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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68화 (68/473)

68화. 숲속의 요정님

“이 유후인엔 요정님이 있단다.”

스미레의 할머니, 요시코.

요시코는 잊을만하면 스미레에게 요정이나 도깨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었다.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요정은 동화책에나 나오는 거잖아요.”

그럴 때마다 스미레는 또 그러신다는 얼굴로 손을 내저었었다.

이제 완전 어린이라 부르기엔 많아진 나이.

산타 할아버지가 없다는 것도 아는 나이인데 요정이라니.

“정말이란다.”

“할머니가 어떻게 알아요?”

끝까지 따져 물으면 요시코는 미소를 지으며 늠름한 표정을 짓곤 했었다.

“도깨비는 몰라도 이번 요정 이야기는 내가 겪은 이야기니까.”

“에에이!”

안 믿는다고 하면서도 스미레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진짜인지 아닌지는 불분명 하지만 요시코가 나긋나긋하게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싫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할미가 어렸을 때란다. 아직 유후인에 집보다는 산과 들이 훨씬 많았을 때지. 당연히 사는 사람도 적었고.”

요시코는 유후인의 토박이였다.

유후인의 집이 정말 옛날에 지어진 게 아니라면 대다수가 요시코보다 나이가 적었다.

“여기서 북쪽으로 가면 미로의 숲이라는 곳이 있었단다. 알고 있니?”

스미레가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에서 종종 들은 적이 있는 장소였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옛날에 하루가 멀다 하고 아이들이 사라졌다던 숲.

“선생님이 가지 말라고 했어요. 지금은 대부분의 숲이 사라지고 길이 생겼지만, 어쨌든 귀신 들린 무서운 숲이라고요.”

요시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스미레나 요즘 아이들은 잘 모를 게야. 하지만 이 할미나 스미레의 선생님이 어렸을 때는 정말 많은 아이들이 없어졌었거든.”

“저… 정말요?”

거짓말 같지 않은 요시코의 말에 스미레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자기 또래의 아이들이 없어졌다니.

멀리까지 나가지 못하도록 겁을 주기 위해 지어낸 말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럼. 나랑 같은 반이었던 친구도 사라졌었거든.”

“네에…!? 친구분은 어떻게 되셨어요?”

요시코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어렴풋하게나마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결국 못 찾았지. 마을의 모든 어른이 밤새도록 찾았지만, 작은 흔적조차 찾지 못했어.”

꿀꺽.

점점 심각해지는 이야기에 스미레가 되묻는 걸 멈추고 경청을 시작했다.

“어느 날이었단다. 어린 치기 때문인지 반 아이들이랑 사라진 친구를 찾으러 가자고 미로의 숲으로 갔단다.”

“어른들 없이요…?”

“그렇지. 어른들이 아셨으면 혼만 나고 못 갈게 뻔하니까.”

요시코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려는 듯 천장을 바라봤다.

“숲으로 들어가서 하염없이 친구의 이름을 불렀단다. 길을 잃지 않도록 일직선으로만 걸으면서 말이지.”

요시코는 아직도 그때의 소름 돋음을 잊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맨 앞에서 가던 난 어느 순간 깨달았단다. 친구의 이름을 함께 부르던 반 아이들이 전부 사라지고, 나 혼자만 애타게 친구 이름을 부르고 있다는 거를.”

“으아….”

점점 무서워지는 이야기에 스미레가 눈을 가렸다.

“처음엔 친구들이 장난치는 줄 알았거든. 그래서 그만하라고 소리를 질렀는데… 잠시 후에 장난이 아니라는 걸 알겠더구나.”

“어… 어떻게요?”

요시코가 그때의 행동을 따라하려는 듯 손을 좌우로 휘저었다.

“내가 있는 곳은 아이들과 들어왔던 숲이 아니었어. 전혀 다른 곳이었단다. 어디선가 나타난 안개로 가득해진 낯선 장소였어.”

그 후로 요시코는 몇 시간이나 길을 헤맸다고 한다.

시계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다리가 저리고 부어오는 것에서 시간을 유추했다는 것.

“이제야 알겠더구나. 이 숲이 보통 숲이 아니며 사라졌던 친구들 역시 이렇게 길을 잃어버린 거구나 하는 걸. 그리고 나 역시 숲을 빠져나가지 못할 거라는 걸 말이다.”

“그… 그럼 할머니는 어떻게 나온 거예요…?”

“….”

스미레가 침을 꼴깍 삼켰다.

난 사실 네 할미가 아니다! 하면서 놀래키는 건 아닌지 걱정됐다.

화악.

스미레의 걱정과 다르게.

심각한 표정이던 요시코의 얼굴에 웃음꽃이 번졌다.

