 도착한 소감은 성이 몹시 넓다는 것이었다.

성이란 게 제한된 공간이다 보니 그렇게 클 거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의외였다.

꼬로록.

하루 종일 몸을 움직여서일까.

당장 밥을 집어넣으라는 배의 아우성이 들려왔다.

기다려!

그런 배를 잠시 다독였다.

배고프다고 아무거나 먹을 순 없었다.

반짝.

손에 들려있는 검은색 카드를 바라봤다.

흐뭇.

조금 전 전수희가 주고 떠난 대산의 법인 카드.

- 백운 님, 정말 감사합니다. 카드는 한국에 돌아가서 반납해주시면 돼요.

역시 된 사람이란 말이야.

감사해하는 자세가 아주 제대로 되어 있어.

- ….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사라졌던 최리아.

오는 길에 입었던 상처 때문인지는 몰라도 전보다 훨씬 말수가 줄어든 느낌이었다.

흠.

전수희를 감싸는 모습을 봐서일까.

약 2% 정도 최리아에 대한 이미지가 개선된 느낌이었다.

뭐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몹시 불편해.

플러스 괘씸하기도 하고.

이미지가 좀 개선됐다고 해서 이전에 했던 일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여전히 괘씸한 인물 넘버 투에 등록되어 있는 건 변함이 없다.

어차피 볼 일도 없으니까.

전수희와 동행하기로 했던 건 히메지 성까지였다.

성 안이니까 괜찮겠지.

오는 길에 공격이 있긴 했지만 지금은 성 안이었다.

눈에 보이는 곳만 해도 빽빽하게 병력이 배치되어 있는 상태.

이렇게 철저하니 오기 전에 제거하려고 했던 건가.

대체 무슨 회담이길래 이 정도 공격을 당하는 건지 궁금했지만.

으쓱.

이제 내 알 바 아니었다.

애초에 이곳에 온 목적은 스이카를 찾기 위함이었고 대산의 보증 덕에 성까지 무사히 들어왔으니까 말이다.

“룰루.”

뭐처럼 받은 카드이니 먹고 싶은 것들을 먹으며 식도락 스이카 찾기 여행을 즐기면 됐다.

“첫 끼로 뭘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나.”

여유롭게 걸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대체로 일본 음식은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다고 들었는데.

해외여행에서의 첫 끼가 몹시 기대되는 순간이다.

모락모락.

!?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멈춰졌다.

대각선 약 100m 거리에서 겁나 맛있어 보이는 게 뜨거운 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5252…. 뭐냐구 저건.

호다닥!

왠지 모르겠지만 저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저걸 입안에 넣을 수만 있다면 이번 식도락 여행의 시작은 몹시 훌륭할 거라는 강한 확신.

왕만두!

일본의 특화된 음식이라 볼 순 없었지만 비주얼이 미쳐버렸다.

몹시 쫄깃해 보이는 피에 가득 차 있는 속까지.

저걸 그냥 지나치면 범죄야.

이미 다국어 지원 알약은 먹어둔 상태.

“만두 하나 부탁드려요!”

“만두 하나 주실래요?”

!?

달려가자마자 손을 뻗은 왕만두.

그 옆엔 내 손을 제외한 다른 이의 손이 하나 더 뻗어져 있었다.

누구냐, 내 첫 여행의 만두를 노리는 녀석이.

불타는 의지를 표현하고자 뻗어져 있는 손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죄송한데 제가 먼저…!!”

내가 먼저 말했음을 강하게 어필하려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나와 같은 만두를 노리는 작은 키의 남자.

단정한 검은색 바가지 머리와 선한 눈매, 평화로운 인상까지.

“쿄… 쿄스케!”

* * *

회귀하기 전이었다.

개방의 조건을 찾다 찾다 지쳐 포기 직전까지 갔던 나이, 서른.

딸깍.

퀘퀘하고 어두운 반지하 방에 불이 켜졌다.

“뭐야… 얼른 꺼.”

“뭘 꺼예요, 얼른 일어나시죠. 해가 중천에 떠 있는데.”

“반지하에 사는 사람에게 해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모르는 친구네.”

잠이 덜 깬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무언가를 봉지에 바리바리 싸온 몇 없는 나의 친구 중 한 명, 모리타 쿄스케.

일본에서 태어난 쿄스케가 왜 이런 후진 동네에 살고 있는지는 아직까지 의문이었다.

“일어나서 도시락이나 먹어요. 내가 안 오면 아주 굶어 죽으시겠네.”

이대로 더 누워있으면 곧 굶어 죽겠구나 할 때쯤 귀신같이 방에 찾아오는 녀석.

사람 쉽게 죽지 않는구나.

반지하 방에 처박혀 매일 누워만 있는 놈을 찾아오는 이가 있다니.

미스테리한 일이었다.

“밤에 또 신세 한탄하다가 잤나 보네. 눈 팅팅 불어 있는 거 보니까.”

“내 하루 루틴이야. 존중해주길 바라.”

킁킁.

어디선가 맛있는 음식 냄새가 풍겨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만사가 귀찮고 그냥 이렇게 누워서 굶어 죽어야지 싶었는데.

