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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76화 (76/473)

76화. 참극

우르릉.

산을 두들기고 있는 녀석 때문일까.

발아래가 쉴새 없이 울려대고 있었다.

- 백… 백운 님?

미친놈 바라보는 얼굴이었지.

배이슬과 유연경은 예상은 했지만 볼 때마다 엄청난 짓을 하시네요. 라는 눈빛으로 날 쳐다봤었다.

인정이지.

산을 울릴 정도로 엄청난 힘을 가진 무언가.

그리고 그 무언가 덕에 당장에라도 산사태가 일어날 것 같은 후지산까지.

올바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냅다 후지산에서 도망치는 게 옳은 선택이었다.

나도 마음 같아선 그러고 싶은데.

누가 안 도망가고 싶겠는가.

나도 가능하다면 확정된 위험에서 멀리멀리 떨어져 강 건너 불구경 하고 싶었다.

하지만,

- 후지산으로 가라.

그럴 수가 없었다.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는 쪽지의 문장.

누가 남긴 건지, 무슨 원리로 쪽지에 글씨가 쓰인 건진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조금 전까지 사기 아닌가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타이밍이 너무 절묘하잖아.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쪽지를 따라 후지산으로 왔는데 마침 이런 일이 생긴다?

정말 낮은 확률에 의한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지만.

인연은 언제나 우연을 가장해 찾아온다.

내 본능은 우연의 일치보단 이쪽에 더 높은 베팅을 하고 있었다.

- 힘을 원한다면.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다.

미친 듯이 무기를 모으는 것도 이것 때문이었다.

그런데 힘을 얻을 수도 있을지 모르는 기회를 위험해 보인다고 포기한다?

말도 안 되지.

그럴 거였으면 애초에 개미굴에서 유리병도 내팽개치고 위를 향해 달렸을 것이다.

우르르응!

조금만 더 있으면 쏟아지겠구만.

두들겨지고 있는 건 내가 달리고 있는 반대편.

지금 당장 내 쪽으로 눈이나 모래가 쏟아지진 않았지만.

발아래의 진동이 점점 강해지는 걸로 보아 얼마 남지 않은 듯했다.

빙글.

정상에….

수리검을 최대한 하늘로 던지며 몸을 이동시켰다.

뭐가 있는 거냐!

* * *

장관 료코와 헌터들이 특수 차량에 올라 후지산을 달렸다.

슥.

앞좌석에 타고 있는 켄지가 백미러로 뒷좌석의 료코를 바라봤다.

‘괜찮을까.’

- 제가 가겠습니다.

1급 헌터들의 도착 때까지만 기다리자는 말에 료코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미 사로카가 후지산을 두들기고 있는 상황.

후지산 아래에 사는 주민이 많진 않았지만 이대로라면 산사태가 일어나 대피 중인 사람들을 집어삼킬 터였다.

‘장관님이 강한 건 모두가 알지만.’

료코 장관이 사로카를 담당하게 된 건 우연이 아니었다.

장관들 중에서도 강한 능력을 개방한 료코.

장관이 된 료코가 직접 현장으로 가 싸울 일은 적었지만, 그 전까지의 현장 경력이 워낙 화려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눈의 마녀.’

료코는 눈을 다룰 수 있었다.

물론 눈이 없는 곳에서는 능력을 사용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지만.

눈만 존재한다면 료코는 위협적인 위력을 뿜어내는 게 가능해졌다.

‘현재 정상으로 향하고 있는 건 대다수가 3, 4급 헌터들.’

원래라면 듬직했을 전력이었다.

3급과 4급 헌터 개개인은 세계 어디에서도 제 몫을 할 수 있는 전력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켄지가 불안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사로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후지산 전에 등장했던 곳에서 3급과 4급 헌터들을 장난감처럼 짓뭉개버렸던 데몬.

뭉개졌던 동료들의 시체를 본 이들이 지금 후지산으로 향하고 있었고, 그만큼 사로카를 만나기 전부터 사기는 바닥을 치고 있었다.

“얼마나 남았죠?”

“잠시 후면 도착합니다. 얼마나 붙을까요?”

잠시 고민하던 료코가 입을 열었다.

