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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73화 (73/473)

73화. 불꽃놀이엔 맥주지

짹짹.

기분 좋은 햇살과 함께 참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음.

온 지 며칠이나 됐다고.

우리집 같이 익숙해 져버린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 날이구먼.

충분히 쉬었는데도 막상 떠나려니 아쉬웠다.

언제 또 이렇게 편한 잠자리에 맛있는 삼시 세끼를 챙겨 먹을 수 있을까.

얼른 한국 가서 계좌도 열어봐야 하는데.

- 일본에서는 조회가 불가능해요.

어제 지문으로 계좌를 조회해볼 수 있겠냐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이었다.

일본 계좌로 돈을 환전해 놓은 게 아니라면 조회할 수 없다는 것.

개부자 되어 있으면 어떡하지?

일본으로 오기 전 보내버렸던 마운티거.

화려한 화형식을 치룬 만큼 조회수가 엄청날 터였다.

후원금 10억 들어왔으면 뭐하지.

헤벌쭉.

이불을 돌돌 말고 여기저기를 굴러다녔다.

로또 당첨되면 뭐 하지란 상상과 비슷한 망상이었다.

아.

엉금엉금.

옷가지가 있는 곳으로 기어가 액션 캠을 집어 들었다.

딸깍 딸깍.

샤발 안되네.

동굴 밖에서 오래 쬐고 있었던 장작불이 문제였다.

땀도 쏙쏙 흐르는 게 시원해서 한참을 앉아있었더니 액션 캠이 맛이 가버렸다.

아니 이런 싸구려를 팔아?

캠을 팔았던 헌터 등록소 창구를 떠올렸다.

이상한 비닐 봉다리에 담아 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뽑기 운 최악이야.

쉬지 않고 남탓을 시전하고 액션 캠의 메모리 카드를 뽑았다.

우덴킹이랑 우덴을 불태운 동영상이라고 건질 생각이었다.

흐느적.

동영상만 건지겠다는 것도 사치였나 보다.

메모리 카드가 캠에서 빼자마자 흐물흐물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카메라 똑바로 만든 거 맞냐구!

다시 한번 무한 남탓을 시전하고 캠과 메모리 카드를 쓰레기통으로 골인시켰다.

어쩌겠는가.

제 명을 다 하고 떠나버렸는데.

진짜 개튼튼한 걸로 하나 사야지.

한국으로 돌아가자마자 도끼가 찍어도 안 부서지는 걸로 하나 장만해야겠다.

미리미리 살 걸.

광고를 보면 최신식 캠이 정말 많았다.

등록소에서 파는 캠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미니미니한 초소형 캠.

크기는 작지만 화질과 배터리는 압도적으로 훌륭한 제품이었다.

그걸로 하나 사야겠어.

한 번 사려다 너무 비싸서 말았었는데 덕분에 동영상까지 하나 날려 먹었다.

구두쇠의 최후인가.

스스로에게 고개를 흔들어 준 후 널브러져 있는 짐을 꾸렸다.

아직 체크아웃 시간까지는 좀 남았지만 미리 나가 산책이나 할 생각이었다.

저번엔 시무 만나면서 산책 실패했으니까.

짐을 챙기다 어제 입었던 옷을 쳐다봤다.

안주머니에 보니와 리드의 유리병이 들어있었던 옷.

진짜 없어졌네.

보니와 리드가 넓은 바다로 던져버렸던 유리병.

아니나 다를까 진짜로 없어져 버렸다.

내 능력이지만 참 신기하단 말이야.

꿈 같지만 현실인 공간.

현실이 아니지만 현실에 간섭하는 공간.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하지만.

머리로 완벽히 이해되지 않아서인지 가끔 묘한 신비로움을 느낄 때가 있었다.

슥.

마지막으로 가방 안에 소중히 모셔져 있는 보따리를 바라봤다.

누가 열어볼세라 아주 그냥 죽어라 꽁꽁 싸맨 보따리였다.

- 힘을 원하면 열어보라고 했당.

안의 내용물이 궁금하지만 보따리를 풀지 않은 이유는 하나였다.

왠지 모르겠지만 고생길 제대로 시작일 것 같단 말이지.

본능적인 감각에 의한 판단이었다.

보따리를 풀고 상자를 여는 순간 꽤 오랜 시간 고생을 할 듯한 강력한 느낌.

오늘까지만 쉬고 열자.

커다란 일보 전진을 위한 잠시의 휴식 시간이었다.