“요정님이 도와주셨거든.”

“네…?”

생각보다 싱거운 결말에 스미레가 벙찐 표정이 됐다.

“그렇게 한참 안개 속을 헤매고 있었는데 네 발로 걷고 있는 거대한 게 다가왔단다. 난 잡아먹힐 거라고 생각했어. 어른들이 아이들을 잡아간다고 겁주던 도깨비인 줄 알았거든.”

이젠 정말 잡아먹히는구나 생각이 들어 펑펑 울었다는 요시코.

“하지만, 아니더구나. 도깨비가 아니라 요정님이었어. 날 잡아먹긴커녕 곁으로 다가와 보살펴줬거든.”

“옆으로 다가왔다고요…? 요정님 생김새는 어땠어요?”

요시코가 으음 소리를 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개 때문에 요정님의 생김새를 제대로 보진 못했단다. 그저… 나보다 두어배는 더 큰 몸집에 새까만 털이 몸을 뒤덮고 있었고, 아주 아름답게 생긴 파란 눈을 가졌다는 것만 알 수 있었지.”

“우와… 저도 보고 싶어요, 아름다운 파란 눈.”

요정을 만난 순간이 떠올라서인지 요시코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정말이지… 맑은 밤하늘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단다.”

“그럼 요정님이 할머니를 태워서 밖으로 데려다준 건가요?”

“아니, 요정님이 내 옆으로 온 건 잠시였어. 옆으로 와서 그 파란 눈을 크게 떴을 뿐이란다. 그뿐인데, 안개가 사라지고 난 어느새 친구들 옆으로 와있더구나.”

“… 끝이에요?”

기승전결이 어찌 허술하다는 생각을 하며 스미레가 묻자 요시코가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끝이란다.”

* * *

“좀 허무한 이야기죠?”

“….”

솔직히 말하자면 매우 허무했다.

초등학교 때 읽었어도 시시하네 하면서 덮어버렸을 이야기.

“아닙니다, 흥미진진했어요.”

거짓된 엄지를 세우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예의를 중시하는 백의민족으로서 다른 이의 할머니가 해주신 이야기를 허무하다고 말할 순 없었다.

“나이를 먹고 생각해보니 아마 제게 겁을 주려고 하셨던 거 같아요. 제가 곧잘 멀리까지 나가서 집에 안 들어오곤 했었거든요.”

괜한 이야기를 했다며 손사래를 치는 스미레.

“제가 괜한 이야기를 했네요. 필요한 게 있으면 또 불러 주세요.”

스미레가 한차례 고개를 숙인 후 문을 나섰다.

그런 스미레에게 인사를 건넨 후 옆에서 골골거리고 있는 시무를 바라봤다.

슥.

자길 바라보는 걸 안 건지 내 눈을 응시하는 시무.

음, 아니구먼.

혹시나 싶었지만 역시나다.

파란 눈은커녕 아주 그냥 새까만 눈동자였다.

“넌 요정이 아닌가 보다.”

“끄아앙!”

!?

만난 이후 처음으로 시무가 소리를 질렀다.

다른 의미로 심장 떨어지게 만드는 소리였다.

“넌 역시 킹냥이다.”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시무의 뿔을 만졌다.

요정이라.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기존에 알려진 생명 외의 모든 것을 데몬이라고 부르는 지금이 맞는가란 엉뚱한 생각이었다.

피렌조도 다른 이름으로 불렸었다.

고민해봐야 답이 안 나오니 생각을 멈춘 주제였다.

도깨비나 귀신, 요정 등 많은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러 존재들.

만약 이들이 기존 데몬들과 다르다면.

머릿속으로 묘한 희망의 불씨가 밝혀졌다.

인간 외에 아군이 없다는 생각은… 틀렸을지도 모른다.

* * *

히리 일행과 만나 도착한 던전 입구.

특이하게 생겼네.

우덴의 서식지라 그런가.

동굴이긴 동굴인데 질긴 넝쿨로 촘촘하게 생긴 곳이었다.

누가 나무떼기 던전 아니랄까봐.

우덴은 그리 위협적인 데몬은 아니었다.

나무다 보니 불에 약했고 내구성 역시 일반 나무와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우글우글 몰려서 찔러대면 위험하겠지만.

우덴은 날카로운 가지를 이용해 찌르는 공격을 했다.

갑옷을 입고 있거나 방패가 있다면 아무리 찔러도 뚫리진 않을 터.

슥.

조심스럽게 히리와 일행을 훑었다.

나를 제외하곤 전부 두툼한 갑옷을 장비한 상태였다.

야박하네.

예의상으로라도 낡은 갑옷 하나쯤은 건네야 하는 거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아니지, 당장 뒤통수 안 치는 것만 해도 어디냐.

