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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58화 (58/473)

58화. 왜 거기에 있어

말을 걸 수만 있다면 격하게 묻고 싶었다.

왜 거기에 있니.

영롱한 황금빛을 뿜어대고 있는 스이카.

열심히 찾던 녀석을 발견해서 기분이 좋음과 동시에 깊은 절망감이 느껴졌다.

어떡하지.

문제였다.

작은 문제가 아니라 몹시 큰 문제.

스이카가 있는 위치가 곤란해도 너무 곤란했다.

꾸벅.

다급하게 고개를 숙인 후 곁눈질로 다시 빛을 살폈다.

장군의 허리춤.

스이카가 걸려 있는 위치였다.

조졌다.

차라리 어디 구석진 유물지에 묻혀 있는 게 나았다.

그랬다면 어떻게든 흔적을 따라 도착해 손에 넣었을 테니까.

하지만 장군의 허리춤이라니.

이건 반칙이다.

“아 대산에서 같이 왔다는 분이시군요. 히메지 성의 장군, 히라이 쇼고라고 합니다.”

“백운이라고 합니다.”

최리아와 전수희는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몹시 의아하다는 눈빛을 띠고 있었다.

하긴, 그렇게 불편해하며 성에 도착하자마자 호다닥 사라진 놈이 제 발로 들어와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백운 님 덕분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중요한 회담이 틀어질 수도 있었는데 정말 감사드립니다.”

예의 바른 청년이었다.

많아 봐야 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장군, 쇼고.

국가에서의 공식적인 직책은 모르겠지만 한 성의 장군이라면 꽤 높은 위치일 터.

그럼에도 쇼고는 함께 있는 사람들을 불편하지 않게 만드는 부드러움을 가진 사람이었다.

“쿄스케가 모시고 온 거구나. 둘은 어떻게…?”

의아해하는 쇼고에 잠시 대답이 망설여졌다.

왕만두를 나눠 먹은 사이?

“하나 남은 기라테 아저씨네 왕만두를 백운 님이 나눠줬습니다.”

쿄스케의 대답에 내 동공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이렇게 솔직하게 대답한다고?

“그 맛있는 만두를 나눠주다니 모시고 올만 했구나.”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쇼고.

여기서도 유명한 맛집인 듯했다.

왠지 겁나 맛있더라.

킹정이었다.

베어 물자마자 터져 나오던 그 육즙.

가기 전에 또 먹어….

짝!

잠시 만두에 팔린 정신을 되찾아왔다.

여전히 빛나고 있는 스이카를 응시했다.

저걸 어쩐다.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한데 스이카까지 저런 곳에 있다니.

쉽지 않겠어.

그냥 지나가다 쇼고만 만났다면 도둑질이라도 했을 텐데.

쿄스케가 오래전부터 모시고 있는 사람의 검을 도둑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 차라도 한 잔 하려는 참이었는데 쿄스케랑 백운 님도 같이 가시죠.”

* * *

“차가 뜨거우니 조심해서 드시기 바랍니다.”

후릅.

뜨거운 차가 혓바닥을 녹였지만 머리가 너무 복잡해서일까.

작은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살면서 이렇게 머리가 복잡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고개가 내저어지는 상황이었다.

“가실 때는 쿄스케가 함께 동행할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쇼고가 최라아와 전수희를 향해 안심하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오늘 공항으로 마중 나갔어야 하는 인원들은 시간을 잘못 전달받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늦게 왔구만… 이라고 하기엔 이상했다.

다른 일도 아니고 타 국가의 손님이 오는데 비행기 시간을 착각하다니.

그리고, 이런 사실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무언가 개운하지 않는 표정을 하고 있는 쇼고.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누군가 조작하지 않았다면요.”

줄곧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건지 최리아와 전수희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비행기에서 만난 건 데몬이긴 했지만, 그 데몬은 만나기까지의 과정이 매우 수상쩍었기 때문이었다.

히메지 성으로 향하며 대놓고 공격을 받았기도 하고.

“히메지 성 안에서 만큼은 안전하니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옆에 있는 쿄스케는 최고의 호위 무사니까요.”

