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흉터
쿄스케의 장례식.
덩그러니 놓인 관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밝게 웃으며 도시락을 가져오던 녀석이 지금은 움직이지 않게 되어 이 안에 누워있다니.
나밖에 없네.
들어오는 순간엔 좁은 공간이라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넓다 못해 공허할 만큼이나 넓은 느낌.
공간에 있는 거라곤 관 하나와 그 관에 있는 이를 찾아온 나 하나 뿐이었다.
톱니 모양의 칼자국.
시체를 보겠냐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었다.
전문적인 의학 지식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저, 봐둬야 할 것 같았다.
누가 죽였는지는 알 수 없더라도, 무능력자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더라도,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 피해자가 가지고 있던 것들입니다. 가실 때 챙겨 가시기 바랍니다.
박스는 경찰서 구석에 아무렇게나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건 매우 익숙한 것들이었다.
도시락 두 개와 군것질 거리들.
….
슥.
관 위로 조심스럽게 손을 얹었다.
울어야 하는 모든 조건이 갖췄음에도 이상하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본다면 장례식에 온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몹시 차분한 상태였다.
이렇듯 겉모습은 차분할 터인데.
찌릿.
안에선 속이 찢기며 뒤집히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친구가 살해당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경찰의 표정 또한 심드렁했다.
처음에 날 찾아왔을 때부터 그랬다.
데몬이 등장하고 능력자 범죄가 판치는 세상.
이런 후미진 동네에서 사람 하나 죽는 건 아무 일도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참 무능력하네.
현 세상에서 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라는 것.
이제 어느 정도는 인정하고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아닌 듯했다.
그냥, 외면하며 회피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침통한 눈으로 관을 응시했다.
생각해보니 이런 나라도 할 수 있는 게 몇 가지 있었다.
내게 힘이 있었다면 하는 쓸데없는 후회와.
무능력자인 나 때문에 라는 의미 없는 자책.
그리고, 해봐야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사과까지.
쿄스케의 관을 보며 두 눈을 감았다.
미안하다.
* * *
“절 아시나요? 어떻게 제 이름을…?”
의아하다는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는 쿄스케에 정신을 차렸다.
지금의 쿄스케는 날 알지 못한다.
“아! 기사에서 봤던 거 같아서 한번 말해봤는데 진짜였군요.”
“기사요…?”
점점 더 고개를 갸웃거리는 쿄스케에 빠르게 말을 돌렸다.
“이거 만두 드실 거죠?”
“아, 아닙니다. 저는 다른 거 먹을게요. 먼저 오셨으니까 가져가세요.”
여전히 착한 녀석이다.
이렇게 모락모락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만두를 처음 보는 사람에게 양보하다니.
슥.
가게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누가 살 건지를 눈으로 묻고 있는 가게 아저씨.
“만두 하나 주세요!”
“예이!”
한 손으론 카드를 건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덥썩.
떠나려는 쿄스케의 옷을 잡았다.
“?”
“반 줄게요, 왕만두.”
쿄스케의 눈동자가 떨리는 걸 보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미친놈인가?
라는 생각일 게 100% 분명했다.
처음 보는 놈이 이름을 부르는가 싶더니 왕만두 하나를 나눠 먹자고 한다.
나라도 미친놈이라고 생각하겠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제 성의니까 거절하지 마시고 꼭 같이 좀 먹어 주세요. 혼자 먹기 쓸쓸해서 그래요.”
저 착한 쿄스케는 거절하지 못할 거라는 걸.
작은 한숨을 내쉰 쿄스케가 어이없다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좋습니다.”
* * *
“여기요, 반.”
“!?”
반이라고 건네진 만두에 다시 한번 쿄스케의 동공이 흔들렸다.
내밀어져 있는 만두는 최소 2/3은 되어 보이는 크기였기 때문이다.
“얼른 먹어요, 식겠네.”
“아… 네 네.”
반박해봐야 별 의미 없겠다 생각한 건지 쿄스케가 만두를 받아 들었다.
“히메지 성에서는 처음 뵙는 거 같은데 언제 오신 건가요?”
“오늘 왔어요.”
“그럼 한국에서 오셨다는 대산의?”