이대로 유후인 구경도 제대로 못 하고 갈 순 없지.

고개를 끄덕이며 보따리를 가방으로 챙겼다.

짐은 다 챙겼고.

간소한 짐이 든 가방을 들고 몸을 일으켰다.

3일 동안 잘 쉬다가는 호화 료칸.

열심히 돈 벌어서 또 와야지란 생각을 하며 문을 나섰다.

* * *

“500엔입니다.”

짤랑.

동전 하나를 건넨 후 꼬치 다섯 개를 받아 들었다.

료칸을 나오자마자 만난 꼬치 가게.

금강산도 식후경이랬어.

목적은 산책이었지만 어디선가 달달한 냄새가 풍겨왔다.

킁킁거리며 냄새를 따라 도착한 장소가 바로 이곳.

보기만 해도 달콤한 꿀을 잔뜩 바른 당고 가게였다.

쏘옥.

우물우물.

와씨.

달았다.

달아도 너무 달았다.

혀가 얼얼해지는 극강의 달콤함.

조금이나마 안 깼던 잠이 싹 달아나는 기분이었다.

쏙.

쉬지 않고 입을 놀렸다.

다 먹으면 당뇨가 걸릴 듯하지만 멈출 수 없는 맛이었다.

“어머니! 저도 당고 사주세요!”

내가 너무 맛있게 먹어서일까.

마주 오던 꼬마가 엄마에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헌터 말고 먹방을 했어야 하나.

스스로의 먹방 재능에 만족해하며 강을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로 걸음을 옮겼다.

유후인 마을을 둘로 나누는 강줄기.

커다랗진 않지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이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강이었다.

좋다.

입에선 달달한 당고가 녹고 있었고 눈앞엔 시원한 강줄기가, 주변은 발전 전의 정감 넘치는 집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냥 걷고만 있을 뿐인데도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평화로워지는 기분이다.

“빨리 밤 됐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올해도 엄청 예쁘겠지?”

남의 이야기를 엿듣는 건 나쁜 일이다.

나쁜 일이지만 내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아이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오늘 밤에 뭐하나?

조금 더 걷자 있는 녹차 가게로 들어갔다.

“녹차 아이스크림 하나랑 녹차 주세요.”

“예이. 400엔입니다.”

돈을 건네며 주인아저씨를 바라봤다.

“오늘 밤에 여기서 뭐 하나요?”

“아이고 유후인 처음 오시는 분인가 보네.”

“3일 전에 처음 왔어요.”

아저씨가 손을 들어 벽 한쪽을 가리켰다.

# 유후인 불꽃 축제

오.

불꽃 축제란 말에 머릿속에 여러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물론 현실에선 불꽃 축제란 곳에 가본 적이 없기에 모두 2D 영상이었다.

단골 소재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흔히 나오는 장면이었다.

일본 전통 의상인 유카타를 입고 연인(진)인 친구와 불꽃놀이를 구경하는 장면.

흔히 축제엔 꼬치나 맥주를 파는 포차도 열기에 볼 때마다 직접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인생이 풀리려고 하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더니.

진짜 장날이었다.

여기서 버킷리스트 하나 달성 하겠구만.

조금 전 작성된 버킷리스트를 벌써 하나 채울 수 있다니.

정말 난 행운을 타고 났다.

좋아.

오늘 밤 일정이 정해졌다.

불꽃놀이 구경 확정!

* * *

벌컥! 벌컥!

“크하아!”

시원한 맥주를 원샷한 후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정면을 바라봤다.

진짜 좋네.

유후인 자체가 작은 마을이다 보니 솔직히 큰 기대는 안 했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눈앞을 가득 채우고 있는 포차와 포차에서 흘러나오는 따듯한 주황색 불이 너무 예쁘고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내가 바라던 거야.

애니메이션에 나왔던 것처럼 사랑을 속삭일 연인은 없었지만.

시원한 맥주와 짭짤한 꼬치, 그리고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불빛들까지.

이거면 충분했다.

음… 한 번 입어볼까.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턱을 문질렀다.

사람들이 입고 있는 유카타와 나막신이 내 눈을 사로잡고 있었다.

어디 보자.

“유카타 대여해 드립니다! 싸요! 싸!”

좋았어.

호다닥 소리 지르고 있는 아저씨에게 달려갔다.

* * *

따각. 따각. 따각.

흡족스러운 소리구만.

나막신을 튕기며 나풀거리는 소매를 내려다봤다.

