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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70화 (70/473)

70화. 루비의 세계

몇 분 전.

히리의 얼굴엔 승리의 미소가 만연해 있었다.

‘병신.’

솔직히 백운의 힘은 예상 밖이었다.

함께 온 트레져헌터들이 그렇게 쎈 게 아니기도 했지만, 이걸 감안하고라도 예상을 벗어났다.

‘10급 맞아?’

조금 전 동료 둘을 순식간에 때려눕힌 백운을 보며 든 생각이었다.

자세히는 몰라도 국가직 헌터의 기준은 나라마다 비슷하다고 들었다.

일본에서의 10급 헌터는 골방에 박혀 십자수나 하는 노인네도 할 수 있는 급수였다.

‘상관없어.’

동료들이 쓰러지고 뒤에선 우덴킹이 쫓아왔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히리의 목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 루비가 가득할 거야.

트레져헌터 동료들을 꼬신 말이었다.

어차피 다들 돈에 눈이 멀어있는 인간들.

이미 시무가 물고 있던 루비에 눈이 돌아갔기에 꼬드기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바로 앞밖에 보지 못하는 멍청이들.’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루비에 눈이 돌아간 건 히리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눈이 돌아간 이유는 달랐다.

- 유후인의 북쪽 숲엔 요정이 머무는 공간이 있다.

어느 날이었다.

유후인의 폐가에서 돈 될만한 걸 찾던 중 한 권의 책을 발견했다.

처음엔 누가 써놓은 동화나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개방과 데몬이 나타난 시대라고 해도 요정 같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니.

- 그 요정은 네 발로 걸으며 푸른 눈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영롱한 색의 루비 산이 그들을 보호하고 있다.

히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책에 빠져들어 있었다.

빠져들었던 이유는 루비를 팔아 돈을 챙기거나 하는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 루비엔 요정들의 힘이 담겨있으며, 그 힘을 얻으면 지금까지완 차원이 다른 능력을 가지게 된다.

돈이 아닌 힘 때문이었다.

히리는 힘을 원했다.

‘이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능력이 아니라 진짜 힘.’

물건을 다르게 보이는 히리의 왜곡 능력.

누군가는 부러워할지도 모르지만 히리는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제는 보안마저 철저해져 돈이 되지도 않는 능력.’

자신의 능력에 대한 히리의 평가였다.

개방으로 여러 능력에 의한 사건들이 발생했고, 이에 대한 반발로 돈을 주고받는 곳의 보안 역시 그 이상으로 철저해졌다.

아무리 왜곡으로 겉모습을 속여도 시골 구멍가게가 아니라면 속일 수 없는 시대인 것.

‘저 인간들도 지긋지긋해.’

왜곡은 전투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능력이기에 전투 헌터가 되는 것도 불가능했다.

비전투 국가직 헌터는 가능하겠지만 그렇게 평생을 가느다란 인생으로 연명하고 싶진 않았다.

그렇기에 일단 손발로 부려먹을 수 있는 동료를 구했다.

어딘가엔 개방한 능력 외에도 힘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이 있을 거라 기대하면서 말이다.

- ….

멍청한 트레져헌터들의 브레인 역할을 하며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발견하게 된 폐가의 책과 우덴의 동굴에서 만난 시무.

‘책의 내용이… 진짜였어.’

루비를 물고 있는 시무를 본 순간 히리의 눈엔 불이 지펴졌다.

그토록 찾던 요정의 힘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었다.

이 작은 데몬이 온 장소.

그곳을 찾아야 했다.

- 끄앙!

하지만, 이 작은 데몬 새끼는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마음은 조급한데, 조금만 더 가면 책에 나왔던 공간으로 갈 수 있을 텐데.

- 퍽! 퍽! 퍽!

때리면 때릴수록 시무의 반항은 거세졌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 화를 못 이겨 들고 있던 단검을 휘두르고 말았다.

- 후우!

그렇게 잠시 화를 삭이기 위해 나갔다 온 사이, 시무는 사라져 버렸다.

발견했을 땐 이미 백운이란 인간의 품 안에 안겨버린 후였다.

‘오히려 잘됐어.’

처음엔 백운의 등장이 달갑지 않았지만, 백운에게 살가운 시무의 행동에 다른 방향을 모색하게 됐다.

길을 탐색시킨 후 제거할 요량이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아무런 생각도 없이 던전까지 따라온 멍청한 이국인.

