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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77화 (77/473)

77화. 붉은 갑주의 사로카

얘가 왜 여기에 있지.

급박한 상황에 일단 수리검을 내던진 후 비전을 통해 이동해왔다.

그런 내 앞에 등장한 적색 갑주의 데몬.

“크르르.”

내가 놀란 건 녀석이 무서운 소리를 내서는 아니었다.

나보다 두 배는 큰 크기에 보기만 해도 소름 끼치는 붉은 갑주를 입고 있어서도 아니… 이건 좀 상관이 있는 거 같고.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여기서 또 아는 얼굴을 만나네.

내가 놀란 이유였다.

아는 얼굴이어서.

붉은 바리.

눈앞에 있는 붉은 갑주 놈은 회귀 전에 직접은 아니지만 뉴스에서 본 적이 있는 놈이었다.

아마 시기상으로는 몇 년 뒤였던 것 같다.

뉴스에 붉은 갑주의 데몬으로 대서특필 되며 새로운 노네임드의 등장이라고 보도되었던 데몬.

분명 몇 년 전인데도 이놈이 여기에 있다는 건.

고개를 돌려 학살당해 널브러져 있는 일본 측 헌터들과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자를 바라봤다.

후지산 아래에서의 반응도 그렇고 분명 이들은 붉은 바리가 여기에 있다는 걸 알고 온 것이었다.

“앞에 있는 놈, 뭔가요?”

내 물음에 멍 때리고 있던 여자가 정신을 차렸다.

붉은 바리를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여자가 최대한의 목소리를 냈다.

“도… 도망치세요. 앞에 있는 건, 사로카. S급 데몬입니다!”

사로카…?

역시 알고 있네.

S급 데몬에 회귀 전 한국에서 불렸던 이름이 아닌 사로카라는 이름이 이미 붙어있는 걸 보니 확실해졌다.

일본은 이미 사로카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잠자코 있었던 건가.

내 사는 게 바빴다 보니 딱히 다른 나라에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이런 걸 보면 조금씩 정이 떨어지려고 한다.

잡히는 그 순간까지도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냈던 사로카.

한국에서는 어디선가 이동해온 흔적이 있던 사로카를 오랜 시간 추적했었다.

결국엔 실패했지만 말이다.

쯧…. 뭐, 조용히 있는 게 현명하긴 하지.

잘못한 게 없는데도 침묵했다는 거 자체에 불똥이 튈 테니까.

“일단 일어나시죠. 자리부터 피하게.”

눈은 사로카에 고정시킨 채 여자에게 말을 건넸다.

일본이 괘씸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저기에 앉아 있는 사람을 탓할 순 없는 노릇이다.

“저는 일본의 데몬 대응 본부 장관, 니시다 료코입니다. 지금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입니다.”

“…?”

료코가 짚고 있는 손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시선을 따라가자 눈에 의해 멈춰있는 산사태가 보였다.

“그럼…!?”

“크르!”

쾅!

와씨.

더 이상 못 기다려주겠는지 주먹을 한 방 날린 사로카.

수리검을 휘둘러 막아냈는데도 몸이 료코가 있는 뒤까지 쭉 밀렸다.

“이 아래는 대피 행렬이 있는 도로가 있습니다. 산사태가 이대로 내려가면 대참사에요.”

“!”

반대편 아래에서 차에 탑승했던 유연경과 배이슬.

이미 난리가 난 이후였기에 그 둘 역시 아직 빠져나가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이 아래에 갇혀 있을 터.

“지원은 있나요?”

“1급 헌터가 오고 있습니다. 남은 시간은 앞으로… 30분 정도고요.”

30분이라.

호흡을 가다듬으며 앞에 있는 사로카를 응시했다.

그리 막막한 싸움은 아니었다.

30분만 버티면 일본의 1급이 오니 최악의 상황에도 그때까지만 버티면 되는 싸움이다.

“일단 제가 시간을 좀 끌어보겠습니다.”

“!!”

무리라고 생각해서일까.

료코의 얼굴로 갈등 어린 표정이 나타났다.

S급 데몬을 상대로 싸우면서 시간을 끌겠다는 무모한 선택.

도망치라고 하는 게 옳았지만 그렇게 되면 자신이 죽으며 산사태를 막을 수 없게 된다.