쇼고의 칭찬에 쿄스케가 당황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 친구가 이런 존재였단 말인가.

햇빛도 들지 않는 반지하 방에서 함께 도시락을 먹어서인 듯했다.

마냥 친근하게만 느꼈었는데 성의 장군에게 이런 신뢰를 받고 있는 녀석이었다니.

제 친구가 이런 사람입니다, 여러분.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분이었다.

쇼고와 최리아, 전수희가 내일 있을 회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고.

회담과는 별 상관이 없는 난 쿄스케에게 스리슬쩍 몸을 기울였다.

“혹시… 장군님이 차고 계신 검은…?”

부디 장식용 검이길.

매일매일 달라지는 별 의미 없는 악세사리 같은 검이길!

“아 스이카요. 저건 장군님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온 가보에요.”

망했다.

“장군님도 무척 소중히 여기는 검이라 항상 저렇게 몸에 차고 다니시죠.”

쫄딱 망했다.

악세사리라고 해도 망한 판국인데 가보라니.

또 검을 중요시하는 일본의 특성상 가보로 내려온 검이 갖는 상징성은 더 클 터였다.

“혹시 저 검이 없어진다거나 하면 장군님이 화내실까요? 엄청 유하고 부드러우신 거 같던데.”

“그건 못 참으시지 않을까요?”

스이카는 못 참는군.

그나저나 가문 대대로 내려온 검이라니.

기억에서 봤던 백발의 남자도 장군과 같은 가문이었던 걸까.

후루루루룹.

차를 조금씩 흘려 넣으며 애가 타는 눈으로 스이카를 바라봤다.

어떡하지?

* * *

히메지 성의 지하.

우락부락한 몸의 남자가 복면을 벗으며 정면을 바라봤다.

“준비는?”

묵직한 남자의 물음에 맨 앞에 있던 부하가 고개를 숙였다.

“시노카 암살대 총원 1000명, 준비되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남자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그렸다.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지하를 나갈 수 있겠구나.”

얼마나 오랜 기다림이었던가.

히메지 성의 지하에 위치한 비밀 장소.

내일 회담을 위해 이곳에서 몇 달을 숨죽이고 기다렸다.

“나카지 님, 기업 대산 측에서 예정되어 있지 않은 인물이 한 명 따라왔습니다.”

“알고 있다. 길목에서 야구지 암살대 놈들을 막은 게 그놈이라고 하더군.”

시노카 암살대의 대장, 나카지가 비릿한 웃음을 터뜨렸다.

“쓸모없는 놈들. 그렇게 히메지 성까지 도착할 일은 없다고 호언장담하더니.”

애초에 믿지도 않았었다.

어중이떠중이들만 모여있는 암살 집단의 말 따위를 누가 믿는단 말인가.

‘역시 엄청난 혜안이시다.’

시노카 암살대의 대장은 나카지였지만 주인은 따로 있었다.

호언장담하는 야구지 암살대 앞에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뒤로는 직속 휘하에 있는 시노카 암살대를 성 안에 준비시킨 인물.

주인의 혜안이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내일 회담을 지켜보기만 했을 것이다.

“오히려 잘됐어. 몇 달을 기다렸는데 그냥 조용히 나갔으면 억울했을 게다.”

“그놈은 어떻게 할까요? 뭐 하는 놈인지 조금 더 알아볼까요?”

부하의 물음에 나카지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놈이 뭐 하는 놈이든 아무 상관없다. 한 명이 아니라 한 트럭이 오더라도 말이다.”

“역시!”

감격한 건지 부하가 힘껏 고개를 숙여 보였다.

간사이의 호랑이, 나카지.

공식적으로 대중에 알려진 적은 없지만 뒷세계에서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었다.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뒷세계에서도 확고한 위치를 가지고 있는 나카지.

나카지가 현재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손에 묻힌 피는 셀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카지가 이끄는 시노카 암살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100%.

표적이 된 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죽인다는 암살대가 시노카였다.

“밖에 있는 녀석들은?”

“신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노카는 지하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성의 경비로, 가게의 주인으로, 지나가는 어린 아이로.

필요한 시기와 장소엔 항상 존재했다.

“크큭…!”