“저희의 목적은 아래 주민들의 대피 시간을 버는 겁니다. 산사태는 제가 눈을 이용해 막을 수 있을 테니 너무 가까이 갈 필요는 없습니다.”

위험하지만 료코를 끝까지 말릴 수 없었던 이유였다.

료코를 제외하고는 지금 쏟아지는 산사태를 막을 수 있는 인원이 없었다.

‘그렇다고 장관이 직접 나서다니. 이러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대참사였다.

이유는 어쨌든 장관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데몬에게 당하는 순간 엄청난 동요가 일어나는 건 불 보듯 뻔한 일.

“1급 헌터 도착은 얼마나 남았죠?”

“가장 가까이 있는 인원이 한 시간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료코가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료코가 가장 걱정하는 건 산사태가 아니었다.

‘폭발할 수도 있어.’

활동하고 있는 화산 중 하나인 후지산은 타이머가 멈춰있는 시한폭탄이었다.

일단 폭발했다 하면 대참사였기에 일본에서도 후지산에게 자극을 주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던 상태.

그런 후지산을 저렇게 때려대고 있으니 마음이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설마 그걸 노리는 건 아니겠지.’

사로카의 강함이 다른 차원 급이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저 살인이라는 본능에 의해 움직일 뿐.

생각에 의해 판단을 내리고 움직인다고 여기진 않았다.

‘….’

그렇지 않길 바라야 했다.

그랬다가는 더 절망적일 듯하니 말이다.

우루루루!

“장관님, 여기에서 멈추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료코가 차에서 내렸다.

차로 갈 수 있는 건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여기서 산사태를 막도록 하죠. 나머지 인원은 경계 진영을 펼쳐 주세요.”

“알겠습니다.”

료코가 산사태가 내려오는 중앙으로 자리를 잡고.

나머지 인원들이 에너지 쉴드를 포함해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

작전은 간단했다.

료코는 1급 헌터들이 올 때까지 산사태를 막고, 나머지 인원은 그런 료코를 만약에 있을 위험으로부터 지키면 됐다.

척.

바닥에 손을 짚은 료코가 눈을 감았다.

사아아…!

료코 주변으로 눈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한 시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한 시간만 버티면 된다.’

료코에게서 시작된 눈보라가 밀려오고 있는 산사태 쪽으로 날아들었다.

쿠드드득!

드드드…!

단단한 눈의 장벽에 막히자 조금씩 속도를 줄이는 눈더미.

그 모습을 지켜보던 헌터들의 얼굴로 역시라는 표정이 지어졌다.

저런 거대한 산사태를 단신으로 막다니.

“반대편 쪽에 남은 사람은 없겠죠?”

능력을 유지하며 료코가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능력을 펼쳐도 거대한 후지산 전체를 감당하는 건 불가능.

막을 수 있는 건 현재 방향 한쪽이 최대였다.

“예! 반대편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차량으로 이동 중입니다. 저희가 올라온 쪽이 메인 길이 있는 곳이라 아마 다 이쪽으로 이동해 있을 겁니다.”

“대피 인원이 몰려 길에 병목이 생기긴 했지만 대피는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료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만 지키면 대피에 문제는 없었다.

‘한 시간은 버틸 수 있다.’

능력을 사용해 산사태를 막는데 아무런 리소스가 들어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단지 지금처럼 아무 방해도 없다면 이 정도는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소모량이었다.

어째서인지 계속해서 들려오던 굉음도 멈추었다.

더 이상 후지산을 자극하지 않는다면 화산이 터질 일도 없으니 불행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전 인원 지금 포지션 그대로 유지합니다! 혹시 모르니 긴장 풀지 말….”

퍼엉!

“!!!”

말이 끝나기 무섭게 료코의 능력으로 막아뒀던 산사태의 한쪽 면이 부서져 내렸다.

“쏟아진다! 대비해라!”

내려오는 눈의 양 자체는 위협적이지 않았다.

문제는 눈이 진영으로 쏟아지며 시야가 가려졌다는 것.

‘이런… 내 눈의 통제 범위 밖이야.’

눈 자체를 다루지만 한계는 존재했다.

주변의 모든 눈을 다루는 게 아닌, 처음 일으켰던 눈보라의 근처의 눈만 조종할 수 있었다.

“다들 괜찮나!”

“예! 문제없습니다!”

