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같이 가자
“일행 분들은 안 오시나 봐요.”
료칸 내부의 의료실.
무언가 쑥덕거리던 일행은 밖에서 대기한 채 히리만이 날 따라 들어왔다.
나 같아도 안 들어오긴 하겠다.
초호화라는 명색에 맞게 숙박객의 안전을 위한 료칸의 보안은 철저했다.
들어오는 길에 센서를 통해 기본적인 쇠붙이 무기들을 걸러냈고, 능력자의 범죄를 대비한 보안 헌터들도 료칸 곳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나머지는 분명 무기를 들고 있었으니까.
눈으로 직접 본 건 아니었지만 히리를 제외한 나머지는 분명 무기를 들고 있었다.
지금처럼 온갖 사람 좋은 척을 다 하고 있는데 료칸에 들어오며 우수수 날붙이를 반납하면 될 일도 안 될 터.
그래서 혼자 들어온 것 같았다.
“네, 아이를 치료하는데 많은 사람이 갈 필요는 없으니까요.”
히리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친 단발머리를 아무렇게나 올려 묶고 있는 히리.
햇빛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내거나, 지내는 환경 자체가 거칠어서인지 거뭇거뭇한 히리의 얼굴엔 잔상처와 주근깨가 가득했다.
히리 역시 그런 외적인 것엔 아무 신경 쓰지 않는 듯하고 말이다.
“아이고, 작은 아간데 뭐하다 이렇게 다쳤대요.”
료칸 소속 치유 능력자 선생님이 안쓰러운 눈으로 냥냥이를 바라봤다.
의사 선생님의 눈은 데몬이 아닌 일반 새끼 고양이를 보는 눈빛이었다.
진짜 되네.
- 그냥 치유실로 가도 돼요.
처음엔 치료할 연고나 소독약 등을 받아서 방으로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새끼라곤 하나 냥냥이는 뿔이 달린 데몬.
료칸 안으로 데몬을 들인다는 사실 때문에 작은 소동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료실이 있다는 걸 듣고는 그곳으로 향하자고 말한 히리.
- 다른 사람들은 모를 거니까 안심하셔도 돼요.
워낙 자신만만한 히리의 모습에 잠시 고민하다 의료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치료에 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어쭙잖게 치료하는 것보단 전문가의 손으로 하는 게 좋아 보였고, 설령 히리가 아무 대책 없이 말한 거라 해도 내가 데몬 테이머인 척 하면서 둘러대면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 작고 귀여운 고양이네요!
냥냥이를 발견한 선생님이 무슨 반응을 보일까 걱정했었는데.
데몬이 아닌 아기 고양이로 인식하며 기뻐하는 걸 보니 히리의 자신만만함에는 근거가 있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신 거예요?”
치료받고 있는 냥냥이를 보며 히리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곡시킨 거예요. 이 데몬을 아기 고양이로 보도록.”
“오…!”
히리가 작은 목소리로 자신의 능력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시작했다.
“특정 사물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에게 그 사물을 다르게 보이도록 할 수 있거든요.”
돌멩이를 금으로 보이게 하고 싶으면 돌의 표면에 금이라는 가짜 막을 한 번 덧씌우는 거라고 히리는 설명을 덧붙였다.
내가 생각하던 능력이랑은 조금 다르구나.
나한테는 여전히 뿔이 보이는 상태.
처음엔 특정인한테만 뿔이 안 보이도록 선생님에게 무언가 능력을 건 줄 알았었다.
- 한 번 실체를 본 사람에겐 안 통하고요.
신박한 능력이네.
난 이미 실체를 봤기 때문에 뿔이 보이는 것이고, 실체를 한 번도 본 적 없던 선생님에겐 안 보이는 것 같았다.
100% 완전히 믿을 순 없지만.
히리가 내게 사실대로 말하고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단지 의료실을 들어온 후 히리가 선생님에게 특별히 한 행동이 없어 보였다는 게 설명에 약간의 신뢰를 보태 줄 뿐이었다.
그나저나 완전 사기에 특화된 능력 아닌가.
머리가 범죄 쪽으로 굳어버린 걸까.
설명을 들으니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온갖 범죄 수단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가령 천 원짜리를 만 원짜리로 속여서 낸다던가, 돌멩이를 금이나 다이아몬드로 바꿔서 판다던가 하는 범죄들.
음… 금이나 다이아는 힘들겠네.
눈으로만 판별하는 게 아니라 기계로 측정까지 하니까.
