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84화 (84/473)

84화. 날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몇 달 뒤.

돌산에 오르고 몇 달이 지났지만 난 여전히 처맞고 있었다.

빡! 빡! 빠악! 퍼억!

“꾸억! 끄악!”

기태랑은 공격했고 난 두들겨 맞는 중.

얼핏 보면 첫날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지만, 다른 게 있었다.

휘익!

두들겨 맞으면서도 나 또한 손과 다리를 뻗고 있다는 것.

처음엔 보호대의 무게에 적응하지 못해 꼼짝도 못 하고 처맞았지만, 밤낮을 가리지 않고 보호대를 찬 채 산을 오르락내리락 한 결과.

움직여진다.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 100%는 아니지만 팔과 다리가 내가 원하는 곳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빠악!

꾸억!

물론 여전히 더럽게 아팠다.

다이아몬드니까 당연한 건가.

이 보호대가 아니었다면 팔다리가 부서졌을 터.

이런 공격을 받으면서도 다치지 않을 수 있단 것에 감사해야 했다.

그나저나 다이아몬드란 건 정말.

빠악!

개단단하구나!

처맞으며 새삼스럽게 깨달은 진리였다.

- 태권도에서 중요한 건 축이다.

기태랑이라고 해서 막무가내로 두들기는 건 아니었다.

두들기더라도 다양한 무술로 다채롭게 후려 패고 있었다.

진짜 괴물이네.

몸소 처맞으면서 느낀 건 기태랑의 경이로움이었다.

무술마다의 준비동작과 전개 과정, 타격 방식은 천차만별이었다.

그럼에도 기태랑은 이 모든 걸 몸에 익히고 있었다.

- 몸으로 기억해라.

기태랑은 내가 한 무술에 익숙해질 때쯤이면 다른 무술로 날 두들겼다.

그때마다 나 또한 달라진 무술을 배워나가며 반응을 하고 있었다.

뻐억!

“꾸헉!”

데굴데굴.

마지막 기태랑의 뒤차기를 맞으며 바닥으로 뒹굴었다.

엄살이 아니라 뒹굴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오늘도 안 죽었구나.

저물어가는 해를 보며 오늘도 살아남았음에 감사를 느꼈다.

“내일 보자고.”

기태랑이 쿨하게 손을 흔들며 산을 내려갔다.

항상 똑같은 스케줄이었다.

기태랑은 아침에 와 날 두들긴 후 산을 내려갔다.

“하아.”

첫날은 뒤지겠구나 싶었는데.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했던가.

몇 달이 지나니 더럽게 아프긴 해도 견딜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짝 반짝.

별 이쁘네.

이런 맛이 있었다.

하루종일 두들겨 맞은 후 올려다보는 밤하늘의 별.

반짝이는 게 별인지 내 눈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름다웠다.

내일은 비광 님 차례니 그나마 덜 맞겠네.

두 달 전.

내가 한참 두들겨 맞고 있는 정상으로 비광이 찾아왔다.

- 재밌어 보이는데? 나도 껴주라.

그렇게 날 두들… 아니지.

수련에 참가하게 된 비광.

다행이라면 비광마저 날 무참히 두들기진 않았다는 것이다.

- 도박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해?

비광이 처음으로 내게 건넸던 질문이었다.

머선 소리고!

처음엔 이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나 의아했었다.

- 눈 감아봐.

쿡. 쿡. 쿡. 쿡. 쿡.

- 검지, 검지, 검지, 검지.

내 어깨를 찌르며 어느 손가락으로 찔렀는지를 말해준 비광.

쿡.

- 어느 손가락이게?

검지요.

라고 대답한 후 눈을 뜨자,

…!

펼쳐져 있는 새끼 손가락이 보였다.

- 심리전. 도박이든 싸움이든 절대 빠지지 않는 게 심리전이야.

오른쪽이다 싶으면 왼쪽을.

왼쪽이겠다 싶으면 위를.

상대가 예측할 수 없게끔 공격을 해야 한다는 것.

진짜 당연한 이치인데.

지난 싸움들을 떠올려보니 그냥 되는대로 공격을 퍼부었을 뿐 상대의 심리나 이런 것들까지 고려하진 않았었다.

- 하지만, 한끗 차이로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싸움에서 공격마다 이런 걸 염두하며 싸우는 건 불가능하지.