성 안으로 들어왔다고 마음 놓고 있을 표적들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칼날이 턱밑까지 들어왔음에도 차나 즐기고 있을 텐데 어찌 안 웃을 수 있겠는가.

“이럴 때 하는 말이 생각나는구나.”

“예…?”

나카지가 고개를 들어 천장을 응시했다.

“독 안에 든 쥐.”

* * *

모두가 잠에든 시간.

“흐음.”

복잡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중앙성을 빠져나왔다.

나오는 데도 삼엄한 신분 확인을 하는 경비들.

야심한 시간인 만큼 더 철저히 성을 지키는 듯했다.

스이카는 잠시 보류다.

일단은 내일 회담이었다.

확신은 잘 안 드네.

솔직히 내일 회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긴 하는 건지 감이 잘 안 왔다.

가설의 시작은 회귀 전 최리아는 죽었고, 그 죽은 날이 쇼고와 같은 날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어찌 보면 뜬구름 잡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각자 다른 날에, 다른 이유로 죽었을 수도 있어.

사실 이게 더 자연스러운 가정이었다.

대기업의 사절이 타국으로 가 암살 당했다… 이런 일이 있었다면 분명 대문짝만하게 기사가 나며 난리가 났을 터였다.

하지만 난 단 한 번도 이런 비슷한 기사조차 본 적이 없었다.

개방하겠다고 워낙 정신줄 놓고 살았던 시기긴 하지만.

지나가는 말로조차 못 들었다는 건 이상하단 말이지.

만약 내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비행기는 과연 추락하고 그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이 죽었을까?

아니면 비행기는 추락하고 다 살았지만 협정은 취소되었을까?

그리고 장군과 최리아는 각각 죽음을 맞이했다?

“으아.”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였다.

내일 무슨 일이 있을 거라 강하게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을 거라 확신하기에는 오는 길이 너무 흉흉했어.

확신은 못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을 놓을 수도 없는 이유였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조작하고 있는 듯한 상황들.

머리 아프구만.

만약 내일이 아니라면?

“으음…!”

존버 해야지 뭐.

방법이 없었다.

내일이 아니라고 홀라당 한국으로 갈 수는 없는 일.

스이카를 떠나서 쿄스케를 위해서라도 그럴 순 없었다.

흉터를 만든 것도, 한국에서 쿄스케를 죽인 것도 동일한 녀석일 수도 있어.

쿄스케는 살아남아서는 안 되는 상황에 살아버렸고 한국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숨어 지내던 쿄스케는 적에게 발각되어 살해당했다.

내가 세워둔 가설 중 하나였다.

누구든 상관없어.

그놈들 씨를 말릴 때까지는 쿄스케 옆에 붙어 있는다.

굳은 다짐을 하며 천천히 성곽 주변을 거닐었다.

낮과 마찬가지로 사방에 배치되어 경계 중인 히메지 성 측의 인원들.

주변에 희미한 막들이 처져있는 걸 봐선 몇 겹의 배리어도 존재하는 듯했다.

이 상태라면 밖에서 침투하는 건 힘들다.

팔짱을 끼고 주변을 한 바퀴 빙글 돌아봤다.

내가 내일 회담을 노린다면 어떻게 했을까?

들어가기도, 나오기도 쉽지 않은 배리어와 경비.

만약 적들이 이미 성 안에 들어와 있다면?

상황은 극적으로 뒤집힌다.

외부의 침입이 불가능한 안전한 공간에서, 탈출이 어려워지는 공간으로 말이다.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 신세구먼.

* * *

회담의 시작을 알리는 해가 밝아왔다.

오늘만큼은 성에서 행해지던 모든 게 멈춰졌다.

동시에 성 주변으로 더욱 두껍게 깔리는 배리어.

이제부터 히메지 성은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하게 고립된 공간이 되었다.

저벅.

몸을 일으킨 나카지가 지하의 공기를 들이마셨다.

지긋지긋하지만 나가고 나면 그리워질 것 같은 꿉꿉한 공기.

스릉.

암살대 앞에 선 나카지가 메고 있던 창을 뽑아 들었다.

“시노카 암살대.”

씨익.

“쥐 사냥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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