혼자 저 능력이 나한테 있었다면 얼마나 잘 써먹었을까를 고민하는 사이.
“치료 끝났습니다.”
선생님의 말에 잡생각을 떨치고 고개를 들었다.
피가 묻어 나오던 부위에 감겨 있는 미니 붕대.
냥냥이에 어울리는 몹시 미니미니한 붕대였다.
귀엽구먼.
데몬인 걸 떠나 절로 흐뭇한 미소가 나오는 모습이었다.
“상처가 깊진 않은데 워낙 아가라 힘이 없었던 거예요. 데리고 가셔서 휴식을 취하게 해주면 금방 괜찮아질 거예요.”
“감사합니다!”
선생님에게 고개를 숙인 후 냥냥이를 안아 올렸다.
“시무야, 괜찮니?”
히리가 안아 올린 냥냥이를 향해 다가왔다.
시무라니, 아까도 듣긴 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이름이다.
차라리 냥냥이나 킹냥이가 더 좋겠어.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와중에도 시무의 떨림이 팔을 통해 전해지고 있었다.
이쯤 되니 더 의심스럽네.
처음 보는 선생님의 손길도 거절하지 않은 채 얌전히 치료를 받던 녀석이다.
그랬던 녀석이 히리가 다가오기 무섭게 덜덜 떨고 있는 상황.
히리는 세상 걱정스럽고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어째선지 나는 시무의 반응에 더 믿음이 가고 있었다.
“백운 님, 시무는 이제 제가 데려갈게요. 이렇게 치료까지 받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히리가 공손히 손을 모은 채 허리를 굽혔다.
“아이고, 뭘요. 그러실 필요 없어요.”
“아니에요, 정말 감사한 일이죠.”
일본 분이신데 김칫국 시원하게 드시네.
시무를 건네주길 기다리고 있는 히리.
히리를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실 필요 없다니까요. 시무 안 드릴 거니까.”
* * *
호화로운 시설의 료칸 밖.
백운과 안으로 들어갔던 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히리, 시무는?”
“왜 혼자 나와요?”
기다리고 있던 일행이 우루루 달려왔다.
그런 일행을 향해 히리가 고개를 내저었다.
“안 주겠다네.”
히리가 인상을 찌푸리며 료칸 쪽을 바라봤다.
시무는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렇다고 혼자 나오면 어떡해?”
“당장 데리러 들어가요!”
“아니야.”
히리가 동료들을 진정시켰다.
안에는 료칸 소속의 헌터들이 있었다.
한바탕 제대로 싸움을 벌이면 제압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하지만 시무가 없으면 길을 알 수가 없잖아요.”
히리와 일행은 숨겨진 던전을 탐색하며 보물을 찾는 트레져헌터 집단.
며칠 전 유후인 근처의 던전을 뒤지던 중 시무를 발견하게 됐다.
뿔이 달린 데몬의 모습에 바로 죽이려고 했지만, 시무는 입에 무언가를 물고 있었다.
슥.
히리가 주머니에서 빨간색 루비와 작은 열쇠 모양의 목걸이를 꺼내 들었다.
목걸이를 건 채 루비를 물고 있었던 시무.
- 잠깐, 죽이지 말아봐.
시무에게서 느껴지는 이질감에 히리는 일행들을 막아섰었다.
일행이 방문했던 던전은 나무 데몬인 우덴이 거주하며 생성된 장소.
그런 장소에 이런 전혀 다른 종류의 데몬이 있다는 건 부자연스러운 일이었다.
- ….
시무를 보며 히리의 머리로 한 가지 시나리오가 그려졌다.
시무는 다른 공간에서 넘어왔으며 그 공간에는 입에 물고 있던 루비 같은 보석이 가득할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그 공간으로 넘어가기 위해 필요한 게 있다면 시무가 걸고 있던 목걸이일 거라는 시나리오였다.
- 그 공간은 이 던전 어딘가에 있다.
아직 이 가설을 증명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히리의 말을 들은 일행들은 흥분에 휩싸였었다.
시무가 물고 있는 루비만 해도 꽤 큰돈이 될 터인데 이런 게 가득하다면?
아직 한 가지 가설일 뿐이지만 확인해볼 가치는 충분했다.
- 그런데 이 넓은 던전에서 어떻게 찾지?
문제가 있다면 우덴의 던전은 몹시 넓다는 것이었다.
히리를 포함한 인원들 중에 전투에 특화된 능력자는 몇 없었다.
