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사부님
“뭐…?”
중앙처에 위치한 기태랑의 사무실.
눈이 커진 기태랑이 컵을 내려놓으며 날 바라봤다.
이게 드디어 미쳤구나 싶을 거야.
다짜고짜 찾아온 나를 만나준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난 그냥 얼굴이나 보려고 찾아온 게 아니었다.
- 싸움 좀 알려주세요!!
책상에 머리를 박으며 기태랑에게 건넨 말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책상에 머리를 박은 채였다.
이게 최선이자 최단 루트다.
내가 이런 확신을 가지게 된 근거는 명확했다.
2년 전 한국에 나타난 사로카.
그 사로카를 잡은 게 기태랑이었기 때문이다.
- 기태랑입니다! 기태랑이 또 잡아냈습니다!
그때의 이름은 사로카가 아닌 붉은 바리였지만.
어쨌든 그 사로카를 단신으로 박살낸 게 기태랑이었다.
- 엄청난 격투전입니다!
엄청난 강도를 자랑하는 갑주와 다이아몬드의 부딪힘.
난 다이아몬드는 아니지만.
그때는 뉴스를 보며 다이아몬드가 더 단단해서 이겼구나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기태랑이 강한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엄청난 격투 능력.
멀리서 대충 보면 알 수 없지만.
기태랑의 이력은 화려했다.
개방하기 전부터 수많은 무술 마스터는 물론이요, 그 무술을 바탕으로 격투기 대회란 대회는 모조리 휩쓸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급이고, 그래서 무적이라 불리는 거야.
어떻게 보면 기태랑은 자신과 어울리는 최적의 능력을 개방한 것이었다.
절대 부서지지 않는 몸과 인간계 최강이라 불리던 격투 실력까지.
가히 사기라 부를 수 있는 조합이었다.
내 목적은 사로카를 박살내는 것.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그 맛을 아는 법.
내 판단에선 회귀 전 사로카를 잡았던 기태랑에게 싸움을 배우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갑자기 싸움을 알려달라니.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나가 이 새끼야! 라고 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이유를 묻는 기태랑에 후지산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줬다.
S급 데몬한테 개발렸으며 죽을 뻔 했다는 걸.
아마 이대로라면 금방 쥐도 새도 모른 채 죽을 거라는 징징거림까지 더해서 말이다.
“그래서였군.”
…?
그래서였다니?
기태랑이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이틀 전에 일본 니시다 료코라는 장관이 신원 조회를 요청해왔거든. 이유는 국가 기밀이라 알려주지 못하겠다 하더군.”
여기까지 올라온 모양이구만.
료코가 신원 확인을 위해 무언가 했다는 것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단지 그게 1급인 기태랑한테까지 전해졌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이거 참. 유별난 건 알았지만 일본까지 가서 S급 데몬이랑 싸우다니.”
기태랑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날 바라봤다.
“S급이랑 싸웠는데도 살았다는 게 다행이고. 패배했는데도 몸이 멀쩡하다는 건 정말 천운이야.”
어떻게 멀쩡한지 물으면 말하려고 했지만.
굳이 궁금해하는 것 같진 않아서 만년삼 이야기는 접어두기로 한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흠.”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 의자에 몸을 기대는 기태랑.
“나한테 싸움을 알려달라는 걸 보니 강해지고 싶은 걸 텐데. 강해져서 어떻게 하려는 거지?”
“그놈 찾으러 갈 거예요.”
“푸흡…!”
망설임 없는 대답에 기태랑이 머금고 있던 차를 뿜었다.
휘둥그래진 눈엔 이거 진짜 개미친놈이구나 하는 메세지가 쓰여있었다.
“S급이란 등급이 왜 붙었는지 의미는 알고 있는 거야?”
고개를 끄덕였다.
갓난 아이도 S급이 노네임드 이상의 데몬에게 붙여지는 급이며, 노네임드라 하면 세계 모든 사람이 두려움에 치를 떠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번엔 운이 좋아서 살았지만, 다음은 아닐 거야.”
사뭇 심각한 얼굴로 기태랑이 말을 이어갔다.
“다음엔 죽을 거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걸 아는데도 또 찾아가겠다고? 죽고 싶어 안달 난 것처럼 보이는데.”