톡톡.

비광은 자신의 머리를 두들기며 미소를 지었다.

- 그래서 필요한 거다, 센스가. 굳이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자동으로 방어와 공격에 묻어나오는 판단. 그게 전투 센스야.

그 날부터 비광은 내 전투 센스를 키워주겠다며 주기적으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 삼땡.

빠악!

물론 강도만 덜 할 뿐 심리전에 패배해 처맞는 건 마찬가지였다.

“후우…!”

휴식을 마치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으챠.”

이젠 보호대를 찬 채 돌산 전체를 한바탕 뛰어다닐 차례였다.

“가볼까.”

* * *

달리기를 시작하고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으어… 뒤지겠다.”

처맞은 것도 모자라 달리기까지 하니 온몸이 녹초였다.

아니지, 녹초도 이렇게 히마리가 없진 않을 것이다.

엉금엉금.

낮은 포복을 이용해 목적지를 향해 기어갔다.

한 뼘만… 더!

퐁당.

손끝으로 강물의 시원함이 느껴졌다.

손가락 하나 담궜을 뿐인데 온몸으로 청량감이 밀려드는 기분이었다.

호다닥… 풍덩!

그대로 굴러 강으로 입수했다.

천국이다.

강 입장에선 땀에 절여진 내가 달갑지 않을 테지만.

어쩌겠는가.

나부터 살고 봐야지.

푸욱.

머리끝까지 물속으로 집어넣은 후 몸을 뒤집었다.

반짝.

눈을 뜨자 물을 뚫고 들어온 달빛이 날 반겨줬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기태랑에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손꼽아 기다리는 순간이 바로 지금이었다.

하아.

달궈진 몸을 서서히 식혀주는 시원한 물의 감촉과 세상에 나 혼자가 된듯한 고립감까지.

하루 동안 쌓였던 피로가 한 번에 씻겨 흘러 가버리는 느낌이다.

강해지고 있다.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순간.

이 순간마다 항상 달라진 내 몸을 체크해 나갔다.

솔직히 처음엔 그냥 아프기만 했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내 머리와 몸은 기태랑의 싸움을 습득하고 있었다.

배워야지! 라는 머리에 의해서가 아닌, 엄청난 고통과 함께 자연스럽게 터득이 되는 중이었다.

꽈악.

그와 함께 몸 역시 말도 안 되게 성장했다.

대충 만져봐도 돌덩이 같아진 팔과 다리.

단단해졌어도 다이아몬드만큼은 아니기에 여전히 아팠지만, 확실히 단련되고 있었다.

내일이 안 왔으면 했는데.

수련을 하기 싫다거나 하는 그런 썩어빠진 생각은 아니었다.

그저 몸으로 느껴지는 고통이 워낙 엄청나다 보니 좀 천천히 왔으면 한 것이었다.

그리고, 고통에 의해 했던 이런 생각도 지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지금은 오히려 반대.

내일이 빨리 왔으면 했다.

고통을 즐기는 변태가 된 건 아니었다.

여전히 더럽게 아프고 힘들었지만, 성장의 즐거움과 기대가 이러한 힘듦을 가볍게 즈려 밟아버린 것.

즐겁다.

고통과 별개로 미치도록 즐거웠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가는 이 느낌.

이 고통 때문에 내가 죽는 게 아니라면, 난 계속 강해진다.

꾸룩.

“푸하아!”

한계에 도달한 숨에 몸을 일으켰다.

들어오기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상쾌했다.

차박.

물에서 나와 강 위에 있는 바위로 걸어갔다.

짧지 않은 하루였지만 아직 남은 게 있었다.

잠에 들기 전 빼먹지 않고 하는 마지막 루틴.

[잭 더 리퍼]

내 육체적 성장도 필요했지만.

무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것 역시 중요했다.

면도칼을 꺼내 휘두르며 계속해서 감각을 살려 나갔다.

[앤 보니&메리 리드]

[유탈라스 - 1단계 의태]

[비전 수리검]

[스이카]

다른 무기들도 마찬가지였다.

매일매일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무기를 꺼내 감각을 익히고 탐구해나갔다.

이전엔 너무 휘두르는데 급급했어.

내가 살아있으니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무기를 더 깊게 이해하며 완벽한 나의 것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강해지자.

면도칼을 휘두르며 입술을 깨물었다.