고개를 반쯤 끄덕이며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대산이 신분을 보증해주긴 했으니 대산과 같이 온 건 맞지만, 대산 소속은 아닌 그런 위치.
“맞습니다, 대산에 잠시 고용돼서 같이 왔어요.”
설명하기 귀찮으니까 일단 대산이라고 퉁치자.
“오… 그러고 보니 서로 통성명도 안 했네요. 전 모리타 쿄스케라고 합니다.”
“백운이라고 해요.”
덥석.
서로 만두를 잡고있는 반대 손으로 어색한 악수를 나눴다.
어.
그리고,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생각도 못했다.
앞에 쿄스케가 없었다면 스스로의 뺨을 올려쳤을 것이다.
쿄스케의 오른쪽 눈과 입에는 흉터가 없었다.
물어본 적도, 말해준 적도 없어서 흉터가 있는 걸 자연스럽게 여겼던 건가.
괜히 아픈 기억을 들춰내는 것 같아 흉터가 어쩌다 생긴 건지에 대해 묻지 않았었다.
그러다 보니 어렸을 때 놀다 생긴 건지, 어디선가 싸우다 생긴 건지 모르는 건 당연한 일.
그래서인지 놓쳐버리고 말았다.
반성하자.
지금은 회귀를 한 상태.
쿄스케의 흉터가 아주 어렸을 때 생긴 게 아니라면 내가 막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몇 년 뒤에 살해당한 쿄스케를 구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다니.
멍청한 자식!
한 차례 자책을 한 후 입을 열었다.
“쿄스케 님은 히메지 성에서 일하시나 봐요. 무슨 회담 예정이라 아무나 못 들어온다고 들었거든요.”
고개를 끄덕인 쿄스케가 손을 들어 가장 높게 솟은 중앙성을 가리켰다.
“오래전부터 이곳 성의 장군님을 보좌하고 있습니다.”
“!”
자세히는 아니지만 말해준 적이 있었다.
누군가를 지켜야 했지만, 지키지 못했다는 이야기.
오래전부터 지키고 있었다면… 설마.
히메지 성의 주인이라면 오늘 대산이 만난다는 장군이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과거 쿄스케가 지키지 못한 건 히메지 성의 장군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성의 장군이 죽었을 정도면 작지 않은 전투가 있었겠지.
쿄스케의 흉터도 그때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무슨 회담이길래 이렇게 경비가 삼엄한 거예요? 오는 길에도 계속 이해되지 않는 상황만 일어나고.”
“음… 뭐 기밀사항은 아니니까요. 쉽게 말하자면 공식적인 평화협정 전의 친목 모임이라고나 할까요?”
무슨 친목 모임에 목숨까지 왔다갔다 하는 거지.
“한국이랑 일본이 전쟁하는 것도 아닌데 평화협정을 맺을 게 있나요?”
눈웃음을 지은 쿄스케가 입을 열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전쟁은 끝나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저도 직접 본 건 아니지만 공공연한 사실이거든요. 국가마다 각자의 이득을 위해 물 밑에서 정보전을 벌이는 건요.”
“스파이나 비밀 요원 그런 건가요?”
쿄스케가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거리가 가까우면서도 역사부터 꼬여있는 한국과 일본은 더 심하죠. 그에 따라 희생이 많이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고요.”
“그럼 오늘 회담은…?”
이해가 가면서도 동시에 이해가 안 가는 묘한 이야기였다.
국가끼리의 문제인데 기업일 뿐인 대산이 왜?
“크게는 국가와 국가지만 조금 더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기업들 역시 마찬가지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국가 대 국가의 평화협정 전에 작은 단위인 기업과 국가 일부 간의 평화적인 대화…? 그런 거죠.”
“대산이 스타트를 끊는 거군요.”
“그렇죠. 오늘 대화가 잘 끝난다고 해서 공식적으로 무언가 되는 건 아니지만, 둘이 만났다는 거 자체가 의미가 있거든요.”
고개를 끄덕이며 턱을 문질렀다.
이제야 좀 알 것 같았다.
“언제나 평화를 원하는 쪽이 있으면 반대 쪽도 있기 마련이다… 겠네요.”
전쟁이 일어나면 수많은 사람이 희생당한다.