막상 또 음식 냄새를 맡으니 식욕이 돌며 배가 꼬로록 거리기 시작했다.

인간은 참 간사해.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얻으며 쿄스케에게 엉금엉금 기어갔다.

“오늘은 무슨 도시락이야?”

“….”

무척이나 한심해 보였는지 쿄스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실패하지 않는 메뉴, 제육볶음에 계란말이에요.”

“크으… 한국인보다 더 한국의 맛을 아는 친구구만. 잘 먹을게!”

호다닥 도시락 뚜껑을 열며 웃고 있는 쿄스케를 바라봤다.

한쪽 눈을 덮고 있는 머리와 코 바로 밑까지 잠겨져 있는 지퍼가 눈에 들어왔다.

“쿄스케, 나랑 있을 땐 편하게 있어. 친구끼리.”

“아, 그렇네요. 이러고 다니는 게 적응이 돼서요.”

쿄스케가 천천히 머리를 뒤로 넘기며 입을 덮고 있던 지퍼를 내렸다.

오른쪽 눈을 가로지르며 길게 그어져 있는 흉터와 양옆으로 깊게 찢어져 있는 입.

“문신이라도 하러 가자. 내가 싸게 하는 곳 알고 있어.”

매일 흉터를 신경 쓰는 쿄스케에 문신을 하러 가자고 꼬시던 중이었다.

흉터 치료 같은 비싼 시술은 아니었지만, 주변에 문신을 하면 흉터가 어느 정도 가려졌기 때문이다.

“아니에요. 제가 신경 쓰여서가 아니라 절 보는 다른 이들이 불편해하니까 가리고 다니는 겁니다. 그리고 이건….”

고개를 내젓는 쿄스케.

“또 이건 속죄입니다, 라고 말하려는 거지?”

정확한지 쿄스케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같이 죽었어야 하는데 이렇게 살아있으니까요.”

“어허! 또 또! 이거 가만히 보면 나보다 더 우울하단 말이야.”

“그건 아닐걸요. 맨날 밤마다 울면서 잠드는 사람한테 그런 말을 듣다니.”

“이거나 더 먹어.”

쿄스케에게 제육 한 덩이를 옮겨줬다.

“내가 원래 제육 아무나 안 주는데 너니까 준다.”

“제가 사온 거잖아요.”

“이런 물질적인 인간이…? 중요한 건 마음이야!”

투닥거리는 사이 미소를 짓는 쿄스케에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을 하다 한국까지 온 건지는 자세히 얘기해주지 않았다.

단지 일본에서 누군가를 지키는 일을 했었고, 결국엔 지키지 못해 여기까지 도망쳐 왔다는 정도만 말해줬을 뿐이었다.

아르바이트라도 구하러 가야지.

앞에 앉아있는 쿄스케를 보며 마음을 먹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도시락을 얻어 먹기만 할 순 없는 일.

소고기 사줘야지.

아직 시작은 안 했지만 오늘부터 구해볼 생각이었다.

개방은 못 한 무능력자였지만, 이런 나를 이렇게까지 챙겨 주는 녀석이 있는데 인간답게는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저 이제 진짜 안 올 거예요? 그러니까 빨리 밥 알아서 잘 챙겨 먹어요.”

“에이 또 그런다. 좀 기다려봐, 오늘부터 알바 구해서 소고기 사줄 테니까!”

“오 정말요? 또 말 바꾸지 말고요.”

말은 이렇게 하면서 굶어 죽지 않게끔 찾아와 주는 고마운 녀석.

진짜 알바 구해서 고기 사줘야지.

웃고 있는 쿄스케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워줬다.

그 날 마음 먹은 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난 아르바이트를 구할 수 있었다.

아무리 무능력자라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허드렛일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 아르바이트비를 받은 뒤.

쿄스케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던 날이었다.

똑똑.

드디어 왔구만!

이 반지하 집으로 찾아올 건 쿄스케 뿐이었다.

소고기를 먹여줄 생각에 반갑게 문으로 달려나갔다.

“이 짜식이 뭐하다 이제…?”

문 앞에 있는 건 쿄스케가 아니었다.

동네 지구대에 있는 경찰 헌터들.

“모리타 쿄스케 님이랑 어떤 사이시죠?”

사무적인 말투로 물어오는 경찰.

왠지 모르게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치… 친군데요.”

“이 집에 자주 드나들었다는 제보를 받아서요. 최근에 만나신 적 있나요?”

쿄스케는 한동안 집으로 찾아오지 않았었다.

마땅히 연락할 수단도 없었기에 물어보는 것도 불가능.

그저 내가 굶어 죽을 걸 걱정해 조만간 오겠지 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고개를 젓자 경찰이 그렇군요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꿀꺽.

“쿄… 쿄스케한테… 무슨 일이 있나요…?”

무슨 일이 있냐는 한 문장을 입 밖으로 내는 게 무척이나 힘들었다.

마른침을 삼키며 천천히 열리는 경찰의 입을 바라봤다.

“모리타 쿄스케 님, 3일 전 근처 공사장에서 살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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