닥친 현실 때문에 또 다른 현실을 무시해야 하는 상황.

끄덕.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료코가 입을 열었다.

“잠시만 버텨 주세요. 산사태를 다른 곳으로 처리하고 바로 도와드리겠습니다.”

산사태를 처리하다니.

아까부터 느꼈지만 료코는 강한 자연계의 능력자였다.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무리 범위에 특화된 능력이라 해도 단신으로 자연재해를 막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왠지 모르게 화가 나 있는 사로카를 봤다.

되려나.

탓!

사로카가 움직이기 전, 먼저 발을 뻗어 달리기 시작했다.

굳이 료코에게 다가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꿀꺽.

조금씩 가까워지는 사로카를 보니 마른침이 삼켜졌다.

처음 만나는 공식 S급 데몬.

국가직 1급이나 2급, 혹은 기업의 정상급 헌터가 아니라면 대적조차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존재였다.

빙글.

달려나감과 동시에 몸에 한 바퀴 회전을 주었다.

피렌조처럼 빠르진 않다.

관절을 꺾어대며 불가능한 방향으로 칼을 찔러 넣었던 피렌조.

완벽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속도 하나 만큼은 매우 위협적이었다.

사로카는 오히려 파워형.

수리검으로 제대로 막았음에도 뒤까지 밀려났었다.

면도칼도 안 통하겠지만.

저 붉은 갑주 때문에 상성 자체는 안 좋지만.

어떻게든.

후우웅…!

되게 해본다.

쾅!!

* * *

도쿄의 한 대학병원.

온몸에 붕대를 감은 남자가 간신히 호흡을 이어나가고 있다.

“정말 끔찍하게 당했어. 온몸에 성한 뼈가 하나도 없다니.”

누워있는 건 일본의 국가직 3급 헌터, 요시다.

S급 데몬 사로카와의 전투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헌터였다.

“살아있는 게 기적이에요.”

“그렇지.”

‘얼마 버티진 못하겠지만.’

의사 모타가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부상이 심해도 너무 심했다.

모든 조치를 취했지만 아마 오늘을 넘기진 못할 터.

‘대체 뭐랑 싸운 걸까.’

간호사의 질문에 모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친 이유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았던 국가 요원들.

종종 있는 일이었기에 모타 역시 궁금해하지 않았었다.

국가와 관련된 기밀사항은 알려고 하지 않는 게 신상에 좋았기 때문이다.

‘여러 대를 맞은 것도 아니었어. 단 한 방이다.’

모타가 가장 놀랐던 부분이다.

요시다의 골반으로 가해진 단 한 번의 충격.

그 충격 한 번 때문에 요시다의 몸 전체가 아작이 나버렸다.

‘트럭 같은 거에 받혔다고 보기엔 타격 지점이 너무 좁아.’

데미지는 트럭 수준이었지만 그랬다면 타격 범위가 달랐을 것이다.

‘만약 요시다를 저렇게 만든 게 데몬이라면.’

어떤 급을 매겨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치유에 관련된 능력을 개방해 한 번도 데몬과 싸워보진 못한 모타였지만.

그래도 오랜 의사 경력으로 데몬의 강함을 어느 정도는 유추할 수 있었다.

‘설마…. S급… 인가.’

삐---! 삐---!

“!!”

간신히 숨은 붙어있지만 의식이 없었던 요시다.

정신을 차린 건지 요시다의 심장 박동수가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진정제 가져와!”

간호사에게 지시를 내린 모타가 요시다에게 다가갔다.

움직이면 끔찍하게 고통스러울 텐데도 고개를 계속해서 움직여대는 요시다.

“…!?”

요시다의 눈이 모타를 응시하고 있었다.

동시에 산소호흡기 너머로 약간씩 움직이고 있는 요시다의 입.

스윽.

그래선 안 되지만.

너무나도 필사적인 요시다의 모습에 모타가 산소호흡기를 잠시 떼어냈다.

“말….”

‘말?’

“잘 안 들립니다!”

모타의 되물음에 요시다가 마지막 한 마디를 뱉어냈다.

“말을… 했… 다.”

삐--------------!

숨이 끊어진 요시다를 내려다보는 모타.

마른침을 삼킨 모타가 요시다가 했던 말을 다시 되뇌어보았다.

“말을 했다고…?”

* * *

쾅! 쾅! 쾅!

