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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82화 (82/473)

82화. 만년삼

“어서오세요, 헌터 프라이빗 은행입니다.”

전용기에서 내리자마자 쩔뚝이며 달려온 곳.

밥을 사주겠다는 두 사람의 권유에 마음만 받겠다며 거절한 후 이곳으로 직행했다.

- 나중에 꼭 연락하셔야 돼요! 꼭!

못 사준 밥을 제대로 사주겠다며 연락하라던 배이슬과 유연경.

꼬로록.

나중에 꼭 연락해야지.

당장 오늘 얻어먹고 싶었지만, 마음이 급해 맛있는 걸 먹어도 그 맛을 온전히 즐기지 못할 것 같았다.

“백운 헌터님. 여기에 지문 찍어 주시고 홍체 확인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안내에 따라 절차를 밟아나갔다.

비싸지만 보안 하나는 기가 막히는 프라이빗 은행.

몸값 높은 헌터들까지 보안을 위해 배치되어 있는 장소였기에 무장 강도가 들이닥쳐도 거뜬한 장소였다.

지잉.

“확인 되셨습니다. 11번입니다.”

사람 한 명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공간.

작고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들어가 내가 맡겼던 상자를 받아 들었다.

샤샥.

상자를 한 번 조심스럽게 쓰다듬은 후.

속으로 기도를 올렸다.

‘부디 만년삼이어라.’

* * *

시… 시발?

나도 모르게 찐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어느 한적한 산골의 깊숙한 장소.

바위 위에 올라와 상자를 열고 산삼을 살폈었다.

- 아주 찐하고 굵은 한 줄이 천년이에요.

정확하지 않은 방법이었지만.

유연경이 말했던 가라 방법으로 봤을 때 내가 들고 있는 건 무려.

여… 열줄.

만년삼이었다.

개찐하고 개굵은 줄이 열 줄이나 새겨져 있는 산삼.

꿀꺽.

800년따리가 50억이면 이건 얼마란 거야.

진짜 만년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맞다면 내 손에 들려있는 건 아파트 한 채 수준이 아니었다.

아파트 한 동을 사도 부족함이 없을 물건이었다.

- 하지만! 설령 생겼다 해도 조심해야 해요.

마지막 유연경이 말해준 주의사항을 떠올렸다.

사람의 생명을 먹고 자란 만큼 효능이 뛰어나지만, 그만큼 가지고 있는 열이 엄청나 잘못 먹었다간 죽을 수도 있단 말이었다.

삼 종류는 열이 높으니까.

그래서 아무리 좋은 삼도 몸에 열이 많은 사람한테는 맞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이게 진짜 만년삼이면 활화산이라 봐야 할 텐데.

내가 열이 많은 체질이었나?

잘 모르겠다.

그냥 살아지는대로 살았다보니 체질이나 이런 걸 따질 여유가 없었다.

꿀꺽.

눈앞에 있는 만년삼을 보고 있자니 조금 긴장됐다.

현재 몸의 치료는 물론이요 영구적인 치유력 및 신체 능력의 향상.

내게 몹시 필요한 것이었다.

산삼 먹고 뒤지진 않겠지.

그랬다간 카이안한테 뺨을 처맞고 뒤돌려차기까지 맞아도 할 말이 없었다.

- 나약… 하구나.

사로카가 사라지기 전 내게 남겼던 마지막 한 마디.

딱정벌레쉨.

그 한 마디를 떠올리니 천불이 나는 느낌이었다.

진정해.

열 내면 안돼.

최대한 차분히 먹자.

사로카를 박살내기 위해서라도.

그걸 위해 강해지기 위해서라도.

치유력과 신체 능력이 올라가지 않더라도 지금의 부상을 빨리 회복해야 했다.

그래야 강해지던가 말던가 하니까 말이다.

스윽.

만년삼을 든 손을 입 앞으로 가져갔다.

사람의 생명력이 깃든 산삼.

산삼에 깃들어 있을 생명들에 기도를 한 번 올린 후.

와작!

입으로 만년삼을 집어넣었다.

* * *

음… 아직은 괜찮은데.

역시 연경 님은 사기를 당한 걸까.

조금 전 만년삼을 넘겼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오만상이 찌푸려질 정도로 더럽게 쓴 인삼을 넘긴 느낌이었다.

설마 아무 효능이 없다면.

호달달달달.

온몸이 떨려왔다.