“방금 뭐였을까요!?”

료코가 눈을 찌푸리며 위를 바라봤다.

정상에서 떨어져 내린 거대한 돌덩이가 눈의 장막을 때린 걸 수도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꿀꺽.

‘침착하자.’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든 무의미했다.

사방이 눈으로 인해 온통 백색이 되어버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쿠득!

“!?”

쾅!

“뭐… 뭐야!”

“무슨 소리야!”

쾅! 쾅! 쾅!

“각 분대 인원수 파… 꺽!”

‘!?’

어째서 불길한 예상은 항상 들어 맞아버리는 걸까.

탕! 탕! 탕!

“이런 멍청한! 아무데나 쏘면 어떡… 끄악!”

푸욱!

“으아아!!”

주변에 배치되어 있던 부하들이 당하고 있었다.

꿀꺽.

사방은 시야가 막혀있었다.

‘어디냐…!’

료코가 손을 짚은 채 계속해서 주변을 둘러봤다.

손을 떼는 순간 산사태가 쏟아져 내릴 터.

지금 자리를 벗어나는 건 불가능했다.

쾅! 퍽!! 쩌억!

….

그렇게 얼마나 많은 타격음이 들려왔을까.

차단된 시야로 인해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건지, 몇 명이나 당한 건지도 알 수 없었다.

잠시지만 고요함이 찾아왔다.

‘어디냐… 사로카…!’

고요함을 틈타 주변을 살폈다.

최소한 어디에 있는지는 알아야 지시를 내릴 수 있었다.

잠시 후 료코가 입을 열려는 찰나.

푸확!!

후두둑.

“…!!”

료코의 얼굴로 아직 채 식지 않은 붉은 액체가 흩뿌려졌다.

끈적한 점도를 가지고 이마에서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는 누군가의 피.

쿵…. 쿵….

짚고 있는 손으로 미세한 울림이 느껴졌다.

피가 날아온 건 전방.

그리고 진동이 전해지는 방향도 앞이었다.

‘… 있다.’

쿵. 쿵. 쿵.

점점 커져가는 울림에 료코의 심장이 함께 떨리기 시작했다.

바로 앞에 있었다.

수십 명의 헌터를 단신으로 도륙해버린 S급 데몬.

쿵…!

시야를 가리고 있던 눈이 잦아들고.

료코의 앞으로 붉은 갑주로 온몸을 감싸고 있는, 거대한 덩치와 공허한 눈이 아니라면 사람에 가까운 체형을 가지고 있는 S급 데몬.

사로카가 모습을 드러냈다.

“….”

절망이 료코의 몸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사로카의 등장 때문이 아니었다.

“쿨럭…!”

주변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부하들 때문이었다.

참극.

이 단어가 저절로 떠오르는 광경이었다.

입에서 피를 토하고 있는 건 기본이고 사지가 멀쩡히 붙어있는 인원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크르으…!

사로카는 나지막한 울음만을 흘릴 뿐 더 이상 다가오진 않고 있었다.

마치 곧 다가올 죽음을 천천히 음미하라는 배려 같았다.

‘한 시간은커녕.’

료코의 눈가로 씁쓸함이 번졌다.

‘이십 분도 못 버텼구나.’

이쯤 되니 널브러져 있는 부하들에게 죄책감이 느껴졌다.

이 정도의 희생을 치르며 얻어낸 이십 분은 과연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 걸까?

‘뒤에 있는 대피 행렬에겐 의미 있는 시간이었길.’

스으으.

료코에게 주어졌던 배려의 시간이 끝난 것 같았다.

료코를 향해 천천히 팔을 들어 올리는 사로카.

단순하게 팔을 휘두르려는 동작이지만, 저 단순한 동작에 헌터들의 팔다리가 터져나갔다.

스륵.

눈을 감은 료코가 죽음을 기다렸다.

일 초라도 더 늦추기 위해 능력은 해제하지 않은 채였다.

후우우웅…!

바람을 가르는 묵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콰아아앙!!

엄청난 마찰음이 들려왔다.

무거운 힘과 힘이 맞부딪히는 소리.

‘…?’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료코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

뭐에 맞은 건지 뒤까지 밀려나 있는 사로카.

그런 사로카를 대적하고 있는 건 거대한 수리검을 든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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