무언가 살짝 화나 보이는 기태랑에게 고개를 내저었다.
“반대에요. 살고 싶어서 안달 났거든요. 그래서 찾아온 거예요.”
“….”
어디 한 번 계속 말해보라는 표정의 기태랑에 말을 이어갔다.
“한 번 죽을 뻔했다고 방구석에 박혀 벌벌 떨면서 숨어 살 생각은 없어요. 그렇다 보니 또 언젠가는 사로카 같이 강한 적을 만날 거고요. 그럼 전 아마 죽겠죠.”
한 차례 숨을 돌린 후 기태랑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내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었다.
진심이었기에, 그 진심이 온전히 전달되었으면 했다.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방법을 고민하다 찾아왔어요. 제가 죽지 않도록.”
쿵.
다시 한번 테이블에 머리를 박아 넣었다.
“싸우는 법 좀 알려주세요.”
“….”
꼴깍.
제바알!!
무겁게 찾아온 정적.
기태랑의 대답을 기다렸다.
거절하면… 내일도 온다.
내일 거절 당하면?
내일 모레도 오고 그 다음 날도 오고 계속 올 생각이었다.
단순한 격투기로는 안돼.
그럴 거였으면 돈만 내면 알려주는 격투기 도장에 갔을 것이다.
난 실전에서 통할, 수많은 싸움을 통해 단련된 찐 싸움을 배우고 싶었다.
부스럭.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는 기태랑.
창문 밖으로 날 던지려는건가 하는 순간.
“생각하는 시간은?”
!!
호다닥 고개를 들어 답을 했다.
“2년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기태랑이 쪽지에 주소 하나를 적어 내게 건넸다.
“준비해서 이틀 뒤에 이곳으로 와.”
됐다!
“감사합니다!”
“오면 끝이다. 힘들다고 도망치고 그런 거 없어.”
“당연함돠!”
우렁찬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기태랑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럼 이틀 뒤에 보자고.”
* * *
- 싸움 좀 알려주세요!
“허.”
의자에 앉은 기태랑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다짜고짜 찾아온 것도 모자라 자리에 앉자마자 한 얘기가 싸움을 알려달라는 거라니.
‘별나다는 건 알았지만… 상상 이상이네.’
기태랑을 놀라게 한 건 또 있었다.
백운과 사찰 앞에서 헤어진 지 불과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
‘그 몸… 어떻게 된 거지?’
남들은 모를 수도 있지만.
육체 단련엔 이골이 난 기태랑은 알 수 있었다.
백운의 몸이 전에 만났을 때보다 말도 안 되게 좋아졌다는 걸 말이다.
‘단순히 운동을 했다… 는 건 말이 안 되고.’
근육이 만들어지는 데까지는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했다.
운동을 해서 키웠다는 건 불가능한 일.
백운의 몸은 싸움에 필요한 근육만이 말도 안 되게 발달된 상태였다.
그리고,
풍기는 기운 역시 달라졌다.
단순히 육체적 발전으론 얻을 수 없는 것마저 생겨있었다.
‘훨씬 날카로워졌어.’
이건 짐작이 가는 게 있었다.
죽을 뻔한 위기.
이런 위기에 처했을 때 사람의 반응은 두 가지다.
무너지거나, 딛고 일어나거나.
후자의 경우엔 보통 이전엔 상상도 할 수 없던 감각과 투지를 얻게 된다.
‘본인은 잘 모르겠지만.’
톡. 톡. 톡.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들기며 이틀 뒤부터 시작될 일들을 떠올렸다.
단순히 복수를 위해서 왔다면 고민 했겠지만, 살려달라고 온 사람을 어떻게 내칠 수 있단 말인가.
“풉.”
기태랑이 고개를 흔들며 조금 전 생각을 정정했다.
‘솔직해지자.’
누군가를 살려야겠다는 정의감.
백운에게 싸움을 알려주기로 한 건 그런 것 때문이 아니었다.
애초에 배우고자 하는 이유를 물은 것도 쓸데없는 짓이었다.
‘어차피 거절할 생각도 없었으면서 쓸데없는 질문을 했군.’
백운이 싸움을 알려달라고 말한 순간.
기태랑의 안에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호기심이었다.’
