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75화 (75/473)

75화. 긴급 대피령

후지산 근처의 식당.

이… 이게 오마카세란 건가.

비싼 가격대에 인터넷으로만 봤던 식당이었다.

요리사가 마음대로 음식을 내는 고급진 곳.

- 사실 제가 엔화가 없어요.

차를 타고 오며 땡전 한 푼 없음을 고백했었다.

- 걱정하지 마세요!

고백이 끝나기 무섭게 걱정말라며 엄지를 치켜세운 유연경과 배이슬.

이제부터 나의 숙식을 모두 책임져주겠다는 고마운 소리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숙식 쩔 받기.

그 첫 번째 장소가 이곳 오마카세였다.

“처음부터 너무 잘 얻어먹네요.”

“마음껏 드세요! 부족하면 다른 것도 더 사드릴게요.”

의욕 넘치는 두 사람에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껏 먹으라곤 하지만, 평소처럼 너무 개돼지처럼 먹진 않을 생각이었다.

“연경 님이랑 이슬 님은 유명하신가 봐요. 협찬까지 받으시고.”

유연경과 배이슬이 일본에 온 이유는 관광이 아니었다.

일본 관광청에서 홍보를 위해 두 사람을 초대한 것이었다.

유명 관광지를 찍어 한국에서 홍보해달라는 내용.

“에이 아니에요. 적당한 가격의 게스트를 부른 거죠.”

“저랑 이슬 님이 엄청 적당한 가격의 게스트거든요.”

“그런 게 어딨어요. 두 분이 올리시는 영상이 재밌으니까 협찬도 오는 거죠.”

말하기 무섭게 의미심장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두 사람.

“백운 님, 저랑 이슬 님 영상 본 적 없죠?”

뜨끔.

내 거도 안 보는데 볼 리가 있겠습니까.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두 사람이 웃음을 터뜨렸다.

말이라도 하지 말걸.

화제 전환을 위해 호다닥 음식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기 너무 맛있네요.”

그렇게 초밥을 우물거리며 식은땀을 흘리는 사이.

띠링.

유연경과 배이슬의 핸드폰이 동시에 울렸다.

“어!”

“어? 취소오!?”

핸드폰에 도착한 문자 메세지를 보더니 눈이 커다랗게 변하는 두 사람.

미간을 찌푸린 채 상세 내용을 읽은 유연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약속했던 돈은 모두 주되 일정이 취소되었으니 돌아가라니… 무슨 일이지?”

조금 전 말했던 일본 관광청의 일정이 취소된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돈은 주겠다니.

어떻게 보면 꽁돈이라 좋은 거지만 유연경과 배이슬은 이런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게시판을 보니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에요. 후지산이나 후지산 근처에 잡혔던 일정들이 전부 취소됐대요.”

“근처에서 무슨 사건이라도 생긴 걸까요?”

후지산이라 하면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였다.

무슨 일이 있는 거 치곤 너무 조용한데.

앞에 있는 요리사에게 물어봐도 마찬가지였다.

어깨를 으쓱 올리며 딱히 별일이 없다는 대답을 했다.

딱히 기억나는 것도 없는데.

정말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사건이 아니라면 기억이 날 리가 없었다.

애초에 무능력자의 몸으로 한국을 나갈 생각조차 못 했던 시기라 다른 나라의 기사까지 챙겨보진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연락은 해봤는데 다른 분들도 모르겠다고 하시네요. 다들 일방적으로 문자를 받은 모양이에요.”

“뭐 약속했던 돈은 정상적으로 지급해줬으니 다행이지만. 이상하네요.”

꽁돈 벌었다 생각하자는 두 사람.

“여기까지 왔으니까 관광이라고 하고 가요. 백운 님은 돌아가는 비행기 예약하셨어요?”

“아뇨, 일이 다 끝나면 하려고요.”

“그럼 다 돌아본 후에 같이 돌아가요!”

밝게 말하는 두 사람에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돌아다닐 때의 자유로움은 없었지만 동행이 있는 건 이거 나름대로의 즐거움이 있었다.

냠.

알아보는 걸 멈추고 음식으로 손을 뻗는 배이슬.

배이슬이 우물거리던 초밥을 넘기고 나를 바라봤다.

“백운 님은 후지산에서 뭘 찾는다고 하셨죠?”