입어보기 전에는 조금 불편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개편하다!

편해도 이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품이 커 너풀너풀한 상의와 치마처럼 밑에가 뻥 뚫려 있는 하의까지.

이래서 치마를 입는 건가.

일평생 바지만 입다 입어서인지 엄청난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가능하다면 대여가 아니라 하나 업어가고 싶었다.

짤랑.

손바닥에 놓인 동전을 바라봤다.

유카타 대여를 마지막으로 지폐는 전부 사라지고 말았다.

좀 더 달라 그럴 걸.

양심 터진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이마저도 쿄스케가 챙겨준 돈이었는데.

가는 길에 꼬치 두어 개 더 먹으면 끝나겠구만.

공항까지 타고 갈 차비만 남겨두면 되니 문제는 없었다.

그나저나.

바글바글.

사람 너무 많네.

불꽃놀이는 하늘에다 쏘니 안 보일 일은 없겠지만.

언제 또 볼 수 있을지 모르는 불꽃놀이를 이렇게 사람들에게 낑겨 보고 싶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탁 트인 장소에서 보고 싶었다.

“1분 후 불꽃놀이를 시작하겠습니다!”

행사 진행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가 좋겠어.

인파에서 빠져나와 구석으로 몸을 옮겼다.

[비전 수리검]

수리검을 행사 장소 옆쪽의 산등성이로 최대한 살살 집어던졌다.

“10! 9! 8!”

[비전]

진행자의 카운트에 빠르게 비전을 했다.

순식간에 바뀐 눈앞의 풍경.

여기다.

유후인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장소.

불꽃놀이가 준비된 행사장과도 정면이었다.

“3! 2! 1!”

피유우웅!

카운트가 끝나기 무섭게 폭죽이 발사되기 시작했다.

“와….”

펑! 펑! 펑!

하늘에 도달하자마자 화려한 불의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불꽃놀이란 게 원래 이렇게 멋있었나.

능력의 개방으로 불꽃 제작 장인이 된 사람이 있다고는 들었었다.

그 때문인지 입이 떡 벌어지는 화려한 문양이 쉴새 없이 터지고 있었다.

으차.

한쪽 풀밭에 편하게 자리를 잡았다.

치이익!

캔맥주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거품을 쏟아냈다.

꿀꺽.

맥주를 한 모금 마신 후 하늘을 수놓고 있는 불꽃을 바라봤다.

안주 같은 건 따로 필요 없을 것 같았다.

싱긋.

입가로 미소가 지어졌다.

조오오타!

* * *

일본의 비상 대책 본부.

문이 열리며 중년의 여자가 본부로 들어왔다.

깔끔한 블랙톤 정장과 단정한 검은색 단발 머리를 넘기고 있는 여자.

벌떡.

여자를 발견하기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군인들과 관리들.

“오셨습니까, 장관님.”

장관이라 불린 여자, 니시다 료코가 일어나 있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상황은 어때요?”

“….”

질문에 고개를 숙이는 군인들에 료코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상황이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지원군이 도착했을 땐 이미 사라진 뒤였습니다.”

“… 아군 피해는요?”

침통한 표정을 지은 장성이 브리핑 화면을 틀었다.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여러 개의 이름들.

이름들은 모두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

그 화면의 의미를 아는 료코가 두 눈을 꾹 감았다.

‘다 죽었단 말인가.’

마음 같아선 계속 이 상태로 눈을 감은 채 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다.

“처음 산정한 놈의 등급은 A급이라고 들었습니다… 만. 화면을 보니 아닌 거 같네요.”

기존 데몬 등급 산정을 맡았던 군인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지금 상황에 사과는 무의미합니다. 등급은 다시 산정 했겠죠?”

“예.”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남자가 데몬의 사진이 찍힌 화면을 공유했다.

5미터는 되어보이는 크기에 맨들거리는 적색 갑주로 온몸을 감싸고 있는 데몬.

“데몬 번호 A-82번, 새로 산정한 등급은… S입니다.”

“!!”

S란 말에 본부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데몬의 등급은 만국 공통.

여기서 S급이 의미하는 건 한 가지를 의미했다.

노네임드.

그리고, 해당 데몬이 노네임드라는 사실이 인정되면 고유의 이름이 붙는다.

“국가 소속 헌터 7급 37명, 5급 19명, 3급 6명. 총 62명 사상자를 낸 노네임드 데몬, 사로카.”

꿀꺽.

“현재 후지산에 있는 걸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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