백운을 처음 만난 건 구룡산에서였다.
10급 헌터라면서 뿜어내던 엄청난 화력.
특이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광산에서부터였어.’
피렌조와 싸우는 백운의 모습을 보며 기태랑은 묘한 감정을 느꼈었다.
‘기대감.’
광산에서 만난 백운은 구룡산 때보다 훨씬 강했다.
그리고 광산에 들어갔던 백운과, 피렌조를 마무리 짓던 백운 역시 달랐다.
그 짧은 사이에 더욱 성장해버린 것.
‘오늘은 그때보다 또 성장해서 내 눈앞에 나타났군.’
두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기태랑은 백운의 말도 안 되는 성장세에 견디기 힘든 기대와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말이다.
‘어디까지 강해질지.’
기태랑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머금어졌다.
‘미치도록 기대된다.’
* * *
자연인이셨나.
눈앞에 자리 잡고 있는 돌산을 바라봤다.
아닌가, 손오공인가.
손오공도 돌산에서 태어났다고 하던데.
만화에서 봤던 그런 산을 떠올릴 정도로 앞에 있는 산은 엄청났다.
머리에 총을 맞지 않은 이상 등산할 엄두조차 안 날 경사.
묵직.
고개를 돌려 어깨에 멘 배낭을 바라봤다.
- 의식주는 알아서 해결해라.
그래서 이틀 동안 여기저기를 돌며 잔뜩 구매해왔다.
일용할 식량과 잠을 잘 텐트와 옷가지까지.
- 강은 있으니 씻을 순 있을 거야.
이런 곳에 강이 있는 게 더 신기하네.
역시 자연은 위대하다는 생각을 하며 첫발을 내디뎠다.
수리검으로 올라갈까 했지만 본격적인 수련 전 몸도 풀 겸 뛰어 올라갈 생각이었다.
과연 무슨 수련일까.
만화에서 봤던 각종 수련법들이 떠올랐다.
2년이면 충분하다고 확신하던 기태랑.
기태랑만의 필살 특훈법이 있는 것 같았다.
이제 뭐라고 부르지.
오늘부턴 기태랑의 그림자조차 밟지 않을 생각이었다.
스승님? 사부님?
이거이거… 낯간지럽구먼.
스승과 제자라니.
마음까지 따듯해지는 훈훈함을 느끼며 목적지로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 * *
… 응?
나름 일찍 도착한 정상엔 이미 기태랑이 와있었다.
해맑게 인사를 한 직후.
배낭을 내려놓으라 하더니 기태랑이 무언가를 던져주었다.
뭐지, 보호구 같이 생긴 것들은.
기태랑이 던진 건 팔과 다리, 몸에 차는 보호대였다.
물론 딱 봐도 일반적인 건 아니었다.
평소에 보던 쿠션감 있는 보호대가 아닌, 왠지 모르게 오묘한 빛을 내고 있는 광석으로 만들어진 보호대였다.
“오늘 이후로 절대 벗지마라. 2년 뒤까지.”
!?
2년 뒤까지 벗지 말라니.
솔직히 놀랐지만 되묻진 않았다.
뭘 시키든 다 할 생각이었으니까.
“알겠습니다.”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 후 떨어져 있는 각반 하나를 주웠다.
!!
개무겁다.
개무겁다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정도로 미친 듯이 무거웠다.
양다리와 양팔, 몸통까지 하면 보호대는 총 다섯 개.
이런 무게를 다섯 개 찼다간 걷는 게 최선일 것 같았다.
그래도 차야지.
착.
간신히 보호대를 다 찬 후 입을 열었다.
“다 착용 했….”
빠악!!
“꾸헥!”
온몸을 울리며 저릿하게 만드는 고통이었다.
분명 보호대에 맞았는데 고통이 왜 이렇게 선명한 걸까.
“마각의 보호대다.”
조금 전 냅다 발차기를 꽂아 넣은 기태랑이 입을 열었다.
“몸을 완벽히 보호해주지만, 고통 만큼은 그대로 전달되지.”
스스스…!
다시 공격하기 위해 기태랑이 발을 치켜들기 시작했다.
“고통을 줄이고 싶다면.”
쐐에에엑!
눈앞으로 기태랑의 발차기가 날아들었다.
“움직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