“네, 그게 뭔지는 아직 정확하게 모르겠지만요.”

후지산으로 왜 가냐는 질문에 양피지에서 봤던 문장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 우와… 저희가 물어보긴 했지만, 그런 거 막 알려주셔도 돼요?

사실 보물지도였으면 안 알려줬다.

단지 날 훑고 문장을 띄웠던 양피지를 봤을 때 나를 위한 전용 어드바이스라는 판단이 들었기에 순순히 알려준 것이었다.

“그래서 일단 올라가 보려고요.”

딱히 다른 단서가 있는 것도 아니라 방법이 없었다.

쪽지의 내용대로 후지산을 아래서부터 올라가 보고.

과연 사기 쪽지였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생각이었다.

“잘됐네요. 저희도 후지산 한 번 올라가 보고 싶었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더라고요.”

!?

그냥 오르면 되는 거 아니었나.

내 놀라는 모습을 봐서인지 유연경이 손을 내저었다.

“산 자체를 오르는데 비용이 있는 건 아니에요. 단지 산에서는 언제든 데몬이 나타날 수 있다 보니 보호해줄 헌터를 고용하는 게 일반적이거든요.”

다행이다.

나랑은 상관없는 비용이다.

“이거 또 의도치 않게 백운 님 덕을 보겠는데요?”

“제가 정상까지 잘 지켜드리겠습니다!”

어차피 나도 올라가야 하는 길.

겸사겸사 데몬도 때려잡으며 가면 될 일이었다.

“감사합니다! 얼른 더 드세요! 백운 님!”

* * *

후지산 근처의 대책 본부.

“후지산 통제는 어떻게 되고 있나요?”

“진행 중입니다. 근처의 대외 일정은 모두 취소했고 가게들에도 조기 영업종료를 요청 중입니다.”

료코가 고개를 끄덕이며 상황판을 바라봤다.

S급 데몬 사로카는 후지산 안에 있었다.

‘거기서 뭘 하고 있는 거냐.’

사로카가 어째서 가만히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찌됐든 가능한 한 근처의 인원들을 멀리 떨어지게 해야 했다.

“절대 사로카에 대한 정보가 새어나가선 안 됩니다. 패닉에 빠질 거예요.”

은밀하게 후지산 주변의 일정을 취소하고 가게를 닫게 하는 이유였다.

S급 데몬, 또 다른 이름으로는 노네임드라 불리는 존재.

노네임드에 대한 공포는 정부나 헌터들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과거 노네임드가 등장했던 곳마다 벌어졌던 처참한 학살극.

시민들 역시 그 학살극이 얼마나 끔찍했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사로카가 후지산에 있다는 게 알려지는 순간 후지산을 벗어나기 위해 소란이 일어날 터였다.

정부조차 통제하기 힘든 혼돈이 일어나는 것.

“일단은 외부 인원부터입니다.”

근처의 주민을 대피시키기 전에 해야 할 일은 새로운 유입을 막는 것이었다.

워낙 유명하다 보니 주민보다 관광객의 수가 더 많은 지역.

관광으로 즐길 수 있는 걸 모두 닫아 관광객들이 찾지 않게 할 계획이었다.

‘외부 인원들에 문제가 생기면 곤란해진다.’

패닉을 걱정해 내린 결정이었지만, 정부가 사로카의 존재를 알고서도 곧바로 대피령을 내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분명 논란이 생길 터였다.

그 과정에서 후지산을 방문했던 관광객에 문제가 생긴다면?

외교적인 문제로까지 번지게 된다.

“1급, 2급 헌터들은 오고 있나요?”

“예… 오고는 있는데 조금 더 걸릴 것 같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오는 인원이 대부분이라서요.”

료코는 사로카를 잡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기서마저 놓칠 순 없는 일.

끝을 내기 위해 최고위층의 까다로운 결재까지 받으며 1급 헌터를 불러들였다.

“최대한 조용히 주민들도 대피시키세요. 후지산에서 가까운 사람들부터입니다. 이유는 후지산의 화산 움직임 때문이라고 발표하시고요.”

“알겠습니다.”

료코의 명령을 받은 직원이 연락을 돌리려는 순간.

# 콰아아아아아!!

“!?”