그 이국인 덕에 히리는 힘을 얻고 멍청한 동료들과 지긋지긋한 나약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다다!

그 계획의 완성이 눈앞에 있었다.

두세 발자국만 더 가면 열쇠와 함께 문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제 됐어!’

확신이 들었다.

얼굴엔 지나왔던 인내의 시간을 녹이는 승리의 미소가 번졌다.

덥썩!

그리고 그 미소는 오래 가지 못했다.

강한 힘에 의해 뒤로 잡아 당겨지는 머리채.

“이리 내, 이년아.”

목소리가 들려왔고.

휙.

쥐고 있던 열쇠가 손에서 빠져나갔다.

“아.”

잠시 후 몸이 뒤로 내던져졌다.

슥.

손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다.

뺏은 열쇠를 들고 자기 대신 문 안으로 쏙 들어 가버리는 백운에게는 말이다.

* * *

정신없네.

바다 다음은 산인가.

일단 냅다 뺏어 들어오고 봤는데.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애초에 믿을 수 없는 일이 계속해서 벌어지는 세상이었지만.

그래도 믿기 힘든 장소였다.

사아아…!

반짝이는 가루가 바람을 타고 흩날려왔다.

마치 루비를 작게 갈아 허공으로 흩뿌린 느낌이었다.

하늘에 떠 있는 것도 달랐다.

붉고 뜨거운 하나의 해가 아닌, 여섯 개로 나누어진 작은 청색의 구체들이 떠 있었다.

공명… 은 아닌데.

무기를 통해서 다른 공간에 들어오는 건 익숙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공명으로 들어왔다면 내가 알았을 것이다.

보물섬인가.

머리가 왜 이렇게 안 돌아가지 했는데.

아마 이것 때문인 것 같았다.

반짝반짝.

눈이 닿는 모든 곳을 채우고 있는 엄청난 크기의 루비 산.

한 덩이만 떼어 팔아도 한강 뷰 아파트를 장만하고도 남을 것 같았다.

아니지, 서울 아파트 개비싸니까.

아무튼.

압도적인 광경에 뇌가 멈춘 사이.

“끄앙!”

품에 있던 시무가 폴짝 뛰어올라 바닥으로 착지했다.

여기저기를 왔다리갔다리 하며 뛰노는 걸 보니 익숙한 공간인 듯했다.

“시… 시무야, 이리와.’

좌우로 뛰고 있지만 약간씩 멀어지는 시무에 슬금슬금 걸음을 옮겼다.

시무가 걱정되어서는 아니었다.

내가 무서웠다.

나랑 같이 있어줘!

몹시 낯선 공간.

낯선 걸 떠나 지구 외의 장소가 있을 거라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런 곳에 홀로 내버려 진다는 건 안 될 말이다.

[잭 더 리퍼]

정상적으로 손에 쥐어지는 면도칼.

괜한 걱정이었고.

너무 쌩뚱 맞은 공간이다 보니 혹시나 무기가 안 나올까 싶었다.

다시 면도칼을 집어넣은 후 천천히 시무를 따라갔다.

“같이 가…!”

시무를 따라가면서도 고개는 쉴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진짜 뭐냐.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모든 걸 허구로 치부해버리는 세상.

개방 전의 세상은 그러했다.

그러던 중 나타난 개방에 과학을 믿던 사람들은 당황했지만, 적응의 동물답게 빠르게 순응하기 시작했다.

- 능력과 데몬은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하는 것, 나머지는 그대로.

능력과 데몬.

인간이 새로운 세계에서 인정하기로 한 두 가지였다.

단 두 가지, 이 두 개를 제외하곤 개방 전의 세계와 모든 게 같아야 했다.

꿀꺽.

같아야 할 터인데.

“여기는 대체 뭐냐고요.”

대답이 돌아올 리 없는 질문을 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나도 과학 문명의 인간이라 그런지 들어와 실제로 서 있으면서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도 모르게 부정하고 있던 건가.

무기의 기억에서부터 은연중에 가능성은 느끼고 있었다.

데몬이 없었어야 할 시대에 존재했던 피렌조.

그리고 개방이 없던 시대인데 그런 피렌조와 싸웠던 도윤까지.

생각해보니 사사키 코지로도 규격 외네.

나도 모르게 현시대에 빗대어 생각해버렸다.

개방이 없던 시기에 혼자서 몇 만을 썰어버린다는 건 비정상인 게 분명한데 말이다.