그렇다보니 넓은 던전을 막무가내로 다 돌면서 우덴을 잡고, 어떻게 생겨 먹은지도 모르는 공간을 찾는다는 건 힘든 일.
이런 일에 다른 헌터를 고용하기에도 리스크가 너무 컸다.
- 새끼니까 돌아가겠지.
히리는 망설임 없이 시무의 목에서 목걸이를 뜯어냈었다.
- 크아앙!
그런 히리에게 시무가 강하게 반항했지만 너무나 갸날픈 크기.
꾸욱.
- 끼이잉!
시무를 발로 지그시 눌러 제압했다.
- 다시 받고 싶으면 안내하렴, 왔던 곳으로.
그렇게 시작됐었다.
시무와 히리 일행의 만남은 말이다.
“하아…!”
지끈거리는 머리에 히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에도 그대로면 그냥 죽여버려야겠어.”
처음엔 온갖 회유를 다 하며 시무를 달랬었다.
하지만 고집불통으로 던전 안으로 향하는 걸 거부했던 시무.
새끼인 이상 언제까지나 밖에 나와 있진 못할 터였다.
언젠가 왔던 곳으로 돌아갈 거라 생각은 했지만.
- 이 새끼가 주제도 모르고!
히리의 인내심은 그리 강하지 못했다.
손에 쥐여져 있는 루비를 볼 때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트레져헌터는 자기들만 있는 게 아니기에 속도전이 생명이었다.
그런데도 이런 데몬 새끼 한 마리 때문에 귀중한 시간을 버리고 있다니.
“내일 아침까지 던전으로 갈 준비해.”
“응…?”
의아해하는 일행들에 히리가 눈을 번뜩였다.
“저 안에 있는 남자도 같이 가기로 했으니까.”
* * *
골골골.
시무는 히리가 떠나기 무섭게 기운을 되찾았다.
료칸에서 나온 우유까지 먹이니 느릿느릿 하지만 걸어 다니고 있는 녀석.
아장아장 걷는 거 보소.
절로 아빠 미소가 나오는 광경이었다.
- 던전에서 잃어버린 게 있어요. 그걸 찾으려면 시무가 필요하고요.
자세히는 얘기할 수 없지만 시무가 꼭 필요하단 이야기만 연신 하다가 간 히리.
웃고 있었지만 눈은 살벌했지.
온갖 착한 척을 다 하다 막판에 차 안에서 암시를 걸었던 최리아의 덕일까.
웃고 있는 얼굴의 뒤를 볼 수 있는, 그런 의심병 말기의 눈이 생긴 것 같았다.
- 그렇게 정 못 믿으시겠다면 같이 가시는 건 어때요?
내가 시무를 내놓을 생각이 없어 보이자 히리가 한 제안이었다.
걱정이 되면 자신들과 함께 잃어버린 걸 찾으러 가자는 것이었다.
내가 오해하고 있는 걸 수도 있지만.
생각하는 게 맞다면… 만만한 게지.
뭐하는 사람이냐고 묻는 히리에게 한국의 10급 헌터증을 보여줬었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지만 얼굴에서 긴장이 사라졌던 히리.
그래서였을 것이다.
애타게 찾고 있는 던전으로 나한테 같이 가자고 한 이유는.
10급 헌터 따위는 원할 때 없앨 수 있을 테니까.
히리의 머릿속을 상상해보며 몸을 부비는 시무를 바라봤다.
이렇게만 보면 그냥 평범한 새끼 데몬인데 히리와 그 일행은 뭘 봤기에 시무에게 목을 매는 걸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오고.
드륵.
준비된 저녁 식사가 옮겨지기 시작했다.
어제는 나룻배였는데.
날마다 컨셉이 다른 모양이었다.
“어머, 귀여운 고양이네요.”
료칸의 종업원 스미레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시간이 꽤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시무가 데몬인 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히리가 어떤 인간인지는 몰라도 능력 하나는 확실한 것 같았다.
“처음엔 털뭉치인줄 알았어요.”
“그쵸? 저도 처음에 봤을 땐 무슨 새까만 털이 뭉쳐있는 줄 알았어요.”
“어렸을 때 들었던 요정님 같이 생겼네요.”
“요정… 요?”
어렸을 때 들은 요정 이야기라니.
검은 털뭉치에서 갑자기 요정까지 간다고?
급전개에 잠시 당황하자 스미레가 엷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어렸을 때 할머니가 종종 해주시던 이야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