몸의 회전력을 잃지 않도록 계속해서 수리검을 휘둘러나갔다.

갑주가 있어도 그냥 몸으로 받아내기엔 무리라고 생각한 건지 사로카도 가드를 세운 채 방어를 하고 있었다.

거 더럽게 단단하네!

때리고 있으면서도 혀가 내둘러지는 단단함이었다.

몇 키론지 재본 적은 없지만, 맨바닥에 던지면 움푹 들어갈 정도로 수리검의 무게는 엄청났다.

그런 수리검을 몇 방이나 맞았는데도 박살나기는커녕 구겨지지조차 않는 갑주.

후웅.

!!

얼굴 옆으로 사로카의 주먹이 뻗어졌다.

스치기만 했을 뿐인데 온몸으로 주먹의 기압이 느껴졌다.

계속 가드를 올린 채 방어만 하고 있다고 방심할 수 없는 이유였다.

제대로 맞으면 바로 골로 간다.

삭.

자세를 바짝 낮추며 다시 한번 몸에 회전을 줬다.

사로카는 주먹을 뻗으며 가드가 풀려있었다.

금이라도 좀 가라.

그대로 회전시킨 수리검을 사로카의 복부로 꽂아 넣었다.

쿠우웅!!

이번에도 갑주는 부서지지 않았지만,

“크르으…!!”

데미지는 있는 것 같았다.

처음으로 몸을 굽히며 신음을 뱉어내는 사로카.

어느새 여기까지 온 건가.

사로카의 뒤로 후지산의 분화구가 보였다.

최대한 료코와 떨어뜨려 놓기 위해 수리검으로 이동하며 싸운 탓이었다.

그나저나… 개무섭네.

관심을 받는 건 참 기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수리검으로 비전할 때마다 바짝 붙어 쫓아오던 사로카는 밤에 봤으면 그대로 지려버렸을 정도로 무서웠다.

저 미친 방어력도 그렇고.

갑주로 인한 방어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면도칼과 스이카로는 뚫는 게 불가능한 단단함.

수리검과 비늘, 리볼버 정도만이 갑주를 상대로 유효타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다 한 방만 제대로 맞아도 골로 갈 거 같은 묵직함까지.

스펙만 보면 절망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래도,

싸울만하다.

공격은 묵직하지만 충분히 반응할 수 있는 속도였다.

그렇다보니 피렌조 때처럼 전투 자체가 긴박하지도 않은 상태.

나도 속도는 줄었지만.

5미터 거구의 사로카나 무거운 수리검을 들고 있는 나나 둘 다 속도가 느리긴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우위에 있는 건 나였다.

한 박자나마 사로카보다 먼저 반응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후우.

다 쫓아왔다 생각한 건지 멈춰있는 사로카를 응시했다.

수리검으로 상대하면서 틈을 노리고 유탈라스의 비늘로 끝을 낸다.

산도 부쉈던 비늘이다.

사로카의 갑주라고 무적은 아닐 터.

분명 부서질 것이다.

자 그럼 다시 시작해볼까.

파고들기 위해 몸을 낮췄다.

사아아…!

!?

그 순간, 몸을 저릿하게 만드는 오한이 밀려왔다.

잠시지만 앞으로 나아가려는 걸음을 멈추게 하는 오한이었다.

뭔가 달라졌다.

앞에 있는 건 조금 전과 동일한 사로카인데 어째서일까.

한순간에 다른 존재가 된 느낌이었다.

드드득.

괴기한 소리와 함께 사로카의 갑주에 변화가 일어났다.

맨들맨들 했던 표면이 돌기처럼 일어나기 시작한 것.

“크르… 크…!”

!?

오한이 귀까지 이상하게 만든 걸까.

조금 전 사로카가 낸 소리가 비웃음으로 들려왔다.

정신 차리자.

사로카가 뭘 하든 다 할 때까지 기다려줄 필요는 없었다.

어떤 게 변한지는 몰라도 내가 해야 할 행동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휘이…!

몸에 회전을 주며 수리검에 무게를 실었다.

아직 사로카와의 거리는 충분한 상태.

한 바퀴 더 회전을 먹인 뒤에 던진….

화악!

!!!!

분명 충분한 거리가 있었다.

어떻게…?

있었을 터인데.

사로카의 얼굴이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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