하긴 용도 있는데 뭐가 안 되겠냐.

솔직히 유탈라스를 처음 봤을 땐 놀랐지만.

동시에 친숙했었다.

환상 속의 동물이라곤 하지만 용은 옛날부터 다방면으로 워낙 많이 접한 것이었기 때문.

메갈로돈도 있는데 용이라고 없겠냐 싶었다.

하지만,

이세계는 아닌데.

별의별 걸 다 봤지만 내 안에서 믿지 않는 게 한 가지 있었다.

이세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본능적인 거부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지구 외의 세계는 없다고 말이다.

공명으로 들어간 건 이세계는 아니니까.

공명으로 여러 공간에 들어가긴 했지만 그건 각 인물이 만들어 낸 공간이었다.

실제하는 공간이 아닌 것.

….

실제한다라.

실제라는 기준은 무엇….

철썩.

점점 꼬리를 물고 깊어지는 생각에 뺨을 한 대 올려쳤다.

더 이상 깊어지면 답도 없다.

잘못하면 철학적인 고민까지 갈 판국.

흠.

뺨이 얼얼한 걸 보니 꿈은 아닌 모양.

설마 이건… 그건가.

슥슥.

턱을 빠르게 문지르며 새삼스레 깨닫게 된 사실을 떠올렸다.

어이어이… 인간 최초냐구!

종종 사후세계에 다녀왔다는 말을 한 사람들은 있었지만.

그건 거짓말이야.

일단 거짓말로 치부해버렸다.

내가 최초의 이세계 방문자였다.

물론 세계라고 부를 수 있는 만큼 거대한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받아들이고 현실적인 생각을 해야 했다.

익숙한 듯 열심히 뛰어노는 걸 보면 시무의 집은 이곳이 맞아 보였다.

털뭉치 집 복귀 시키기는 완료했으니 남은 건 하나.

어떻게 가져가지.

걸음을 멈추고 번쩍이는 루비들을 바라봤다.

어떻게 해야 다 들고 나갈 수 있을까.

착한 일을 하면 복이 온다더니.

흥부와 놀부를 보며 언젠가는 나도 제비를 도와줘야지 했었는데.

제비가 아니라 복덩이 냥냥이가 와버렸다.

이건 사실 착한 일을 한 나를 위해 준비된 선물이 아닐까.

아찔해지는 깨달음에 미간을 찌푸렸다.

흥부도 선물 받은 박을 갈라 떵떵거리며 살았는데 나라고 안될 게 뭐가 있겠는가.

가방을 구하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들어올 때 쥐고 있던 열쇠는 어느샌가 사라져 버린 상태.

지금 나가면 다시는 못 들어올 수도 있었다.

산을 들고 나가는 건 불가능하다.

톨스토이 명작 선에도 나오지 않던가.

걸어간 만큼 땅을 준다는 말에 눈이 돌아가 죽음을 맞이한 인간이 말이다.

난 적당히 가져갈 거야.

적당히 가져가서 한강에 아파트 사고.

비행기도 맨날 퍼스트만 타고 다니고.

자동차도 부가티로 사고 다 해야지.

“룰룰루.”

상상만으로도 행복감이 밀려왔다.

마치 월요일에 로또를 사놓고 당첨됐을 때를 떠올리며 일주일을 행복하게 보내는 느낌.

“가방은 최대한 큰 가방이 좋지.”

거대한 잎사귀를 가진 나무들이 널려있었다.

현실적인 가방은 불가능해도 잎사귀들을 묶어 보따리를 만들 생각이다.

“잎사귀르을 따러 가보즈아.”

그렇게 제일 거대해 보이는 잎사귀 나무로 다가갔다.

다른 세계에 오자마자 나무를 베면 좀 그러니 잎사귀만 딸 생각이었다.

사사….

나무를 타고 잽싸게 올라가려는 순간.

“끄앙!!!”

응?

평소보다 우렁차게 우는 시무에 고개를 돌렸다.

….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오면 기쁜 이유는 뭘까.

안락한 내 보금자리로 돌아와서?

이것도 맞다.

하지만, 더 큰 이유가 있었다.

날 기다려주는 사람들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

스미레 님.

갸르릉거리는 시무를 바라보며 료칸에서 만난 스미레를 떠올렸다.

요정을 만났다는 할머니 이야기를 해준 스미레.

옛 어른들 말씀 중 틀린 말은 하나도 없습니다.

꿀꺽.

다 진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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