무기와 함께.

* * *

돌산의 입구.

기태랑과 비광이 나란히 산을 올랐다.

“대단하네. 이 돌산을 맨날 오른다고?”

“호출이 있었던 날 제외하고는 맨날 올랐지.

비광이 기태랑의 정성에 혀를 내둘렀다.

“내가 생각하기엔 네가 더 대단한데? 그 좋아하는 도박도 멈춘 채 같이 오르고 있잖아.”

어깨를 으쓱 올려 보이는 비광.

“나야 일주일에 한 번인데 뭐.”

기태랑이 그런 비광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일주일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이 뭐가 대수냐고 할 수 있지만.

비광에겐 대수였다.

‘장관님의 호출이 아니면 도박장에 사는 놈인데.’

극강의 도박 중독과 귀차니즘.

이 두 가지가 합쳐져 만들어진 게 비광이란 인간이었다.

‘나도 한 귀차니즘 하지만.’

비광과 비할 바는 못 됐다.

그런 비광이 지금은 매주 찾아와 자신과 돌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마 나랑 같은 이유겠지.’

기대감.

스승과 제자라던가 그런 낯간지러운 용어를 사용하고 싶진 않았다.

단지, 제자의 성장을 지켜보는 스승의 즐거움이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은 들었다.

‘말도 안 되는 성장 속도.’

원래도 알았지만 직접 지켜보니 혀가 내둘러졌다.

“저번 주에 보니 보호대는 적응 끝난 모양이던데.”

“그런 거 같더군.”

마각의 보호대.

첫날 돌산으로 보호대를 가져가면서도 너무 강행군인가 라는 생각을 했었다.

마각.

관련 능력자가 온갖 귀하다는 재료를 모아 만든 새로운 종류의 광석이었다.

전해져야 할 고통은 그대로 전해지지만, 직접적인 상처나 데미지는 받지 않는 특수 광물.

‘그럼에도 쓰이지 않는 건… 저 미친 무게.’

만들기가 어렵고 시간까지 오래 걸려 대량 생산도 불가능했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이 안 찾는 건 무게 때문이었다.

온갖 경량화 능력을 쏟아부어도 마각은 전부 튕겨내 버린 것.

그래서 모두가 사용을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마각 보호대 다섯 개를 한 번에 찬 것도 놀라웠는데.’

시간을 두고 하나씩 차라고 던져준 걸 처음부터 주섬주섬 다 차버린 백운.

그것도 모자라 몇 달 만에 마각의 무게를 완벽히 소화해버렸다.

“미친놈이야.”

“미친놈이지.”

같은 생각에 비광과 기태랑이 고개를 저었다.

“밤마다 미친놈처럼 뛰어다니는 거 같던데.”

“하늘로 총까지 쏴대고, 무슨 귀신 울음소리까지 만들어내던데.”

덕분에 기태랑은 동료 헌터에게 부탁해 돌산 주변을 결계로 둘러싸야 했다.

아무리 오지여도 이 정도 퍼포먼스면 빠르든 늦든 눈에 띌 것이었기 때문이다.

“뭐하는 놈이야, 대체.”

“그러게.”

비광의 궁금증엔 기태랑도 동감이었다.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몸에, 무슨 능력이기에 저리 다채로운 힘을 쓸 수 있는 걸까.

“들어도 모르겠더군. 다양한 무기를 흡수하고 쓸 수 있다는데… 단순히 그게 끝이 아닌 거 같아.”

기태랑이 궁금해하자 백운이 무기 별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 준 적이 있었다.

“각각의 무기를 꺼내 들 때마다… 다른 사람이 된 느낌이었어.”

“흐음.”

산을 오르는 둘 사이로 묘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둘은 알고 있었다.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육체와 기술, 그리고 센스까지 미친 성장 속도를 보여주는 괴물 같은 인간. 그리고, 그런 인간이 개방한 건 무기를 모으면 모을수록 강해지는 능력.”

피식.

비광의 혼잣말에 기태랑이 미소를 지었다.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네.’

“그 말인 즉슨.”

고개를 끄덕인 기태랑이 비광의 말을 이었다.

“강해지는데….”

돌산의 정상을 바라보며 기태랑과 비광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한계가 없다는 것.”

“한계가 없다는 것.”

* * *

2년 뒤.

1