어제 보여 준 꼬라지를 봐서 이 동행은 오래 유지되지 못한다.

이 던전 안에서 시무를 이용해 뭘 찾으려는지는 모르겠지만, 날 여기까지 데려온 이유는 순전히 시무 때문이었다.

필요한 걸 얻는 순간 이빨을 보일 게 분명한 상황.

나도 그때까지만 어울려주마.

그리고 너네가 뭘 찾든… 뺏어주마.

다짜고짜 뒤에서 칼부터 빼 들었던 이들에게 어부지리란 게 뭔지 알려 줄 참이었다.

“안은 온통 빽빽한 나무들로 길이 꼬여있어요. 시무가 안내해줘야 해요.”

여전히 바들바들 떨고 있는 시무를 내려다봤다.

같이 던전으로 가자고 했을 땐 잠시 고민했었다.

만나기만 해도 벌벌 떠는 애를 데려가도 될까란 고민.

내가 데려가서 키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디 정착해서 사는 삶이면 모를까 내 몸을 눕힐 집도 없었다.

거기다 한국에서 먼저 얻을 수 있는 무기를 다 얻은 후엔 그야말로 역마살 낀 떠돌이 인생 확정이었다.

바꿔야 하는 일이 벌어지는 시기는 모두 기록 해놓은 상태.

이때가 아니라면 한국으로 돌아올 일은 없다고 봐야 했다.

집으로 돌려보내야지.

그러기 위해서 찾은 던전이었다.

시무가 별 움직임이 없자 서로 난처한 눈빛을 주고받는 히리와 일행들.

어째서 인적이 드문 던전에 왔음에도 이들이 내게 이빨을 안 드러내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있으면 시무가 안내해 줄 거라 생각하는 거구만.

만난 시간은 오래되지 않았지만 시무는 내가 자신을 구해줬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상하게 나만은 잘 따르는 모습.

저들은 이 모습 때문에 희망을 품고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원하신다면 따라가 줘야지.

슥.

알아들을진 모르겠지만.

시무의 귀에 목소리를 속삭였다.

“괜찮으니까 안내해줘. 집으로 데려다줄게. 도착하면 저 떨거지들은 내가 치워줄 테니까 걱정말고.”

….

료칸에서 스미레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시 정신이 나간 걸까.

나도 모르게 시무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머쓱.

아무 반응도 없는 시무에 고개를 돌리려는 사이.

스르르…!

시무의 이마로 작은 빛의 입자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반짝.

어느 정도 모이더니 야광 빛을 내는 시무의 뿔.

아… 알아들은 거냐구!

뿔이 빛난다는 사실보단 내 말에 반응했다는 사실이 몹시 뿌듯했다.

이것인가.

아이를 키우는 즐거움이!

그럴 리는 없겠지만 어쨌든 뿌듯한 순간이었다.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 봐라.

빛나는 시무의 뿔에 히리를 포함한 일행도 놀란 것 같았다.

물론 나와는 다른 의미로 말이다.

눈에 아주 그냥 돈독이 바싹 오른 거 보소.

익숙한 눈빛이었다.

내가 마운티거에게 얻은 산삼을 바라보다 거울을 봤을 때 저런 눈빛이었으니까.

보면 볼수록 궁금해 죽겠네.

대체 시무한테서 뭘 봤길래 저러는 걸까.

열심히 여러 추측을 하는 사이.

스릉.

삭.

뒤에 있던 일행들이 무기를 꺼내 들기 시작했다.

사람 상체만 한 방패부터 곡도, 특이하게 생긴 화기까지.

가지고 있는 무기도 가지각색이었다.

“백운 님, 시무랑 같이 앞장서시죠.”

“아, 네. 알겠습니다.”

별걱정 없이 앞장을 서면서도 기분이 묘했다.

언젠가 뒤통수 칠 걸 알면서도 앞장을 서야 하다니.

저벅.

발을 뻗는 와중에도 내 신경은 뒤를 향하고 있었다.

간질간질.

벌써부터 뒤통수가 간질거리는 느낌.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히리와 일행이 서로 어떤 눈빛을 주고받고 있을지 궁금했다.

과연 얼마나 나쁜 인간들이려나.

지금까지의 행동을 봤을 때 확률은 몹시 낮지만, 날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굳이 무기를 꺼낼 생각은 없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보물을 발견하더라도 홀라당 가져가기는 미안하니 조금은 나눠줄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만약 이 정도가 아니라 어제처럼 무기를 꺼내 날 죽이려 한다면.

흠, 자업자득이지.

우덴이랑 함께 이곳에 묻어줄 생각이다.

일단 가볼까.

시무의 빛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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