내가 지금 뭘 먹은 거야!

아파트 한 동을 한 큐에 처먹은 것과 다름없었다.

호달달 떠는 와중에 느껴지는 고통을 보니 입었던 부상도 그대로였다.

눈곱 만큼도 치유되지 않은 상태.

끝에만 먼저 조금 먹을…!?

뒤늦은 후회를 하며 눈물을 흘리려는 찰나.

두근.

어째선지 심장 박동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원래 심장이 이렇게 크게 뛰나?

고개가 갸웃거려질 정도로 선명하게 들려오는 소리.

사아아아…!

키… 킷타!

뭔가 오기 시작했다.

위가 있는 상체의 중심부터 퍼지기 시작한 뜨거운 열기.

뜨겁다라는 표현만으론 한참 부족했다.

울컥!

입을 통해 붉은 피가 쏟아졌다.

시… 시발?

뭔가 잘못됐다.

만능 약을 먹은 게 아니라 독약을 먹은 것 같았다.

우드드득!

“끄아…!”

보통 산삼이 혈관을 타고 전달되는 거였나?

팔다리까지 퍼진 열기에 근육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너무 아파서 제대로 된 비명조차 안 나올 정도의 끔찍한 고통.

드득! 우득!

이건 죽는다.

어느 때보다 강한 확신이 들었다.

분화구에서 사로카가 다가올 때보다 더 강한 확신이었다.

그만큼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강한 고통이었다.

삐이이이---!

귓가로 이명이 들려오고.

뚝.

잠시지만 몸을 녹이던 고통이 잦아들었다.

잦아들다 못해 완전히 사라진 느낌이었다.

…?

끄… 끝인가?

온몸으로 퍼지는가 싶더니 급속도로 사라진 열기.

만년삼 쉨, 해… 해치웠나.

그렇게 몸을 살피려고 상체를 든 순간.

온몸에 퍼져 웅크리고 있던 열기가 한 번에 터져 나왔다.

우드드드득!!!

“끄아아아아아아악!!!”

* * *

뜨끈.

코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에 눈을 떴다.

떠진 눈으로 보이는 건 밤하늘의 수많은 별뿐이었다.

눈 멀쩡하고.

귓가에 들려오는 산벌레의 울음소리.

귀 멀쩡하고.

슥.

손등으로 뜨끈한 느낌이 들었던 코를 훔쳐보았다.

흥건.

허.

조금 전까지 흘렀던 건지 엄청난 양의 피가 소매에 묻어나왔다.

피가 난 건 코뿐만이 아니었다.

눈과 귀에서도 많은 양의 피가 나와 있었다.

짝.

나 살아있는 건 맞나.

뺨이 얼얼한 걸 보니 죽은 건 아닌 듯하다.

- 끄아아아아아악!!!

잠잠해졌나 싶었는데 갑자기 엄청난 고통과 열기가 몸을 덮쳐왔다.

눈앞은 하얗게 변했고 귀에선 이명이 끊이지 않았으며, 코에선 그저 피비린내만이 가득했었다.

그렇게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느끼다 정신을 잃고 만 것.

설마.

조심스럽게 손을 옮겨 바지를 만져봤다.

휴.

다행히 지리진 않은 모양.

…!

위화감이 느껴졌다.

분명 조금만 움직여도 뒤지게 아팠던 팔이었다.

그런데 바지를 만지면서는 조금의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휘이익.

조심스럽게 팔을 돌려봤다.

멀쩡하다.

휘이익! 휘익! 휙!!

조금씩 강도를 높여가며 팔을 돌려도 멀쩡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다리와 몸을 움직이며 상태를 체크했다.

꿀꺽.

체크를 끝낸 뒤.

멍한 기분에 몸을 내려다봤다.

최소 한 달은 병원에 누워있어야 했던 부상.

그 부상이 말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사라지기만 한 게 아니야.

손을 올려 몸 여기저기를 만져봤다.

대충 확인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몸은 전보다 더 단단해져 있었다.

스윽.

고개를 올려 정상 쪽을 응시했다.

탓!

달리기 시작했다.

산 정상을 향해.

아무런 무기도 꺼내지 않은 채로.

가볍다.

가벼워도 너무 가벼웠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 너무 가볍게 느껴졌다.

쿠욱…!

그리고 땅을 짚는 발에서는 이전에 찾아볼 수 없었던 힘이 느껴졌다.