전쟁은 나쁘고 최대한 빨리 끝나야 한다는 게 대부분 사람들의 생각.
하지만,
이런 전쟁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도 존재했다.
예를 들어 무기를 파는 무기상이나 상대 국가의 무언가를 전쟁이 아니면 빼앗아 올 수 없는 그런 입장인 사람.
그런 사람들은 몇 명의 희생자가 나오든 전쟁을 지속하고 싶어 하기 마련이었다.
“정확합니다. 정보전으로 인한 싸움에서의 희생이 얼마나 크든 그 정보로 인해 어마어마한 이득을 얻는 이들이 있으니까요.”
“으음…!”
턱을 문지르며 미간을 찌푸렸다.
쿄스케가 보호하고 있는 쪽은 평화를 지지하는 장군 측.
회귀 전 관련된 사건이나 사고 기사를 본 적이 없나 떠올려야 했다.
!!
떠오르라는 기사는 안 떠오르고 다른 게 떠올라버렸다.
전수희를 따라 대산의 70층에 처음 방문하며 가졌던 의문이 있었다.
회귀 전에 봤던 대산의 홍보 실장은 최리아가 아니었다는 것.
그때는 그냥 짤렸을거라 생각했는데.
그렇다고 보기엔 회장 소피아는 최리아를 무척이나 신뢰하며 아끼고 있었다.
짤린 게 아니라… 죽은 거라면?
너무 억측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묘하게 들어맞았다.
오는 길에 받았던 공격들과 쿄스케가 지키던 장군의 죽음, 그리고 홍보 실장의 교체.
“하지만 히메지 성에 도착하셨으니 대산 분들은 안전하실 거예요. 여기는 경계에 특화된 헌터만 백 여명이 있거든요. 외부에서 침입하는 건 불가능해요.”
가장 큰 위험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데서 온다.
누구인지는 기억 안 나지만 어쨌든 누군가 했던 말이다.
들어가 봐야겠어.
회담이 끝날 때까지는 최대한 대산과 더 안 엮이려고 했었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쿄스케 님, 혹시 성으로 안내 좀 해주실 수 있나요? 먹을 거 찾다가 일행을 놓쳐서요.”
잠시 무언가 생각하던 쿄스케가 고개를 끄덕였다.
“백운 님은 대산에서 직접 신분을 검증해주셨으니까요. 최고 레벨까지는 못 들어가도 그 전까지는 안내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는 쿄스케.
“가시죠.”
성으로 향하는 쿄스케의 뒷모습을 조용히 응시했다.
그 얼굴에 다시 흉터가 새겨지는 일은….
꽈악.
절대 없다.
* * *
쿄스케를 따라 들어온 히메지 중앙성 안.
바깥도 마찬가지였지만 안쪽의 경계는 더 삼엄했다.
약간의 텀을 두고 3인 1조로 빽빽하게 경비를 서고 있는 히메지 성 측의 헌터들.
경비 확실하구만.
“중앙성 주변엔 경계형 헌터 외에도 첨단 기술로 만들어진 배리어가 쳐져 있거든요.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하하, 네.”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기술이 발달하며 건물들의 외형도 전부 현대화되었지만, 이곳 히메지 성은 시간이 멈춘 듯 옛날의 전통적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딱 봐도 뭔가 고풍스러운 느낌이 풀풀 풍기는 내부 디자인.
척.
걸음을 멈춘 쿄스케가 나를 돌아봤다.
“여기서부터는 경계 최고 레벨이라 들어갈 수 없어요. 아마 대산 분들은 이 안쪽에 계실 거라 조금만 기다리면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안내 해주셔서 감사…!?”
드륵.
쿄스케에게 인사를 하려는 찰나.
거대한 문이 열리며 낯익은 얼굴들이 나타났다.
“어? 백운 님…?”
“장군 님.”
전수희와 최리아의 옆에 서 있는, 딱 봐도 어려 보이는 남자.
쿄스케가 그 남자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난, 말을 걸어오는 전수희에게 대답을 하지도, 장군이라는 남자를 향해 고개를 숙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반짝.
빛나고 있었다.
애초에 히메지 성을 방문한 이유.
귀신의 검 스이카가 황금빛을 뿜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