후지산을 모니터링하던 화면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후지산의 정상 부분.

거대한 먼지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드론 가까이 붙여보세요!”

주변을 감시 중이던 드론이 정상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먼지구름의 이유를 찾기 위해 안으로 들어가는 드론.

꿀꺽.

본부 내부의 모든 시선이 모니터로 향하고 있었다.

드론을 조종하고 있는 직원도 미세하게 손을 떨고 있었다.

# 위이이잉.

먼지 속에서 카메라를 확대하는 드론.

아직까지 보이는 건 아무것도….

# 콰직!!

“!!”

순식간이었다.

먼지 속에서 적색 갑주를 둘러싼 주먹이 튀어나온 것은.

그대로 드론을 부순 건지 전송되던 화면이 끊어졌다.

“….”

무거운 정적이 깔린 본부.

모두의 시선이 모니터에서 책임자인 료코에게로 이동해갔다.

다른 헌터들이 올 때까지는 사로카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는데.

사로카가 움직이며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 여유가 사라지고 말았다.

“… 내리세요.”

“예?”

“후지산 인근에 긴급 대피령 내리세요.”

* * *

“꺄악!”

고개를 들어 후지산의 정상을 바라봤다.

정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엄청난 양의 먼지구름.

뭐야?

식사를 마친 뒤 산책이나 할 겸 후지산 주변을 걷고 있던 중.

서 있는 땅까지 흔들리는 걸로 보아 저 먼지구름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게 아니었다.

“무… 무슨 일이죠?”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한 건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을 거닐던 주민들도, 점점 닫아가는 가게에 실망하며 떠나려던 관광객들도.

모두가 같은 표정으로 후지산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왜에에에에에엥----!!

귀를 찢는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국가 재난에나 울린다고 하는 사이렌인데 그게 왜 지금 울리는 걸까.

부우우우웅!

잠시 후 새까맣게 칠해진 차량들이 속속 도착했다.

뭐지? 이 속도는.

대처가 빠르다고 하기엔 너무 이른 시기였다.

마치 이런 일이 일어날 걸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등장하고 있는 차량과 인원들.

“다들 이쪽으로 오세요!”

띠링! 띠링!

동시에 사람들의 핸드폰도 미친 듯이 울리고 있었다.

후지산 인근 전체에 내려진 긴급 대피령 문자였다.

싸한데.

긴급 대피령이 내려졌다는 것 자체가 위급한 상황이지만.

문자에 자세한 내용이 적혀 있지 않다는 게 싸한 느낌을 불러오고 있었다.

대외적으로 밝히지 못할 정도의 상황이라는 반증이었기 때문이다.

콰아아앙 ---!

콰아아앙 ---!

계속해서 들려오는 굉음에 배이슬과 유연경이 날 바라봤다.

“백운 님, 일단 피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무슨 상황인지는 몰라도 심상치가 않아요.”

심상치 않은 수준이 아니라 불길했다.

먼지 때문에 보이진 않아도 분명 무언가 산을 두들기고 있는 소리였다.

한방 한방에 저런 먼지구름이 생길 정도라니.

단순 산사태면 차라리 괜찮았겠는데.

산사태가 저런 소리를 내며 먼지를 일으킬 리는 없었다.

다급하게 달려온 인원들도 그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저 차로 가요!”

대피를 돕고 있는 차량.

유연경과 배이슬을 차량 쪽으로 앞장세웠다.

[비전 수리검]

후우웅…!

소란스러운 틈을 타 두 사람 모르게 수리검을 후지산으로 던졌다.

“세 분이신가요!? 어서 타십시오.”

일본 측 헌터로 보이는 인원이 배이슬과 유연경을 태운 뒤 나를 바라봤다.

“…?”

두 사람을 따라 타지 않는 날 의아하게 바라보는 헌터.

“배… 백운 님, 설마?”

유연경과 배이슬이 불안한 눈동자로 날 응시했다.

광산에서 한 번 봐서인지 내가 뭘 할지 본능으로 알아챈 모양이었다.

씨익.

“연경 님, 이슬 님. 나중에 봬요.”

“아…!”

무언가 말하려는 두 사람의 모습을 끝으로.

후지산 쪽, 시야가 닿는 곳에 꽂아놓은 수리검으로 눈을 돌렸다.

[비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