훨씬 더 빠르게, 훨씬 더 힘차게 발돋움 하는 게 가능했다.

두근.

그렇게 신체의 향상을 느끼며 한참을 내달렸다.

탁.

정신없이 오르다보니 도착해버린 산의 정상.

산까지 쉬지 않고 달렸는데도 호흡조차 흐트러지지 않았다.

“후우우웁.”

정상에서 산의 맑은 공기를 들이마셨다.

코를 통해 흘러 들어와 폐까지 전해지는 상쾌한 공기.

이전보다 더욱 달콤하게 느껴지는 달달한 공기였다.

얼떨떨하네.

정상까지 오르며 몸의 컨디션이 완벽하다는 걸 알았음에도.

쉽게 믿기지가 않았다.

마운티거를 통해 주운 산삼에 이런 엄청난 효능이 있었다니.

- 먹는 사람에 따라 달라요.

똑같은 천년삼을 먹어도 복용자에 따라 효능은 천차만별이라고 했다.

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내 몸이 삼을 받아들이기에 최적인지 몰라도 기대 훨씬 상회하는 효능이었다.

씨익.

몸이 완전히 나았다는 걸 깨닫자 미소가 지어졌다.

마음이 급해 다짜고짜 달려왔지만 조금 걱정했었다.

부상 때문에 강해지는 것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걱정 하나는 덜었고.

최소한 나로 인해 지체될 가능성은 없어졌으니.

다음 불확실성을 확인할 차례였다.

꾸벅.

하늘에 떠 있는 달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부디 되게 해주세요.

* * *

목적지로 향하기 전 기록을 살폈다.

가장 빨리 구해야 했던 무기는 2년 뒤에 대산이 발견하는 무기…지만.

그 무기는 소피아가 건들지 않기로 약속했다.

소피아가 약속을 어기지만 않는다면 굳이 시간에 쫓길 필요는 없었다.

사로카가 한국에 나타나는 건 2년하고도 조금 뒤.

나와 만난 게 변수가 되지 않았다면 사로카도 동일하게 나타날 것이다.

내가 바꿔야 하는 것도 없어.

2년 뒤까지 내가 지켜야 하는 이들은 모두 안전했다.

2년.

내게 주어진 여유 시간이었다.

# 잔고: 93,700,000.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확인한 잔고였다.

마운티거 님, 감사합니다.

오천 이상의 후원금을 벌어들인 것도 모자라 만년삼까지 준 마운티거에게 감사 인사를 올린 뒤.

초조한 마음으로 눈앞의 창구를 바라봤다.

- …?

조금 전 미친놈 아니야? 라는 얼굴로 날 바라봤었던 직원.

직원은 여전히 날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나 같아도 미친 놈이라고 하겠다.

- 만나고 싶다고 찾아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아무나 막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니에요.

창구의 직원은 한심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었다.

어쩔 수 있나.

방법이 없는데.

- 답장이 없을 확률이 99.999% 지만. 일단 그렇게까지 부탁하시니 연락은 남겨놓을게요.

어휴 시발 개귀찮지만 해준다는 표정으로 메세지는 남겨 준 창구의 직원.

그거면 됐다.

언제 답장이 올지 모르지만 기다릴 생각이었다.

무릎 꿇고 있어야 하나.

보통 영화나 만화에서 보면 비 오는 날 문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하염없이 기다렸었는데.

똑같이 해야 되는 게 아닌지 고민이 됐다.

“!!!”

벌떡!

세상 다 산 표정으로 앉아있던 직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 뒤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누구 높은 사람이라도 온 모양이었다.

“이게 누구야. 오라고 할 때는 매몰차게 거절하더니.”

!!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이곳, 헌터 중앙처에 찾아온 이유.

창구의 직원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나와 내 뒤에 있는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0.001% 적중.

말도 안 된다는 눈빛과 동시에 조금 전에 내게 무시하듯이 말한 것에 대한 낭패감 때문인 듯했다.

벌떡.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렸다.

꾸우버억!

돌아보기 무섭게 90도를 넘어 날카로운 예각 수준의 인사를 박았다.

태어나 이렇게 인사를 한 적은 처음이었다.

“뭐야? 안 어울리게.”

대한민국 국가직 1급 헌터.

다이아몬드 인간이라 불리며 동시에 모두의 영웅인 남자.

기태랑이 나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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